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의 산] 공덕산은 품었다, 역병 피해 모여든 민초들을

  • 글·사진 황계복 부산산악연맹 자문위원
    입력 2021.10.14 10:08

    문경 공덕산 91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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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덕산에서 천주산으로 향하다 보면 창날 같은 예리함이 하늘을 찌를 듯한 천주산의 위용이 압도적이다.
    여름 끝자락에 경북 문경시 산북·동로면의 공덕산功德山을 올랐다. 공덕산은 전형적인 토산이라 산세가 부드럽지만, 천주산은 암봉으로 북서쪽이 깎아지른 바위벽이라면 남동쪽 산 사면은 거대한 슬랩을 이룬다. 묘봉 능선은 중간 중간 로프가 걸린 암릉이 있어 스릴감 넘치는 산행을 즐길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기암괴석에 분재 같은 노송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감상하는 듯하다. 또 곳곳에 시원한 조망 터가 많아 눈이 즐겁다.
    산행은 공덕산과 천주산을 연계한 종주산행으로 약 10km의 거리다. 전두구암 버스정류장에서 대승사로 향하는 길가에는 온통 사과밭이다. 고운 빛깔의 탐스러운 사과는 가을과 함께 익어가고 있다. 절집으로 들어서는 일주문에 걸린 ‘四佛山大乘寺사불산대승사’라는 편액이 한눈에 고찰임을 느끼게 한다. 일연 스님이 지은 <삼국유사>에 ‘죽령 동쪽 100리에 높은 산이 있는데 진평왕 9년(587), 사면에 여래불상을 새긴 큰 돌이 붉은 비단에 싸여 하늘에서 떨어졌다. 왕이 와서 돌을 보고 근처에 절을 세워 대승사라고 하였다. 이 산을 역덕산亦德山 또는 사불산이라 한다’는 내용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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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주산 정상에 올라서면 사방팔방 온통 산 산 산, 골 골 골이다. 북쪽에 포암산, 대미산, 황장산, 황정산 등 겹겹으로 출렁이는 백두대간의 산들이 물결처럼 넘실거린다.
    조선시대 대승사는 오늘날 코로나와 같은 일을 겪었다. 울산부사를 지낸 청대 권상일淸臺 權相一 선생의 <淸臺日記청대일기>에 1755년 12월 24일, 감염병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던 날의 기록이 있다. 이에 따르면 당시 거지는 물론 양반과 상놈까지 창궐하는 감염병을 피해 모조리 대승사로 모여들었고, 절에서는 이들을 각박하게 내칠 수 없어 승려들이 죽을 끓여서 먹였다고 한다. 불교를 억압하고 스님을 천하게 여겼던 조선시대라 이 기록은 고작 두어 줄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야기의 감동은 현 시대에 더욱 절절하게 전해진다.
    대승사 대웅전 왼쪽 청련당 뒤에 윤필암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서 있다. 절집을 벗어나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양철지붕을 씌운 장군수將軍水라 부르는 샘을 만난다. 이 물을 오래 마시면 장군 같은 힘이 난다고 전해진다. 이곳 갈림길에서 산비탈로 400m쯤 오르면 ‘문경 대승사 사면석불(사불암)’에 닿는다. 사불산과 대승사의 유래를 알려 주는 사면석불은 삼면이 절벽인 너럭바위 위에 덩그렇게 올려진 사면체 바위다. 동서남북의 네 면에 돋을새김한 부처의 형상은 오랜 세월 비바람에 닳아 윤곽만 겨우 알아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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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주산 정상에 서면 남쪽으로 국사봉과 숫돌봉 사이에 넉넉하게 물을 채운 경천호가 햇빛에 반짝인다.
    다시 되돌아 내려가 산허리로 한 굽이 돌아들면 윤필암潤筆庵이다. 비구니들만 사는 절이라 그런지 정갈하고 조용하다. 암자에서 나와 도로를 따라 내려서면 묘적암으로 올라가는 갈림길. 묘적암 길목 오른쪽 암벽에 새겨진 ‘대승사 마애여래좌상’은 두툼한 입술에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묘적암 가는 길은 한적하고 아름다운 산길이다. 아름드리 전나무가 울창한 숲길이 S자로 이어진다. 잠시 후 오른편 바위 위에 ‘현위치 묘적암 입구’라고 쓰인 표지목이 있다. 표지목 맞은편 전신주 옆 샛길로 진입한다. 특용작물 집단재배지를 피해 능선으로 올라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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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주산의 깎아지른 바위벽이 하늘에 닿을 듯하다.
    로프 잡고 오르는 아찔한 바윗길
    능선을 따라 묘봉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얼마 못 가서 오른편 전나무 숲 사이로 묘적암妙寂庵을 볼 수 있다. 묘적암은 고려 말에 나옹선사가 스물한 살 때 절친한 친구의 죽음에 무상을 느껴 요연선사了然禪師를 은사로 출가한 곳이다. 능선의 숲길로 곧장 치오르면 험한 바위들이 간간이 막아선다. 우회할 길이 없다. 바위에 걸린 로프를 부여잡고 아찔할 정도로 고도감이 느껴지는 좌선바위 위에 선다.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 한 그루가 독야청청 당당한 모습이다. 주변 전망도 좋아 서쪽으로 전두리마을을 감싸 안은 갓산과 그 뒤로 운달산, 단산, 배나무산, 오정산이 겹겹을 이룬다.
    로프를 붙잡고 바위를 내려서면 또 하나의 기묘한 바위를 만난다. 중간이 움푹 팬 안장바위다. 나옹의 안장암鞍裝巖이라는 이 바위는 나옹화상의 도력을 짐작할 수 있는 전설이 얽혀 있다. 바위를 넘으면 오솔길이다. 묘적암 오른쪽 계곡 길의 합류점을 지나 부부바위를 만난다. 길가에 자리한 이 바위는 부부가 마주보고 앉은 형상인데, 장수하늘소의 집게발을 연상케 한다. 차츰 경사가 가팔라지면서 다시 로프가 걸린 바위지대를 통과하면 묘봉卯峰(812.5m)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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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바위지대에 계단과 난간이 설치된 천주산 하산길.
    묘봉의 너럭바위는 전망 좋은 풍경뿐 아니라 가슴이 탁 트이는 시원함까지 안겨 준다. 두루뭉술한 공덕산의 모습과 반야봉으로 뻗어내린 산릉 뒤로 국사지맥의 매봉과 용문산이 얼굴을 내민다. 그 오른쪽 멀리 안동의 학가산이 희미하다. 
    이제 동쪽 산릉을 타고 진행하면 사불암 갈림길인 쌍연봉(828m)이다. 완만한 산길로 150m 더 진행하면 창구·가좌 마을 갈림목인 대승봉(820m). 쌍연봉, 대승봉 모두 이정표가 아니면 그냥 지나치기가 쉽다.
    아직 짙은 녹색의 숲길은 대승재에서 한 굽이 올라선다. 수풀에 뒤덮인 헬기장을 지나 벤치가 놓인 삼거리 쉼터에 이른다. 공덕산 연화봉은 쉼터에서 반야봉 쪽으로 100m쯤 떨어져 있어 갔다가 되돌아와야 한다. 정상에는 자그마한 표석과 삼각점, 이정표, 벤치가 놓여 있으나 잎이 무성한 나무들로 전망은 가렸다. 
    이 산은 고지도를 비롯한 옛 문헌에 모두 사불산으로 표기돼 있다. 공덕산이라는 이름은 <세종실록지리지> 경상도 상주목에 ‘명산은 사불산, 산양현 북쪽에 있다. 혹은 공덕산이라고도 한다名山, 四佛山, 在山陽縣北, 或曰功德山.’라는 기록에서 처음 나온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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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프에 의지해 아찔할 정도로 높은 좌선바위에 오르면 주변 전망이 좋다. 전두리마을을 감싸 안은 갓산과 그 뒤로 운달산, 단산, 배나무산, 오정산이 겹겹을 이룬다.
    천주산, 깎아지른 바위벽 인상적
    천주산으로 향한다. 경사가 가파른 내리막길에 노면마저 마사토라 미끄럼에 주의해야 한다. 우거진 숲 사이로 간혹 모습을 보이는 천주산은 창날 같은 예리함이 하늘을 찌를 듯 그 위용은 압도적이다. 한참을 내리닫던 산길은 경사가 수그러들면서 안부 십자로인 서낭당재에 닿는다. 서둘러 천주산을 향해 직진한다. 문제는 공덕산에서 약 300m 이상 내려섰다가 다시 천주산으로 치올라야 하는 수고를 감내해야 한다. 
    한 굽이 올라서면 이정표(경천호(수평1리) 4.7km, 천주산 0.6km)가 서 있는 662.3m봉. 잠시 완만하던 숲길이 계단 길로 바뀐다. 가파른 계단이 끝없이 이어진다. 지루한 계단 길이 끝나고 로프가 걸린 거대한 바위 아래로 돌아 오르면 노은리 갈림길. 비탈길로 올라 오른쪽 작은 봉우리에 선다. 지나온 능선 길 끝에 공덕산이 우람하다. 북쪽으로는 병풍처럼 펼쳐지는 백두대간의 마루금 아래 동로면 일대가 아늑하다.
    천주산 큰 봉우리를 향해 계단을 오른다. 천주산의 깎아지른 바위벽이 하늘에 닿을 듯하다. 정상에 올라서면 먼저 눈앞에 와닿는 풍경이 감동적이다. 사방팔방 온통 산 산 산, 골 골 골이다. 북쪽에 포암산, 대미산, 황장산, 황정산 등 겹겹으로 출렁이는 백두대간의 산들이 물결처럼 넘실거린다. 오른쪽 시계 방향으로 매봉, 용문산이, 국사봉과 숫돌봉 사이에 넉넉하게 물을 채운 경천호가 햇빛에 반짝인다. 멀리 또는 가까이 늘어선 산들을 일일이 헤아리기가 어렵다.
    천주산天柱山은 하늘天을 떠받치는 기둥柱을 의미한다. 이 산은, <문경군 읍지>를 비롯해 〈경상도 읍지>, <조선환여승람> ‘예천’에 ‘군의 북쪽 50리에 기둥같이 똑바로 솟아 있어 천주산이라 한다. 천주사天柱寺가 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공덕산과는 별개다. 천장산天藏山으로도 불렸으며, 멀리서 보면 큰 붕어가 입을 벌리고 하늘을 쳐다보는 형상으로 붕어산이라고도 한다. 전망데크 위에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정상석이 자리하며, 이정표도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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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불산(공덕산)과 대승사의 유래를 알려 주는 문경 대승사 사면석불(사불암).
    하산은 천주사 방향이다. 내려서는 하산길은 거대한 바위지대다. 지금이야 계단에 난간이 설치돼 다소 안전하지만, 이전에는 로프만 붙잡고 바위벽을 오르내렸으니 생각만 해도 오금이 저려온다. 전망은 열려 아래로 천주사와 간송리 일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계단 길이 끝나고 오솔길로 접어들면 누군가 정성스레 쌓은 돌탑군이다. 곧 마애불을 지나 천주사 경내에 선다. 본래 천주사는 천주마을 뒤에 있었다. 지금의 절집은 옛 천주사의 이름만 빌려 최근에 지어졌다. 그러니 모든 당우에 때가 덜 묻은 모습이 역력하다. 산행이 끝나는 천주사 버스정류장까지는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 1km 정도 더 걸어야 한다. 
    산행길잡이
    전두구암 버스정류장~대승사~사불암~윤필암~묘적암 입구 표지목~안장바위~ 묘봉~쌍연봉~대승봉~대승재~공덕산~서낭재 안부~천주산~천주사~불당골 천주사 버스정류장 <6시간 소요>
    교통
    대중교통편을 이용할 경우, 산북면 전두구암 버스정류장에서 산행 출발점인 대승사까지 3km를 걸어야 한다. 점촌 버스터미널(1688-7710)에 내려 대승사 가는 시내버스를 타려면 점촌 시내버스터미널(054-553-2231)로 가야 한다. 오전 6시 15분, 7시 15분, 9시 25분, 11시 30분에 출발하는 산북/가좌리행 51번 시내버스를 타고 전두구암(대승사 입구)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산행 후 천주사 버스정류장에서 점촌행 62번 시내버스가 오후 2시 10분, 3시 15분, 5시, 7시에 있다. 최근 코로나로 운행시간이 일정치 않아 사전에 잘 알아봐야 한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차량회수를 위해 천주사에서 대승사까지 동로면 개인택시(054-552-7891)를 불러야 한다. 요금은 3만 원.
    숙식(지역번호 054)
    점촌 시내버스터미널 인근 설악파크(554-7712), 퀸모텔(553-8659), 점촌 버스터미널 주변 삼성모텔(553-7601), IMT모텔(555-9890)이 있다. 점촌역 주변에도 깨끗한 숙소가 많다. 먹거리는 점촌 중앙시장 인근에 있는 영흥반점(555-2670)의 짬뽕과 탕수육 맛은 유명하다. 새동아가든 문경약돌돼지(553-1135)는 안심식당 인증 음식점. 문경 우체국 맞은편 궁선맛집(553-9963)은 된장숙성삼겹살, 쌈밥, 두부전골 등이 주메뉴인 지역 맛집. 
    볼거리
    대승사는 경북 북부지역에서 가장 먼저 건립된 사찰이다. 고려조와 조선조를 거치면서 영남의 이름 높은 거찰이었으나 1922년과 1956년 두 차례의 화재로 소실됐다. 절집은 때가 덜 묻은 듯하면서도 고찰古刹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일제 강점기 시절 성철, 청담, 서암 등의 고승들이 주석하며 선풍을 일으킨 곳으로 수행도량의 기풍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본 기사는 월간산 10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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