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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40일 동안 물집이 굳은살로 바뀌었다. 내 마음도 강해졌다

글‧사진 김채울 @_whereismypizza
  • 입력 2021.09.27 17:19
  • 수정 2021.09.27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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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천사의 백두대간 일시 종주기 〈15〉구룡령~조침령~단목령
어린이재활병원 기부하는 28세 여성 마라토너, 홀로 백두대간 670km 종주 도전

일시종주 39일차 : 구룡령~만월봉

오랜만에 선생님들을 뵈어 늦은 시각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아침에 늦잠을 자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아침 4시쯤 저절로 눈이 떠졌다. 블로그 일기를 쓰다가 바깥에서 인기척이 들려 나가 보니 선생님께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시고 계셨다. 

백두대간 종주의 끝을 향해가고 있는 요즘, ‘내가 백두대간 일시종주자 중 가장 호화롭게 여행 중인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찾아와 주시는 분들도, 응원해 주시는 분들도, 그리고 길 위에서 만나는 분들도 다 좋은 분들뿐이라 호강도 이런 호강이 없다.

구룡령 앞에서 문성욱선생님, 양유석 선생님과 함꼐
구룡령 앞에서 문성욱선생님, 양유석 선생님과 함꼐

구룡령 앞에서 선생님들께 마지막 인사를 드린 후 인증사진을 남겼다. 오랜만에 뵌 선생님들은 큰 힘이 되어주셨다. 선생님들 덕분에 단백질을 가득 보충했더니 곧장 진부령까지 뛰어서 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어제 법정탐방로가 끝나는 구간인 두로봉까지 운행했으니 오늘은 다시 길을 걸을 수 있는 구룡령에서 만월봉까지 마루금을 이을 계획이다. 구룡령~만월봉 구간이 비법정구간이라는 정보가 있어 걱정이었는데, 구룡령 앞에서 만난 홍천국유림관리소의 숲길 지도사이신 고필현 선생님께서 법정탐방로라는 것을 확인해주신 덕분에 안심하고 길을 이을 수 있게 되었다. 

구룡령 초입에서 만월봉까지는 오르내림이 심하고, 특히 약수산까지는 오르막 경사도가 높아 정말 숨이 많이 찼다. 구룡령의 해발이 1,013m인데, 약수산 정상까지 1.1km만에 약 300m의 고도를 치고 올라가야 했다. ‘배낭을 메고 올랐으면 진짜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어쩌면 여기는 딱 이 사이에 비탐방 구간이 껴있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멧돼지들이 파헤친 흔적, 등로가 사라졌다
멧돼지들이 파헤친 흔적, 등로가 사라졌다

응복산 오르는 길에는 멧돼지의 흔적이 꽤 많이 보여서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땅을 얼마나 파헤친 건지, 아예 등산로가 없어져버려 여러 번 길을 잃기도 했다. 오늘 구간은 탁 트인 경치나 멋진 숲길 같은 건 없었지만 컨디션도 좋아 걷고 뛰고를 반복하며 빠르게 움직였다. 오늘만큼은 산행이 아닌 트레일 러닝을 했다. 

백두대간을 걸으며 트레일 러닝을 다시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한다. 운동을 시작하고 가장 열심히 오랫동안 한 종목이 트레일 러닝이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무릎과 발목에 통증이 시작되어 한 동안 쉬고 있던 터였다. 그래도 이렇게 백두대간 종주를 하고 있는 걸 보니 아직은 내 무릎과 발목이 건강한가보다. 종주를 끝내고 나면 ‘불수사도북’도 해보고, 지리산 화대종주도 해봐야겠다.

부지런히 걷다 보니 어느새 비법정탐방로가 시작되는 1,210고지 인근 공원 경계에 닿았다. 국립공원 홈페이지에는 ‘1,210 고지 인근 공원 경계’라고만 구간 설명이 나와 있어서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었는데, 계속 걷다 보니 로프로 길을 막아둬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다시 구룡령으로 내려간다. 편도 9.5km, 왕복 19km. 9.5km의 마루금을 잇기 위해 두 배가 되는 거리를 돌아서 간다. 종주 초반엔 우회길로 돌아가는 게 참 답답하고 번거로웠는데, 이제는 그 속에서도 나름의 재미를 찾고 있다. 예를 들어 오늘은 ‘구룡령에서 3시간을 올라왔으니 하산하는 건 2시간 30분 안에 해보자’는 셀프 미션을 주고 열심히 걷고 뛰며 내려왔다. 어제에 이어 오늘 저녁에도 또 다른 ‘트레일 엔젤’의 방문이 예정되어 있어 굳이 빨리 이동할 필요는 없었지만 힘이 넘쳐나 계속 에너지를 쓰고 싶었다. 역시 삼겹살의 힘은 위대하다.

구룡령에서 만난 분들 덕분에 푹 쉬고 먹으며 호강했다
구룡령에서 만난 분들 덕분에 푹 쉬고 먹으며 호강했다

오후 3시, 구룡령에 다시 복귀했다. 어제 출발할 때 뵈었던 고필현 선생님을 다시 만났다. 선생님께선 “어떻게 그리 빨리 갔다 왔냐”며 놀라시곤, 지인에께 “이 친구 시원한 것 좀 주라”며 챙겨주셨다. 덕분에 시원한 콜라와 치즈, 커피와 라면까지 배불리 얻어 먹었다. 

점심 식사를 하며 고필현 선생님은 산에서 야생동물을 만났을 때 대처법 같은 걸 알려주셨다. 또 다른 일행께서는 노지캠핑이 취미시라며 서로 숨은 박지를 공유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분들도 암벽등반을 하는 산악회 회원들이라고 했다. 종주를 하다 우연히 만난 분들이 같은 관심사를 갖고 있는 분들이라니 신기했다. 

여유롭게 쉬다가 저녁 무렵, 기다리고 기다리던 ‘트레일 엔젤’, 도성 사장님이 구룡령에 도착했다. 도성 사장님은 작년에 잠깐 일했던 ‘호명산 잣나무 숲속 캠핑장’을 운영하고 계신다. 마음이 잘 맞아 캠핑장 일을 그만 둔 이후에도 계속 좋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도성 사장님이 사오신 피자와 맥주 등 맛있는 음식들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대간길에서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행복이자 행운이다. 어제도 선생님들께서 찾아와주신 덕분에 행복한 하루를 보냈는데, 오늘도 아침부터 밤까지 좋은 분들과 함께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 아, 이러다 정말 서울 돌아가기 싫을 것 같다. 백두대간, 좋아도 너무 좋다. 

일시종주 40일차 : 구룡령~조침령

40일 만에 처음이었다. 생각해보니 이제껏 대간길에서 단 한 번도 밤하늘의 별을 본 적이 없었다. 매번 운행 종료 후 초저녁에 텐트에 들어가 일기를 쓰고 바로 잠들다 보니 밤하늘을 볼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평소엔 항상 새벽 2~3시쯤 잠에서 깼는데, 오늘은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각에 눈이 떠졌다. 그리고 그 순간 눈 앞에 쏟아질 것만 같은 별 바다가 있었다. 어찌나 별이 많던지 황홀하고 아름다웠다. 

내가 매번 ‘인생 밤하늘’이었다고 말하는 게 아타카마사막에서 만났던 은하수인데, 그 날과 버금가는 별의 바다였다. 어제 텐트를 치지 않고 잤던 게 ‘신의 한 수’였다. 40일이 지나도록 왜 여태 한 번도 밤하늘 볼 생각을 못 했는지,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에라도 틈틈이 밤하늘을 올려다보기로 마음먹었다.

출발 전, 도성사장님과 함께
출발 전, 도성사장님과 함께

오늘의 목적지는 조침령으로, 약 21.5km의 거리이다. 전 구간이었던 구룡령~만월봉 구간은 4~5개의 적은 봉우리를 지나지만 표고차가 심한 것에 비해, 이번 구간은 봉우리는 훨씬 더 많이 지나지만 표고차는 심하지 않다. 어차피 힘든 건 똑같지만 아무래도 오르락내리락하는 차이가 적은 게 덜 힘들긴 하니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평소보단 긴장이 덜 되었다. 그리고 오늘은 도성 사장님과 함께 산행을 하니 더욱 힘이 났다.

우리가 출발하려는 모습을 보시곤 고필현 선생님께서 마중을 나오셨다. 고 선생님께서는 70대이신데, 요즘도 여전히 등반을 하신다고 한다. 헤어지기 전 내가 “나중에 바위에서 뵙겠습니다!” 하니, 선생님께서 “그래, 나중에 나 팔십 되었을 때 줄 깔아줘” 하고 웃으며 말씀하신다. 

산행 시작 30분 정도가 지나 구룡령옛길 정상에 도착했다. 오늘 걷는 구간은 조망도 없고 특징도 없다고 해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중간 중간 나무 사이로 조금식 조망이 보였고, 길 자체도 나무가 많아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오늘의 첫 번째 봉우리이자 구간 중 가장 높은 봉우리인 갈전곡봉(1,204m)에 도착했다. 갈전곡봉만이 유일하게 명칭을 가지고 있었고, 이후 만나는 봉우리는 모두 무명봉이었다. 갈전곡봉까지 오르는 길이 조금 가팔랐는데, 숨이 차긴 했지만 어제의 구룡령~만월봉 구간에 비하면 비교적 수월했다.

계곡에서 취수한 물을 정수해서 마셨다
계곡에서 취수한 물을 정수해서 마셨다

연가리골 갈림길에 도착했다. 이 곳은 샘터로 가는 갈림길이다. 3분 정도 길을 따라 내려가니 계곡이 보인다. 결국 샘터는 찾지 못 했지만 계곡물이 맑고 깨끗해서 세수도 하고 물도 떴다.  물은 정수필터로 정수해줬다. 처음엔 연초록빛을 돌고 있던 물이 정수필터를 쓰니 투명해진다. 매번 써도, 매번 신기하다. 사실 40일 동안 7~8번 정도 쓴 것이 다이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특한 녀석이다. 

도성 사장님은 전날 잠을 한 숨도 못 잔 탓인지 갈수록 나와의 거리가 멀어졌다. 쉴 때마다 에너지바와 에너지젤을 하나씩 드렸다. 사장님은 머쓱해하며, “트레일 엔젤을 하러 왔는데 내가 지금 트레일 엔젤을 받고 있다”며 “누가 보면 내가 백두대간 40일째 종주 중이라고 착각하겠다”고 하며 웃으셨다. 

어제보다 오늘 구간의 난이도가 낮은 게 분명한데 운행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몸은 더 피곤했다. 한없이 멀게만 느껴졌던 쇠나드리 갈림길에 오후 5시 30분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쇠나드리 갈림길에서 목적지인 조침령까지는 완만한 흙길이라 이후부터는 부담 없이 걸을 수 있었다.

진욱사장님의 트레일매직, 산에서 먹은 회
진욱사장님의 트레일매직, 산에서 먹은 회

조침령에는 반가운 손님이 있었다. 도성 사장님의 지인인 진욱 사장님이었다. 3일 연속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오니 매일매일 파티를 하는 기분이다. 진욱 사장님은 묵사발과 모둠회를 갖고 오셨다. 산에서 먹는 회라니! 도성 사장님은 “오늘 하루가 너무 길고 힘들었다고, 그래서 내가 지금 트레일 매직을 받아야 된다”고 하셨다. 그러자 진욱 사장님은 “채울이 먹이려고 가져온 건데 왜 네가 다 먹냐”고 했고, 도성 사장님 나를 보며 “트레일 데빌이라고 들어봤어요? 트레일 엔젤만 있는 줄 알았죠?”라고 답하셨다. 

사장님들 덕분에 저녁 내내 깔깔 웃었다. 강원도는 서울에서 접근성이 좋다보니 지인들에게 연락이 더 자주 오는 듯하다. 여행 유튜버인 소연 언니, 대학 동기인 인혜도 응원 차 찾아오겠다고 했지만 이제 종주가 얼마 남지 않았고, 에너지도 충분한 상태라 마음만 감사히 받겠다고 했다. 

일시종주 41일차 조침령~단목령

요즘 들어 아침에 출발 하는 게 너무 힘들다. 원래는 아침마다 “좋아 오늘도 가보자!”라고 외치며 힘차게 출발을 했는데, 요즘은 컨디션이 좋음에도 유독 움직이기도 귀찮고 그저 쉬고 싶은 생각뿐이다. 

찾아와 주시는 ‘트레일 엔젤’ 등 응원해주시는 많은 분들께 에너지를 얻고 있지만 그럼에도 40일이라는 시간과 700km가 넘는 거리에서 쌓인 피로감은 무시할 수 없는 듯하다. 계획상으론 이번 주 금요일에 설악산 진부령에 도착해 대간을 끝낸다. 앞으로 3일, 딱 3일만 더 여태 걸어온 것처럼 걸어 나가면 된다.

트레일엔젤, 진욱사장님과 도성사장님
트레일엔젤, 진욱사장님과 도성사장님

진욱 사장님이 차려주신 아침 식사를 하고 운행을 준비한다. 원래는 오늘도 사장님들이 동행하기로 했는데, 도성 사장님이 어제 힘드셨는지 오늘은 나 혼자 걷고 두 분은 근처 계곡에 놀러가기로 했다. 도성 사장님은 “이걸 어떻게 40일 동안이나 해왔냐”며 대단하다고 말했다. 

사실, 처음 종주 산행을 한다는 것, 그것도 한여름에 한다는 것은 나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루하루 나와의 싸움을 이겨내며 알게 모르게 성장하고 있는 듯하다. 매일매일 주어진 거리를 최선을 다 해 걷고, 즐기고, 힘듦 속에서 또 다른 재미와 즐거움을 경험하고 있다. 

오늘은 비법정탐방로가 시작되는 단목령 전까지만 다녀온 뒤, 다시 조침령으로 내려와 설악산 구간이 시작되는 한계령까지 로드워킹을 해야 한다. 나무 뒤에 배낭을 숨겨두고 오늘의 운행을 시작한다. 

백두대간의 많은 봉우리가 그러하듯 조침령도 2개의 비석을 갖고 있다. 처음에는 비석이 2개인 곳을 만날 때마다 신기했는데,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지나친다. 헬기장에서 30m 정도 올라 작은 조침령 비석을 만나고, 그 이후 50m를 더 올라 큰 조침령 비석이자 들머리 시작점에 도착했다. 

조침령은 ‘높고 험하여 새도 하루에 넘지 못 하고 잠을 자고 넘었다’고 해서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유래를 읽고 지레 겁먹은 채로 운행을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고도도 별로 높지 않았고 길도 험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도 여전히 너무 더웠다. 손으로 얼굴을 닦으면 땀으로 세수가 될 정도였다. 지난주부터 내내 폭염이 이어졌는데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죽은 사람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이번에 알게 된 교훈은, 폭염에는 가급적 등산을 하지 말자는 것이다. 백두대간 종주를 끝내면 나는 이제 절대 폭염에는 산에 가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불발된 포탄
불발된 포탄

조침령에서부터 2~3개의 작은 봉우리를 넘고 나서 탐방로 정비 공사가 진행되는 구간을 지나치게 되었다. 인부들이 작업을 하고 계셨는데, 내가 지나갈 때마다 한 분씩 어디까지 가냐, 무섭지 않냐, 대단하다 등등 한 번씩 말을 시켜서 재미있었다. 그런데  한 분께서 나를 불러 세우셨다.

“학생, 혼자 산 다니면 안 돼, 위험해. 이것 봐! 이렇게 포탄도 나오잖아” 

정비작업 중 발견된 듯, 아주 오래 된 불발된 포탄을 보여주셨다. 처음 봐서 어찌나 신기하던지. 만져 봐도 되냐고 여쭤보니, “잡았다가 갑자기 터져도 책임 못 진다”고 하시며 겁을 주신다. 백두대간을 걸으며 별별 경험을 다 해본다. 

3km 정도 흙길과 산죽밭을 지나 이내 비법정탐방로가 시작되는 설악산국립공원 경계에 도착했다. 조침령에서 단목령 분기점까지는 10km로, 이제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면 오늘의 거리를 채울 수 있게 된다. 돌아오는 길에는 너무 더워 오랜만에 음악을 틀고, 밀린 카톡 답장도 하며 여유롭게 돌아왔다. 

이제 남은 건 설악 구간뿐이다. 설악을 눈앞에 두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눈앞의 풍경이 믿기지 않는다. 단목령 분기점에서 한계령까지는 계속 비법정탐방로이기에 우회길로 로드워킹을 해야 한다. 한계령에서 용대리까지, 그리고 진부령까지 3일에 걸쳐 운행할 계획이다. 조침령에서 한계령까지 도로를 따라 걸어야 되는데, 오늘 생각보다 운행이 빨리 끝나서 조금이라도 거리를 좁혀볼 생각에 다시 준비하고 길을 나섰다. 

조침령 들머리 앞으로는 임도가 쭉 이어져 있다. 들머리 옆으로 나있는 임도를 따라 내려가면 서림삼거리(양양) 방면으로 내려갈 수 있고, 구룡령 들머리 옆으로 나있는 임도를 따라 내려가면 진동삼거리 방면으로 내려갈 수 있다. 진동삼거리 쪽으로 가면 조금 더 돌아서 가야되기에, 나는 서림삼거리 방면으로 내려가 본격적인 로드워킹을 시작했다. 구불구불한 커브 길은 어찌나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던지 무서워서 갓길에 바짝 붙어 걸었다. 

조침령에서 약 5.5km를 이동하니 어느새 서림삼거리에 도착했고, 인근에 있던 편의점에 들러 바로 콜라 한 캔을 ‘원샷’했다. 백두대간 종주동안 먹은 콜라만 아마 족히 10,000kcal은 되지 않을까? 콜라를 마시면 매번 힘이 솟구친다. 

6일 동안 샤워를 하지 못했고, 보조배터리도 충전해야 해서 오늘은 숙박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하지만 워낙 극성수기인데다가, 나처럼 혼자 여행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보니 대부분 2인 이상 기준의 요금이라 나에겐 너무 비싸기만 했다. 내일 모레면 종주가 끝나는데, 그냥 핸드폰 없이 다녀볼까? 싶은 생각도 들었는데, 그건 너무 위험할 것 같아 그냥 편의점 바로 앞에 있던 야영장으로 갔다. 

이 야영장은 캠핑사이트 대여료보다 방갈로 숙박비가 더 저렴했다. 처음에 전화로 문의를 했을 때는 하루 5만 원이라고 하셨는데, 사장님께서 나를 보시고는 “등산하는 사람이 놀러온 것도 아니고 잠깐 지나가다 들르는 거 아니냐”고 하시며 3만 원만 받겠다고 하셨다. 와! 또 이렇게 우연찮게 만나는 ‘트레일 엔젤’의 손길에 감사함을 느낀다.

고생한 발
고생한 발

방갈로에 짐을 풀고, 샤워를 하러 가기 전 문득 내 발을 보았는데 만신창이가 따로 없다. 매일 제대로 못 씻으니 발바닥이 시커멓게 물들어버렸고, 물집은 이제 굳은살이 되었다. ‘주인 잘못 만나서 고생하는 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주인 잘 만나서 발이 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생각보다 물집이 많이 안 잡혔다는 것이다. 초기엔 매일 비가 온 탓에 물집이 꽤 많이 생겼고 발바닥이 쓸려 고통 속에 걷곤 했는데, 요즘은 새로 생긴 물집은 없고 다 예전에 생긴 물집들이 굳은살로 바뀌었을 뿐이다. 확실히, 40일 동안 나도, 그리고 나의 발도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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