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산행] 내년 여름? 과하주 마시면 술술~ 잘 넘어갑니다

  • 글 손수원 기자
  • 사진 이신영 기자
  • 취재협조 대동여주도
    입력 2021.10.26 09:59

    약주에 소주 섞은 과하주…계절마다 꽃잎 넣어 사계절 주로 탄생
    술아 + 여주 여강길 5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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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을 잘 나게 하는 술인 ‘과하주’가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 양조장까지 차리게 되었다는 강진희 대표. 늦게 배운 술이지만 누구보다 전통주에 대한 열정이 크다.
    주당의 술 사랑에 사계절이 있겠냐마는 술은 여름에 취약하다. 온도와 습도가 높은 탓에 술이 잘 빚어지지 않을뿐더러 만들어 두어도 보관하면서 금방 상해 버리기 일쑤다. 우리 조상들은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발효주(약주)에 독한 증류주(소주)를 섞어 술이 금방 쉬어버리는 것을 방지했고, 술의 맛도 유지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여름을 넘기는 술, ‘과하주過夏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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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 대표의 아들 임승규 연구실장이 발효조를 잘 젓고 있다.
    서양 포트와인보다 100년 앞서
    “과하주란 명칭이 아직은 대중에게 생소할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약주면 약주, 탁주면 탁주, 소주면 소주지 발효주와 증류주를 섞은 과하주는 거의 명맥이 끊기다시피 했었거든요.”
    경기도 여주의 양조장 ‘술아원’은 명실상부 ‘과하주 전문 양조장’이다. 강진희(49) 대표는 2014년 3월 4종의 과하주 ‘술아’를 내놓았고, 2019년 12월엔 고문헌의 기록을 연구·복원한 ‘경성과하주’를 출시했다. 
    “처음 전통주를 배울 때 과하주에 대해 큰 매력을 느꼈어요. 과하주는 약주와 비슷한 듯 보이지만 완전히 다른 술이에요. 서양 와인 중 포트와인Port Wine과 셰리와인Sherry Wine이라는 게 있어요. 발효주인 와인에 브랜디를 섞은 술이지요. 두 가지 술을 섞었지만 와인도, 브랜디도 아닌 전혀 새로운 술이에요. 과하주도 마찬가지입니다. 독하면서도 단맛이 강한 향은 약주도 아니고, 소주도 아닙니다. 과하주만의 향과 맛이지요.”
    과하주는 포트와인이나 셰리와인과 만드는 방법이 같지만 탄생 시기는 100년 정도 앞선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자부심을 가져도 좋은 우리의 전통주인 셈이다. 
    “과하주는 약주와 소주가 섞인 다음 다시 발효와 저온숙성을 거치면서 이전의 술들이 갖지 않은 깊은 향과 맛이 새롭게 생겨납니다. 이것이 와인에 브랜디를 섞어 발효를 중지시키는 포트와인, 셰리와인과는 다른 점이자, 과하주만의 자랑입니다.”
    1600년대 초반부터 빚은 것으로 알려진 과하주는 양반가와 사대부 집안에서 즐겨 마시던 ‘고급주’였다. 하지만 6.25전쟁이 끝난 후 쌀을 사용한 주류 생산이 제한되고, 맥주와 희석식 소주 등 이른바 ‘공장 술’이 대중화되면서 전통주인 과하주 명맥이 끊어지다시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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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주 고구마로 빚은 소주 ‘필’.
    “2014년, 가양주연구소에서 함께 공부하던 동기들과 과하주를 처음 만들었어요.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별로 특성을 살린 꽃잎을 넣어 4종의 과하주를 만들었어요.”
    봄술인 ‘술아-매화주’에는 말린 매화꽃잎을 넣는다. 여름술인 ‘술아-연화주’에는 연꽃을, 가을술인 ‘술아-국화주’에는 국화꽃잎을 넣는다. 겨울술인 ‘술아-순곡주’는 아무런 꽃잎도 넣지 않아 과하주 본연의 맛을 맛볼 수 있다. 
    ‘술아’ 4종 시리즈에는 수입산 원료로 만든 주정이 들어간다. 생산단가를 낮추기 위함이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전통주’라는 진입장벽에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어요. 전통주는 비싸고 무겁다는 편견을 깨고 싶었어요. 주정을 쓰면 가격을 낮출 수 있을뿐더러 맛도 조금은 가볍고 경쾌하게 만들 수 있어요. 처음 전통주를 맛보는 젊은 세대의 입맛에 더 걸맞죠. 그래서 병 디자인과 라벨 디자인도 젊은 감각으로 만들었고요.”
    강 대표는 전통 과하주 마니아를 위해서 2019년 12월에 ‘경성과하주’를 출시했다. 약주에 증류식 소주를 넣는 전통방식 그대로 빚은 술이다. 
    “육당 최남선 선생이 1946년에 펴낸 <조선상식문답>에는 감홍로, 죽력고, 이강주를 ‘조선의 3대 명주’로 소개했고, 이외에 경성과하주와 면천두견주를 조선 최고의 명주로 꼽았어요. 경성은 지금의 서울이죠. 저희가 만든 경성과하주는 1670년에 나온 <음식디미방閨壺是議方>이란 책에 적힌 과하주 빚는 방법을 바탕으로 만든 술입니다.”
    먼저 ‘술아-순곡주’를 맛봤다. 약주의 달콤함에 증류주의 거친 알코올향이 훅 올라오면서 새콤한 뒷맛을 남긴다. 15도의 도수라 결코 약한 술이 아니지만 가벼운 안주와 함께 마시니 쭉쭉 들어간다. ‘앉은뱅이술’이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과하주의 ‘끝판왕’ 경성과하주는 ‘술아’보다는 조금 더 묵직한 느낌이다. 새콤함이 좀 더 입안  가득 퍼지고 곡물이 발효되어 내는 달콤함 또한 목구멍 깊이 전달된다. ‘술아’보다 5도 높은 20도의 도수지만 ‘세다’는 느낌보다는 조금 더 ‘중후’하다는 느낌이다. 침샘을 돌게 하는 새콤함 덕분에 식전주로 마시면 딱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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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분자 약주인 ‘복단지’를 병에 담고 있다.
    여주 쌀만 사용, 지역과 상생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과하주로는 내로라하는 양조장이 되었지만, 처음 과하주를 빚을 때만 해도 그녀가 양조장을 운영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단다. 오히려 ‘절대 양조장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었단다. 
    “정말 어느 순간 제가 양조장을 만들어 술을 빚고 있더라고요. 지금도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게 잘 믿기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래서 ‘어떤 계기로 양조장을 시작하게 되었나요?’란 질문을 받으면 대답하기가 참 난감해요.”
    말은 이렇게 하는 강 대표지만 전통주 빚는 일에 대해선 그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부지런하다. 
    “양조장 면허를 냈지만 변변한 장소가 없어 전세로 작업장을 꾸려 혼자 술을 빚었어요. 당연히 육체적으로 힘들었죠. 무거운 것을 들다 보니 허리가 망가지기도 했고, 몸이 말이 아니었어요. 제가 양조장을 차렸다고 했을 때 주위에선 ‘얼마나 버티나 보자’ 했대요. 가족들도 말릴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술 빚는 일이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렇게 몸이 힘들어도 ‘술 빚기를 그만둬야 하나?’란 생각보다는 ‘체력을 좀 더 길러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 정도였어요.”
    그런 열정으로 ‘술아’는 점점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지난해에는 건물을 새로 지어 양조장을 확장했다. 술 종류도 늘어났다. 2017년엔 ‘술아 핸드메이드 막걸리’를 출시했고, 2019년 5월에는 고구마증류주 ‘필’, 복분자를 넣은 약주 ‘복단지’를 새로 내놓았다. 
    ‘술아 핸드메이드 막걸리’는 젊은 세대가 즐겨 사용하는 텀블러 모양의 페트병에 담겨 있다. 가볍고 단순한 모양으로 들고 다니기에 편하고 뚜껑을 컵으로 사용할 수 있다. 젊은 고객에게 좀더 가깝게 다다가기 위한 강 대표의 묘안이다. 
    “‘술아’ 과하주도 그렇지만 술아 막걸리도 묵직하기보다는 맑고 경쾌한 느낌의 술로 빚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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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아원에서 빚어내는 술 제품. 세련된 디자인에서 젊은 고객에 다가서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술아 막걸리는 누룩으로 만든 단양주다. 대개 ‘프리미엄 막걸리’라고 하는 제품은 담금을 두세 번 하는 이양주나 삼양주가 많은데, 이렇게 하면 묵직한 맛이 난다. 반면 단양주 막걸리는 좀더 담백하고 가벼운 맛을 낸다. 강 대표는 이런 ‘젊은 감각의 막걸리’를 위해 단양주를 택했다. 
    하지만 단양주 막걸리는 병입을 한 뒤에도 2차 발효가 일어날 만큼 맛의 변화가 크다. 그래서 강 대표는 처음 이 막걸리를 만들고 나서 혹시 고객이 마실 즈음 맛이 어떻게 변해 있을지 몰라 불안했었다고 한다. 지금이야 그 걱정이 기우였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당시 단양주 막걸리를 만드는 것은 강 대표 입장에서도 모험이었다고. 
    ‘복단지’는 기존의 복분자주와는 다른 ‘복분자 약주’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복분자주가 당도를 높이기 위해 설탕 등을 첨가하는 과실주인데 비해 ‘복단지’는 쌀, 물, 누룩과 복분자 열매로만 빚은 ‘약주’다. 약주와 복분자의 만남이 익숙하지는 않지만 곡물의 달콤함과 복분자의 새콤달콤함이 만나 지금까지 맛봤던 복분자주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복단지’ 또한 젊은 고객을 타깃으로 귀여운 일명 ‘뚱병’에 담았고, 라벨도 아기자기한 그림으로 디자인했다. 강 대표는 “복단지는 그냥 마셔도 좋지만 얼음을 채워 차갑게 ‘온 더 락On the Rock’으로 마시거나 탄산수와 섞어 마셔도 좋다”고 팁을 주었다. 
    강 대표는 술아원에서 만드는 모든 술에 여주산 특산물을 사용한다. 쌀은 여주산 찹쌀을 사용하고, 소주 또한 여주에서 나는 고구마를 쓴다. 그렇다면 여주에서 재배하지 않는 복분자는? 이 역시 강 대표가 직접 농사를 지어 쓴다. 
    “지역과 상생하는 것이 양조장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서울이 고향이지만 여주에 양조장 터를 잡은 만큼 여주가 제2의 고향이 된 셈이죠. 그래서 양조장을 통해 여주의 특산물을 소비하고 지역 농가와 더불어 잘 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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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아원을 이끌어 가는 강진희 대표. 평범한 주부에서 전통주의 명맥을 잇는 양조장의 주인이 되었다.
    가족 합류, 천군만마 얻어
    “일찍 결혼해 평생 주부로 있다가 자식들 다 키우고 할 일을 찾다 보니 어느새 양조장의 대표가 되어 있더라”고 말하는 강 대표. 하지만 그녀는 이제 혼자가 아니다. 동생 강혁씨가 직장을 그만두고 술아원 본부장으로 합류했고, 대학생 때부터 어머니를 도와 양조장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아들 임승규씨도 학교를 졸업한 후 아예 연구실장 자리를 맡아 가업을 잇기로 했다. 
    “술 빚기가 이렇게 재미있고 든든한 지원군도 있으니 계속 좋은 전통주를 만들어야죠. 앞으로 자색고구마로 만든 약주와 복분자 막걸리, 여주 쌀로 만든 진Gin도 만들어 볼 생각이에요. ‘술’과 ‘나我’가 함께 있다는 ‘술아’의 의미처럼 앞으로도 서두르지 않고 진심을 담아 술을 빚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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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술아원이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되면서 술아원 아지트도 바빠질 예정이다.
    술아원
    올해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되었다. 코로나 시국이 진정되면 시음, 전통주 칵테일, 술 만들기 키트 체험 등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술아원 제품은 온라인 네이버 스토어에서 구입할 수 있다. 술아(15도, 375㎖) 1만8,000원, 경성과하주(20도, 375㎖) 2만8,000원, 술아 막걸리(8도, 450㎖) 2만1,000원, 복단지(14도, 350㎖) 1만6,000원. 필(25도, 375㎖) 3만 원. 양조장에 방문하면 시음하고 구입할 수 있다.
    문의 070-8776-0007.
    본 기사는 월간산 10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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