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에 나무데크 없던 시절…선녀들이 목욕하던 곳

  • 사진·글 <산의 기억>에서 발췌 재편집. 김근원 촬영, 아들 김상훈 구술 정리.
    입력 2021.10.25 10:05

    그때 그 산 <2> 십이선녀탕계곡 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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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악산 탕수동계곡을 오르는 3인방. 탕수동계곡은 십이탕으로 불리다가 십이선녀탕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지금처럼 데크 등산로가 없던 때라 매끄러운 암반에 미끄러지지 않으려 조심스럽게 걷고 있다. 당시 일반인은 물론 산악인도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산악사진가 김근원 선생의 유고 산악사진집 <산의 기억(열화당)>의 일부 사진을 발췌해 소개한다. 김근원 선생(1922~2000)이 남긴 30만 점의 사진 중에서 아들 김상훈씨가 386점을 엄선해 <산의 기억>에 담았다. 1950년대부터 담아낸 사진은 산악계의 소중한 유산이자 걸작들이다.
    1958년 10월 설악산을 찾았다. 자주 만나던 윤두선과 의논해 김정태 선생을 모시고, 양천종까지 합세해 4명의 일행이 서울을 벗어났다. 김정태 선생과는 1956년 울릉도 등반부터 함께하면서 산에 대한 그의 경험을 들어온 터였고, 등산열의에 나도 모르게 호감을 느꼈다.
    윤두선도 울릉도 등반에서 처음 만났으며, 술과 담배를 전혀 안 하고 오직 커피만 즐겨 마시는 게 나와 유사해 금방 가까워졌다. 양천종은 성악가이자 중학교 음악교사로, 스키도 즐겨 타는 멋진 사람이었다.
    십이탕의 매끄러운 암반은 암벽으로 솟구쳤고 패인 곳에는 어김없이 맑고 투명한 물이 흘러내려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무딘 등산화로 겨우 발돋움해 올라설 정도로 절벽의 난이도는 높았다. 한참이나 올랐을 때 앞에 시커먼 동굴 같은 것이 보이더니 어김없이 그 위로 물이 떨어져 내렸다. 복숭아탕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처음 찾은 나와 양천종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감탄의 연속이었다. 김정태 선생만 담담한 눈초리로 그 광경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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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악산 탕수동계곡을 오르는 3인방. 탕수동계곡은 십이탕으로 불리다가 십이선녀탕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지금처럼 데크 등산로가 없던 때라 매끄러운 암반에 미끄러지지 않으려 조심스럽게 걷고 있다. 당시 일반인은 물론 산악인도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본 기사는 월간산 10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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