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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변기태 한국산악회장] 山書 지킴이, 그의 ‘투쟁’이 값진 이유

글 이재진 편집장 사진 이신영 기자
  • 입력 2021.11.15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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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재클럽 운영 방향에 대해서 말하는 변기태 회장. 그는 산과 산서에 관한 백과사전적인 지식의 소유자이다.
하루재클럽 운영 방향에 대해서 말하는 변기태 회장. 그는 산과 산서에 관한 백과사전적인 지식의 소유자이다.

잘 팔린다고 좋은 책은 아니다. 또한 좋은 책이라고 반드시 잘 팔리는 것도 아니다. 산에 관한 책을 산서山書라고 한다. 등산에만 만족하지 않고 산에 대한 인문사회적 지식까지 섭취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마니아들을 위한 책이기에 수요는 한정돼 있다. 산서가 베스트셀러가 되기 힘든 이유다.

하루재클럽은 산에 관련된 서적을 번역, 출간하는 산서 전문 출판사이다. 산 관련 책을 내는 출판사들이 몇 군데 있었지만 대부분 문을 닫았고, 현재는 회원제 북클럽인 하루재클럽이 국내에서 유일하게 산서를 전문적으로 펴내고 있다. 돈 벌이가 안 되지만 산악계 자양분을 만들기 위해 누군가는 해야 하는 고독한 일. 

누군가는 해야 할 고독한 일

한국산악회 변기태 회장은 하루재클럽 대표를 맡아 운영하면서 2015년부터 27권을 펴냈다. 산악문화 선진국인 유럽과 일본도 산서를 전문적으로 출판하는 곳이 이제는 흔치 않다. 적자가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양질의 산서 출간을 고집하는 변 회장의 뚝심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외국 산악계 인사들이 하루재클럽의 파이팅에 놀라는 이유다.

“다른 분야에서는 좋은 책이 많이 나오는데 유독 산서는 찾아보기 힘든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동안 좋은 산서가 적지 않게 출간됐지만 팔리지 않으니 창고에서 먼지만 뒤집어 쓴 채 잊혀져 가고 있다.

수익성 없는 산서를 펴내려는 출판사가 거의 없는 상황이지만 하루재클럽은 그런 분위기를 반전시켜 좋은 산서 읽기 붐을 일으켜 출판사들이 산서 출간에 의욕을 갖게 만드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

책장사보다 산서 읽기 붐을 조성하는 데 더 큰 의미를 둔다는 말이다.

지난 9월 ‘한국산악문화 1번지’ 우이동에 문을 연 CAC산악문화센터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갖춘 이 곳의 인테리어는 변 회장이 직접 했다.
지난 9월 ‘한국산악문화 1번지’ 우이동에 문을 연 CAC산악문화센터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갖춘 이 곳의 인테리어는 변 회장이 직접 했다.

역사와 사료적 가치를 아우르는 콘텐츠

히말라야 고봉들과 그곳을 오르려 했던 영웅들의 이야기를 그린 <폴른 자이언츠>, 에베레스트 초등 당시의 오리지널 사진집 <에베레스트 정복>, 등반의 역사를 새로 쓴 리카르도 캐신의 50년 등반 인생을 다룬 <리카르도 캐신>, <일본 여성 등산사>, <중국 등산 운동사> 등.

등반의 역사는 물론 전문인이 아니면 관심을 끌 것 같지 않은 주제까지, 하루재클럽의 책들은 그 스펙트럼이 실로 다양하다. 그중에는 주말 산객들이 절대로 지갑을 열 것 같지 않은 책들도 있지만 오직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사료적 가치를 위해 출판을 결행한 책들이 적지 않다.

“조선총독부 산하 철도국 직원이었던 이야마 다쓰오飯山達雄의 책을 번역 중입니다. 철도국에서 근무하면서 조선의 산들을 기록으로 남긴 사람이죠. 조선에서 스키장을 제일 먼저 개발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변 회장의 산에 대한 지식은 양과 깊이를 종횡한다. 산서에 관한한 그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애서가다.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모은 산서가 해외 원서를 포함해 5,000여 권에 달하며, 한국산서회 창립 멤버이기도 하다. 고교생 시절부터 40여 년째 한 호도 빠지지 않고 구독하고 있는 월간<산> 열렬 애독자이기도 하다.

하루재북클럽 회원은 현재 1,200여 명. 한 달 1만 원씩 내면 일 년에 권당 5만 원 정도 하는 두툼하고 컬러 사진 잔뜩 들어간 책 4~5권을 보내 준다. 출판사는 안정된 독자를 확보하고, 고객은 편안하게 양질의 책을 받아 보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변 회장은 산악계에서 문무를 두루 갖춘 클라이머다. 한국 산서회 창립에 앞장섰는가 하면 고산거벽등산학교인 익스트림라이더등산학교 교장을 역임했다. 

책클럽 회원 2,000명이 목표

한국산악회는 지난 9월 15일 서울 강북구 우이동에 ‘CAC 산악문화센터’를 열었다. CAC 산악문화센터는 400㎡ 규모로 사무국과 산악도서관, 산악영화관 등으로 꾸며졌다. 한국산악회는 2004년 서울 삼성동에서 의정부로 옮겨온 뒤 17년 만에 다시 우리나라 산악운동의 출발점이라고 할 북한산 아래 우이동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의정부 호원동에 있던 한국산악회 회관은 산악연수원과 실내인공암벽 용도로 사용된다. 특히 CAC 산악문화센터는 의정부 회관에 있던 산악도서관을 확장 이전하고, 산악회 귀중문서와 자료보관을 위한 수장고 등 시설을 갖췄다.

내부 인테리어를 직접 맡기도 한 변 회장은 “산악회 시설을 외부에 대관하는 등 산악회를 안정적으로 꾸릴 수 있는 최소한의 재정 기반을 갖추게 돼 뿌듯하다”고 말했다. 

변 회장은 “산악회가 어르신들 친목단체에 머물지 않고 젊은이들이 찾아오게 만들려면 걸맞은 소프트웨어가 있어야 한다. 전문적이고 실용적인 콘텐츠에 목마른 젊은 산악인을 위한 다양한 아이템들을 갖춰야 산악회가 젊어진다. 맛있는 반찬을 골고루 차려놓아야 그들이 찾아오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하루재클럽을 운영하는 변 회장의 목표는 회원을 2,000명까지 늘리는 것이다.

“회원이 2,000명 수준만 된다면 전담 직원을 두면서 운영할 수 있다.”

현재 하루재클럽은 상근 직원 없이 변 회장이 혼자 운영하고 있다. 번역은 전문 번역가에게 맡기고 있다.

1945년 창립된 한국산악회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산악회다. 이제 국내 산악계는 히말라야 14좌 등정이 큰 뉴스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냈다. 그러나 산악 활동의 정신적 지주라고 할 산 관련 저작물 출판시장은 위축돼 있다.

그런 면에서 변기태 회장의 북클럽 활동은 고독하지만 의미 있는 투쟁이다. 1,000만 명이 훨씬 넘는다는 국내 산악인들과 정부의 지원사격이 절실한 이유다.

본 기사는 월간산 11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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