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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이 한 장의 산 사진] 단풍 사진이 별로? 카메라 탓 아닌 단풍 탓!

글·사진 유창우 〈내겐 너무 쉬운 사진〉 저자
  • 입력 2021.11.02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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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 사진 잘 찍는 법

청송 주왕산의 주산지.
청송 주왕산의 주산지.

가을 산을 보고 있으면 누군가 실수로 물감을 엎질러놓은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렇지 않고서야 온 산이 저렇게 찬란하게 물이 들 수 있을까. 불타는 것처럼 활활, 저렇게 다채로운 빛깔이 한꺼번에 불꽃놀이처럼 폭발할 수 있는 걸까. 

색色, 계戒. 어떤 이는 이 단어를 영화제목으로 썼지만, 사실 가을 산을 설명하기에 이보다 잘 어울리는 단어도 없는 것 같다. 단풍으로 물든 가을 숲은 그렇게 색채로 눈을 희롱하고, 마음을 약하게 한다. 또 이 무렵이면 사진을 잘 찍건 못 찍건, 누구나 카메라를 들고 산으로 올라 사진을 찍게 된다. ‘단풍 사진 잘 찍는 법’은 그래서인지 매년 사람들이 묻는 주제다.

궁금한 것에 대한 답은 웬만하면 전부 인터넷에 있는 세상이다(물론 정답이 아닐 때도 아주 많다). 심심풀이 삼아 포털사이트에서 ‘단풍 사진 찍는 법’이라고 쳐봤다. 무수히 많은 글이 뜬다. 어떤 사람은 빛을 따져가며 찍어야 한다고 하고, 또 다른 이는 날씨를 가려가며 찍어야 좋은 단풍 사진을 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종류의 글을 여럿 읽다가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하게 됐다. ‘글쎄, 과연 그런가?’

최상의 단풍을 찾으면 90%는 성공

개인적으로 이런 방법론에 쉽게 동의할 수 없었던 건, 내가 생각하는 단풍사진의 ‘절대 원칙’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그건 다름 아니라 ‘단풍 사진을 잘 찍고 싶다면 좋은 단풍을 찾으면 된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누군가 옆에서 외칠 것이다. “배고프면 밥 먹으라는 소리랑 뭐가 다르냐”고. 뭐 그렇게 항변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이 당연한 소리가 사람들이 잊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원칙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훌륭한 단풍만 찾아낸다면 다른 요소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단풍을 찍으러 갔는데 사진이 별로였다면 그건 그때 그 장소의 단풍이 별로여서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다. 색감이 화려하고 선명한 단풍을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사진도 애매하게 나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그러나 이 사실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 “단풍이 예쁘게 안 찍힌다”면서 카메라 탓을 하거나 스스로 기술을 의심한다. 

이 글은 따라서 그런 분들을 안심시키고 싶어서 쓰는 것이기도 하다. ‘의심하지 말자. 맘 편하게 먹자. 사진이 못 나온 건 내 탓이 아니라 단풍 탓이다’란 사실을 새삼 알려 주기 위해서 말이다. 

울진 금강송숲에서 촬영한 단풍.
울진 금강송숲에서 촬영한 단풍.

가장 찬란한 단풍은 산꼭대기에 있다

그렇다면 대충 찍어도 사진이 예쁘게 나오는 아름답고 화려한 단풍은 대체 어떻게 찾을까? 일단 체력이 좋아야 한다. 가장 찬란한 단풍은 대개 산꼭대기, 깊은 숲 속에 있다. 일교차가 클수록 단풍은 고와진다. 산언저리나 산 중턱보다는 일교차가 더 심한 산꼭대기 단풍이 더 좋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좋은 단풍 사진을 찍고 싶다면 산을 부지런히 타고 남들보다 빨리 올라가야 한다.

단풍철엔 산마다 행락객으로 붐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람이 너무 많아 단풍을 제대로 찍을 수 없을 때도 있다. 남들보다 더욱 일찍 일어나고 열심히 몸을 움직여 인적이 드문 시간에 산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찍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부지런할 필요도 있다. 기상청은 매년 홈페이지에 단풍 정보를 제공한다. 전국 유명 산의 단풍이 언제가 절정인지 상세하게 안내하고 있다. 이걸 뒤져 참고하면 큰 도움이 된다. 조금 수고롭지만 가고 싶은 산에 있는 국립공원공단에 전화를 걸어 직원에게 “올해는 언제 가야 단풍을 잘 찍을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는 것도 좋다. 가장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길이다.

이렇게 체력을 쓰고 발품을 들여 최상의 단풍을 찾아냈다면 그땐 어떻게 찍어도 좋다. 찬란한 단풍은 역광back lighting에서 찍어도 근사하고, 순광front lighting에서 찍어도 아름답다. 햇살이 투명한 날에 찍어도 매혹적이고, 비가 온 다음날 찍어도 빛깔이 진해 분위기 있다. 바닥에 떨어진 것을 찍어도, 계곡에 쌓인 것을 찍어도 멋지다. 

변주를 원한다면, 물 위에 비친 풍경을

단풍 자체가 너무 화려한 피사체이다 보니 가끔은 단풍만 찍어 놓고 보면 숨 막혀 보일 수도 있다. 색다른 사진을 찍고 싶다면 물 위에 떠 있거나 물속에 가라앉은 단풍을 찍어 봐도 좋겠다. 물이라는 매개가 사진 속에서 ‘여백’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한층 멋스런 사진이 나온다.

이 정도로는 좀 심심하다. 좀더 남다른 ‘변주變奏’를 꾀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에겐 아예 물 위에 비친 가을 풍경을 찍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가장 쉬운 건 강·호수에 비친 가을 풍경을 찍어보는 것이다. 화려하게 빛나는 가을 풍광, 그 풍광이 다시 물에 비쳐 또 다른 화려함을 만드는 모습을 한꺼번에 찍는 것이다. 자연이 만들어 낸 가장 눈부신 데칼코마니를 포착하는 과정인 셈이다. 이때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날씨다. 실물과 거의 똑같도록 선명하고 쨍쨍한 반영反映을 찍고 싶다면 하늘이 맑고 바람은 잔잔한 날을 고른다. 수면이 얼어붙은 듯 고요할수록 날카롭고 명확한 풍광 사진을 얻을 수 있다.

반대로 은은한 반영을 찍어 몽환적인 효과를 얻고 싶다면 바람이 살짝 부는 날을 택한다. 이지러진 반영과 실제 풍광이 함께 어우러져 한층 시적詩的인 느낌이 든다. 

그렇게 카메라 셔터를 누르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가을 단풍은 누군가가 실수로 물감을 쏟아서 만들어낸 게 아니라, 누군가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꿈을 나뭇잎 위에 옮겨놓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그 꿈을 숨죽여 카메라에 담아내는 건, 어쩌면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손쉽게 누리는 ‘작은 사치’일지도 모르겠다고. 

본 기사는 월간산 11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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