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세의 산정무한] 산, 물소리, 새들이 들려주는 ‘자연의 法門’

입력 2021.10.27 09:54

〈2〉靑山은 내게 말없이 살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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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경산 전경. 8부능선에 선을 그려놓은 듯 임도가 선명하다.
산이 마치 나를 부르기라도 하는 양, 휴일이면 어김없이 배낭을 꾸려 산행을 떠난다. 배낭에는 땀을 흘리고 나서 지친 몸을 추스르기 위해 걸음을 멈추고 쉴 때 다시금 기운을 되찾는 데 가장 좋은 세 종류의 음료를 반드시 준비한다.
찹쌀과 쌀, 누룩과 자연 용출 광천수로 45일간 발효, 90일간 숙성시켜 빚은 농주 300ml 2병, H 맥주 330ml 1병, 청주를 증류해 숙성시킨 53도 증류주 230ml, 견과류 200g을 용기에 담아 배낭에 넣고 길이 20여 m의 자일 등 이것저것 짐을 꾸리면 배낭 무게는 9kg가량 나간다.
먼 길을 가야 하는 긴 코스 산행 시에는 아내로부터 무거운 것 몇 가지만이라도 차에 빼놓고 가자는 제안을 거절하지 못해 일부 짐을 덜어내 놓고 산행을 떠났다가 산행 후 돌아와서는 짐을 몇 개 덜고 가길 잘했다는 이야기를 아내에게 꼭 들려준다. 
지난 8월 중순 이후 9월 상순 사이에 뒤늦은 장마가 기승을 부리는데도 산행을 거르지 않고 가려는 의지가 워낙 확고해 큰 우산을 쓰고서 길을 나선다. 우산을 쓰고 길이 좁은 산길을 가기에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라서 주변의 지리산 둘레길이나 잘 닦여 있는 임도를 걷는다.
특히 요사이 몇 주간에는 장맛비가 잦아서 지리산 인근 고을의 임도를 택해 한 주에 이틀씩 산행했는데 불편이나 위험이 적은데다 거리 역시 8km에서 15km에 이르는 길이어서 산행의 기쁨을 한껏 누리는 데 어떤 부족함이나 아쉬움도 없을 정도로 만족감을 느꼈다.
철늦은 장마에 임도 걷기 좋아
필자가 주로 머무는 인산가 뒷산 삼봉산 임도의 전체 연장 길이는 약 20km에 달하고,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의 산덕 임도 또한 15km가량 이어지며, 장수군 봉화산 임도는 총연장 25km가 넘는다. 호젓한 산속의 임도를, 온갖 새소리, 물소리, 바람 소리 들으며 걷다가 쉬다가 다시 걷는 행복을 직접 경험해 보기 전에는 짐작하기조차 쉽지 않으리라 여겨진다. 
지난 주말에는 주변의 위성 지도를 검색해 찾아낸 임도를 다섯 시간가량 걸었다. 임도 산행에는 들머리 지점과 산행을 마무리 짓는 지점 간의 거리가 꽤 먼 경우가 많아서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데 이런 불편을 겪지 않아도 되는 임도를 마침내 찾아 낸 것이다.
경남 함양군 백전면 대안리 대안마을과 오매실마을, 구산마을, 재궁마을, 매치마을을 잇는 임도의 총연장은 약 20km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백운산-월경산-광대치-봉화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흐름에서 해발 980.4m의 월경산 8부 능선까지 오르는 임도 산길은 매우 아름답고 아랫마을과 먼 산의 조망 또한 훌륭할 뿐 아니라 출발지점으로 되돌아올 수 있는 장점마저 지닌, 임도 산행하기에 더없이 좋은 코스라 하겠다. 
대안마을 회관 앞에 주차한 뒤 대안암을 지나 오매실 방향과 월경산 방향으로 갈리는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서서히 오르는 경사로를 따라 쉬엄쉬엄 걷다가 해발 712m 지점을 고비로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청량한 산들바람이 정신마저 상쾌하게 하는, 통풍 잘되는 곳에 이르러 자리를 펴고 앉아서 150ml 잔에 15% 농주 한 잔을 숨도 쉬지 않고 단숨에 마시면 그것은 흡수율 높은 좋은 음료가 되어 즉시 온몸에 퍼지면서 그 즐거움으로 피로를 잊게 한다.
이름도 아름다운 달거울 메, 즉 월경산月鏡山의 품 안에 난 길을 걷고 또 걷노라면 들리는 소리는 새들의 지저귐 소리, 계곡물 흐르는 소리, 이따금 부는 바람 소리뿐인데 그 소리는 도리어 월경산의 고요함을 더욱 실감케 할 뿐이다.
만고의 적막을 머금은 월경산이 내게 말한다. 
“꼭 그렇게 말을 많이 해야 하느냐?”라고….
“그 훌륭한 가르침에 제가 이러쿵저러쿵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고려 말의 고승 나옹 혜근懶翁惠勤(1320〜1376) 선사가 세상 사람들에게 읊은 시 한 수는 아무래도 월경산이 내게 해준 그 말 그대로인 것 같다.
청산은 나에게 말없이 살라 하고 靑山兮要我以無語
창공은 나에게 티 없이 살라 하네 蒼空兮要我以無垢
사랑할 것도, 아쉬워할 것도 없어라 聊無愛而無惜兮
물처럼, 바람처럼 살다가 가리니 如水如風而終我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라는 노랫말과 아름다운 멜로디로 세상에 더욱 널리 알려진 시이다.
나옹선사는 나이 21세 때 문경 공덕산 묘적암妙寂庵 요연선사了然禪師를 찾아가 출가한 이래 전국의 사찰을 편력하면서 정진하다가 24세 때(1344년) 양주 천보산 회암사檜巖寺 석옹화상石翁和尙 회상에서 크게 깨달음을 얻는다. 이후 선사는 원나라 연경으로 건너가 법원사에서 인도 스님 지공선사指空禪師의 지도를 받고 자선사 처림處林선사의 법맥을 이은 뒤 광활한 중국을 주유하고는 공민왕 7년(1358)에 귀국한다. 
선사는 57세 되던 해에 왕명王命에 따라 밀양 형원사로 가는 도중 여주 신륵사神勒寺에 당도해 대중들을 모아놓고 법상法床 위에 올라앉아 “너희들을 위하여 열반 불사를 마치겠노라”는 마지막 법문을 마치고 열반에 드니 봉미산 봉우리엔 오색구름이 덮였고, 선사를 태우고 다니던 말은 먹기를 그치고 슬피 울었다고 전한다. 고려 우왕 2년(1376년) 5월 15일, 스님이 된 지 37년 만이었다. 선사의 법맥은 무학無學대사가 이었고,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위와 같은 일들을 비문에 적었다. 
올해 100회 산행 목표
지난 9월 5일 일요일, 함양 백전면 대안리 오매실 일대 임도를 비가 내리는 가운데 우산을 쓰고 5시간 남짓 걸은 산행은 올해 들어 73회차 산행이다. 여름철 무더위가 한풀 꺾이고 제법 선선한 바람이 가을 분위기를 자아내는 요즘은 더욱 산행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호시절이다. 
올해에는 100회 산행을 꼭 실현하리라 마음먹었다. 반복적으로 거듭거듭 산에 오르는 100회의 산행을 통해 산이, 계곡물 소리가, 새들이, 바람이 들려주는 자연의 법문法門에 따라 무리하지 않는, 순리 자연의 삶을 살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인산가 김윤세 회장
인산가는 독립운동가이자 사상가였던 인산仁山 김일훈金一勳 (1909~1992) 선생의 유지를 펴기 위해, 차남인 김윤세 現 대표이사이자 회장이 1987년 설립한 기업이다. 인산 선생이 발명한 죽염을 비롯해 선생이 여러 저술을 통해 제시한 물질들을 상품화해 일반에 보급하고 있다. 2018년 식품업계로는 드물게 코스닥에 상장함으로써 죽염 제조를 기반으로 한 회사의 가치를 증명한 바 있다. 김윤세 회장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내 안의 의사를 깨워라』, 『내 안의 自然이 나를 살린다』 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노자 사상을 통해 질병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올바른 삶을 제시한 『自然 치유에 몸을 맡겨라』를 펴냈다. 
본 기사는 월간산 10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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