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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환경&자연 영화] 태안의 60배 기름이 멕시코만으로 쏟아졌다

글 신용관 조선뉴스프레스 기획취재위원
  • 입력 2021.12.10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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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자연 영화 <17> 딥워터 호라이즌

지구 표면의 70%가 바다이다. 바다는 지구에 존재하는 물의 97.5%를 차지하고 있다. 지구에 있는 생물의 99%가 바다에 산다고 하니, 바다는 수많은 생물이 살아가는 거대한 생태계이다.

그런 바다가 해양오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도시 폐수와 공장 폐수 등이 바다에 흘러들어 피해를 일으키고, 과다한 인·질소 성분이 바닷물을 부영양화富營養化시킴으로써 플랑크톤을 이상 번식시켜 적조赤潮 현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유류 오염도 있다. 유조선 적재 원유나 선박의 연료유 등이 운항 중의 사고나 선적과 하역 시 사고로 유출되면 주변 환경을 심각하게 오염시킬 수 있다. 산유국의 일부 지역에서는 해저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원유가 유출돼 주변을 오염시키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유조선의 사고로 인한 유출은 엄청난 양의 원유로 바다를 크게 오염시키는 재해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995년에 시프린스호가 남해안에서 암초와 부딪쳐서, 2007년에는 태안 앞바다에서 유조선이 해양 크레인과 부딪쳐 많은 원유가 유출됐었다.

축구장 크기 갑판… 현대중공업이 건조

영화 <딥워터 호라이즌Deepwater Horizon>(감독 피터 버그, 2016)은 지난 2010년에 발생해 미국 멕시코만 일대에 최악의 피해를 입혔던 대규모 원유 유출 사고를 다루는 영화다.

2010년 4월 20일,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남쪽으로 200여 ㎞ 떨어진 해상, 영국의 국제 석유기업인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ritish Petroleum(이하 BP)의 관할 지역에서 시추선 ‘딥워터 호라이즌’ 호의 석유 시추시설이 폭발했다. 이 사건으로 시추선에서 근무 중이던 11명이 사망하고 17명이 중상을 입는 인명피해가 발생했고, 딥워터 호라이즌호는 폭발 발생 36시간 만인 4월 22일 침몰했다.

딥워터 호라이즌호는 우리나라 현대중공업에서 2001년 건조한 121m×78m 크기의 반半잠수형 해양 굴착 시설이다. 갑판이 축구장 크기에 달하며 146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연안 시추 전문업체인 트랜스오션이 소유한 시설로, BP에게 2013년까지 임대 중이었다. 2,400m 깊이의 해양에서 작업 가능하며 최대 9,000m까지 시추 작업이 가능했다.

영화 <딥워터 호라이즌>은 사건이 일어난 당일에 초점을 맞춘다. 폭발의 원인과 경위, 폭발 현장의 상황 등에 방점을 둔 것이다. 2010년 4월 20일엔 딥워터 호라이즌호에서 시추 작업이 예정돼 있었다. 직원들 126명이 1,500m에서 5,600m까지 시추할 계획이었다.

공기 맞추려 안전 무시

영화는 작업을 위해 승선하는 엔지니어 팀장 ‘마이크’(마크 월버그)와 위치제어 항해사 ‘앤드리아’(지나 로드리게즈)의 일상생활을 보여 주면서 시작한다. 이어 이들은 헬기를 타고 시추선에 도착해 각자 자신들의 자리에 위치해 업무를 수행한다.

그때 마이크는 자신들이 타고 갔던 헬기로 철수하는 시멘트 작업팀과 마주친다. 일정상으로나 시간상으로나 시멘트 작업이 완성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시추선 총책임자 ‘지미’(커트 러셀)의 지시로 마이크는 안전 검사가 확실히 이뤄졌는지 확인하는데 역시 우려했던 대로 시멘트 작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석유를 끌어 올리다가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알고 보니 원청업체인 BP의 관리자 ‘비드린’(존 말코비치)이 시멘트 작업자들을 그냥 돌려보낸 것이었다. 작업 일정이 원래 계획보다 40일 넘게 지연되고 있어 피해가 막심하고, 지금까지 별 탈 없이 굴러온 것만 봐도 시설은 충분히 안전하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총책임자 지미는 압력 테스트를 거친 뒤 작업 개시 여부를 결정하자고 요구한다. 문제는 압력 테스트의 결과가 해석하기에 따라 달라지는 애매한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뭔가가 이상하다”에는 대부분 동의했지만, “따라서 작업을 중단해야 한다”에는 의견이 갈린 것이다.

시설 안전이 최종적으로 확인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지만 비드린의 지시에 따라 시추 작업이 개시된다. 작업이 시작된 직후 굴착팀의 ‘케일럽’(딜런 오브라이언)은 석유가 미세하게 역류하는 등 이상징후를 감지한다.

응급조치를 취하기 전에 압력이 급증하면서 시추관에서 기름이 역류하기 시작하고 시추선의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간다. 심지어 경보장치도 작동하지 않았다. 그리고 순간 거대한 폭발음이 배 전체를 뒤흔들고 딥워터 호라이즌호는 화염에 휩싸인다. 기계 장치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시추선이기에 일단 시작된 폭발은 멈출 줄 모르고 시추선의 곳곳으로 이어진다.

샤워 중이던 지미는 폭발로 온몸에 파편을 맞고 쓰러졌고, 마이크는 부상자들을 구해 대피시키기에 여념이 없다. 앤드리아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시추 파이프를 잘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녀의 상관은 “우리에겐 그럴 권한이 없다”며 거부한다. 우여곡절 끝에 마이크의 부축을 받은 지미가 통제실에 도착하고 시추 파이프를 절단하려 하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생존자들은 구명보트를 타고 탈출하고 마이크와 몇몇 직원들은 피해를 줄이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5개월간 7억7,800만 리터 원유 유출

거대한 시추선이 압력을 이기지 못해 폭발하며 바다 위에서 화염에 휩싸여 있는 모습, 아수라장이 된 현장에서 생사의 기로에 선 직원들의 참담한 모습 등이 매우 생생하게 묘사된다. 실제 폭발 당시 아파트 20층 높이인 70여 m까지 불기둥이 치솟을 정도로 화염이 시추선 전체를 뒤덮었고, 소방 작업에도 불구하고 화재는 36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딥워터 호라이즌호가 침몰하고 수심 1,500m 아래 시추 파이프가 파괴되면서 폭발 이후 5개월 동안 7억7,800만 리터의 원유가 바다로 유출됐다. 이는 2007년 태안 기름 유출 사고 때보다 60배 많은 양이다.

영화는 마치 실제 시추선에서 촬영한 듯한 현장감을 선사한다. 피터 버그 감독은 스케일 큰 볼거리를 자랑했던 <배틀쉽>(2012), 특수대원들의 실화를 다룬 <론 서바이버> (2014) 등 스펙터클한 화면을 담아내는 감각을 인정받는 이다.

<딥워터 호라이즌>에서도 재난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딥워터 호라이즌호의 85% 크기로 실제와 유사한 세트를 제작했다. 1만4,510톤의 철강을 투입해 용접에만 80여 명의 인원이 8개월 동안 매달렸다. 또 시추관에서 역류한 진흙을 실감 나게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그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영화 <딥워터 호라이즌>은 2017년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시각효과상과 음향편집상 후보에 올랐고, 미국 대중문화 매거진 <롤링 스톤> 은 “피터 버그 감독은 재난 당시의 긴장감을 완벽하게 재창조했다”고 호평했다.

BP에 배상금 208억 달러 부과

감독은 “단순히 시추선이 폭발하고 가라앉는 수준이 아니라, 관객들이 폭발 사고를 겪는 캐릭터들의 감정까지 느낄 수 있도록 만들려고 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영화는 주연 마크 월버그, 커트 러셀의 탄탄한 연기에 힘입어 일차원적 재난 영화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고 있다. 악역에 일가견을 보이는 존 말코비치의 연기 또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역사상 손꼽힐 만한 환경 재앙인 이 사고와 관련, 미국 법무부는 부주의한 판단으로 사고를 일으킨 영국 석유 회사 BP에 208억 달러(약 24조 3,200억 원)의 배상금을 부과했다. 이는 단일 기업에 대한 손해배상액으로는 최고 수준의 액수다.

본 기사는 월간산 12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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