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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아빠의 캠핑 요리] 11월, 텐트 안에 깨가 쏟아진다

글 한형석 요리·사진 푸드스타일리스트 진주 (유튜브 “해피키토테레비”)
  • 입력 2021.11.25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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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들기름

선운산 자락 고창의 캠핑장을 찾았다가 들깨 말리는 곳을 지나게 되었다. 가을의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갓 짜낸 들기름이 먹고 싶어 근처 시장 기름집에 들러 들기름 한 병을 샀다. 캠핑장에 돌아와 뚜껑을 따니 텐트 안이 가을의 고소함으로 가득 찼다.

들기름은 우리나라 시골의 가을 맛을 대표하는 맛과 향기다. 참기름에 비해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만, 이것은 정말 우리나라 음식에서 큰 매력과 맛과 향기로운 존재다. 참깨는 반듯한 밭에서 제대로 된 대우를 받으며 자라지만, 들깨는 개울의 둑이나 남는 땅에 아무렇게 키운다. 그래도 잘 자란다.

참깨는 잘 가꿔 팔면 큰돈을 만들어 주지만 들깨는 돈 대신 깻잎과 들기름을 준다. 참기름보다 좋은 대우는 받지 못하지만, 우리에게 더 친근하고 유용한 깻잎과 들기름이 참 좋다. 은은한 매력이 있는 한국 양념이다. 이 가을에 캠핑장에서 가까운 시장 기름집에 들러 갓 짜내 따뜻한 들기름 한 병을 사자. 그러면 그 어떤 가을보다 고소한 가을 캠핑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들기름을 듬뿍 곁들인 달걀프라이 

집에서라면, 실내라면, 달걀프라이를 해먹는 것이 힘들지 않고 소중하지 않다. 그 맛도 그렇게 훌륭한지 모르겠다. 하지만, 캠핑장에서 해먹는 달걀프라이는 그 존재 가치가 크다. 일단 맛과 향이 집에서 먹는 것보다 몇 배는 좋다. 그래서 야외에서는 가지고 다니기 힘들고 보관하기 힘들지만 나는 캠핑장에 항상 달걀을 사가지고 다닌다. 요사이에는 몸값이 비싸져서 그 가치가 더 높아졌다. 이른 아침 코끝이 서늘한 캠핑장 텐트 앞에 앉아 프라이팬에 달걀프라이를 해보자. 그리고 그 노오란 노른자 위에 노란색이 더 예쁜 들기름을 듬뿍 두르고, 소금 대신 간장 한 스푼을 뿌린 후에 먹어 보자. 아마도 온몸에 따뜻함과 뿌듯함이 깊숙이 퍼질 것이다. 들기름은 거의 모든 음식과 궁합이 잘 맞지만, 특히 달걀과 궁합이 잘 맞는 것 같다. 아침에 달걀프라이만 먹어도 좋지만, 저녁에 얼큰한 찌개와 함께 먹어도 맛있다. 갓 지은 쌀밥과 함께 먹으면 특별히 설명할 필요도 없이 맛있다. 그냥 맛있다.

*주의 : 달걀프라이는 식용유나 라드(돼지기름)를 넉넉히 두르고 하고, 들기름은 완성된 후에 뿌리는 것임.

들기름 뭇국 

코펠에 식용유 약간과 들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적당한 크기로 자른 무와 새우젓을 함께 볶다가 미리 준비해 놓은 멸치 육수나 사골 육수를 부어 끓이면 감칠맛과 정갈한 맛이 균형을 잘 잡은 맛있는 뭇국이 된다. 이것을 처음 먹어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깜짝 놀랄 것이다. 국에는 무밖에 보이지 않는데 맛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11월에 나오는 무는 일 년 중 감칠맛이 가장 뛰어난 재료다. 거기에 갓 짜낸 들기름과 고소한 새우젓이 더하면 그 감칠맛은 배가 된다. 캠핑장에서는 이렇게 간단히 뭇국을 끓여서 이른 아침에 갓 지은 쌀밥과 함께 해장국으로 먹어도 좋고, 밥을 잘 먹지 않는 아이들을 위한 따뜻한 국물 요리로 안성맞춤이다. 칼칼한 맛을 더하려면 먹기 바로 전에 다진 청양고추를 약간 넣으면 된다.

들기름 전복국수  

들기름은 대부분의 한식요리에 잘 어울리지만 전복과 특히 잘 어울리는 맛을 낸다. 소금물에 살짝 삶아낸 전복을 식혀 준비하고, 깻잎은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준비해 채 썰어 놓자. 국수 삶는 번거로움을 줄이려면 곤약면을 사용해 이것을 넉넉한 들기름에 무쳐낸 다음 모든 재료를 한데 담아낸다. 김가루도 올리면 좋고, 소금으로 간을 한다. 제철을 만난 전복과 들기름 범벅이 된 곤약면은 정말 맛있다. 채 썬 깻잎은 식감이 거칠어 이 모든 맛의 균형을 잡아 준다.

TIP 들기름을 요리 재료로 쓰기 위해 알아두면 좋은 것들

1. 들기름은 볶는 정도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 살짝 볶아 짜내면 연한 노란색이 나고, 오래 볶을수록 진한 갈색이 된다. 개인적으로 살짝 볶아 짜낸 들기름이 비싸지만 맛있는 것 같다. (시골 장터 기름집에 가면 종류별로 다 있다.)  

2. 들기름만으로 오래 볶는 것보다 다른 기름(식용유나 돼지기름)으로 요리를 다 한 후에 들기름은 드레싱으로 뿌려 먹는 것이 좋다. 들기름은 쉽게 타기 때문이다. 

3. 향이 강하기 때문에 깻잎을 제외한 다른 향이 강한 재료와 섞지 않는 것이 좋다. 

4. 캠핑장에서 아침에 일어나 춥거나 한기가 오면 들기름에 파를 넣고 따뜻하게 살짝 데워 소줏잔으로 한잔 마시면 감기 예방에 좋다. 

5. 남은 들기름은 냉동실에 보관하면 좋다.

본 기사는 월간산 11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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