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스토리] 美 명문高 퇴학생, 아웃도어 지도를 바꾸다

입력 2022.01.11 09:53

노스페이스
1966년 샌프란시스코의 등산장비점으로 시작…1997년 영원무역이 국내 론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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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페이스는 세계 아웃도어 마니아에게 가장 사랑받는 브랜드 중 하나이다.
‘노스페이스THE NORTH FACE’ 세계적인 아웃도어 브랜드다. 세계 어느 곳을 가든 ‘만국 공용 장비’처럼 노스페이스의 의류와 장비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알프스 거벽을 오르는 클라이머의 모습에서도, 히말라야를 오르는 고산등반가의 모습에서도, 남극을 탐험하는 탐험가의 모습에서도 노스페이스는 언제나 함께한다. 
세계적인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의 역사는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미국 동부의 골동품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난 더글라스 톰킨스Douglas Tompkins는 명문 사립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공부보다는 산에 가는 것을 더 좋아했다. 청소년이 된 그는 학교를 몰래 빠져나와 산으로 가는 날이 많아졌다. 규율이 엄격한 사립학교에선 이런 더글라스에게 퇴학 처분을 내렸다. 
고등학교 졸업장은 따지 못했지만 그에겐 자유가 주어졌다. 식당 종업원을 하며 돈을 벌어 세계를 떠돌며 등반과 스키를 즐겼다. 유럽 알프스로 향해 아이거 북벽도 올랐다. 그와 ‘노스페이스’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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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샌프란시스코 노스 비치 지역에 문을 연 첫 ‘노스페이스’ 매장.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산악가이드와 삼림감시원을 하면서 가정을 꾸렸다. 가장이 된 그는 좀더 안정적인 직업이 필요했다. 그때 눈이 간 것이 등반장비였다. 
당시 미국의 등반장비는 군대 장비를 조금씩 변형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디자인은 투박했고, 품질이나 사용성도 좋지 않아 등반가들의 불평이 심했다. 
그레이트풀 데드 개업식서 연주
더글라스는 품질이 좋은 유럽의 등반장비를 수입해 팔기로 했다. 같이 산에 다니던 친구들과 5,000달러의 자본금을 모아 우편판매를 시작했다. 제법 장사가 잘 되었다. 마침 동업자도 나타났다. 
산악도시인 워싱턴주 스포케인 출신의 케네스 합 클롭Kenneth ‘Hap’ Klopp은 스탠포드 MBA를 나와 대형 스포츠 용품점을 경영해 본 자본가였다. 케네스는 더글라스에게 동업을 제의했고, 1966년 샌프란시스코 노스 비치 지역에서 작은 아웃도어 장비용품점을 냈다. 가게 이름은 ‘노스페이스THE NORTH FACE’였다. 
1960년대 히피 문화의 중심지였던 샌프란시스코에 세운 ‘노스페이스’는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히피 문화의 최전선에 있었다. 여담으로, 가게 개업식에 결성한 지 1년 된 한 무명 밴드가 연주를 했는데, 후에 이들은 20세기를 풍미한 전설적인 록밴드가 되어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다. 바로 ‘그레이트풀 데드Grateful Dead’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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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 개업식에서 축하 공연을 한 ‘그레이트풀 데드’의 론 피그펜 매커넌(왼쪽에서 두 번째). 오른쪽에 있는 여성은 더글라스의 부인인 수지 톰킨스이다.
1968년, 장비점 ‘노스페이스’는 샌프란시스코 반대편인 버클리Berkeley 지역으로 자리를 옮겼다. 자금에 여유가 생긴 더글라스는 아웃도어 장비 개발에 몰두해 그해 세계 최초로 최저온도 규격을 표시한 슬리핑백을 출시했고, 이듬해에는 다운재킷의 원조이자 고전인 ‘시에라 파카’를 출시했다. 
하지만 더글라스는 ‘장비의 벽’에 부딪히고 만다. 그것은 바로 텐트 개발에 대한 한계였다. 자체적인 텐트 개발 없이는 더 이상 아웃도어 시장으로의 진출이 어려웠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케네스는 끊임없이 방법을 찾았고, ‘20세기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 불리는 건축가 리처드 벅민스터 퓰러 박사를 만나게 된다. 
퓰러 박사는 ‘생명의 알은 모두 구형으로서, 구형은 외부의 힘에 가장 강한 모습을 보여 준다’는 이론을 바탕으로 1년 만인 1975년에 ‘오벌 인텐션Oval Intention(구형 강화)’이라는 이름을 가진 노스페이스 최초의 4계절용 텐트를 개발해 냈다. 이는 기존의 전형적인 A타입 형태의 텐트가 구球 형태의 돔 텐트 디자인으로 대체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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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페이스를 창업한 더글라스 톰킨스의 젊은 시절.
첫 텐트 개발 이후 1977년에는 세계 최초로 외장 프레임 구조를 적용한 ‘백 매직BACK MAGIC’을 출시했고, 1978년에는 구형 이론이 적용된 ‘VE-24 텐트’를 개발했다. 퓰러 박사의 이론을 바탕으로 한 텐트의 개발로 노스페이스는 더욱 넓은 아웃도어 시장으로의 탐험을 이어갈 수 있었다. 
1980년대에는 고어텍스 재킷의 원형인 ‘마운틴 재킷’ 등 고기능 등산 장비를 개발했고, 1990년대에는 시대를 초월한 스테디셀러로 요즘에도 사랑받고 있는 ‘눕시 재킷’을 출시함으로써 세계적인 아웃도어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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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개발한 노스페이스 최초의 구형 텐트 ‘오벌 인텐션’.
눕시 재킷으로 세계적 브랜드 도약
우리나라에 노스페이스가 소개된 것은 1997년 영원무역에 의해서다. 성기학 회장은 국내 아웃도어 시장에서는 후발주자였던 노스페이스를 들여와 철저한 시장분석과 한국 현지화 작업을 통해 론칭 6년 만인 2003년 아웃도어 국내매출 1위로 끌어올렸다. 
노스페이스를 국내에 들여오기 전인 1970~1980년대에도 노스페이스는 한국 산악인들 간에는 일종의 ‘전문산악인 표지標識’로 인식되었다. 산에서 노스페이스 파카나 재킷을 입고 있으면 일단 전문산꾼으로 보아도 틀림없었다. 이는 전문산악인 세계에서 노스페이스가 이미 기능성을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이런 와중에 노스페이스가 정식으로 들어와 한국인의 체형에 맞게 생산되니 아웃도어 시장에서 선두로 오르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이후 노스페이스는 ‘멈추지 않는 탐험Never Stop Exploring’이라는 브랜드 철학과 끊임없는 제품 혁신을 통해 국내 아웃도어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2000년에는 국내 아웃도어 업계 최초로 ‘키즈 라인’을 선보였고, 2011년에는 업계 최초로 라이프스타일 컬렉션인 ‘노스페이스 화이트라벨’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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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출시되어 현재까지 사랑받고 있는 스테디셀러 ‘눕시’ 다운재킷.
2012년에는 ‘다이나믹 하이킹’ 시리즈를 내놓음으로써 국내 아웃도어 시장에 초경량 등산화 시대를 열었다. 이밖에도 롱패딩 열풍을 일으킨 ‘수퍼 에어다운’과 겨울 방한화 ‘부띠’ 등 노스페이스는 아웃도어와 패션 시장을 아우르며 트렌드를 주도하는 다양한 스테디셀러를 선보였다. 
글로벌 노스페이스에 있어 자연은 ‘탐험을 통한 이해의 대상’이다. 이에 영원아웃도어의 노스페이스는 새로운 산악문화 보급 및 발전을 위해 2005년 ‘노스페이스 애슬리트팀TNF Athlete Team’을 창단해 국내 유수의 고산등반가와 클라이머, 탐험가를 지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14 인천 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2016 리우 하계올림픽,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및 2020 도쿄 하계올림픽 등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동안 대한민국 국가대표 공식 단복을 책임지며 ‘팀코리아’의 든든한 지원자로서 국가 스포츠 발전에 조력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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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원아웃도어의 노스페이스는 폐페트병을 재활용해 만든 의류를 선보였다.
지구와 사람을 보호하다
최근 노스페이스의 화두는 ‘친환경’이다. 이에 영원아웃도어 노스페이스는 2019년 친환경 제품인 ‘에코 플리스 컬렉션’을 선보였고, 국내에 ‘친환경 뽀글이’ 열풍을 일으켰다. 또한 독자 기술인 ‘K-에코 테크’를 통해 제주에서 수거한 페트병으로 만든 리사이클 원단을 적용한 제품을 선보였다. 
이러한 ‘친환경’에 대한 노스페이스의 노력은 우리가 사랑하는 탐험을 이어가기 위해 지구와 사람을 보호하는 일이다. 극한의 순간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 노스페이스의 탐험은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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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페이스는 각종 아웃도어 이벤트를 후원하며 ‘탐험을 멈추지 말라’고 독려한다.
본 기사는 월간산 2022년 1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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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페이스는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팀코리아’ 올림픽 공식 단복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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