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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등산시렁] 멸종위기 약수터, 안녕하십니까?

글·그림 윤성중
  • 입력 2021.10.05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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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약수터는 누가 만들었나?
산에 가서 등산만 하고 오는 건 싫은 남자의 등산 중 딴짓

불암산 통일샘. 불암산의 약수터 30여 곳 중 유일하게 수질이 양호하다. 여기는 1989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불암산 통일샘. 불암산의 약수터 30여 곳 중 유일하게 수질이 양호하다. 여기는 1989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2021년, 멸종 위기에 처한 단어가 있다. 바로 ‘약수터’다. 얼마 전 나는 약수터라는 단어가 지금 내 주변에서 자취를 감췄다는 걸 알았다. “약수터에 가자”거나 “약수터에서 만나자”거나 “약수터 가서 물 좀 떠와라”거나 “약수터 갔다 올게”라는 말을 지난 몇 년간 누구에게도 들은 적이 없다. 

물론 나도 얼마 동안 약수터를 지칭하거나 목적어로 사용한 적이 없다. 이러다가 약수터라는 단어와 공간이 사라지는 게 아닌가 싶은 예감이 스쳤다. 그것이 딱히 슬프거나 위기감을 불러일으키진 않았지만 그대로 잊히기엔 아깝다는 아쉬움에 약수터에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여기서 뭔가 재미있는 걸 할 수 있을 텐데 하면서.

약수터에서 나오는 물은 당연히 깨끗하다. 하지만 입으로 선뜻 가져가기가 쉽지 않다.
약수터에서 나오는 물은 당연히 깨끗하다. 하지만 입으로 선뜻 가져가기가 쉽지 않다.
약수터는 신기한 공간이다. 대부분 산 속 깊숙이 숨겨져 있다는 점(물론 만든 사람이 일부러 숨긴 건 아니겠지만 누군가 산 무더기를 손가락으로 푹 찔러 깊은 구멍을 만든 다음 거기에 약수터를 심어 놓은 것처럼 약수터는 대체로 산 깊은 곳에 있다). 게다가 마실 수 있는 물이 공짜로 나온다는 점(어떤 약수터의 물은 탄산수 같다. 이러니 신기할 수밖에)이 약수터를 색다른 장소로 만드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통일샘에서 20분쯤 남쪽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가다 보면 폭포약수터가 있다. 여기는 1991년에 생겼다. 현판이 붙어 있는 ‘족보’있는 약수터다.
통일샘에서 20분쯤 남쪽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가다 보면 폭포약수터가 있다. 여기는 1991년에 생겼다. 현판이 붙어 있는 ‘족보’있는 약수터다.

약수터 멸종되나?

지금 시대 산은 사람의 활동 공간이 아니다. 그렇다고 동물들만을 위한 장소라고 하기에도 애매하지만, 아무튼 풀과 바위로 가득한, 인적이 없는 좁은 산길을 걷다가 사람 흔적이 가득한 장소와 마주치면 나는 그것이 굉장히 반가우면서 신나는 한편 신비로운 기분에 빠진다. 

‘여긴 누가 만들었을까?’ ‘여기에 있었던 사람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었고, 도대체 누구이며 왜 이걸 만들었을까?’ ‘어떤 생활을 했을까?’라면서 온갖 추측을 통해 당시 모습을 그려본다. 그야말로 약수터는 나에게 상상력 자극 공간이다. 자, 그럼 약수터로 가보자. 일단 단어 ‘약수터’의 멸종을 막기 위해 몇 번 더 발음해 보자. “약수터, 약수터, 약수터!”

현판을 읽어 보면 흥미롭다. 많은 사람들이 약수터 공사에 참여했는데, 
지금 보면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다.
현판을 읽어 보면 흥미롭다. 많은 사람들이 약수터 공사에 참여했는데, 지금 보면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우리집 뒷산(불암산)에는 약수터가 많다. 30여 곳이 성업(?) 중이다. 멸종 위기라고 호들갑을 떤 게 창피스럽다. 이 중 마을과 인접한 약수터를 빼니 산 속에 콕 박힌 곳이 3~4개 정도 남았다. 여기서 우리집과 가장 가까운 데가 통일샘과 폭포약수다. 두 약수터를 연결해서 걸으면 집까지 원점회귀도 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하고 바로 짐을 쌌다.

통일샘으로 가는 이정표나 안내판은 없었다. 대충 저기쯤 있겠다 눈으로 산기슭을 짚으면서 올라갔다. 주등산로를 벗어나 실처럼 좁은 샛길을 따라갔다. 진짜 약수터가 있는 거야? 슬슬 짜증이 날 때쯤 돌담처럼 생긴 축대가 보였다. 가보니 통일샘이었다. 널찍한 공간에 철봉과 평행봉이 있었고 의자가 줄지어 놓였다. 주변은 이상할 정도로 깔끔하게 정돈돼 있었다. 물도 졸졸 흘렀다.

코로나 때문에 약수터마다 바가지가 딱 한 개만 남았다. 아무나, 누구나 바가지에 입을 대고 물을 마시는 시대는 영원히 오지 않을까?
코로나 때문에 약수터마다 바가지가 딱 한 개만 남았다. 아무나, 누구나 바가지에 입을 대고 물을 마시는 시대는 영원히 오지 않을까?

누가 이렇게 고생스럽게 관리할까? 물이 나오는 쪽으로 가니 수질검사표가 붙어 있었다. 거의 한 달에 1회꼴로 검사를 실시하고 있었는데, 통일샘은 얼마 전 ‘적합’ 판정을 받았다. 노원구청 공원녹지과에서 다녀갔다. 이럴 수가! 나라에서 관리하는 약수터라니. 내가 모르는 새 잘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멸종에 관한 걱정은 덜었다.

“마흔 네 가지 항목으로 검사해요.”

노원구청 공원녹지과에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이런 데까지 신경을 쓰는지 따져보려고 말이다.

“네, 정기적으로 검사하죠. 안 하면 큰일 나게요, 사람들이 병에 걸리면 어떡해요. 병균에 전염될 수도 있는 거고요. 현장직 근무하시는 분들이 채취를 해주세요. 저희가 전부 돌아다니기는 힘들죠. 우선 구청 보건소에서 6가지 항목을 가지고 검사해요. 대장균, 일반세균, 과망간산칼륨 소비량, 암모니아성 질소 뭐 이 정도고요. 그런 다음 분기별로 1회 정도는 환경관리사업소로 보내서 46가지 항목을 가지고 검사해요.

약수터 한쪽 구석엔 아직도 돌로 된 역기가 있다. 역기 들기, 턱걸이, 평행봉은 약수터에서 빠질 수 없는 운동 종목이다.
약수터 한쪽 구석엔 아직도 돌로 된 역기가 있다. 역기 들기, 턱걸이, 평행봉은 약수터에서 빠질 수 없는 운동 종목이다.

지하수가 나오는 약수터가 있고 산에서 내려오는 샘이 있는데, 지하수는 수도관을 타고 나오는 거라 그나마 관리가 쉬운 편이에요. 그런데 산에서 내려오는 샘은 한번 오염되면 사람이 나서서 깨끗하게 하는 게 힘들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주변 정비밖에 없거든요. 그렇게 부적합 판정이 나온 약수터 몇 개를 정리하려고 계획하고 있어요.” 

구청 직원의 말에 따르면 여기에 약수터가 생긴 것은 1989년 즈음이다. 누가 왜 만들었는지는 모른다고 한다. 하지만 폭포약수터로 가니 돌로 된 현판이 하나 벽에 붙어 있었다. ‘폭포약수회’에서 만든 것으로 쓰여진 내용은 이렇다. 

“약수터 개설공사에 찬조해 주신 분과 물심양면으로 협조하여 주신 회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특히 난공사를 완공할 때까지 3개월간 시종일관 봉사 정신으로 참여해 주신 공로가 크므로 이분들의 참뜻을 기리기 위해 이름을 남깁니다. 김동규, 이관희, 박희춘, 서영범, 김방치, 정순각, 조순제, 유달식, 황태수, 이용주. 회장 김순식, 총무 이태줄. 증1991년 8월 18일.

”이렇게 애쓴 사람이 많은데, 여기서 나오는 물은 아쉽게도 지금 ‘부적합’이다.

약수터 안녕~

1990년대 식수는 언제 어디서든 ‘공짜’였다. 수돗물을 그냥 마시거나 끓여 마시거나. 아니면 약수터에서 떠 온 물을 마셨다. 물을 돈 주고 사서 마시는 사람들은 돈 많은 부자거나 별종이었다(파는 생수가 등장한 시기가 1988년이다). 

이러니 사시사철 깨끗한 물이 나오는 약수터가 사람들한테는 필요했고, 그런 장소는 또 귀했다. 그때 만들어 놓은 돌계단과 축대 등이 아직까지 멀쩡하다는 것이 당시에 꽤 신경 써서 터를 만들었다는 증거다.

불암산의 약수터 30여 곳 중 ‘양호’한 샘터는 딱 하나다. 나머지는 마시기에 우려스럽다는 검사 결과가 나왔다. 이제 여기서 나오는 물을 식수로 쓰는 집은 거의 없을 텐데 그에 따라 약수터는 곧 사라질지 모른다. 

약수터를 보존하는 건 환경 보호와 별 관련이 없다. 그러니 없어지든 말든 자연스럽게 내버려두는 게 좋다. 누군가는 나처럼 약수터와 약수터를 이으면서 옛날 일을 다시 끄집어 낼 것이다. 그 정도 용도로도 지금 약수터의 쓰임은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본 기사는 월간산 10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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