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톨레마이오스 우주관이 반영된 ‘발스페르거 세계지도’

  • 글 최선웅 한국지도학회 고문
    입력 2021.11.26 09:41

    최선웅의 고지도 이야기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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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48년 발스페르거의 세계지도(출처: Biblioteca Ajpostolica Vaticana)
    ‘이 지도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지>에 근거해 위도, 경도, 기후 구분에 따라 제작했고, 세계의 기하학적 설명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사실적이고 완전한 항해용 해도를 제공한다.’
    이 글은 발스페르거의 세계지도 하단 설명주기 첫머리에 나온다. 여기에서 〈우주지Cosmographia〉는 150년경 프톨레마이오스가 알렉산드리아에서 편찬한 〈지리학Geographia〉을 9세기경 아랍어로 번역하면서 붙여진 이름이고, 이 아랍어 판 〈우주지〉가 1406년 라틴어로 번역되자 유럽의 지리적 지식과 지도제작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안드레아스 발스페르거Andreas Walsperger는 1415년 독일 스티리아Styria주의 작은 마을 라트케르스부르크Radkersburg(현재는 오스트리아)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나이 19세 때인 1434년 잘츠부르크에 위치한 베네딕트회 소속 성 베드로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사가 되었으나, 8년 뒤인 1442년 수도원을 나와 1448년에서 그 다음해까지 독일 남쪽의 콘스탄츠Konstanz에서 지도제작을 한 것 외에는 그의 생애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다.
    발스페르거가 1448년에 제작한 세계지도는 16세기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의 호상豪商이었던 푸거Fugger 가문에서 소장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1622년 바이에른 선제후국Elector of Bavaria의 공작인 막시밀리안 1세Maximilian I가 이 지도를 교황 그레고리 15세에게 증정하면서 바티칸도서관에 소장되었다. 이 지도는 1891년 바티칸도서관에서 독일의 지리학자 콘라트 크레치머Konrad Kretschmer가 피에트로 베스콘테Pietro Vesconte의 해도첩을 연구하던 중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지도는 양피지 한 장에 6가지 자연색으로 그려졌고, 중요한 부분은 금박으로 장식되었으며, 크기는 가로 57.7cm, 세로 75cm이다. 지도는 당시 알려진 세 대륙이 표시되고, 그 바깥쪽은 색깔이 다른 7층의 천구天球가 에워싸고 있는 형식이다. 지도의 방위는 위가 남쪽인데, 이 같은 경우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과 이슬람 지도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15세기 유럽에서 번성한 해양 무역의 영향으로 남쪽을 위로 두었다는 설도 있다.
    옅은 황색 바탕의 육지 주위는 TO지도의 환해環海처럼 녹색의 바다에 둘러싸여 있고, 육지에는 산과 산줄기가 연한 녹색으로 그려져 있다. 내륙의 바다와 호수, 하천은 청록색이고, 홍해는 강렬한 적색으로 표시되었다. 지도에는 지명과 설명주기가 라틴어로 표기되었는데, 그리스도교의 도시 기호와 지명은 적색으로 표시되고, 이교도의 도시 기호와 지명은 검은색으로 표시해 구분했다.
    우주의 중심에 정지된 원형의 오르비스 테라룸Orbis Terrarum(라틴어로 지구를 뜻함)을 둘러싸고 있는 7층의 천구는 6~7세기경 세비야의 대주교 이시도르Isidore와 앵글로색슨의 수도사 베다Bede가 집필한 <데 나투라 레룸De natura rerum(사물의 본질에 관하여)>에 등장하는 고대 행성이다. 이 7개의 행성은 ‘칼데아 질서Chaldean Order’에 따라 배열되었는데, 지구에서 가장 가깝고 빠른 위성인 달에서부터 수성ㆍ금성ㆍ태양ㆍ화성ㆍ목성ㆍ토성까지의 계층을 원으로 표시했다. 천구에 그려진 12개의 반원은 12풍신wind rose이고, 12개의 원은 태양의 궤도黃道를 분할하는 12성좌를 나타낸다.
    이 지도는 당시 알려진 세계인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대륙을 원형으로 나타냈는데, 유럽과 아프리카대륙의 형태는 쉽게 알아볼 수 있으나, 아시아대륙의 형태는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알아보기 어렵다. 유럽대륙은 지중해 연안의 이베리아반도와 이탈리아반도, 발칸반도 그리고 아나톨리아반도, 흑해 등의 형태는 현대지도와 비교될 정도로 유사하나, 북유럽의 발트해는 지나치게 크게 그려지고, 죽순처럼 돌출된 반도는 스칸디나비아반도이다.
    스칸디나비아반도 끝 부분은 노르웨이 땅이나, 그 북동쪽에는 ‘북극 아래에 위치한 땅은 지속적으로 서리가 내리는 혹한 때문에 사람이 살 수 없다…’고 검은색 글씨로 쓰여 있다. 그리고 바다 최북단 북극 가까이에는 ‘지식인의 견해에 따르면 지옥은 지구의 심장이나 뱃속에 있다’고 붉은색 글씨로 쓰여 있고, 스칸디나비아반도 북서쪽 바다에는 검은색 글씨로 ‘이 넓은 바다는 자석으로 인해 항해가 불가능하다.’고 쓰여 있는데, 이는 중세시대에 널리 알려진 철이 들어간 배를 모두 끌어당긴다는 자철암magnet rock의 신화일 것이다.
    아프리카의 형태는 남쪽을 제외하고는 북서쪽과 북동쪽은 지나치게 부풀려져 있고, 나일강은 전설적인 달의 산Montes Lunae으로부터 발원되고 있다. 아프리카 남단에는 검은색 글씨로 ‘이곳은 인간이 살 수 없는 땅으로 이 남극 주위에는 짐승뿐 아니라 인간조차도 괴이한 괴물들이다’라고 쓰여 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대륙 사이의 인도양은 대륙에 둘러싸여 지중해보다 작아 보이고, 남동쪽은 두 갈래의 좁은 해협을 통해 환해와 연결되어 있다.
    아프리카 북동쪽의 붉은색 바다는 홍해이고, 그 동쪽은 아라비아반도이다. 홍해 북쪽에 그려진 성곽은 예루살렘이고, 그 동쪽의 만입이 페르시아만이다. 페르시아만 동쪽 땅에 그려진 탑은 구약성서에 고대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건설했다고 기록되어 있는 전설상의 바벨탑Turr Babel이다. 이 지도에서 아시아의 모습은 모든 것이 뒤섞여 기이한 모습인데, 우선 인도의 모습은 상상외로 작아 바벨탑이 있는 중동 지역 동쪽에 뾰족하게 돌출된 땅이 인도반도이다. 
    인도반도 동쪽의 사각형 모양의 반도는 ‘황금반도Aurea Kersonesis’라고 불리는 말레이반도이고, 말레이반도 남쪽의 큰 섬은  ‘후추의 산지’인 타브로바네이다. 말레이반도와 타브로바네 사이의 성곽이 그려진 두 섬은 1세기경 폼포니우스 멜라의 ‘코로그라피아de Chorographia’와 7세기경 이시도르의 ‘에티몰로지아Etymologiae’에 등장하는 전설적인 금의 섬인 크리사Crisa와 은의 섬인 아르게이아Argeia이고, 그 남쪽 해협 가운데 성곽이 있는 섬인 자냐Jana는 지금의 자바섬이다. 
    대개의 중세지도에는 지상의 낙원Paradise이 예루살렘 가까이 위치해 있으나, 이 지도는 지구 동쪽 끝 부분에 높은 벽과 탑에 둘러싸인 커다란 성곽으로 그려져 있다. 그곳에서는 성서의 내용대로 4개의 강인 비손Pison강과 기혼Gihon강, 티그리스Tigris강, 유프라테스Euphrates강이 발원하고 있다. 지상의 낙원이 위치한 곳에서 남쪽으로 돌출한 거대한 대륙은 그 위치나 형태로 볼 때 인도 메리디오날리스India Meridionalis, 즉 아르헨티나의 지도제작자인 폴 갈레즈Paul Gallez가 주장한 남아메리카대륙으로 추정된다. 이 대륙 남쪽 끝에는 검은색 글씨로 ‘여기에는 용과 싸우는 거인족이 살고 있다.’고 쓰여 있다. 
    이 지도에서 가장 궁금한 곳이 아시아 동쪽이다. 지도 북동쪽 끝에는 식인귀食人鬼가 그려져 있고, 이런 글이 적혀 있다.
    ‘위대한 칸이 살고 있는 카타이 수도 왈다차트Waldachat에는 식인종이 인육을 먹는다. 곡Gog과 마곡Magog은 카스피해 산맥에 둘러싸인 붉은 유대인들의 땅이다.’ 
    지도 하단 설명주기 중에는 이 지도를 사용해 도시와 도시 간의 거리를 측정할 수 있다고 적혀 있는데, 설명주기 밑에는 지도상에서 거리를 파악할 수 있는 스케일 바scale bar가 파선으로 그려져 있다. 파선은 5개씩 검정색과 붉은색을 번갈아 표시했는데, 파선 5개가 100마일에 해당된다. 이 지도는 그리스도교 세계관을 나타내는 놀라운 자료로서 초기 과학적 발견의 귀중한 전통을 나타내고 있다.
    본 기사는 월간산 11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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