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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장거리 하이킹 불수사도북 ② 사패산~도봉산] 힘 아끼는 구간

월간산
  • 입력 2021.10.14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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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수가 쉬웠다고 오버하면 큰일! 피니시를 위해 힘 아끼는 구간.
사패산 도봉산 르포

도봉산을 대표하는 명풍경이 펼쳐지는 포대능선. 암릉의 화려함으로 따지면 전국 어느 산과 비교해도 부족함 없는, 도봉산의 암릉미가 밀집된 구간이다.
도봉산을 대표하는 명풍경이 펼쳐지는 포대능선. 암릉의 화려함으로 따지면 전국 어느 산과 비교해도 부족함 없는, 도봉산의 암릉미가 밀집된 구간이다.

단순명료한 길 위에 서고 싶었다. 삶에 정답은 없으나, 정답 같은 길이라 확신을 가지고 걷고 싶었다. 도봉산이 제격이었다. 길 ‘도道’, 봉우리 ‘봉峰’, 굵직한 봉우리가 길처럼 이어진 확고한 바위 산줄기. 세상이 아무리 어지럽고 복잡하다 해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한 길. 도봉산줄기 완주라는 목표를 가지고 걷는다면, 한치 앞 가늠하기 어려운 지금의 세상살이도 조금 명확해지지 않을까 기대했다. 

‘용이 돌아왔다’는 회룡回龍역에서 문승영(밀레 앰버서더)씨를 만났다. 태조 이성계가 왕자의 난으로 함흥으로 피했다가 다시 한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곳에 있던 무학대사를 방문해 며칠을 머물렀다 하여 유래한다.

우이암 방면 전망데크에서 본 도봉산 자운봉(오른쪽)과 신선대, 주봉, 오봉능선(왼쪽).
우이암 방면 전망데크에서 본 도봉산 자운봉(오른쪽)과 신선대, 주봉, 오봉능선(왼쪽).

속초가 고향인 문승영씨는 2018년 그레이트 히말라야 트레일Great Himalaya Trail 1,700km를 완주한 실력파 등산인이며, ‘설악아씨’란 별명으로 영상전문 사이트에서 자신의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출근하는 사람들과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평일 등산객은 흔하다는 듯 누구도 우리에게 눈길 주지 않았다. 주택가를 거슬러 산으로 드는 길부터 어렵다. 호암사로 이어진 찻길이 워낙 가팔라 산행 전부터 배낭 등판이 땀으로 흥건하다. 

범골, 호암사, 호원동 같은 이름만으로도 호랑이와 관련된 전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호암사 뒤편에는 1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백인굴’이 있다. 이 굴은 원래 호랑이가 살며 주민들에게 해를 입혔으나, 고려 공민왕 때 나옹선사가 호랑이를 굴복시키고 굴에서 수행했다고 한다. 이후 주민들은 동굴에 불상을 모시고 호암虎巖이라 불렀다고 한다. 150년 전만 해도 호랑이에게 물려 죽는 일이 드물지 않았으니, 허무맹랑한 전설만은 아니다.

도봉산을 대표하는 워킹 바윗길인 Y계곡. 주말 등산객이 몰릴 때는 상습 정체구간으로 손꼽힌다. 우회로가 있다.
도봉산을 대표하는 워킹 바윗길인 Y계곡. 주말 등산객이 몰릴 때는 상습 정체구간으로 손꼽힌다. 우회로가 있다.

파란만장했던 정휘옹주의 산

사패산 이정표를 따라 입산하자마자, 빽빽한 숲이 두고 가라 권한다. 고민 한가득, 잡념 한가득 두고 가라 한다. 짙은 초록잎의 변화무쌍한 산길은 따로 집중할 것도 없이 빠져들었다. ‘사패산 정상에 가야 한다’는 것 외엔 모두 희미해지고, 오롯이 산길을 걸었다. 마주 오는 사람이 있으면 인사하던 예전과 달리, 너나 할 것 없이 슬쩍 옆으로 피하거나 고개를 돌려주었다. 코로나는 등산 예절도 바꿔놓았다. 

사패산賜牌山(551m) 이름은 조선시대 선조의 6째 딸인 정휘옹주가 유정량에게 시집 갈 때 선조가 선물로 준 산이라 하여 유래한다. 공주의 삶은 화려했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정휘옹주는 선조가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해 피란길에서 낳은 딸이다. 공주의 나이 14세 때 유정량에게 시집갔으나, 시할아버지가 탄핵 당해 옹주를 제외한 가족 모두 전라도 정읍 고부 땅으로 유배를 갔으며, 20여 년이 지나고서야 유배에서 풀려난 남편과 함께 살 수 있었다.

정휘옹주의 시름 많은 삶처럼 사패산은 21세기에도 풍파를 겪었다. 서울외곽순환도로 연결을 위해 사패산에 터널을 뚫게 된 것. 이 과정에서 환경단체의 반대로 2년간 공사가 중단되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무명에 가까웠던 ‘사패산’ 이름이 전국에 알려졌다. 사패산터널은 2007년 완공되었다.  

불암산·수락산·도봉산·북한산을 연달아 주파하는 ‘불수도북’ 종주도 언제부턴가 사패산이 추가되면서 ‘불수사도북’으로 바뀌었다. 사패산은 미남 주연배우들 사이에 낀 조연 같지만 정상만 놓고 보면, 주인공이다.

Y계곡을 오르는 문승영씨. 철난간이 있으나 발디딤이 모호한 곳이 있어, 자신감을 가지고 과감하게 올라야 한다.
Y계곡을 오르는 문승영씨. 철난간이 있으나 발디딤이 모호한 곳이 있어, 자신감을 가지고 과감하게 올라야 한다.

넓은 마당바위가 있는 정상은, 묵은 체증을 한 방에 날리는 힘이 있다. 비교적 뾰족한 암봉이라 위태로운 다른 산들과 달리 운동장마냥 터가 넓어 여유롭다. 포대능선과 신선대, 오봉, 북한산 백운대와 인수봉이 펼쳐지는 능선의 파도는 황금비율에 가까운 아름다움을 지녔다. 정상의 맛으로만 보면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넣어도 좋을 정도다.

서울시내가 시원하게 펼쳐지는 도봉산 신선대 정상.
서울시내가 시원하게 펼쳐지는 도봉산 신선대 정상.

Y계곡 지나면 거인들의 향연

경치에 비빈 맛깔스런 도시락을 먹고선 도봉산으로 향한다. 해발 500m대에서 700m로 서서히 고도를 높인다. 문득 찾아온 고요. 사패산만 올랐다가 하산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라 주능선엔 사람이 거의 없다. 덕분에 거리두기 부담 없이 산길의 구수함을 만끽한다. 

649m봉, 산불감시초소에 닿자 비로소 도봉산 품에 들었다. 600m대로 고도를 높인 것이 실감날 정도로 거리낌 없이 시야가 터진다. 왼쪽은 수락산과 도봉산 사이에 자리 잡은 의정부 시내가 있고, 오른쪽 양주·고양 방면은 첩첩산중이다. 일상의 틀 안에서 도시가 전부였으나, 이렇게 높은 데서 보니 산의 영토가 훨씬 넓다. 좁은 책상에 갇혀 있던 시선이 세상 밖으로 풀려나 자유롭게 날아간다.

 사패산 정상에 서면 포대능선과 북한산 백운대가 병풍처럼 뒤로 펼쳐진다.
사패산 정상에 서면 포대능선과 북한산 백운대가 병풍처럼 뒤로 펼쳐진다.

결전의 시간이다. 도봉산을 대표하는 험로인 포대능선 ‘Y계곡’ 쇠난간 구간에 접어든다. 과거 적기를 격추시키는 방공포대가 있었다고 하여 유래한 이름으로, 그만큼 시야가 트인 명조망 능선이다. 우회로가 있지만 선택은 위험구간이다. 바윗길이 좁아 정체가 자주 일어나는 통에 주말엔 남진 방향으로 일방통행만 가능하다. 

스틱을 접어 배낭에 넣고 한바탕 바위에 뛰어들어 춤을 출 요량이다. 다이빙하듯 막강한 고도감을 피부로 맞닥뜨리며 쇠난간에 의지해 바위를 탄다. 알파벳 Y 모양으로 암릉을 타고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서는 구간이다. 철난간이 있지만 발디딤이 모호해 힘으로 올라서야 하는 곳이 간혹 있다. 고개만 돌리면 고도 수백 미터 아래의 도봉산역까지 펼쳐져, 막강한 고도감을 온 몸으로 만끽하며 오른다.

포대능선 암릉구간. 사패산과 도봉산, 우이동을 잇는 종주는 바윗길이 많아 시간과 체력 소모가 크다.
포대능선 암릉구간. 사패산과 도봉산, 우이동을 잇는 종주는 바윗길이 많아 시간과 체력 소모가 크다.

Y계곡의 시험을 거치고 나서야 거인의 신전에 든다. 선인봉·만장봉·자운봉·신선대·주봉이 그리스신화 타이탄마냥 압도적인 몸집으로 다가온다. 자운봉(740m)이 정상이지만 산행으로 갈 수 있는 정상, 신선대를 역시 철난간을 붙잡고 오른다. 비로소 드러난 서울시내, 뚜렷한 실루엣의 롯데월드타워를 보며 거리를 가늠한다.

주봉을 우회해 도봉산 남릉으로 들자 등산객들과 자연스런 이별이다. 해가 뉘엿한 시간, 도봉산역이 아닌 우이동으로 향하는 사람은 우리뿐이다. 북한산국립공원 내에 이토록 조용한 정규 등산로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차분하다. 

오봉능선 갈림길을 지나 한북정맥을 따라 남진할수록 시선은 내면으로 스며든다. 산행 시간 7시간이 넘었고, 뙤약볕 더위에 땀 깨나 흘려 노곤한 것이, 영혼까지 말랑해진 기분이다. 산도 고요하고 마음도 고요하다. 온갖 생각 사라지고, 산과 나만 남아 덩실덩실 능선이 이끄는 선율로 흘러간다. 이렇게 황홀한 능선의 끝을 맛본다. 

도봉산 740m
경기도 의정부시, 양주시, 서울 도봉구·강북구 

산행 거리 약 14km
산행 시간 약 6시간 (순수 산행 시간)
산행 난이도 ★★★★ (간간이 암릉구간, 거리에 비해 체력 소모 커)

산행 길잡이

회룡역에서 호암사까지 찻길을 제외하면 순수 산행 거리만 12km이다. 장거리는 아니지만 곳곳에 암릉 구간이 있어 체력과 시간 소모가 적지 않다. 거리에 비해 피로도가 높아 만만히 보고 덤볐다간 중도 하산할 가능성이 높다. 

불수사도북에서 사패산 기점은 호암사이다. 회룡역에서 호암사까지 주택가를 지나게 되지만 가팔라서 초반부터 땀이 흥건해진다. 택시로 회룡사까지 가는 것도 요령이다. 

국립공원이라 전반적으로 길찾기는 쉽지만 능선이 갈라지는 갈림길에서 주의해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진행하다간 엉뚱한 코스로 빠질 수 있다. 

Y계곡은 주말 일방통행이라 남진 방향으로만 진입할 수 있다. 암릉산행의 묘미가 있지만 등산객들로 지나치게 정체된다면 우회로를 택하는 것이 낫다. 철난간이 있어 어렵지는 않지만 발디딤이 모호한 곳도 간간이 있어 자신 있게 올라서는 것이 중요하다. 

산행의 정상 역할을 하는 신선대에 올라선 후 왔던 길을 60m 되돌아가서 우측 갈림길로 가야 우이암으로 이어진다. 

이후 오봉능선 갈림길을 지나 직진하면 된다. 우이암을 지나 법정 등산로는 원통사로 내려섰다가 우이남능선으로 이어진다. 

원통사를 지난 후 우이동 이정표가 있는 산길로 내려서야 한다. 샘터는 없으므로 물을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식사

회룡역 1번출구 부근 박순자김밥(031-826-1002)은 국내산 쌀과 알찬 재료로 등산객들에게 인기 있다. 기본 김밥(2,500원)과 참치김밥·매운김밥(3,500원)이 있다. 우이동 백곰집(02-900-5130)은 강북구에서 지정한 착한가격 식당으로 한우사골설렁탕(7,000원), 한우해장국(6,000원), 우거지해장국(5,000원), 부대찌개(7,000원)가 별미다.   

불수사도북 일시종주 Tip

수락산에서 사패산 입구 호암사까지 택시를 타고 이동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겠지만, 시내 구간도 걸어서 통과하는 것이 불문율이다. 시내 구간 이동 중 식당을 이용하는 것은 가능하다. 당연한 얘기지만 사패산 정상과 도봉산 신선대 정상을 거쳐야 한다. 신선대를 갔다가 다시 되돌아와서 우이동 방향 산길로 가야하기에, 시간 절약을 위해 신선대 정상을 거치지 않고 지나치는 이들도 있다. 5개 산의 정상은 거치는 것이 불문율이다. 각 정상에서 인증사진을 남기거나 GPS로 기록을 남겨야한다. 

본 기사는 월간산 10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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