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도어 브랜드 스토리] 야크 같은 뚝심으로 일군 ‘토종의 자존심’

입력 2021.11.23 10:06

<1> 블랙야크
1973년 종로 5가에서 등산장비점으로 시작…국내 대표 친환경 아웃도어 브랜드 발돋움

이미지 크게보기
1973년 종로5가에 처음 문을 연 동진사. 블랙야크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기업의 브랜드는 곧 스토리다. 브랜드명은 단순히 소비자가 부르는 이름이 아니다. 브랜드에는 기업의 경영철학과 역사, 인물과 아이덴티티Identity, 비전Visoin 등 한 편의 영화와 같은 대서사시가 깃들어 있다.
아웃도어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단순한 브랜드명 속에 자연과 사람의 관계와 역사, 철학이 숨 쉬고 있다. ‘아웃도어 브랜드 스토리’를 새롭게 시작한다. 브랜드의 탄생부터 과거, 현재, 미래까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기사다. 그 첫 번째로 ‘토종 아웃도어 브랜드의 자존심’ 블랙야크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미지 크게보기
1982년 4월 월간<山>에 게재된 ‘동진등산장비총판’의 첫 광고. ‘악돌이’ 박영래 기자가 그린 만화 광고다.
1973년, 동진사의 탄생
제주 출신인 강태선 회장은 오현고등학교 졸업 후 스스로 학비를 마련해 대학 가기 위해 서울로 상경한 후 남대문에서 옷 장사를 하던 이모 밑으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강 회장은 장사에 눈을 뜨게 된다.
현재는 동대문이 등산장비점의 메카로 통하고 있지만 당시엔 남대문에 최초로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산을 좋아하던 강 회장은 틈틈이 등산장비점을 드나들었다. 그런데 등산장비의 품질이 좋지 않았다. 대부분 미군 물품을 개조한 장비를 좌판에 두고 파는 형식이었다. 가끔 외국 브랜드의 등산용품이 수입되기도 했지만 가격이 너무 비쌌다. 
강 회장은 품질은 높이고 가격은 낮추는 방안을 생각했다. 당시 경부고속도로 등 전국의 도로망이 확충되면서 등산과 캠핑 등 여가를 즐기는 인구가 크게 늘어나고 있었다. 수요가 확실한 셈이었다.
강 회장은 등산장비 사업을 해보기로 했다. 1973년 2월, 강 회장은 24세의 나이로  종로 5가에 등산용품 전문 매장 ‘동진사’를 열었다. 후에 ‘동진산악’, ‘동진레저’ 등으로 이어지는 블랙야크의 시작이었다.
이미지 크게보기
동진산악의 첫 번째 브랜드 제품인 자이언트배낭.
뼈아픈 첫 실패
동진사 시절, 강 회장은 주로 등산복을 판매했으나 좀더 미래지향적인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등산장비로 눈을 돌렸고,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국내외의 등산장비를 가져다 둔 동진사는 날로 번창했다. 강 회장은 등산장비에 더욱 힘을 기울이겠다는 의지로 1975년 4월, 상호를 동진사에서 ‘동진산악’으로 바꾸었다.
강 회장은 이제 등산장비의 국산화를 꿈꾸었다. 그는 미군 배낭을 해체해 다시 디자인하면서 시제품을 만들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최초의 자체 개발 상품이자 국산 배낭 1호인 ‘삼대배낭’이었다. 삼대배낭은 양쪽에 호주머니가 달린 요즘 등산배낭의 시초였다.
생소한 모양새에 잠시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삼대배낭에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바로 소재였다. 삼대배낭은 면으로 만들었는데, 알고 보니 면은 땀을 흡수해서 산행 도중 점점 더 배낭을 무겁게 하는 현상이 발생했던 것이다. 삼대배낭의 실패로 동진산악은 큰 타격을 입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일쇼크까지 일어나 어려운 시간이 이어졌다.
이미지 크게보기
'동진등산장비총판’ 시절 매장 모습.
이미지 크게보기
1991년 ‘프로 자이언트’ 잡지 광고.
자이언트 일어서다
뼈아픈 실패를 겪었지만 강 회장은 큰 깨달음을 얻었다. 현장의 요구를 담아내지 못한 제품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후 강 회장은 평일에는 일을 하고, 주말에는 산에 오르며 현장에서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계속 탐구하고 발견해 나갔다.
강 회장은 동진산악의 ‘상표’가 필요함을 느꼈다. 외국 브랜드처럼 제대로 된 상표를 달아 제 이름값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동진산악의 첫 번째 브랜드인 ‘자이언트GIANT’가 탄생했다.
‘자이언트’란 브랜드를 단 이후 처음 내놓은 제품이 1976년 여름에 나온 ‘자이언트배낭’이다. 자이언트배낭은 삼대배낭의 실패원인을 꼼꼼히 분석해 내놓았기에 인기가 대단했다. 자이언트배낭이 성공하자 강 회장은 텐트, 침낭, 신발 등으로 제품군을 확장했다. 운도 따랐다. 1977년 고상돈 대장이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면서 전국적으로 등산붐이 일었다. 덕분에 ‘자이언트’ 제품은 ‘없어서 못 팔 지경’으로 팔려나갔다.
이미지 크게보기
프로 자이언트 텐트.
시련…그리고 히말라야
하지만 호황은 이어지지 않았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이 일어나고 사회 분위기가 흉흉해지면서 등산인구가 급감했다. 하지만 1981년 야간 통행금지가 풀리면서 다시금 시장에 활기가 돌았다. 장거리산행 및 야간산행이 가능해진 것이다.
등산·캠핑 붐이 다시 일면서 등산용품은 또 불티나게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마침 1980년대 ‘3저 호황(저유가, 저달러, 저금리)’과 맞물리면서 동진산악도 급격히 사세를 확장했다. 사명을 ‘동진등산장비총판’으로 변경했다. 1989년 7월에는 ‘자이언트’ 브랜드를 ‘프로 자이언트’로 바꾸었다. 좀더 고급 상품으로 동진의 위상을 끌어올리기 위함이었다.
1990년에는 ‘동진레저’로 사명을 변경했다. 하지만 또 다시 시련이 닥쳤다. 1992년 3월, 전국 국립공원과 주요 산에서의 야영 및 취사를 금지하는 법이 발표된 것이다. 등산장비 업체로서는 최대의 위기였다. 강 회장은 뜬금없이 히말라야 원정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산을 사랑하는 초심으로 돌아가 돌파구를 찾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엄홍길 대장을 비롯한 거봉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1993년 8월 히말라야 초오유와 시샤팡마 원정을 떠났다.
이미지 크게보기
히말라야 고산에 사는 야크의 모습에서 ‘블랙야크’란 브랜드명이 탄생했다.
히말라야의 혼 ‘블랙야크’의 탄생
히말라야의 고산을 거닐고 있었지만 강 회장은 고민이 컸다. 이제 등산장비 시장은 가망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다시 등산복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당시 등산복은 전문 산악인이나 입는 옷이었다. 디자인보다 기능성 위주인 등산복을 팔아봤자 시장이 커질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강 회장은 전문 산악인뿐만 아니라 등산 동호인 또는 일반인도 등산복을 즐겨 입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고, 그 해결책은 ‘디자인’이었다. 등산의류도 옷이니 이왕이면 예쁘고 멋지게 입고 싶은 욕구가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이미지 크게보기
1999년 블랙야크 후원으로 안나푸르나를 등정했던 엄홍길 대장.
그런데 걸림돌이 있었다. 등산장비에서 등산복으로 제품군이 바뀌는 만큼 등산의류를 전문으로 하는 새로운 브랜드가 필요했던 것. ‘프로 자이언트’는 전문 등산장비 브랜드의 느낌이 강했다. 그때 마침 강 회장의 눈에 등반대의 짐을 지고 걸어가는 검은색 야크가 보였다. 곁에서 걷고 있던 엄홍길 대장이 불쑥 말을 건넸다.
“브랜드 이름으로 야크는 어때요?”
그렇게 야크를 브랜드화하는 작업이 시작되었고, 1995년 12월 1일 동진레저의 새로운 명품 브랜드 ‘블랙야크’가 탄생했다. 블랙야크는 재킷 등 주요 제품에 고어텍스 소재를 사용함으로써 ‘고기능, 고품질의 명품 브랜드’를 표방했다. 특히 블랙야크의 익스피디션 라이트 패션 재킷은 국내 최초로 고어텍스Gore-Tex와 듀폰DuPont의 첨단 소재를 동시에 적용시킴으로써 고기능 등산복의 기능성과 아웃도어 웨어의 패션을 접목시켰다.
이미지 크게보기
동진레저 중국 북경직영점 풍우설 오픈식 당시의 강태선 회장.
이미지 크게보기
1989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신축한 동진레저 사옥.
IMF에 울고 웃다
블랙야크는 론칭 이후 바로 동진레저의 대표 브랜드였던 ‘프로 자이언트’의 자리를 꿰찼다. 매출 비중이 블랙야크 80%, 프로 자이언트 20%에 이를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1997년 말 IMF 외환위기, 이른바 국가부도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산 정상에 오르려면 오르막과 내리막을 두루 거쳐야 한다지만 계속된 위기에 강 회장은 지쳐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IMF가 회생의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IMF로 회사에서 정리 해고된 직장인들이 산으로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가족 몰래 정장을 입고 산에 오르던 것이 나중에는 온 가족이 함께 등산복을 입고 산에 오르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여기에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면서 등산복이 불티나게 팔렸다.
이후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며 경제력을 회복한 소비자들은 좀더 화려하고 기능성 좋은 등산복을 찾기 시작했다. 이에 발맞춰 블랙야크는 ‘등산복의 패션화’를 일구며 아웃도어와 일상을 넘나드는 브랜드로 발돋움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블랙야크는 페트병을 재활용해 제품을 만드는 등 ‘친환경 기업’으로 거듭났다.
환경과 세대를 아우르는 블랙야크
블랙야크는 세계적으로도 가치를 인정받았다. 독일 뮌헨에서 열린 세계 최대 스포츠아웃도어박람회인 이스포ISPO 2016 어워드에서 2013년 ‘올해의 아시아 제품상’ 수상 이래 2020년까지 총 26개의 상을 받았으며. 특히 2016년 어워드에서는 총 11개의 상을 받는 기염을 토했다.
블랙야크는 이제 가치소비를 중시하는 트렌드에 따라 ‘친환경 브랜드’로 나아가고 있다. 2010년부터 소비자와 기업이 함께 만드는 ‘클린 마운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고, 2014년에는 미국 친환경 아웃도어 브랜드 ‘나우NAU’를 국내에 론칭했다. 2020년부터는 페트병을 재활용한 친환경 소재인 ‘플러스틱PLUSTIC(Plus+Plastic)’을 개발해 블랙야크 브랜드의 의류와 등산화, 등산용품 등을 만들며 지구 살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이미지 크게보기
현재 블랙야크 모델 가수 아이유.
이미지 크게보기
블랙야크는 ‘블랙야크 알파인 클럽’을 운영하며 ‘명산100’ 프로그램으로 등산인구 증대에 기여하고 있다.
블랙야크는 성별과 세대를 아우르기 위한 노력도 멈추지 않는다. 2018년 ‘블랙야크 알파인 클럽BLACKYAK CLUB(BAC)’을 신설하며 산을 중심으로 ‘클린마운틴’ 캠페인을 비롯해 ‘섬&산’, ‘1대간 9정맥’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100대 명산 등정을 인증하는 ‘명산 100’ 프로그램은 8년간 23만 명이 동참하며, 단순히 기업이 운영하는 등산 프로그램을 넘어서 2030세대가 산을 찾는 새로운 등산문화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명산100’ 등정을 인증하는 회원들.
본 기사는 월간산 11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