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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할아버지와 12세 손자 대간 동행 “내 무릎 닳을 때까지 손자와 함께”

글 서현우 기자 사진 손병윤
  • 입력 2021.11.30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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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남은 손자 원균군과 백두대간 종주하는 손병윤씨

원균이 앞에 소백산 주능선이 펼쳐졌다. 할아버지 손병윤씨는 “산이 최고의 스승”이라고 말했다.
원균이 앞에 소백산 주능선이 펼쳐졌다. 할아버지 손병윤씨는 “산이 최고의 스승”이라고 말했다.

“내 무릎이 닳을 때까지 계속 원균이랑 같이 산행하려고 합니다. 거친 세상을 헤쳐 나갈 지혜가 산에 있기 때문입니다.”

손병윤(63)씨는 아직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손자 원균(12)군과 함께 백두대간을 종주하고 있다. 이들은 작년 11월에 처음 백두대간에 같이 발을 딛었고, 현재 태백산 구간을 돌파해 이제 곧 강원권으로 접어들 예정이다. 손씨가 속해 있는 산악회 ‘홀대모(홀로 백두대간을 가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은 산행에 도움이 필요하면 기꺼이 먼 길을 마다않고 달려와 준다고 한다. 이들이 대간 종주에 나선 사연이 애틋하기 때문이다.

“원균 아빠가 원균이 다섯 살 때 교통사고로 하늘나라로 가버렸어요. 그리고 엄마는 다른 지역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러 떠났고요. 혼자 남은 원균이를 저희가 보살피고 있습니다.”

청화산 암릉구간을 씩씩하게 돌파하고 있는 원균.
청화산 암릉구간을 씩씩하게 돌파하고 있는 원균.

“처음에만 힘들고 이후엔 재밌어요”

손씨는 손자가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도 힘차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혜와 힘을 심어주는 방법을 고민했다. 고민의 끝은 산이었다.

“제가 40대 때 뇌출혈로 한 번 쓰러진 적이 있어요. 몸무게가 95kg까지 늘어날 정도로 체력이 엉망이 됐죠. 건강관리를 위해 그때 등산을 처음 시작했어요. 늘 혼자 산을 다녔는데 지금까지 1대간 9정맥, 기맥은 120개 정도 완등했어요. 산을 다니면서 건강도 많이 회복했죠. 그리고 산에 다니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도 없거니와 인생이 산에 모두 담겨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어요. 산만 한 스승이 없는 거죠.”

그렇게 원균이가 다섯 살에 처음 오른 산은 관암지맥. 손씨는 “처음에는 원균이에게 부담될까 산행난이도가 낮은 구간만 운행했다”고 말했다. 산에 오른 원균이는 할아버지 뒤를 좇으면 따라가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곤 앞으로 나아가서 페이스 조절을 하는 영리한 모습도 보였다고 한다. 이후 성장하면서 힘이 붙는 만큼 산행 난이도를 조금씩 높였고, 8년이 지난 현재는 호남정맥과 금남정맥, 금남호남정맥까지 모두 완주해 웬만한 산꾼 못지않은 내공을 쌓았다고 한다. 원균에게 등산이 힘들지 않았냐고 물어 봤다.

“처음에는 힘들었어요. 물론 지금도 산행 중 처음 3분의 1은 힘들어요. 그런데 그 이후부터는 산이 재밌어져요. 경치도 좋고, 완주하고 나면 너무 뿌듯해요.”

봉화 옥석산 정상에 선 손병윤씨와 원균.
봉화 옥석산 정상에 선 손병윤씨와 원균.

12세면 백두대간을 종주하기에는 비교적 이른 나이. 그럼에도 대간을 시작한 건 할아버지 손씨의 등산 인생이 황혼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손씨는 “연골 손상이 심각해 더 이상 산행을 계속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이번 대간 종주를 마지막으로 산행을 그만둘 것”이라고 말했다. 무릎이 닳을 때까지, 남은 등산 인생 모두를 손자에게 쏟아 붓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이다.

또한 손씨는 “원균에게 정맥 종주 중에 혼자 길을 찾아보라고 시켜보니 GPS를 보고 독도법을 능숙하게 해내는 모습을 보고 ‘대간 종주를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할머니는 이들의 대간 종주를 돕기 위해 운전을 도맡았다. 들머리에 내려준 뒤, 날머리에 약속한 시간에 도착해 다시 집까지 태워 준다.

그렇게 할아버지와 할머니, 손자 셋이 뭉쳐 대간 종주의 첫 걸음을 내딛은 곳은 백두대간 2구간이다. 2구간은 성삼재에서 작은고리봉, 만복대를 거쳐 여원재까지 나아가는 코스다. 1구간인 지리산 구간을 생략한 것은 아무래도 원균군이 소화하기에는 벅찬 산행 난이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손씨는 손자의 체력을 고려해 자상하게 산행계획을 세워 전반적으로는 백두대간 북진 종주의 모양새를 갖되, 산행이 부담스러운 구간은 뒤로 미루거나 역주, 혹은 나눠 걷는 방식을 택했다. 원균과 손씨에게 현재까지 진행한 백두대간 구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산이 어디인지 물어보자 둘은 한 목소리로 ‘태백산’을 말했다.

“가장 최근에 다녀온 산이에요. 도래기재에서 유일사까지 총 26km 걸어서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도 다 걷고 나니 보람도 있었고, 산도 엄청 멋있었어요. 친구들은 제가 1,000m도 안 넘고 힘들지도 않은 산만 다니는 줄 안다니까요.”

원균의 안전산행을 위해 암벽등반 기술을 가르쳐 주고 있는 홀대모 회원 최수찬씨.
원균의 안전산행을 위해 암벽등반 기술을 가르쳐 주고 있는 홀대모 회원 최수찬씨.

혼자 GPS 보고 독도

더욱 놀라운 건 현재 1년간 누적된 백두대간 종주기록을 원균이 직접 ‘홀대모’ 다음 카페에 정리하고 있다는 것. 출발지점부터 도착지점까지 촬영한 중요 기점들을 나열하고 산행 과정을 아직 미숙하지만 나름 꼼꼼하게 기록했다. 원균은 “가끔 돌아보면 뿌듯하다. 그런데 사진을 빼먹었거나, 도래기재를 은티재라고 쓰는 등 실수한 점도 보인다”며 “그래도 삼촌, 이모(회원들)이 ‘잘 봤다. 기특하다’고 댓글을 달아준 걸 보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손씨는 연신 “기특하다”고만 했다.

“원균이가 아주 떳떳하고 강하게 잘 자라주고 있어요. 그래서 가족사에 대해서도 그 누구 탓도 안 해요. 참 고맙죠. 할아버지 욕심에는 산에서 인생을 깨우쳤으면 좋겠지만, 그저 이대로 거짓말만 안하는 착한 아이로만 자라 줘도 좋겠습니다.”

인터뷰 막바지. 혹시나 할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 억지로 대간을 걷고 있는 건 아닐까? 할아버지 몰래 원균에게 혹시 등산이 싫지 않은지 물어보자 씩씩한 대답이 돌아왔다.

“옛날에 비해 산행 실력도 늘었고 해서 지금은 산이 재밌어요. 물론 친구들이랑 놀거나 자전거 타는 것도 재밌는데, 그러다가도 가끔은 산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백두대간 완주하고 나면 지맥, 정맥, 기맥도 다 걷고 싶어요.”

본 기사는 월간산 11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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