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부 다이어리] 돈이 부족할수록 경험은 풍부해졌다

  • 글·사진 거칠부(필명)
    입력 2021.11.09 09:45

    [거칠부 다이어리ㅣ히말라야와 돈]
    히말라야도 돈이 돈값… 네팔과 파키스탄, 인건비 계산법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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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키스탄 콩코르디아에서 중간팁을 받기 위해 모인 포터들.
    2016~2017년 2년 동안 네팔 히말라야 횡단을 하면서 약 4,500만 원을 썼다. 혼자인 데다 초보나 다름없어서 큰돈이 들었다. 시행착오도 한몫했다. 누군가의 금전적인 후원이나 장비 지원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처음부터 히말라야 횡단을 생각한 건 아니었다. 그저 17년간 다닌 회사를 그만두며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었다. 히말라야에서 3개월 동안 걸으면 어떨지 궁금했다. 그런데 그 3개월이 시작이 될 줄 몰랐다.
    회사 다닐 때 한 연구원과 나눈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는 퇴직하면 세계여행 경비로 1억 원을 쓰겠다고 했다. 그 말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1억 원이나 되는 돈을 여행경비로 쓸 수 있지? 큰돈을 그렇게 써도 되는 건가 의심부터 들었다.
    히말라야 횡단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그 연구원의 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나도 여행경비로 1억 원을 쓸 수 있을까? 1억 원을 모으려면 1년에 적금을 얼마나 부어야 하고 몇 년이 걸릴지. 계산할수록 머리가 복잡했다. 겁도 났다. 문득 내가 17년 동안 월급의 70~80%를 모았던 게 이런 날을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은 돈을 모으는 인생이었다면, 이제는 그 돈으로 경험을 사고 싶었다. 
    ‘하고 싶을 때 하지 않으면 할 수 있을 때 하지 못한다.’ 
    나의 좌우명처럼 정말 하고 싶은 것에 제대로 몰두해 보는 것. 내 인생에 대한 투자와 도전이라 생각했다.
    나는 다시 히말라야로 떠났다. 수도승처럼 머리를 빡빡 밀고 조금은 비장한 마음으로. 그게 벌써 4년 전 일이다. 그 뒤로도 1년의 절반을 히말라야의 오지를 찾아다니며 더 깊게 빠졌다. 그간 내가 히말라야에서 쓴 경비는 상상에 맡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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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말라야 횡단을 위해 환전한 네팔 돈.
    걷는 것도 돈으로 해결 가능해
    경험이 부족했던 초기. 히말라야에서 필요한 인력과 그렇지 않은 인력을 구분할 줄 몰랐다. 그 때문에 불필요한 경비가 많이 나갔다. 경험이 쌓이면서는 꼭 필요한 몇 명과 단출하게 다녔다. 대개는 오지거나 험지였다. 준비한 음식을 포터들과 나눠 먹고 대부분은 현지에서 해결했다. 야크 똥으로 불을 때서 밥을 하고, 때로는 현지에서 구한 볶은 보릿가루로 세 끼를 먹기도 했다.
    가이드조차 모르는 길을 현지인에게 물어서 찾아갔다. 포터들은 나를 ‘디디(네팔어로 누나라는 뜻)’라 불렀고, 신뢰를 쌓은 그들과 많은 곳을 다녔다. 그렇게 다닌 히말라야가 내게는 가장 즐겁고 행복했다. 대접은 돈을 들인 만큼 받을지 몰라도 경험은 돈이 부족할수록 풍부해졌다.
    돈은 돈값을 한다. 그건 히말라야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이드와 포터는 물론 요리사까지 고용하면 한결 낫다. 한국에서보다 더 한국적인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심지어 맛있기까지 하다. 거기에 숭늉까지 나온다. 야영지에 도착하면 텐트를 쳐주고, 아침이면 따끈한 차를 가져다준다. 따뜻한 세숫물을 챙겨 주는 곳도 있다. 돈을 더 쓰면 며칠에 한 번 신선한 고기를 맛볼 수 있고, 후식으로 생과일이 나온다. 고기는 금액에 따라 닭고기가 될 수도, 염소고기가 될 수도 있다. 돈이 많은 그룹은 소를 잡기도 한다. 그 모든 것을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을 고용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어떤 이들은 걷는 것조차 돈으로 해결한다. 높은 고갯길에서 말을 타고 넘는 경우도 종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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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 시킴에서 만난 포터들.
    비용 같으면 역할도 균등해야
    히말라야 트레킹을 할 때 가장 돈이 많이 드는 곳은 로지Lodge가 전혀 없는 오지다. 일단 찾아가는 데 교통비가 많이 든다. 제한구역인 곳이 많아 특별 허가를 받아야 하고 허가 비용 또한 비싸다. 무엇보다 모든 살림살이와 식량을 지고 다녀야 해서 인건비가 만만치 않다. 여행경비 중 상당 부분이 인건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고 싶은 지역이 위험한 곳이면 인건비도 덩달아 올라간다. 그만큼 전문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네팔은 여자 혼자라도 남자 스태프들과 다니는 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파키스탄처럼 여성 인권이 낮은 곳은 얘기가 달랐다. 그런 곳은 안전을 위해 사람들을 모아서 함께 다녔다. 히말라야 트레킹이 목적인 나는 여행을 준비하면서도 같은 경비를 부담했다. 서로가 부담하는 비용이 같으면 역할과 책임도 마찬가지인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은 여행사 수준의 서비스를 기대했다. 어떤 이들은 아무 역할도 하지 않으면서, 배려가 권리라도 되는 양 강요하기도 했다. 연장자라는 이유로 모든 것을 양보 받으려 하는 것도 좋아 보이지 않았다.
    트레킹 인원이 확정되면 각자 부담해야 할 금액이 정해진다. 이때 누군가 취소하면 각자 부담액이 올라간다. 그래서 여행 전에 계약금을 받는 게 중요하다. 계약금을 받으면 현지 여행사에 송금하고, 환불 조건은 그들의 기준에 따른다.
    계약금은 보통 전체 금액의 10~30%  수준이다. 취소 수수료는 경과 기간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의 여행사에서는 환불해 주지 않는다. 여행이 시작되면 일행들에게 나머지 경비를 전부 받는다. 어떤 팀은 먼저 일부만 받고 나머지는 여행이 끝나고 받는데 매우 위험한 방법이다.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들이 생기면 나머지 경비를 지불하지 않고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파키스탄에서 그런 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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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팁을 정산할 때는 텐트 문을 꼭 닫고 누구에게도 돈을 보이지 않게 한다.
    네팔·파키스탄 인건비 계산법 달라
    네팔과 파키스탄은 인건비를 계산하는 방법이 다르다. 네팔은 인건비에 휴일을 포함하고, 거리와 난이도 상관없이 일당으로 받는다. 파키스탄은 휴일을 포함하지 않고 스테이지Stage 개념이라 다르게 계산된다. 거리와 난이도를 스테이지에 반영해서 인건비를 책정하기 때문이다. 하루 동안 걷는 거리가 짧고 쉽다면 1스테이지, 거리가 멀고 난이도까지 있다면 3스테이로 계산하는 식이다. 어느 정도를 1스테이지로 잡느냐는 지역에 따라 다르다.
    네팔과 파키스탄 포터들 모두 기본 25kg의 짐을 진다. 네팔은 짐의 무게를 손으로 들어보는 게 전부다. 고도가 높아졌다고 무게를 조정하지도 않는다. 반면 파키스탄은 포터 대장이 있어서 일일이 저울로 무게를 잰다. 일반적인 곳은 25kg, 해발 5,000m가 넘어가면 20kg으로 조정된다.
    여기에 난이도가 있으면 다시 16kg으로 조정된다. 특이한 건 말과 노새의 사용료다. 네팔과 인도는 무게와 상관없이 사용료가 같지만, 파키스탄은 무게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75kg을 지는 말에게는 포터 3인분에 해당하는 사용료가 나간다(팁도 마찬가지).
    히말라야 지역은 어디를 가나 팁 문화가 있다. 팁으로 나갈 돈은 미리 현지 돈으로 바꿔 놓아야 한다. 돈뭉치가 다소 무거워도 현지에서 바로 쓸 수 있도록 작은 단위가 좋다. 팁은 의무가 아니지만, 그들이 크게 잘못하지 않는 한 챙겨 준다. 이 말은 문제가 있으면 챙겨 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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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터들에게 팁을 주기 위해 환전한 파키스탄 돈,
    과한 팁, 다른 여행자 피해 줄 수 있어
    실제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경우 팁을 깎거나 주지 않는다. 팁은 인건비의 10~20% 정도로 트레킹 수준에 따라 다르다. 일반적인 로지 트레킹보다 캠핑 트레킹에서 더 챙겨 준다. 위험한 곳이면 성공보수를 챙겨 주기도 한다. 나는 팁을 줄 때 며칠 전부터 준비하는 편이다. 가장 깨끗한 돈을 고른 후 모양을 맞춘다. 봉투에 그들의 이름을 현지어, 한국어, 영어로 적고 팁을 넣는다. 그들에 대한 나름의 존중이자 예의다.
    어떤 이들은 무거운 짐을 지는 포터들을 불쌍하게 본다. 누군가를 불쌍하게 본다는 건 상대방을 열등한 존재로 본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 마음 언저리에는 내가 그들보다 낫다는 우월의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동정의 대상이 되는 건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들은 가난하지만 불쌍하지 않다. 그들대로 잘살고 있다. 조금 더 잘 사는 우리가 마냥 행복한 게 아닌 것처럼 그들이 불행한 건 아니다. 그들의 삶과 직업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동정보다 존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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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팔 돌포 트레킹 중 점심 식사를 하는 포터들.
    팁은 인건비처럼 당연하게 줘야 하는 것도, 그들이 불쌍해서 주는 것도 아니다. 팁은 고마움을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다. 그들에게 무엇을 주던 동정이 아닌 고마움이었으면 한다. 또한 너무 과한 팁은 그들의 눈높이를 올려 다른 여행자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물론 중요한 순간에 큰 도움을 받았다면 충분한 마음의 표시가 필요하다.
    여행에서 돈은 중요하다. 돈을 쓰는 방법은 각기 다르지만 그 돈이 누군가에게 폭력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쓴 만큼만 기대하고, 고마움을 표현하는 수단이기를 바란다. 수고한 이에게 밥 한 끼 살 수 있는 너그러움이기를 바란다.
    본 기사는 월간산 11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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