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나홀로 걷기] 진한 피톤치드 향… 내 허파를 정화시키다

글·사진 김영미 여행작가
  • 입력 2021.10.25 10:0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평 잣향기푸른숲

잣향기푸른숲의 경사진 언덕으로 오르는 길은 산티아고 순례길 중에서도 프랑스길을 연상케한다.
잣향기푸른숲의 경사진 언덕으로 오르는 길은 산티아고 순례길 중에서도 프랑스길을 연상케한다.

추석연휴에 호젓하게 걷기 좋은 숲은 어디일까? 모름지기 결실의 계절인 가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숲은 가평의 경기도잣향기푸른숲이다. 해발 450~600m, 산의 8부 능선에 자리한 잣향기푸른숲은 우리나라에서 잣나무가 가장 많이 밀집해 있고 수줍은 새색시가 연상되는 숲이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게 자리를 지키며 아름다운 자태를 간직하고 축령산과 서리산 자락을 감싸고 있다.

잣나무는 소나무, 편백나무에 못지않게 풍부한 피톤치드를 내뿜는다. 수령이 80년 훨씬 웃도는 5만 그루의 잣나무가 어깨를 부비며 함께 형성한 군락지에서 뿜어 나오는 풍부한 피톤치드는 면역기능과 자연치유력을 높여 주어서 인체가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가도록 도와준다.

맨발로 걷는 바람의 길에서 떨어진 잣송이들과 친구되어 걷는다.
맨발로 걷는 바람의 길에서 떨어진 잣송이들과 친구되어 걷는다.

2014년에 경기도 15곳 산림 휴양지들의 피톤치드를 분석한 결과 잣향기푸른숲이 연평균 농도가 가장 높았다고 한다. 잣이 사람에게 얼마나 이로운지는 모두 다 아는 사실. 열매를 맺기까지 12년이나 걸린다는 잣나무는 습기를 잡아 주는 능력이 뛰어나서 잣송이를 집안 곳곳에 놓아두는 것만으로도 가습기 역할을 충분히 한다. 그래서인지 잣향기푸른숲에서는 어떤 다른 숲보다도 숨쉬기가 한결 편하다. 

촉촉하고 부드러운 땅에 맨발이 닿으면 땅의 따스한 기운이 온몸으로 전달된다.
촉촉하고 부드러운 땅에 맨발이 닿으면 땅의 따스한 기운이 온몸으로 전달된다.

오감을 깨워주는 숲 치유체험

피톤치드 가득한 잣나무 숲 사이 탐방로와 명상공간에서 산림치유체험을 할 수 있다. 계절별·날씨별로 또 참가하는 분들의 체력 상태를 고려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우리 팀은 4명으로 인원도 적고 입고 온 복장상태가 범상치 않다는 산림치유지도사님의 판단에 의해 조금 난이도가 있는 코스로 진행되었다. 난이도가 있다고 해서 엄청나게 힘든 코스는 아니고 처음 10분 정도 경사도가 있는 길을 걸었다. 

살짝 경사진 언덕으로 오르는 길은 산티아고순례길 중에서도 프랑스길을 연상케 했다. 언덕 위로 지나가는 탐방객의 모습조차 순례자의 모습으로 보였다. 잣나무에서 뿜어 나오는 피톤치드 가득한 길은 특별한 체험을 하지 않아도 그냥 걷기만 해도 행복이 뿜뿜해지는 길이다. 언덕을 오르니 몸이 슬슬 데워지기 시작하고 호흡도 조금씩 빨라졌다. 내 몸의 지방이 연소되고 있다고 생각하니 즐거워졌다. 

“조금 힘들다 싶은 코스를 올라갈 때는 산소가 들어갈 그릇을 크게 만들어 주면 훨씬 잘 걸을 수 있어요.”

“산소 그릇을 크게 만들기 위해서 어깨를 펴고 허리를 젖히고 호흡을 깊이 해보세요.”

“힘들게 올라온 길을 뒤돌아보면 걸어온 길이 나에게 큰 위로를 준답니다.”

나름 걷기에는 자신이 있어서 별다른 주의 없이 걷기만 했는데 산림치유지도사님의깨알 같은 팁을 들으니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어깨가 살짝 들썩거렸다.

다른 이들과 걸을 때도 이런 이야기를 해주면 좋을 듯했다. 걷기 싫은 사람도 걷는 것이 좋아질 것 같았다. 

무성한 잣나무 숲을 가능한 훼손하지 않고 만들어진 무장애데크길.
무성한 잣나무 숲을 가능한 훼손하지 않고 만들어진 무장애데크길.

조금 걸어서 숲으로 들어가니 초록색 가지가 예쁘게 늘어진 계수나무가 있다. 계수나무는 달나라가 아닌 잣향기푸른숲에 있었다. 언제 달나라에서 이사 왔을까? 신기할 정도로 곧게 자라는 계수나무는 가지가 세로로 갈라지며 잎이 무성하게 자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놀랍게도 이 나무의 껍질이 바로 향신료로 사용하는 계피이다. 수정과 담글 때 쓰는 계피향. 나무에서 독특한 냄새가 나는 이유가 있었다. 

바닥이 푹신거리는 오솔길로 들어섰다. 신발도 양말도 벗고 맨발이 되었다. 신발과 양말은 출발할 때 나누어 주었던 검정주머니에 담았다. 지금부터 걷는 길은 바람의 길이다. 길 양쪽으로 줄지어 서있는 나무들의 바스락거림과 함께 작은 숲길로 부드러운 하늬바람이 스쳐갔다. 땅은 촉촉하고 부드러웠다. 찰흙만큼은 아니어도 살포시 땅에 닿은 발의 촉감이 온 몸에 따스한 기운을 불어넣었다. 한발 한발 걸을 때마다 온 몸이 점점 부드러워졌다. 땅이 주는 기운이었다. ‘아~ 종일 맨발로 걷고 싶어라!’

가끔 서서 하늘만큼 높이 솟은 잣나무의 꼭대기를 올려다보았다. 가지 끝에 달려 있는 잣송이들이 바람결에 떨어질 것만 같았다. 아직은 잣이 익어서 떨어질 철이 아니건만 마음 가난한 나의 부질없는 생각 덕분에 잣나무와 한참을 그렇게 얼굴을 맞대고 있었다.

잠시 휴식시간, 손가락 스트레칭을 배웠다. 두 손의 다섯 개 손가락을 마주하고 한 손가락씩 회전을 하는데 나머지 손가락은 떨어지면 안 된다고 했다.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손가락, 발가락 그리고 귀는 우리 몸 전체에 신경이 연결돼 있어서 수시로 마사지해 주면 좋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손가락 스트레칭을 한 번만 했을 뿐인데 허리의 유연성이 완전 달라졌다. 내 몸으로 느꼈으니 믿어야겠지만 참으로 신기했다.

걷기가 끝나고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씻는 시간. 빨리 차가운 물의 기운을 느끼고 싶어서 ‘풍덩’ 물에 빠졌다가 이내 다시 나왔다. 산림치유지도사님의 말씀에 따라서 발을 그냥 물에 넣는 것이 아니라 발가락만 천천히 물에 담갔다가 뺐다. 물의 부드러운 터치가 온 몸으로 피가 돌듯이 전달되었다. 천천히 나의 몸의 감각을 깨우는 동작이었다. 발가락 담그기를 3번 한 후에 발을 계곡물에 완전히 넣었다. 온 몸이 시원해졌다. 촉감의 느낌이 이렇게 다를 수도 있구나! 발가락을 천천히 물에 넣으면서 한 곳에 전념하니 그 느낌이 오롯이 온 몸으로 전달되었다. 내 몸인데 미처 몰랐던 나의 감각이었다. 

계곡물에 발을 깨끗하게 씻고 숲에 마련된 명상데크로 이동했다. 힐링 마사지 시간이다. 두 명이 서로 마주보고 앉았다. 산림치유지도사님이 아로마오일을 개인별로 손등에 넉넉하게 떨어뜨렸다. 그 오일로 손등을 마사지했다. 내 몸 어딘가 남아 있던 피로감이 내 손끝을  벗어나고 있음이 느껴졌다. 푸른 숲 안에서 느끼는 기분 좋은 나른함이었다. 그렇게 잠시 쉼을 얻었다. 눈을 감으면 그대로 꿈속으로 들어갈 것만 같았다. 잣향기푸른숲에서 가진 치유의 시간이 끝났다.

체험이 끝나고 잣향기수목원에서 의미 있는 선물을 받았다. 내 혈관이 얼마나 건강한지 체크하는 ‘자율신경기능 스트레스 검사 및 말초 혈액순환 검사’. 심장박동의 미세한 변화를 분석하고 자율신경계의 교감, 부교감의 균형과 성인병의 주범인 스트레스 정도 그리고 혈관 노화, 말초 혈액 순환까지 검사할 수 있는 고가의 장비를 구비해 놓고 탐방객들에게 건강도우미 서비스를 제공했다. 

검사결과는 모두 양호. 다만 다른 항목에 비해서 동맥혈관탄성도가 조금 낮게 나왔지만 나쁜 수준은 아니었다. 내심 긴장했는데 검사결과가 만족스러웠다.

 탐방로에서 가장 짧은 잣향기피톤치드길(860m)에는 청량한 기운이 가득하고 고즈넉하게 걷기 좋은 길이다.
탐방로에서 가장 짧은 잣향기피톤치드길(860m)에는 청량한 기운이 가득하고 고즈넉하게 걷기 좋은 길이다.

명상과 산책을 함께하는 숲길 탐방

잣향기푸른숲의 탐방코스를 살펴보니 참으로 다양하다. 어떤 길에서도 하늘 높이 치솟은 잣나무가 가득하다. 임도길과 나란히 하는 5.8km의 둘레길은 숲의 전체를 느낄 수 있고 길 찾기도 쉬운 코스이다. 사방댐 전망대에서 작은 저수지와 잣나무 숲 전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가장 인기 있는 출렁다리와 화전민 마을을 지나는 1.6km 산책길도 있고 860m로 가장 짧은 코스인 피톤치드 길도 있다. 굳이 어떤 길을 걷겠다고 정하지 않고 그저 발길 닿는 대로 잣나무 숲을 걸어도 좋겠다. 곳곳에 안내판이 잘 준비되어 있어서 길 잃을 염려는 전혀 없다.

수년 전에 서리산과 축령산을 연계산행했을 때는 축령산의 잣나무 숲은 전혀 몰랐다. 풍요로운 숲과 편안한 능선 길만이 마음에 남아 있던 산이다. 오늘은 축령산의 초록 세상에 한껏 취해 있는 중이다. 멋지지 않은 숲이 어디있을 까만은 축령산의 잣향기푸른숲은 너무나 정갈한 숲이어서 들어서는 순간 청량한 기운이 온 몸으로 느껴졌다. 평소보다 더 깊이 숨 쉬며 상큼한 공기를 내 몸 깊숙이 넣어 주었다. 정말로 오랜만에 초록으로 샤워하고 있다.

1960~1970년대 화전민이 실제 거주했던 집터에 체험 목적으로 만들어진 화전민 마을.
1960~1970년대 화전민이 실제 거주했던 집터에 체험 목적으로 만들어진 화전민 마을.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산골짜기에서 졸졸 흘러내리는 시냇물소리와 가는 여름이 못내 아쉬워서 목청껏 울고 있는 매미소리 사이로 각종 새들의 노랫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이따금씩 잣나무를 휘감고 올라가는 덩굴식물의 모습은 마치 원시림처럼 보였다.

이젠 자유롭게 잣향기푸른숲을 탐험하는 시간. 제일 먼저 잣향기푸른숲 매표소 뒤로 생긴 무장애데크길을 걸었다. 무성한 숲 가운데 만들어진 데크길은 숲의 본래 모습을 가능한 보존한 채 만들어져 있어서 걷는 내내 발걸음이 가벼웠다. 숲을 심하게 훼손한 데크길을 걷게 되면 마음이 편치 않다. 자연의 주인은 사람이 아님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족 중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이 계시면 강추하는 코스이다.

데크길이 끝나고 꽃향기길로 들어섰다. 여름의 끝자락이라 꽃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아직도 길에는 꽃들이 조금 남아 있다. 숲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참 부드러웠다. 꽃이 없어도 행복을 느끼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길이었다. 꽃향기길이 끝나고 둘레길을 잠시 걷다가 이젠 출렁다리로 향했다. 길진 않아도 계곡에 놓인 출렁다리를 건너며 들리는 계곡의 물소리는 우렁차지 않아서 더욱 정겨웠다. 계곡 따라 나지막이 흐르는 물은 바닥까지 투명하게 보였다. 솔솔 바람소리, 졸졸 물소리를 들으며 잠시 나의 오감을 그대로 내려놓았다. 눈을 감고 지금 이 공간을 온 몸으로 느꼈다. 시원하고 달콤한 바람이 나에게 스며들었다. 

출렁다리를 지나서 둘레길을 따라가니 사방댐. 물을 가두어두는 사방댐은 숲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축령산 일대의 산불진화를 위한 헬기 취수원이인데 생각보다 꽤 큰 규모이다. 댐이라기보다는 관리가 잘 된 예쁜 호수 같다. 사방댐 둘레에 만들어진 산책길은 아래쪽보다 바람이 한결 차갑고 상큼했다. 고도가 높아졌다고 바람도 제법 서늘하고 햇살은 뜨겁지 않고 부드럽고 따스했다. 늦가을에나 만날 수 있는 햇살을 이곳에서 조금 일찍 해후했다. 사방댐 둘레를 느릿느릿 걷고 나니 나무로 만든 삼림욕 벤치가 있었다. 모두들 달콤한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혹여 방해가 될까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데크에 앉아서 삼림욕 벤치에 빈자리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기회 포착. 지하철에서 빈자리가  나면 재빨리 뛰어가는 중년아줌마처럼 나도 삼림욕을 할 수 있는 나무의자로 재빨리 뛰었다. 등산화를 벗고 눈부신 햇살은 수건으로 잠시 가리고 눈을 감았다. 곁을 스치는 바람결이 느껴졌다. 따스한 햇살이 내 뺨을 간질거리니 잠이 솔솔 내려앉았다. 온 몸으로 숲의 기운을 맞이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 행복한 시간이 있을까?

탐방객들이 삼림욕 벤치에 누워서 달콤한 휴식을 즐기고 있다
탐방객들이 삼림욕 벤치에 누워서 달콤한 휴식을 즐기고 있다

얼마나 지났을까? 주변을 서성이는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제는 자리를 비워 주어야 할 시간. 나무 계단을 내려와 사방댐을 바라보니 하늘빛이 댐에 담겨 있어서 마치 하늘호수로 오르는 길에 서있는 듯했다. 잠시 눈을 감고 쉬었던 달콤한 휴식 덕분에 마치 따스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온 것처럼 몸이 기분 좋게 나른했다. 지난밤 잠을 설쳤음에도 피로는 모두 바람을 따라 떠났다. 자박 자박 잣나무 숲을 거닐고 나니 머리는 맑아지고 마음은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몸이 좋지 않다며 훌쩍 숲으로 떠나는 이들을 종종 본다. 하루에 한두 번씩 숲을 거닐며 나무가 주는 위로를 받고 나면 없던 기운도 솟아나온다고 한다. 그렇게 살다 보면 어느새 이름 모를 풀이나 꽃, 다람쥐 등과도 이야기를 나누며 친구가 되어가고, 우울했던 몸과 마음에도 봄의 새싹이 피어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만큼 숲은 사람을 이롭게 한다.

산책하기엔 최고의 계절인 가을이다. 가까이에 있는 숲을 찾아 따스한 가을 햇살과 살랑살랑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가을바람을 맞으며 피톤치드와 음이온 가득한 푸른 숲속에서 삼림욕을 즐기며 숲길을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잣향기푸른숲
잣향기푸른숲

경기도잣향기푸른숲

체험프로그램 : 산림치유, 산림교육(숲해설, 유아숲), 목공체험, 힐링센터
-무료로 진행되는 체험프로그램은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예약을 받는다(단 목공체험은 재료비  별도). 체험프로그램을 참가하지 않으면 개방시간에는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다.
체험기간 : 2021년 4월 1일 ~ 11월 30일
정기휴관 : 매주 월요일
입장료 : 어른 1,000원, 중고생 600원
문의 : 031)8008 - 6769(방문자센터), 6771(매표소)
체험예약 : http://farm.gg.go.kr 

본 기사는 월간산 10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