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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신영철의 산 이야기] 숨 막히는 사막의 밤에서 별꽃을 보다

글 신영철 산악문학가 사진 정임수 시인
  • 입력 2022.01.17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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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엔 바위꾼들 천국, 밤엔 은하수 흐르는 별빛 천국
조슈아트리국립공원

해발 1,580m 키즈 뷰 전망대에서 본 일몰. 장엄한 노을과 함께, 멀리 소금호수가 보인다. 이곳 금광에서 금을 캔 ‘키즈’란 사람의 이름을 딴 전망대다.
해발 1,580m 키즈 뷰 전망대에서 본 일몰. 장엄한 노을과 함께, 멀리 소금호수가 보인다. 이곳 금광에서 금을 캔 ‘키즈’란 사람의 이름을 딴 전망대다.

“별 보러 갑시다.”

스스로 길 위의 인생이라 자처하는 정임수 시인의 전화였다. 미국 서부는 심각한 가뭄이 지속되고 있다. 물 가뭄은 눈雪 가뭄도 되는 법. 스키 시즌이 한창일 12월임에도 눈이 없다. 정 시인과 길 떠남은 언제나 산행이었다. 겨울산은 눈 속 야영이 제격인데, 눈 가뭄에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인생은 별 볼일 없는 거라 주장하면서도, 신나게 사는 그가 별 구경 제안을?

“조슈아트리국립공원에 갑시다. 내일이 그믐이니 꽃처럼 무장무장 피어날 별 잔치 속으로.”

오오, 멋진 아이디어다. 그믐이라니 더 좋다. 영롱한 별 바다와 마주했던 감동이 떠오른다. 예전 그 별꽃 잔치를 만난 적이 있다. LA 재미한인 산악회와 함께 방문했을 때였다. 사막은 낮과 밤 표정이 달랐다. 낮엔 지글거리는 태양이 폭력이었으나 밤이 되자 온도가 곤두박질쳤다. 춥고 싸늘했던 사막 캠프장. 그러나 하늘에서는 시나브로 마술이 벌어지고 있었다. 숨이 막혔다. 평생 봐온 별들이, 진면목眞面目이 아니라는 걸 그때 깨달았다.  

“공원 북서쪽에 있는 블랙 록 캠핑장 예약은 끝냈습니다. 하지만 공원 안에 있는 선착순 캠프장 중 빈 자리가 있다면 당연히 그곳에서 잘 겁니다.”

조슈아트리국립공원 방문객센터.
조슈아트리국립공원 방문객센터.

역시 전문가다. 모두 경험에서 얻은 지혜일 터. 아웃도어에 최적화된 정 시인은 최선에 차선까지도 생각하고 있었다. 장비를 챙긴 우리는 길을 나섰다. 조슈아트리국립공원은 LA 동남부에 위치하고 있다. 2~3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 공원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캠프장을 찾아 차를 몰았다. 

공원 내 캠핑장은 모두 9군데. 그중 6곳이 선착순First-come First-serve. 인기 많은 점보 록스Jumbo Rocks 캠핑장에 도착했다. 124개의 텐트 사이트를 한 바퀴 돌았으나 이미 만석. 다음으로 점찍은 곳은 히든밸리Hidden Valley 캠프장. 그곳에 딱 한 자리가 비어 있었다. 운이 좋았다. 우리보다 한 발 늦은 사람이 차를 세우며 푸념했다. 3시간 가까이 캠프를 돌며 빈자리를 찾았지만 없어 공원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캠핑장은 말 그대로 청정지역이다. 그 흔한 가로등, 물, 전기, 수세식 변소, 가게, 핸드폰 중계기 등이 없는 불통 사막이다. 국립공원 안의 무수한 바위는 모두 등반이 가능하다. 이곳 바위들은 크든 작든 모두 동글동글한 모양을 하고 있다. 같은 모양도 없다. 바위에 이름 붙이기를 즐겨하는 사람들도 이곳에서는 그 취미를 잠시 접어야 한다. 이곳 바위에 작명을 한다면 그 분량이 백과사전 한 질 정도는 될 테니까.

당연히 우리가 확보한 야영장도 바위에 포위된 아늑한 곳이었다. 우리는 서둘러 텐트를 치고 영역표시를 했다. 그리고 가장 높은 뷰포인트를 찾아 석양을 보기 위해 나섰다.

이곳의 바위는 누구나 신고 없이
자유롭게 등반할 수 있다.
이곳의 바위는 누구나 신고 없이 자유롭게 등반할 수 있다.

등반 루트 8,000개 넘는 암벽등반의 메카

“정 시인, 이 공원 크기가 얼마나 되나요?”

“지리산국립공원 열 배는 될걸요.”

나중에 확인하니 열 배까지는 아니다. 조슈아트리국립공원 크기는 3,208㎢. 한국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지닌 지리산국립공원은 484㎢이니 그 크기가 상상이 간다. 지리산이 산악인들 사랑을 받는다면 조슈아트리국립공원은 클라이머의 애인이다. 해가 지고 있는데도 바위에 붙어 있는 클라이머들이 많이 보인다. 질펀하게 펼쳐진 바위 군락들은 암벽의 메카답게 아직도 개척이 무궁무진한 바위세상. 

개척된 등반루트만 8,000개가 넘는다. 정부가 나서서 루트를 내줄 리 없으니 모두 충성심 높은 클라이머들 작품일 터. 바윗길 수만 보더라도 클라이머들이 이 공원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쉬운 코스부터 어려운 크랙과 오버행까지 바위꾼들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루트가 이곳에 다 있다. 

거대한 바윗덩어리를 보며 떠올리는 상상력도 재미있다. 야영지를 찾아 돌 때 만났던 유명한 스컬록Skull Rock은 이름 그대로 해골을 닮았다. 가까이 가서 보니 정말 해골의 눈과 코가 기막히게 표현된 바위 해골이다. 

선명한 크랙을 따라 등반을 이어가는 클라이머.
선명한 크랙을 따라 등반을 이어가는 클라이머.

바위가 사라지고 조슈아트리Joshua Tree(북미 서부사막에서 자리는 나무)가 밀집한 숲이 나타났다. 조슈아트리 사이로 비포장 길도 간혹 스쳤는데 사람의 흔적이다. 우리가 가고 있는 ‘키즈’ 역시 사람 이름. 키즈는 이곳에서 발견된 금광 때문에 평생 이곳에서 살다 죽었다. 그때 금광을 개발한 사람들이 오갔던 비포장도로를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다.

해발 1,580m 높이의 ‘키즈 뷰 전망대’에 도착했다. 석양을 보러 온 사람들이 많다. 전망대에 오르니 숨어 있던 반대편 쪽 산맥이 한눈에 든다. LA 근교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두 개였다. 3,506m의 산고르고니오San Gorgonio와 해발 3,302m의 산하신토San Jacinto였다. 

산하신토 산은 산안드레아스 단층지역으로 유명하다. 북태평양 판이 아메리카대륙 판 아래로 밀려들어가는 지층이 바로 그곳. 이 지진대는 인근 대도시들에겐 공포의 대상이다. ‘산안드레우스’라는 영화가 있다. 이곳 판이 뒤틀리고 규모 9의 강진이 발생해 1,000만 명이 사는 LA가 콩가루가 된다는 블록버스터. 

사막에서의 야영. 모닥불과 와인이 잘 어울린다.
사막에서의 야영. 모닥불과 와인이 잘 어울린다.

은하수가 강처럼 흐른다

일몰이 시작되었고 아름답고 부드러운 분홍빛이 하늘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하늘이, 아니 노을이 얼마나 빨리 진행하는지 확인하라는 듯 점점 색이 짙어지고 있다. 분홍색이 주황색으로 바뀌더니 선홍빛으로 물들었다. 일몰에 따라 하늘만 변하는 게 아니다. 하늘을 향해 팔 벌린 조슈아트리 역시 어둠의 농담濃淡에 따라 그 모양이 바뀌고 있다.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부대끼는 번잡한 삶에서의 탈출. 사막에 존재하는 섬뜩한 고요를 찾아 온 사람들. 단순하고 고요한 사막 풍경을 즐기러 이곳에 온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침묵 속 일몰을 지키는 사람들 얼굴도 붉게 물들었다. 그 침묵도 보기 좋다. 

사막에서 맞는 일몰은 장엄했다. 조슈아트리 공원은 이곳의 일몰을 이렇게 홍보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멋진 자연의 빛 쇼’라고. 그 주장이 지금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해넘이가 끝나고 전조등을 켜고 야영지로 돌아왔다. 빛이 없어 더 깜깜한 세상. 서둘러 야영의 꽃 모닥불을 피웠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봤을 때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빅 록’이라 불리는 큰 바위. 이 바위 사이로 트레일이 이어진다.
‘빅 록’이라 불리는 큰 바위. 이 바위 사이로 트레일이 이어진다.

둥근 사막 하늘 가득, 별이 꽃이 되어 무수히 돋아나고 있다. 모하비사막 속에서도 외진 이곳엔 문명이 없다. 따라서 전기도 없다. 습도도 없다. 거기에 오늘은 그믐밤. 둥근 천공에 별자리는 물론 은하수가 강처럼 흐르고 있다. 달도 아닌 그 별빛으로도 주변 바위들이 희붐하게 살아났다. 이상하고 생경한 경험이었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빛 공해가 심한 나라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도시화가 90%라는 것인데, 그건 국민 90%가 별을 자세히 볼 수 없는 곳에 산다는 말. 그래서일까, 여태 봐온 별은 허상처럼 생각 든다. 조슈아트리국립공원은, 봉이 김선달처럼 주인 없는 하늘 별 팔기에 공원은 적극적이다. 국제 다크스카이Dark Sky 협회라는 게 있는데 한국에도 지부가 있다. 캄캄한 밤은 자연유산이고 그걸 보호한다는 국제기구. 

조슈아트리국립공원 하늘은 국제 다크스카이 협회로부터 ‘어두운 하늘 공원’ 지위를 받았다. 별 관측을 위한 최고의 국립공원이라는 자랑. 공원은 탐방객을 유도하기 위해 여러 가지 천문프로그램도 만들어 성업 중이다.

주인 없는 밤하늘 별을 팔고 있는 희귀한 관광 상품. 사막도, 바위도, 별도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생각의 반전. 모닥불이 타다닥 소리를 내며 불꽃을 튕겨 낸다. 그 불꽃 알갱이들도 별을 닮았다. 모닥불 곁에 고기가 노릇하게 구워졌다. 하늘별이 못 견디게 휘황해 진홍빛 석양 닮은 와인 잔을 부딪치기 시작했다. 

검은 하늘엔 은하수의 교향악이 공연 중. 달이 뜨지 않는 그믐이 고마울 수도 있다는 각성. 어느새 하늘에는 틈도 없이 별이 빼곡하게 차버렸다. 영상에서 봤던 성단星團이나 성운星雲을 눈으로 본다. 그 가운데에 또렷하게 은하수銀河水도 흐르고. 서양에서는 은하수를 우유가 흐르는 강이란 뜻의 ‘밀키웨이Milky Way’라고 부른다. 색깔은 닮았으나 역시 동서양 생각은 다르다. 한 번쯤은 경험해 보고 싶은 하늘바라기가 되어 우리는 사막의 밤을 보내고 있다. 등불대신 오감만 켜놓은 하늘과의 교감 시간.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에서의 야영. 노출 없이도 선명한 밤하늘별과 바위 그림자가 고혹적이다.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에서의 야영. 노출 없이도 선명한 밤하늘별과 바위 그림자가 고혹적이다.

임진왜란 때 출발한 별빛을 보다

“이것 좀 보세요. 여기 북두칠성이 있네요. 그런데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북극성이 사실은 430년 전의 별빛입니다. 430년 전 출발한 빛을 지금 보고 있는 거죠. 사실 북극성이 이미 죽었는지 사라졌는지 알 길이 없는 거죠.”

몽환처럼 하늘을 덮고 있는 별과 은하수에 감동의 샤워를 받고 있는데 이 무슨 헛발질? 은하수 속 별들은 북극성보다 더 먼 곳에 있으니, 어쩌면 허상을 보며 감동 먹고 있다는 말? 반짝이는 북극성이 430광년 전 보낸 빛이라는 과학은 믿는다. 빛이 1년간 달린 거리를 1광년이라 한다는데, 대략 9조4,600억km 곱하기 430을 하면 그 거리를 알 수 있을 터. 북극성에서 1590년에 출발한 빛이라고? 그 시절은 임진왜란이 시작한 때인데… 그 생각조차 아득해 다시 감동 속으로 원점회귀. 그래도 김새게 한 헛발질은 돌려주는 게 맞다. 

“정 시인, 이 공원 이름이 된 조슈아트리는 어떤 나무일까?”

“글쎄요, 사막의 가혹한 기후에서 생존하려 필사적으로 진화해 온 유일한 나무?”

“조슈아트리는 이름만 나무야. 용설란과의 여러 살이 풀이지. 선인장과 같다는 말이고.”

정 시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다시 모닥불이 불꽃을 튕겨 낸다. 화성이나 먼 행성의 모래 언덕 이미지와 닮은 풍경의 조슈아트리 사막의 밤. 그러나 조슈아트리국립공원의 밤은 사막이 아니었다. 은하수가 흐르고 별빛으로도 사물을 분간할 수 있는 환상적인 별빛 축제. 낮엔 바위마다 클라이머들이 오르고, 이윽고 밤이 되면 그들을 위로하려 별꽃 공연을 펼치는 적막한 밤. 조용히 팔 벌려 별의 퍼포먼스에 환호하고 있는 조슈아트리. 우리를 감싼 고요는 더 깊어지고 있었다. 

본 기사는 월간산 2022년 1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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