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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GO 레포츠] 파도가 카약을 들었다 놨다, 내 심장도 덩달아 ‘울렁’

월간산
  • 입력 2021.10.05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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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산해수욕장~장봉도 사염 20km 카야킹…사람 발길 없는 무인도의 황홀한 풍경
서해안 장봉도 카야킹

망망대해를 지나는 동안 유일한 친구는 갯바위에서 몸을 쉬는 갈매기뿐이다.
망망대해를 지나는 동안 유일한 친구는 갯바위에서 몸을 쉬는 갈매기뿐이다.

지난 2개월 동안 강과 호수를 카약kayak으로 달렸다. 이제 남은 것은 바다뿐, 설렘과 두려움을 가지고 인천 용유도 왕산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미리 ‘물때표’를 보고 썰물이 되는 시간을 확인하니 오전 9시 정도가 적당했다. 바람도 잔잔하니 카약 타기 딱 좋은 날이다.

인플레터블 카약에 공기를 주입하는 남영호 대장. 자유롭게 바다를 여행하기 위한 약간의 수고스러움이다.
인플레터블 카약에 공기를 주입하는 남영호 대장. 자유롭게 바다를 여행하기 위한 약간의 수고스러움이다.

파도와 함께 노는 바다 카야킹

왕산해수욕장엔 탐험가 남영호 대장이 미리 도착해 인플레터블 카약 3대에 공기를 주입하고 있었다. 

“오늘 장봉도까지 갈 수 있겠어요? 강이나 호수하고는 다를 텐데요.”

왕산해수욕장에서 장봉도까지는 지도상 직선거리 8km 정도다. 물론 실제 바다로 나가면 거리는 더욱 길어질 터라 왕복 20km 정도를 운행해야 한다는 소린데, 이전에 바다 카야킹을 해 본 적이 없으니 그게 어느 정도 힘든 건지 감을 잡을 수 없다. 

“뭐 썰물 따라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가는 거 아닌가요. 일단 나가보시죠 뭐.”

의기양양하게 대답은 했지만 미세하게 다리가 풀렸다. 바다에 뜬 카약은 강이나 호수에서 느꼈던 잔잔함과는 전혀 달랐다. 파도가 훅 하고 들어오면 카약과 함께 온몸이 하늘로 붕 떴다가 아래로 훅 꺼졌다. 만약 이 파도를 옆에서 맞는다면? 

“아이고, 이 정도는 파도도 아닌데 왜 그리 떨어요. 인플레터블 카약은 고형카약보다는 폭이 넓어서 이런 파도는 옆에서 맞아도 절대 안 뒤집어져요. 릴렉스~.”

카약 고수가 그렇다니 깊이 숨 한 번 쉬고 천천히 패들링을 시작한다. 본류의 파도와 근처 방파제를 때리고 돌아서는 파도의 방향이 뒤섞여 물길의 흐름을 읽기가 어렵다. 

“리듬을 타면 괜찮을 거예요. 10분 정도만 있으면 상당히 익숙해질 거예요.”

‘파도에 몸을 맡긴다’라…. 수차례 이미지 트레이닝했던 것을 떠올린다. 파도가 배를 들어 올리고 뒤로 빠져나갈 때 패들링, 그리고 파도가 들어올 때는 뱃머리를 정면이나 사선으로…. 생각했던 것들을 조금씩 적용해 보니 남 대장 말대로 리듬을 타는 듯한 느낌이다. 

“일부러 파도를 타기 위해 동해나 남해로 가는 카야커도 많아요. 서핑과 같은 거죠. 파도를 이기려 하지 말고 파도와 함께 노는 거예요. 강이나 호수 카약하고는 또 다른 익스트림한 카약의 면모랄까요.”

바다로 나간 남 대장이 멋진 포즈를 취했다.
바다로 나간 남 대장이 멋진 포즈를 취했다.

이 정도는 파도도 아니라지만 나름 롤러코스터를 탈 때처럼 심장이 공중에 붕 뜬 기분이다. 그때 눈앞에서 커다란 물고기 서너 마리가 돌고래처럼 높이 솟구쳐 올랐다가 들어간다. 예부터 장봉도가 ‘우리나라 3대 어장’ 중 하나라더니 이 바다 안에 얼마나 많은 물고기가 살고 있을지 상상조차 안 된다.

그렇게 선선한 바람 맞으며 한 시간 반 정도 노를 저어 장봉도 가기 전의 무인도인 사염에 도착했다. 사염 위쪽에는 날가지가, 왼쪽으로는 아염이란 이름의 섬이 삼각형의 꼭지점처럼 자리하고 있다. 이 부근은 장봉도의 어장이다. 날가지에는 인어와 관련한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 장봉도 날가지 어장에서 최씨라는 어부의 그물에 인어 한 마리가 걸려나왔다. 최씨는 말로만 듣던 인어를 잡자 무척 기뻤지만 인어의 눈이 한없이 슬퍼 보여 측은한 마음이 들어 다시 바다에 놓아 주었다. 이후 장봉도 어부가 그물을 드리우면 항상 물고기가 가득 잡혔다고 한다. 장봉도 주민들은 인어가 보은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그 뜻을 기억하기 위해 장봉도에 인어 동상을 세웠다고 한다. 지금도 인어 동상은 장봉선착장 오른편에서 주민을 보살피고, 관광객을 환영하며 장봉도의 명물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 

사염은 가로로 좁고 긴 백사장을 가지고 있다. 옛날에는 10가구 정도의 주민이 살았다고 하는데, 도무지 어디에 터를 잡고 살았을지 가늠이 안 된다. 

“여기 백패킹하면 진짜 좋겠는데요. 완전 비밀의 백사장이네요.”

백사장 옆 낮은 절벽 아래는 텐트 한두 동 치면 딱 좋을 자리다. 바로 앞에 두 개의 무인도와 장봉도가 마당이 되는, 그림 같은 공간이다. 딱 하루만 이런 곳에서 쉴 수 있다면 5성급 호텔·리조트도 부럽지 않을 것 같다. 

장봉도 서쪽의 이름 없는 무인도. 카약을 타면 이런 무인도를 제집 드나들 듯 다닐 수 있다.
장봉도 서쪽의 이름 없는 무인도. 카약을 타면 이런 무인도를 제집 드나들 듯 다닐 수 있다.

‘인생라면’을 못 먹었다니

사염의 이국적인 아름다움에 취해 꽤 많은 시간을 쉬었다. 바로 앞에 보이는 장봉도의 풍경이 이렇게 좋으니 굳이 장봉도까지 갈 필요가 있겠나 싶어 사염에서 경치를 더 즐기기로 했다. 덕분에 썰물이 밀물로 바뀌기까지 여유가 생겨 빵과 과자로 허기진 배도 채우고 커피타임도 가졌다. 

“아유, 버너 가져올 걸 그랬어요. 라면 끓여 먹고 싶은데. 여기 바위에 붙어 있는 따개비 따서 넣어 끓이면 진짜 맛있는데. 하하.”

어쩐지 아침에 버너와 코펠을 가져갈까말까 엄청 고민이 되더라니, 먹을 것에 대한 촉을 믿었어야 했다. 

카약에 공기를 보충하고 점검한 뒤 다시 바다에 띄운다. 갯바위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는데, 이제 뭐 그리 재미있다고 한참 동안 놀이터 삼아 놀았다. 그러는 사이 물의 방향이 바다에서 육지 쪽으로 바뀌었다. 바로 돌아가는 것은 아쉬워 중간에 있는 아무런 이름 없는 ‘조개껍데기’ 섬에 들르기로 했다. 

물 방향이 바뀔 때라 파도가 제법 크게 일렁였다. 육지에서 바다 쪽으로 불던 바람도 조금 거세졌다. 보통 오전에 육지에서 바다 쪽으로 바람이 불면 오후에는 더 세질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전과 같이 패들링을 하는데 전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느낌이다. 오히려 목표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무인도인 사염의 갯바위 사이를 이리저리 빠져나간다. 바다에서 즐길 수 있는 카약놀이 중 하나이다.
무인도인 사염의 갯바위 사이를 이리저리 빠져나간다. 바다에서 즐길 수 있는 카약놀이 중 하나이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그래요. 이거 좀 힘들겠는데요. 부지런히 가야겠어요.”

지도에서 왕산해수욕장까지의 거리를 재보니 대략 7km 거리다. 이제까지 운행한 거리는 10km 정도다. 절로 ‘아이고’ 소리가 터져 나온다. 

정면에 용유도만 아득하게 보일 뿐 주위엔 그야말로 망망대해다. 문득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가 떠올랐다. 청새치와 지루한 사투를 벌이며 바다 위에 홀로 떠 있는 장면, 약 한 시간 동안 노만 젓다 보니 별별 생각이 다 떠오른다. 

“앗, 선배 배 와요!”

그때 후배 사진기자가 다급히 외쳤다. 정신 차리고 왼쪽을 보니 제법 큰 배 두 대가 이쪽 방향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곳은 뱃길이 없는 곳인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노, 노! 저어라! 이러다 죽는다!”

심해에서 대왕고래를 만난 기분이 이럴까, 평소엔 별것 아니던 배가 바다에선 세상 가장 큰 존재인 것 같다. 

정말 앞만 보고 팔이 떨어져라 노를 저었다. 뒤를 돌아볼 틈도 없었다. 그러는 사이 배는 유유히 방향을 바꿔 저 멀리로 빠져 나갔다. 애초에 우리와 동선이 겹치지 않는 것이었으나 지레 겁먹고 생난리를 피운 것이다. 정작 배가 온다고 알려줬던 사진기자는 뒤쪽에서 ‘저 선배 왜 저러지?’라는 표정으로 유유히 따라오고 있었다.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를 노를 저어 간다. 파도를 탈 때는 뱃머리를 정면이나 사선으로 해서 자연스럽게 타고 넘는다.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를 노를 저어 간다. 파도를 탈 때는 뱃머리를 정면이나 사선으로 해서 자연스럽게 타고 넘는다.

몸도 마음도 ‘들었다 놨다’

혼자 ‘생쇼’한 것이 겸연쩍어 이후로도 앞만 보고 노를 저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나는 절대 쫄지 않았었고, 지금 매우 즐겁다는 듯이…. 그리고 왕산해수욕장에 도착했을 때 카약에서 일어서려다 다리가 풀려 파도 위에 텀블링을 했다. 

그날 밤 잠을 자려고 눈을 감았을 때도 나의 몸은 둥실둥실 바다를 떠가는 느낌이었다. 낚싯배를 타고 자는 느낌, 첫 바다 카약은 그야말로 사람을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였다.

사염 해변을 유유히 지나는 취재진.
사염 해변을 유유히 지나는 취재진.

서해안 카야킹 가이드

바다 카야킹은 바람에 주의해야 한다. 목적지 방향으로 바람을 등지고 가는 게 기본이다. 바람이 불면 파도도 거세진다. 정해진 기준은 없지만 바람 세기가 초속 4m 이상, 파고 0.7m 정도가 넘으면 바다에 나가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 한 가지 염두에 둘 것은 조류다. 물이 빠져나갈 때 육지에서 바다로 나가는 것이 힘이 덜 든다. 역으로 조류를 거슬러가려면 당연히 힘들다. 조류는 ‘물때표’를 찾아보면 예측할 수 있다. 

조류를 빠져나가는 패들링 방법도 익혀두어야 한다. 강한 조류와 맞닥뜨렸을 때는 무조건 노를 저어 앞으로 나아가지 말고, 조류의 흐름이 약해지는 곳까지 흘러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바다 카약 장소에 제한은 없지만 뱃길이 있는 곳은 되도록 피하고, 항시 여객선이나 조업 중인 배가 지나가지 않는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카야킹 시 2인 이상 팀으로 나가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본 기사는 월간산 10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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