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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독자산행기] 김천에도 ‘100명산’이 있어요!

차훈 경북 김천시 신음새동네길
  • 입력 2021.12.29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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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산 정상에 선 필자와 아이들.
초점산 정상에 선 필자와 아이들.

2020년 코로나19는 우리의 가정에도 찾아 왔다. 이 시국 속에서 두 명의 초등학생과 두 명의 유치원생을 양육하고 교육하는 것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아이들의 에너지는 집안에서의 활동으로 모두 소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이러한 에너지가 아이들과 부모의 잦은 마찰로 이어지곤 했다. 주 4일 수영훈련을 받았던 장소도 코로나19로 인해 막히게 되고 공원과 놀이터는 누구도 찾지 못하는 장소가 되었다.

우리는 네 아이들을 양육하고 교육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그렇게 새로운 장소와 방법을 찾던 중 아이들의 하원을 위해 초등학교로 이동하던 중 건널목에 설치된 현수막을 보게 되었다.

그 현수막이 지금 우리 가정이 매주 토요일(현재까지 80번째) 산행을 이어가게 만들었다. 바로 ‘김천100명산 프로젝트’라는 문구의 현수막이었다. ‘김천100명산 프로젝트’의 현수막을 보는 순간 바로 우리가 찾던 그 프로젝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방향을 잃고 표류하던 중 구조선을 만난 느낌이었다. 김천 100명산 프로젝트는 김천시에서 지정한 김천 내 100개의 명산 중 성인 70개, 학생 30개 이상의 산을 완등한 도전자들에게 기념인증서를 수여하는 행사다.

우리는 주저하지 않고 시청을 찾아 김천100명산 프로젝트에 등록했다. 그리고 김천클린산행단 밴드에도 가입했다. 그리고 시간은 1년 6개월이 지나 현재까지 80여 개의 산들을 오르며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의 미래를 꿈꾸게 되었다. 처음에는 고도 200~300m의 산들을 검색해 올랐다. 이렇게 일주일에 한 개씩 새로운 산을 오른다는 기대와 재미가 우리 가정에 다시 웃음꽃을 선사해 주었다.

김천100명산은 소도시 산의 특성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어느 산에서도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심지어 산의 등산로가 풀로 막혀 개척산행(낫을 가지고 풀을 베며 등산로를 개척하는 행위)하는 일이 잦아졌다. 하지만 이러한 산행은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왔다. 일명 ‘정글의 법칙 in 김천’이다. 소도시의 산들은 이처럼 찾는 이들이 없어 점점 정글화되어가고 있다. 심지어 관할시에서 등산로 표지판을 세워둔 곳도 풀들이 자라 한걸음을 전진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대면이 어려운 우리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아이들이 학교를 가는 날이면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 생활을 한다. 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미안하다. 하지만 김천 100명산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그리고 마음껏 맑은 공기를 마신다.

초점산 정상의 일몰.
초점산 정상의 일몰.

이렇게 아이들과 함께 산을 오르며 작은 즐거움에 빠져 있다가 지난 겨울산행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바로 ‘하이킹하이HighkingHigh’의 경험이었다. 물론 HH를 알고 경험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경험을 하며 얼마나 즐겁고 신기했던지 지금도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2021년 1월 겨울 산을 찾은 우리는 고도 1,194m의 석교산(화주봉)을 오르며 정상을 밟았다. 그런데 정상에 가까워 올 때 이미 해가 저 산 너머로 이별을 고하고 있었다. 태양이 산을 넘어가는 모습이 너무나 예뻐 우리는 하산할 때 야간산행모드로 전환할 것을 각오하고 석교산 정상에서 일몰을 마음껏 즐겼다.

그리고 어둠이 몰려온 겨울 산에서 작은 손전등과 서로를 의지하며 하산을 시도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더 큰 힘이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로의 노랫소리에 흥겨워 10시간의 산행이 넘어가는 시점에 어디선가 찾아오는 즐거움과 행복함을 느끼게 되었다.

나의 무거웠던 발걸음은 자연스러워졌다. 눈길에 미끄러질까 두려웠던 마음은 평안해졌고 남들이 말하는 무아지경에 달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12시간의 겨울 산행을 마치며 마음의 기쁨과 몸의 자유를 느끼게 되었다.

물론 집에서 막내와 시간을 보내는 아내에게도 기나긴 육아에 지친 마음과 몸을 충분히 쉴 수 있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본 기사는 월간산 12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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