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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독자산행기] 쌍둥이 아들과 함께 한 영축~신불~간월산 종주

곽동준 경남 양산시 동면
  • 입력 2021.11.22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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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축산 정상에 오른 쌍둥이와 필자.
영축산 정상에 오른 쌍둥이와 필자.

“방학이 참 방학답지 못하다. 너희들 휴대폰 좀 그만 봐!”

쌍둥이 아들 녀석들에게 잔소리가 하루에도 여러 차례. 도저히 이래서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로 초등학교 마지막 여름방학이 이렇게 무의미하게 흘러가다니. 안 그래도 수학여행도 못 가게 되고 방학인데 마땅히 갈 곳도, 갈 수도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렇게 초등 6학년 쌍둥이 아들 녀석들과 방학 프로젝트 구상을 시작. 영남알프스 9봉 완등 인증을 제안했다. 인터넷에 올라온 인증사진, 인증서, 인증메달을 보여 줬다. 더군다나 올해부터 9년 동안 영남알프스 아홉 산 인증메달이 매년 다르게 주어지고, 10년차에는 금메달을 준다는 얘기에 아이들은 더욱 도전정신이 상승했다.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 영남알프스 9봉 가지산,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 천황산, 재약산, 고헌산, 운문산, 문복산 코스를 탐색했고, 신불재와 간월재를 통해 능선이 연결되어 있는 영축, 신불, 간월산을 첫 산행지로 잡았다. 인터넷을 통해 등반후기를 찾아보고 루트를 정리, 성인 여성기준 7시간이면 가능하다는 글을 보고 아이들과 9시간 산행을 예상하게 되었다.

그렇게 첫 등반 계획을 마무리하고 주말을 기다렸다. 하필 빠른 장마가 시작되어 주말마다 비가 왔다. 어느 일요일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보니 전날과 다르게 날씨가 화창했다. 모처럼 날이 개어서 이때다 싶어 부랴부랴 아이들과 짐을 챙기고 출발, 점심으로 간단히 먹을 김밥만 사고 바삐 신불산자연휴양림 상단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화장실에 들른 뒤 초입에서 기념사진 한 장 찍고 나서 시간을 보니 오전 10시! 아차, 서둘러서 가야겠다. 아이들을 출발시키고 뒤에서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늦었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아이들을 재촉했나보다. 출발한 지 30여 분 지났을까. 둘째 녀석이 머리가 아프고 호흡이 가쁘다며 주저앉았다. 오랜만에 산행을 하니 설레고 긴장되었겠지. 무엇보다 뒤에서 발걸음을 재촉했던 것도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하며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사탕이나 초콜릿을 챙겼어야 하는데 간식을 못 챙겨 미안한 마음이 있던 와중에 부부로 보이시는 어르신 두 분이 지나가시기에 “혹시 죄송하지만 사탕 같은 것이 있으면 좀 얻을 수 있을까요”하고 여쭤보았다. 사탕은 없지만 건빵이 있다고 선뜻 내어주시기에 감사히 받아 아이들에게 나눠 먹였다. 둘째 녀석이 건빵을 먹더니 기운을 차린다.

전날 비가 많이 와서인지 등산로가 계곡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맑은 물이 여기저기 시원하게 내려오니 땀이 나도 세수 한 번 하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쉬엄쉬엄 오르니 어느덧 신불재에 도착. 넓은 데크 광장 벤치에 앉아서 물을 나눠 마시고 영축산 방향으로 올랐다.

“갈 만할 거야.” 

아빠의 말을 믿고 성큼성큼 앞장서는 든든한 아이들. 어려서부터 산악회 귀염둥이 마스코트로 여러 산을 함께 다녀서인 것도 있고,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남다른 교육방식으로 자주 산행을 해서 그런지 이때까지는 괜찮았다.

영축산 정상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챙겨온 김밥을 꺼내 먹었다. 물을 3리터 정도 준비했는데 벌써 다 마셔 간다. 혹시나 해서 나는 챙겨온 커피만 마시고 물은 최대한 아꼈는데 안 그랬으면 큰일 날 뻔했다.

그렇게 점심을 간단히 먹고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신불재를 지나 신불산 정상에 도착. 두 번째 인증사진을 찍고 정상석 앞에 있는 전망데크에 앉아서 쉬었다. 산림감시단 선생님 한 분이 등산객과 이야기 중이셨다. 이야기를 마치고 간월재 방향으로 함께 발걸음을 맞추어 가게 되었다.

간월재 탐방센터에 매점이 있는 걸로 아는데 몇 시까지 문을 여는지 여쭤보니 오후 4시 30분까지라고 했다. 산행 시작한 지 6시간이 넘어 아이들이 지치기 시작할 즈음이었는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아이들에게 거기 매점이 있고 아이스크림을 사줄 테니 서둘러 가자고 하였다.

가는 길에 대여섯 살 남자아이, 그리고 9~10세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를 데리고 산행 온 가족을 보았다. 우리 아이들도 요맘때 산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너무 보기 좋다며 아이들을 응원해 주었다.

영남알프스 억새밭을 가로질러 내려오는 쌍둥이.
영남알프스 억새밭을 가로질러 내려오는 쌍둥이.

간월 등정 후 체력 저하…하산 중 날 저물어

시간 맞춰 간월재 탐방센터에 도착. 떨어진 물을 보충하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마지막 남은 간월산을 바라보았다. 오후 5시가 넘었다. 하산길이 제법 길다는 인터넷 후기를 기억하는지라 어떻게 해야 하나, 여기서 산행을 마쳐야 하나 고민하면서 아이들과 상의했다. 여기서 그냥 하산할지 아니면 세 번째 정상을 들렀다 갈 것인지를.

결국 끝까지 가보자는 의견으로 모아지고 간월산 정상에 몸을 던져 넣었다. 지칠 대로 지친 아이들은 간월산 정상석에서 마지막 사진을 찍고 많이 힘든 내색을 비춘다. 매점에서 사두었던 초코바를 꺼내 아이들에게 내밀었고, 마지막 보충을 하고 서둘러 하산을 시작했다. 시간은 어느 덧 오후 6시.

산에서 어둠은 금방 찾아오기에 아이들에게 힘들겠지만 등산을 마치고 집에 가면 엄마가 소고기를 구워 정말 맛있는 저녁밥상을 차리고 기다리고 있다고, 시원한 콜라를 벌컥벌컥 마시면 정말 좋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이야기하니 너무 좋겠다며 다시 힘을 낸다.

그렇게 걷고 또 걸었다. 어른인 나도 하산길이 너무 길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략 3~4km는 되었지 싶다. 그렇게 걸어내려 오다 보니 천주교성지 죽림굴이 보였다. 안내 표지판이 보이면 제대로 하산 중이라는 후기 글이 기억나서 안심이었다. 하지만 그 죽림굴에서도 한참을 더 내려 가야 한다.

슬슬 아이들 입에서 짜증과 불만, 징징대는 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나무랄 수 없었다. 어른인 나도 힘든데 아이들은 오죽했을까. 평소 장난기 많고 까불까불한 둘째 아이가 오히려 듬직하게 군소리 없이 내려간다. 첫째 아이는 발목이 아프다며 뒤로 쳐지기 시작한다.

한참 폭풍 성장하는 아이들인지라 발이 쑥쑥 커서 등산화를 못 사주고 운동화를 신겨 온 게 내심 마음에 걸렸다. 내려가면 바로 등산화를 사주리라 다짐했다. 그렇게 두어 시간을 걸어 휴양림단지까지 내려왔다. 시간을 보니 오후 8시가 다 되어간다. 날은 이제 완전히 어두워졌고, 아직 1.5km 정도는 더 가야 하는데 걱정이다. 급하게 나오느라 랜턴을 못 챙겨온 게 후회되었다.

30~40분쯤 지났을까, 익숙한 지형이 나온다. 드디어 “다왔다, 다왔다!”를 외쳤다. 물론 그전부터 “다 와간다”고 계속 얘기했지만 아이들은 거짓말이라며 믿지 않았다. 그 순간 앞에서 불빛이 보인다. 랜턴 불빛 아닌 초록색의 불빛. 그 순간 둘째 아이가 “반딧불이다!”하고 소리친다. 나 역시 처음 본 반딧불이였다. 도시생활에 볼 수 없었던 반딧불이를 여기서 처음 보게 되어 놀랬다.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너무 아름다웠고, 아이들과 그 순간만큼은 힘든 것도 잊어버리고 넋 놓고 바라보았다.

그렇게 자연의 신비로운 순간을 뒤로하고 얼마 후 우리는 처음 출발 지점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너무 어두워진 상황이라 바로 주차장으로 이동해 차를 타고 출발했다. 집에서 기다리고 계신 어머님과 아내는 아이들을 너무나 대견하다면서 반갑게 맞아주었고, 그날 저녁 소고기 파티와 함께 즐거웠으나 너무나 힘들었던 산행 추억을 쉴 새 없이 쏟아내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함께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아이들 등산화와 등산스틱도 구매하고 두 번째 산행을 시작하려고 한다.

“아빠! 설마 이번에도 산 3개 가는 거 아니죠? 산 하나쯤은 이제 가뿐할 것 같아요.”

본 기사는 월간산 11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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