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 하이킹] 산이 주는 행복감, ‘하이킹하이’를 느껴 보세요

입력 2021.10.12 09:30

산행 중 몸과 마음이 상쾌해지는 기분… 마라톤의 러너스하이 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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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대표 장거리 산행 코스인 백두대간을 걷는 등산인들. ‘하이킹하이’란 긴 산행 속에서 느껴지는 무아지경의 행복감을 말한다.
‘하이킹하이Highking High’는 ‘걷는 자의 황홀’쯤으로 번역될 수 있겠다. 이를 객관적으로 설명할 방법은 없다. 일반인의 시선으로 산행은 고통이다. 군대 행군과 다를바 없는 고역이며, 벌레와 뱀의 위협, 바위에서 미끄러져 다칠 수도 있는 위험한 곳이 산이다. 
청년 K는 세상 풍파를 겪으며 숱한 사람을 만나고 떠나보낸다. 마음속에 희로애락의 산이 생겼다. 중년이라는 거울 앞에 선 K는 산에 끌리게 된다. 계산 없이 정직하며, 깨끗하고 아름다운 존재가 자연이라는 걸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된다.
흔히 ‘100대 명산’이라 말하는 유명한 산을 모두 오른 K, 5시간 이하의 산행은 성에 차지 않는다. 15km 넘는 하루 일과를 꽉 채워야 끝나는 장거리 산행에서 묘한 황홀경을 느꼈기 때문이다. 입산 후 처음 1시간은 도시에서 묵은 마음의 때를 벗겨내고, 몸이 산행에 적응해 가는 과정이다. 
산행거리 10km가 넘고 후반부로 갈수록 몸은 산행에 최적화된다. 몇 번의 오르막, 숨이 깔딱깔딱 넘어가는 비탈을 견뎌내고 나면, 열반에 이른 것마냥 몸이 가벼워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잡념이 사라지고 무념무상한 채로, 의식하지 않아도 발이 저절로 움직여 안정된 자리만 골라 디디며 편안한 산행을 하게 된다. 
이미 20km 이상 걸었지만 더 걸어도 전혀 지치지 않을 것만 같은, 끝없이 달리고 싶은 상태에 이른다. 이때 올라오는 무아지경. 걸을수록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이 상쾌해지는 행복감이 ‘하이킹하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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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오르막을 여러 번 넘고 산행이 길게 이어지면, 오르막에서도 더 이상 힘들지 않은 상태가 찾아온다.
하이킹과 트레킹의 차이는?
용어를 짚고 넘어가 보자. 왜 ‘하이킹하이’인가? 하이킹Highking과 트레킹Trekking의 차이는 뭘까? 등산객은 영어로 하이커Hiker인가, 트레커trekker인가? 영국 아웃도어 매거진 <much better adventeres>에 실린 ‘하이킹 vs 트레킹 어떻게 다른가?’ 기사에 따르면 하이킹은 자연 속에서 하루 또는 1박 이상 긴 걷기를 하는 것이며, 트레킹은 더 거친 자연환경 속에서 여러 날 혹은 장기간 동안 산행하는 것을 말한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이들도 기사에서 ‘두 용어의 구분이 모호한 면이 있다’고 인정했으며, 구체적으로는 4~50km 거리의 당일 또는 며칠 내에 가능한 걷기를 하이킹, 50km부터 2만4,000km까지 혹은 그 이상 거리를 최소 일주일 이상 걷는 것을 트레킹이라 규정했다. 이렇게 본다면 백두대간을 완주한 사람일지라도 구간 종주로 완주한 사람은 하이킹 완주자, 일시종주로 700여 km를 완주한 사람은 트레킹 완주자가 된다. 물론 나라마다 용어의 의미가 다르겠지만 대략적으로 그렇다는 것.
열흘 이상, 평균 한 달 정도 걸리는 대간 일시종주 같은 모험적인 산행을 실제로 하는 사람은 등산인들 중에서도 1%가 안 된다. 일반적인 국내 산행은 대부분 하이킹이며, 등산객은 하이커인 것. 
‘하이킹하이’라 이름 붙인 이유
다만 ‘하이킹하이’라는 용어가 외국에서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러닝(달리기)에서 잘 알려진 이론인 ‘러너스하이Runner’s High’(러닝하이)에 빗댄 것이다. 미국 심리학자 A.J 맨델이 1979년 논문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로 ‘달리기 마니아들이 느끼는 도취감’을 말한다. 
장시간 운동을 통해 엔도르핀Endorphin이 뇌하수체 전엽에서 분비되는 것으로, 운동 강도가 높아져 산소가 줄어드는 상태에서 분비가 더 높아진다고 알려져 있다. 스스로를 약간의 극한으로 몰아붙임으로써 느끼는 행복감으로, 러닝이 아닌 수영, 사이클, 축구, 하이킹 등 장시간 지속되는 어떤 운동이든 러너스하이를 느낄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엄밀히 따지면 산행 중 느끼는 행복감도 학술적으로는 ‘러너스하이’가 정확한 표현이지만, 산행의 황홀경은 단순히 운동 효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산에 몰입하고 자연과 교감하는 중요한 차별점이 있기에 ‘하이킹하이’라 의미를 부여했다. 쾌락의 종류를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자연과 교감하는 건강한 행위가 산행임을 감안하면, 하이킹하이는 격조 높은 쾌락인 셈이다. 
국내에는 하이킹하이를 체험할 수 있는 훌륭한 산행 코스가 많다. 700여 km 백두대간을 비롯해 낙동정맥, 한북정맥, 금북정맥, 호남정맥 등의 정맥과 하위 산줄기인 기맥, 지맥까지 종주할 수 있는 산줄기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다만 알려진 산줄기일수록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쾌적한 장거리 산행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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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너스하이’와 ‘하이킹하이’가 구분되는 것은 산이라는 대자연과 교감하며 걷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보급형 장거리 코스, 불수사도북
수도권의 대명사격 코스로 ‘불수사도북’이 있다. 불암산~수락산~사패산~도봉산~북한산을 일시에 종주하는 47km 코스로, 화려한 바위산을 엮은 만큼 경치가 탁월하며 동시에 험한 바윗길이 많다. 보통 12시간에서 30시간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일시에 종주하는 것이지만, 일반 등산인이 도전하기엔 지나치게 난이도가 높다. 당일 산행으로 불암산과 수락산, 사패산과 도봉산, 북한산으로 각각 3일에 나눠하는 것이 현실적인 도전이다.  
주의해야 할 것은 지나치면 독이 된다는 것이다. 산행의 황홀경을 느끼는 것도 좋지만 자칫 마약처럼 하이킹하이에 중독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장거리종주를 하지 않으면 불안해하며 짜증을 내거나, 무리하게 산행을 하다가 본인은 물론 일행까지 관절·연골·근육 손상을 입는 경우도 있다. 
올림픽에 출전한 마라톤선수처럼 치열한 경쟁을 할 때는 러너스하이를 결코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여유 있고 편안한 마음으로 자연을 충분히 즐기며 걸을 때, 하이킹하이가 찾아온다.
본 기사는 월간산 10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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