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알피니스트] 27세에 새 루트 찾던 그가 러시아어를 배우는 이유는?

  • 글 서현우 기자
  • 사진 황문성 사진작가, 구교정
    입력 2021.10.22 09:55

    故 김창호 대장에 발탁돼 다람수라&팝수라 등정… 등반만큼 지역 문화 이해에도 깊은 관심
    한국의 알피니스트, 아직 살아 있다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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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코바 설사면을 오르고 있다.
    고故김창호 대장은 2013년 세계 최단기간 히말라야 14좌 무산소 완등 이후 깊은 고민에 빠진다. 어떤 산을, 어떻게 오를지, 즉 알피니즘에 대한 고민이다. 그 고민의 씨앗은 2017년 ‘코리안웨이 신 루트 개척’이라는 결실로 이어진다. 단순히 어렵고 모험적인 등반을 했다는 것보다, 미래 한국 등반을 짊어질 젊은 대원들과 원정을 함께했다는 점에서 더욱 높이 평가받는 등반이었다. 그때 김창호 대장의 등을 좆았던 앳된 얼굴의 젊은 대원 중 한 명이 바로 구교정(30)이다.
    원래 구교정은 평범했다. 뭇 산악인처럼 어릴 때부터 산을 올랐다든지, 암벽등반에 재능이 있었다든지 같은 비범한 싹수도 없었다. 오히려 그는 20세까지 운동이라곤 모르고 살았다. 산을 처음 접한 것도 오롯이 우연이다. 대학교에 들어와 공강 때 쉴 곳을 찾다 우연히 산악부에 가입한 것.
    “운동을 해본 적이 없으니 산행이 엄청 힘들었어요. 그래서 매주 어떤 변명으로 산행을 빠질까 궁리만 했었죠.”
    그랬던 그는 대학산악연맹 동기들과 선후배들을 만나면서 점점 산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산에 가는 모든 과정에 재미가 붙었다. 자연스럽게 재학생 부장은 물론 대구경북학생산악연맹 재학생 대표까지 맡았다. 그러면서 일상이 산이 됐다. 대학교 졸업까지 3일을 남겨둔 날, 러시아로 출국해 엘 브루즈(5,642m)를 등반한 것도 그의 산에 대한 진심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2014년 9월쯤 친구들과 술 마시다 문득 ‘우리도 흰 산에 가봐야 하지 않겠냐’는 말이 나왔어요. 그리고 바로 그해 겨울에 일본 북알프스를 가기로 결정했죠. 동계 북알프스 원정은 모든 상황이 새롭고 어려웠어요. 그렇게 많은 눈을 밟아본 적도 없었고, 눈사태에 노출된 사면에 텐트를 치고 밤을 지새우기도 했어요. 특히 이 얼음이나 지형이 안전한지, 건너도 되는지 판단할 수 없어서 너무 어려웠어요.”
    그는 일본 북알프스 원정 이후 4년 연속 일본에서 동계 원정 훈련을 소화했다. 2016년부터는 3년 연속 아츠가다케에서 암설벽 혼합등반을 했다. 패기와 열정이 넘칠 때라 11일치 식량을 구매하는 데 20만 원도 채 쓰지 않아 굶주려 가면서도 산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가 등산에 진심인 편이란 사실이 알려지는 데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16년 여름 그에게 첫 고산등반의 기회가 생겼다. 경북대 창립 60주년을 맞아 구성된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 중국 3개국의 경계에 솟아 있는 천산산맥 캉텐그리(7,010m) 원정이었다.
    “꿈에 그리던 고산등반이 현실이 됐을 때, 현실은 꿈과 다르다는 걸 금세 깨닫게 됐죠. 18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7,000m급 산을 오른다는 건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었어요. 캠프3(6,100m)까지 고정로프에 매달린 채 올라갔고, 지금 되돌아봐도 매순간 고소증세로 힘들었던 기억밖에 없어요. 전혀 즐겁지 않았죠.”
    “김창호 대장님만 한 프로 없어”
    구교정은 캉텐그리에 다녀온 이후 다시는 고산에 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탁월한 암벽등반능력과 혼합등반능력, 그리고 잠재력을 눈여겨 본 김창호 대장에게 발탁돼 2017 코리안웨이 원정대에 합류한다.
    “많은 사람과 같이 산에 다녔지만 창호형 같은 프로는 못 봤습니다. 동고동락하는 그 모든 순간 동안 한 번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 주지 않으셨어요. 그렇다고 너무 딱딱하지도 않고 유연한 모습도 보여 주셨죠. 등반 대상인 산에 대한 정보는 물론, 카라반 도중 나오는 지명의 뜻이나 의미, 지역의 신화까지 다방면으로 파악하는 모습을 보며 더욱 의미 있는 원정을 만드는 방법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구교정은 코리안웨이 원정에서 2개 봉우리를 연속으로 등정(더블헤더)하는 패기를 보여 줬다. 다람수라(6,446m)와 팝수라(6,451m)다. 물론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고소적응을 위해 먼저 올랐던 피크5620에선 습한 날씨라 인근에 내리친 번개가 공기 중에 흘러 머리가 찌릿한 상태에서 하산해야 했다. 
    다람수라 등반 중에는 급경사의 좁은 설벽에 텐트를 설치해 춥고 불편한 하룻밤을 지내야 했다. 
    그는 “그렇게 힘든 밤이 지난 후 아침을 맞았는데 노랗게 물든 구름 위로 솟은 히말라야 연봉들이 빚어낸 경관이 정말 잊을 수 없이 아름다웠다”고 했다. 또한 다람수라 정상에 오르느라 체력을 다 써버려 끔찍하게 힘든 하산을 견뎌야 했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후 잠들었을 때 끊임없이 빙하를 걷는 꿈을 꿀 정도였다고 한다.
    등반 위해 러시아어 공부하는 알피니스트
    김창호 대장과 원정을 통해 한층 성장한 구교정은 이듬해인 2018년 키르기스스탄 단코바(5,982m)를 등정한다. 이 원정은 대부분 졸업을 앞둔 4학년으로 구성됐고, 구교정이 대장을 맡았다. 그로서는 김 대장의 가르침을 동기들과 나눌 수 있는 장이었다. 대상지 선정부터 베이스캠프 위치, 운행과 행정까지 전부 원정대 스스로 판단, 결정할 정도로 주도적인 원정이었다.
    원래 계획은 북벽 신 루트 개척이었지만, 막상 붙어보니 녹록하지 않았다. 이틀간 전개한 등반 끝에 가파른 설벽에 엉덩이만 붙이고 추운 눈바람에 떨며 밤을 지새운 뒤 개척을 포기, 기존에 등정된 바 있던 남서릉으로 정상에 올랐다.
    “원정이 끝난 후 대원들에게 물어봤는데 피로도가 굉장히 높았었다고 해서 무척 미안했어요. 정해진 일정 안에서 더욱 많은 지형을 탐사하고, 다른 암벽도 살펴보고 싶은 욕심에 무리하게 운행했거든요. ‘대장’이란 말의 무게감을 다시금 느낀 일이었죠.”
    원정에서 다른 등반지의 정보까지 세밀하게 탐색하는 건 김창호 대장을 꼭 닮은 습관이다. 구교정은 “러시아 원정을 계획 중인데 산뿐만 아니라 현지 문화도 이해하고 싶어 러시아어를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원정을 위해 해당 국가의 언어를 공부하는 산악인은 극히 드물다.
    코로나로 아직 해외 원정이 원활하지 않은 지금, 구교정은 트레일러닝 삼매경이다. 산악스키에서 더 좋은 기록을 내기 위해 시작한 운동이었지만, 지금은 그 자체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그는 “등반과 마찬가지로 온갖 고통을 받으며 계획된 코스를 완주했을 때, 녹초가 된 몸 속으로 성취감과 행복감이 몰려온다”고 설명하며, “강한 체력을 유지하는 훈련으로도 유용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산으로 가는 이유를 물었다.
    “지금껏 스스로 왜 산에 열심히 가는지 물어봤지만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어요. 그리고 굳이 그 답을 찾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오랫동안 즐겁게, 즐거운 사람들과 함께 산을 오르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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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코바 정상에 오른 구교정.
    2015 일본 동계 북알프스 훈련등반
    2016, 2017, 2018 일본 동계 아츠가다케 훈련등반
    2016 카자흐스탄 천산산맥 캉텐그리(7,010m) 등반
    2017 인도 다람수라(6,446m) 팝수라(6,451m) 코리안웨이 신 루트 개척
    2018 키르기스스탄 단코바(5,982m) 등정
    2019 러시아 동계 엘부르즈(5,642m) 등정
    본 기사는 월간산 10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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