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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비법정탐방로 외국에선?] 北알프스 年등산객 900만 명, 레인저는 5명뿐…국립공원 발상지 미국엔 등산로 막는 정책 없어

글 오영훈 기획위원, 서현우 기자 사진 김종연 기자
  • 입력 2022.01.14 09:52
  • 수정 2022.01.14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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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은 어떻게 관리하나"
일본은 민간이 등산로 관리…미국은 출입금지 대신 허가제
산악사고 책임은 공단이 아닌 이용자가 책임지게 법규 바꿔야

현행 제도로는 공원 내에서 일어난 사고에 대해 국립공원공단이 책임지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출입금지’다.
현행 제도로는 공원 내에서 일어난 사고에 대해 국립공원공단이 책임지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출입금지’다.

“한국은 해외에 비해 유독 등산 규제가 심하다.”

등산 동호인들의 흔한 불만이다. 해외 트레킹이나 원정을 다녀온 이들은 한국에선 불가능했던 활동들이 해외에선 가능한 경우가 많다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아웃도어 규제 강도는 실제로 강한 편일까? 또 해외는 어떻게 등산문화를 관리하고, 한국과 다르다면 왜 다를까? 문화인류학 박사 오영훈 본지 기획위원과 함께 세계 각국의 비법정탐방로 및 아웃도어 관련 제도를 쟁점에 따라 살펴본다.

서현우(이하 서) 한국의 등산 관련 규제가 해외에 비해 정말 많은 편인가?

오영훈(이하 오) 국립공원의 경우 규제가 무척 심하다. 등산이 일반 레저스포츠로 발달한 동서양의 많은 국가 중에서 아마도 가장 강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규제는 자연휴식년제가 시작된 1980년대 중반 이후 갈수록 더해져 오늘에 이르렀다.

북한산국립공원에서 등산객을 구조하는 119 구조헬기. 본지 오영훈 기획위원은 산악사고 시 국립공원공단에게 관리 책임을 묻는 법 제도가 제재 일변도의 정책 기조를 낳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진 조선일보 DB.
북한산국립공원에서 등산객을 구조하는 119 구조헬기. 본지 오영훈 기획위원은 산악사고 시 국립공원공단에게 관리 책임을 묻는 법 제도가 제재 일변도의 정책 기조를 낳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진 조선일보 DB.

우리나라의 자연공원 관리주체가 이용자를 통제할 수 있다는 법적 근거는 자연공원법 28조다. 자연보호와 이용자의 ‘안전’을 위해 ‘자연공원특별보호구역 또는 임시출입통제구역으로 지정해  일정 기간 사람의 출입’을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해 두었다.

우리나라는 여기서 ‘이용자의 안전을 위한다’는 항목을 근거로 꾸준히 규제를 쌓아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립공원 직원 수를 더 늘리고, 국립공원 임직원에게 전격적인 사법경찰권을 부여해 더욱 큰 제재를 취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규제 일변도의 정책 방향은 문제의 근본 원인을 외면하는 땜질식 처방이다. 이용자에 대한 충분한 설득과 계도 활동으로 근본적인 문화의 변화가 필요하다. 일부 등산객들의 일탈 행위는 오히려 강압적인 법규로 인한 결과다. 외국의 사례들이 이를 입증한다.

적절하지 못한 규제는 오히려 일탈의 한 원인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자연휴식년제는 1986년부터 시행됐다. 그와 동시에 같은 시기인 1980년대 후반부터 샛길 등반이 조직적으로 성행하기 시작했다. 관광회사는 산악인을 고용해 설악산 등 주요 명산에서 단체로 샛길 등산을 다닐 정도였다. 밀려드는 사람들을 좁은 등산로 안에 가두려고 했던 탓이다.

광활한 일본 알프스 겨울 전경. 북알프스의 경우 국립공원 정규직이 5명에 불과하다. 사진 게티이미지.
광활한 일본 알프스 겨울 전경. 북알프스의 경우 국립공원 정규직이 5명에 불과하다. 사진 게티이미지.

일본 등산객 900만 명, 관리직원 단 ‘5명’

예를 들어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국립공원 행정 규모가 훨씬 작은데도 환경보전에 성공하면서 발전적인 방향을 꾀하고 있다. 일본 국립공원은 우리나라처럼 자연환경을 관리하는 조직이 아니라 규제 법령으로 풍경을 유지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이는 역사적으로 국립공원 내 다양한 관리 주체가 존재해 왔던 점을 반영한 것이다. 즉 토지는 임야청, 자연보호는 환경성, 하천은 국토교통성, 댐 주변은 전력회사, 공공사업 시행은 지방자치 단체 등으로 나뉘어 관장하는 식이다. 국립공원은 환경성의 산하 조직이다. 

등산 행동에 대한 규제는 국립공원이 직접 나서서 감시하는 체제가 아니다. 예컨대 북알프스 전체 연간 방문자 수는 900만 명을 웃도는데 북알프스를 관장하는 환경성 국립공원 정규직원 관리인(레인저)은 5명이 전부다. 이들마저 2~3년마다 직무순환돼 현장 전문가가 국립공원 내에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은 어떻게 이런 제도를 갖추게 된 건가?

일본에서 자연환경, 특히 등산로를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주체는 국립공원이 아니다. 산장, 산악단체 등 민간단체다. 일본은 20세기 초 등산이 시작되던 시기부터 산장 주인, 사냥꾼, 등산 안내인, 종교인 등등이 등산로를 관리해 왔다.

비정부기구가 등산로 관리 중심이 되던 관행이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왔다. 행정 부처의 관여가 적었기 때문에 독자적인 산장 문화를 구축해 올 수 있었다. 산장과 산악단체 등은 무척 큰 자부심을 갖고 등산로 관리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미국 애팔래치아 트레일.
미국 애팔래치아 트레일.

물론 일본에서도 공공성이 있는 산지 관리를 정부에서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의견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산장은 재정과 인력 규모가 제각각인데 각기 등산로를 맡아 관리하면, 산장의 능력 여하에 따라 등산로 관리상태가 차이 나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동안은 국지성 호우 등 기상 이변 현상과 함께 코로나 확산으로 인한 야외활동 금지, 텐트 이용자 증가 등으로 산장 이용자도 줄어드는 추세다. 산장은 소득 감소와 함께, 자재 운반비 상승 등으로, 등산로 관리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곳이 많았다. 산악단체도 고령화되면서 역량의 부족함을 호소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일본 당국이 찾은 해결책은 국립공원에 행정력을 추가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대신 이용자 참여를 유도했다. 예를 들어 지난 가을 북알프스를 관리하는 일본 환경성 중부산악 국립공원 관리사무소는 지속 가능한 관리체제의 구축을 위해 이용자로부터 기부금을 받아 등산로 유지관리 기금을 마련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또 산장이 주체가 되어 이용자 참여 프로그램을 도입하기도 한다. 북알프스의 쿠모노다이라雲の平산장은 2021년 7월부터 등산로 정비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온라인으로 모금 운동도 벌여, 12월 5일 기준 1인당 2,000엔(2만1,000원)씩 총 1만4,356명이 모금에 참여했다(약 3억 원). 모금된 금액은 자재 구매 및 운반비, 환경 보전, 등산로 정비 강습회 실시비용 등으로 사용된다.

2대째 운영하는 일본 북알프스 쿠모노다이라산장 전경.
2대째 운영하는 일본 북알프스 쿠모노다이라산장 전경.

일본 특유의 시민의식이 이를 가능하게 만든 것인가?

기부나 자원봉사 활동에 직접 참여하지 않더라도 일본 등산객들에게는 산지와 등산로를 아끼고 관리하는 주인 의식이 일반적으로 퍼져 있다. 그런데 일본 국민이 자연을 특별히 아끼는 시민의식이 원래부터 탁월했던 것은 아니다. 일본 역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20세기 초, 자연보호에 대한 구체적인 철학 없이 자연공원 개념을 도입했다.

다만 우리나라와 달랐던 것은 행정부처의 지배적인 관여가 없는 상태에서 산장과 산악단체가 자연 관리의 역할을 맡았다는 것이다. 산장은 산악문화의 중심적 역할을 도맡았다. ‘타인에게 폐가 되는 일은 삼가고, 자연을 더럽히지 않는다’는 교육도 기저에 깔렸다. 일본의 사례는 이용자에게 보존의 책임의식을 불어 넣어준 성공적인 사례다.

등산로 정비 전문가를 초빙해 자원봉사자들을 대상으로 교육하며 현장에서 작업을 인도하고 있다. 사진 쿠모노다이라산장.
등산로 정비 전문가를 초빙해 자원봉사자들을 대상으로 교육하며 현장에서 작업을 인도하고 있다. 사진 쿠모노다이라산장.

산에 등산객보다 자원봉사자가 더 많아

국립공원 개념을 처음 만든 미국은 어떠한가? 우리나라만큼 규제하나?

 사유지 또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미국에서 등산로 접근 자체를 막는 정책은 없다. 미국 국립공원은 연간 방문자가 1960년 7,900만 명, 1980년 1억9,800만 명, 2014년에는 2억 9,200만 명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환경압박 역시 큰 폭으로 증가했다. 공원 측은 이에 대한 대처로서 환경 피해가 뚜렷하거나 우려되는 지역을 입산 허가제로 전환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1일 300명에게만 추첨제로 허가를 내주는 요세미티 하프돔 트레일이 대표적이다. 허가를 받으려면 매년 3~4월 정해진 기간에 신청해 당첨을 기다려야 한다. 즉 여름휴가 때 하프돔을 가려면 몇 개월 전부터 준비해야 하고, 운이 따라야 한다.

인원 상한제를 둔 입산 허가제는 미국의 자연보전지구인 국유림, 국립공원 내 트레일의 일반적인 규제 정책이다. 다니면 안 되는 길을 지정한 우리나라 비법정탐방로와 같은 개념은 없다. 허가제는 대개 등산로를 기준으로 두지 않고, 등산이 시작되는 입구 또는 계곡별로 인원 상한제를 둔다. 입산한 뒤 어느 길을 따라가느냐는 개인의 자율에 맡긴다.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등산로 보전 사업에 관한 토론회가 산장에서 열렸다. 사진 쿠모노다이라산장.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등산로 보전 사업에 관한 토론회가 산장에서 열렸다. 사진 쿠모노다이라산장.

미국의 방대한 트레일은 이용자의 높은 보전 의식이 없다면 지금처럼 관리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국립공원에는 매년 20만 명 이상의 자원봉사자가 등산로 정비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내셔널트러스트>에 등록된 자원봉사자도 한 해 5만 명에 달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자원봉사 사업’이라고도 불리는 애팔래치아 트레일 정비 사업을 살펴보자. 이는 ‘애팔래치아 트레일 컨서번시’에서 관장한다. 3,500km에 이르는 자연 보도를 관리한다. 표식 정비나 무인대피소 설치, 방문자 센터 운영도 자원봉사자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은 한 해 평균 3,000명이 주파한다. 그런데 트레일 유지에 참여하는 자원봉사자는 그 두 배인 6,000명이다. 합계 24만 시간, 1인당 40시간을 자원봉사로 노동에 참여한다. 자원봉사자들은 31개 지역 산악회가 관리하고 있다. 현재 애팔래치아 트레일 컨서번시는 국립공원들과 협조 체제도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즉 민관이 협력하되, 민간이 주체가 된 등산 환경 조성 사업인 셈이다.

미국의 국립공원은 관리인(레인저)이 사법경찰권을 행사한다. 그 이유는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1872년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옐로스톤 지역은 여러 종족의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벌목업자들은 무분별하게 자연자원을 훼손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야외 생활을 즐길 수 있는 권리를 위해 공원을 지키는 업무를 처음에는 미 육군이 담당했다. 국립공원 제도가 생겨난 1916년 이후에도 군대의 유산은 남아 있다. 현재도 국립공원 관리인은 경비대원이란 뜻의 ‘레인저’로 불린다. 오늘날도 입사하면 총기사용 교육을 받는다.

공원설립으로 인한 현지 주민의 폭력적 퇴거의 역사는 전 세계로 퍼져나가 반복됐다. 우리나라에도 정착했다. 다만 미국의 국립공원은 이용자의 자율성을 존중한다. 규제는 일본보다 심한 편이지만 홈페이지에는 왜 그런 규제가 적용되어야 하는지 이유를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새로운 규제가 도입될 때면 항상 이용자를 대상으로 청취 기간을 넉넉히 두고 공청회도 여러 차례 개최한다. 이용자의 자발적인 준수와 협조가 없다면 공원 관리는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다.

헬기에서 촬영한 네팔 쿰부 지방 밍보아이거(6,017m) 하단 지점. 빨간 동그라미로
표시된 곳에서 나이 어린 프랑스 3인조 원정대가
등반 중 눈사태로 실종됐다. 이들은 프랑스산악연맹이 훈련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파견한 원정대였는데 사고 이후 네팔 당국으로부터 등반허가를 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 카일라시헬리콥터서비스.
헬기에서 촬영한 네팔 쿰부 지방 밍보아이거(6,017m) 하단 지점. 빨간 동그라미로 표시된 곳에서 나이 어린 프랑스 3인조 원정대가 등반 중 눈사태로 실종됐다. 이들은 프랑스산악연맹이 훈련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파견한 원정대였는데 사고 이후 네팔 당국으로부터 등반허가를 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 카일라시헬리콥터서비스.

오만한 히말라야 등반가들

입산한 뒤 어느 길을 따라가느냐를 자율에 맡긴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전문적인 등반이 산행 문화의 중심인 국가 사례도 궁금하다. 히말라야가 있는 네팔이 대표적이다. 

네팔은 의외로 등산 관련 규정이 강한 편이다. 비법정탐방로와 유사한 개념은 없지만, 외국인 1인 단독 트레킹은 원천적으로 금지다. 짐꾼 또는 가이드 고용은 권장 사항이 아니라 의무다.

이런 정책이 국내나 세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다양한 이유가 있다. 네팔 당국의 현장 상황을 외면한 탁상 정책, 외국인 등산가들의 고압적이며 현지 문화를 무시하는 태도 등이 있다. 이 외국인 등산가에는 한국인도 포함이다. 네팔의 관광 실정, 지켜야 할 법규, 현지 윤리 등에 관해 한국인이 가진 이해도는 무척 낮은 수준이다. 서점가나 인터넷 상 정보를 보면 어떻게 하면 값싸게 좋은 구경을 할까에 관한 묘수 따위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물론 선진국 등반가들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특히 허가 없이 고산을 오르는 도둑등반이 빈번하다. 에베레스트를 오르려면 1인당 1만 달러에 달하는 허가 비용을 네팔 관광성에 납부해야 한다. 이를 내지 않고 무허가로 올랐다가 적발되는 사례가 거의 매년 있었다. 

2021년 10월 프랑스산악연맹이 자체 조직한 훈련등반 원정대가 6,000m급 봉우리를 무허가로 올랐다가 실종되는 바람에 사고로 인한 비극은 물론 국제적 망신을 샀다. 몇 해 전 스페인산악연맹도 유사한 훈련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네팔 원정을 나갔다가 ‘소규모 알파인스타일 등반’이라는 명목 아래 버젓이 무허가로 산을 오르기도 했다. 

이는 현지 규정을 무시하는 서구 산악계의 일반적인 태도 때문이다. 최고의 등반을 선정한다는 황금피켈상조차 현지 법규를 무시하며 허가를 받지 않고 오른 등반에 상을 주는 추태가 오늘날도 계속된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등반사 기록 기관인 <미국산악연감>에서는 1996년에 네팔과 중국 국경을 무허가로 넘나들며 단독등반을 펼친 어느 프랑스 등반가를 최근(2021년 6월) 칭송하기도 했다. 이 점에 관해 당시 연감 측에 문의했으나 답변은 없었다. 현지 정부의 규정은 등반 윤리에서 중요한 부분이 아니라는 오만함이다. 등산의 미래에 해로울 뿐인 처사다.

네팔 셰르파. 네팔에선 ‘나홀로 트레킹’이 금지다. 짐꾼이나 가이드 고용이 필수. 사진 게티이미지.
네팔 셰르파. 네팔에선 ‘나홀로 트레킹’이 금지다. 짐꾼이나 가이드 고용이 필수. 사진 게티이미지.

네팔 법규의 비합리성도 문제

네팔 당국을 무시하는 외국 등산객의 관행은 네팔 법규의 비합리적인 면모가 자처한 부분도 있다. 1인당 1,000만 원에 달하는 입산료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액수다. 입산료가 환경 보전이나 주민 생계에 보탬이 되는 발전적인 과제에 쓰인다는 당국의 설명은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입산료를 받으면서도 수백 명이 정상부에 몰려 정체 현상으로 사망사고가 발생할 때 당국은 어떤 관여도 없이 자체적으로 해결되기만 바라고 있었다. 비판이 제기되면 현장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는 엉뚱한 법규를 제안하기 일쑤다.

네팔에서 등산이 허용되는 산의 목록 제정도 마찬가지로 합리적이지 못한 면이 많다. 현재 네팔 히말라야에 독립 봉우리는 3,310개라고 한다. 이 중 1,913개가 등반 허가 대상이다. 당국은 10여 년 사이에 100여 개씩 등반 허가 목록에 새로 추가한다. 지난 2014년 104개 봉우리 개방이 가장 최근이다. 산 개방은 현지 대행사로서는 상품이 하나 늘어나고, 관광성은 세수 자원이 생기며, 외국 등반가로서는 자신의 명예를 높일 기회가 된다. 명예와 상술, 세수 사이에서 결정되는 등반 허가제는 전혀 지속 가능하지 않다.

네팔의 사례는 시장성과 탁상공론에서 비롯된 잘못된 규제가 등반가의 명예욕·등반욕과 만나 곪은 문제를 보여 준다. 우리나라의 현실과 닮았다.

추첨제로 1일 300명만 허가를 내주는 요세미티 하프돔 트레일. 사진 게티이미지
추첨제로 1일 300명만 허가를 내주는 요세미티 하프돔 트레일. 사진 게티이미지

미국, 일본, 네팔의 사례를 보면 등산문화와 등산규제의 상호조화가 중요한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등산규제가 제재일변도로 흐르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등산 사고와 자연환경에 대한 책임의식 부재가 만연하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오늘날 한국의 등산인들은 미국, 일본, 유럽의 등산인들에 비해 책임의식이 부족하다. 등산으로 자신과 타인, 자연환경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의식이 결코 성숙돼 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일탈하는 개인을 단속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규제만 내놓는다면 결코 책임의식은 자라나지 못한다. 책임의식이 없게 된 원인을 봐야 한다.

책임의식은 곧 자율성에서 피어난다. 이용자의 자율성은 곧 자신의 등반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알고 수행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이는 산악사고에서 좀더 뚜렷하다. 산악사고와 관련된 법적 논쟁에서 가장 주요한 기준이 되는 두 가지 법리는 ‘자발적 위험 부담의 법리’와 ‘주의할 의무’다.

미국 국립공원 내에서 발생하는 사고는 대부분 사고자 개인에게 책임이 있는 것으로 본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례는 1987년 그랜드티톤국립공원에서 있었던 사고다. 어떤 사람이 하산 중 추락해 부상을 입었고, 그로 인해 하산하지 못해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 유족은 미국 내무부를 ‘휴양을 목적으로 한 등반 활동을 적절히 통제’하지 못했다며 고소했다. 

법원은 공원 측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등반계에서는 등반에 위험이 내재해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으며, 자연 속에서 개인이 추구하는 자유의 중요성은 인정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판시했다. 이를 ‘자발적 위험 부담의 법리’라고 한다. 이 법리로 인해 미국에서 공원 등지에서의 등산 중 사고는 대개 공원을 대상으로 한 소송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우리나라 상황은 정반대다. 국립공원 안에서 사고가 발생해 공원 측에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국립공원이 패소한 사례가 무더기다. 2000년 사패산에선 갓바위 밧줄이 끊어져 골절상을 입은 사례, 2003년 지리산 돌발폭우 때 적극적 퇴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사례 등에서 모두 국립공원이 패소하고 배상한 판례가 남아 있다. 국립공원에서 위험에 처하게 되면 공단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연공원법 28조 3항은 ‘자연공원에 들어가는 자의 안전을 위한 경우’ 출입을 금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산에 올라 만나는 세상은 사회와 완전히 단절된 곳도 아니지만 조절하거나 통제하거나 지배하기도 어려운 곳이다. 그런 다루기 어려운 자연이야말로 바로 산에 가서 만나고 뛰어들려고 했던 것 아니었던가? 등산은 탐험의 한 종류로 출발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전시된 자연물을 구경만 하는 ‘탐방’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립공원은 자연을 탐방의 대상으로 보는 기구다.

자연을 탐방의 대상으로 보니 등산객은 탐방가치가 높은, 즉 이른바 ‘명산’에 편중됐다.  설악산, 지리산을 찾아가려면 얼마나 많은 산을 뚫은 터널을 지나고, 얼마나 많은 매연을 내뿜는가? 그렇게 해서 찾아간 산에서는 모래, 나무, 풀, 개울이 흐트러질까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등산문화의 성숙과 규제일변도의 정책기조를 수정하도록 유도할 수 있는 해결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구체적으로 3가지 정도 꼽을 수 있다. 첫째, 자연공원법 28조를 수정해야 한다. 이용자의 안전은 공원이 아닌 이용자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다. 자연공원은 놀이공원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자연에는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위력이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등산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배움이자 가치다.

둘째, 미국식 인원 상한 허가제(쿼터제)를 우리 실정에 맞추어 변형 도입해야 할 것이다. 이용자의 참여 없는 단편적인 출입금지 조치는 민주국가에서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행정 관행이다.

셋째, 산악단체, 산악관광, 산악스포츠 관련 단체나 전문가들은 등산에 내재한 위험한 면모를 있는 그대로 교육하고 홍보해야 한다. ‘장비와 기술을 갖추고 등반하면 안전하다’는 말은 거짓이다. 초보자를 속여 참여하게 만들려는 상술이다. 등산은 수준과 강도를 떠나 절대 안전한 활동이 될 수 없다. 위험은 아무리 초보자라 하더라도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 강사나 선배, ‘등반대장’들은 이 점을 강조해야 한다.

이러한 방법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용자가 보전 주체가 되게끔 유도하는 것이다. 등산인이 보전 주체가 되면 지속 가능한 이용을 스스로 찾는다. 우리나라에서 산의 보전과 이용 사이의 균형을 이야기하려면 행정부와 지역주민뿐만 아니라 환경보전 단체, 등산 인구 등 이용 주체도 중요한 협력자로 참여해야 한다.

우리나라 산지 관리 체계의 근본적인 문제는 이용자가 자신의 등산에 책임의식과 등산 관련 행정에 참여의식을 느낄 만한 부분이 너무 적다는 점이다. 자신의 무책임한 등산으로 인해 끼칠 부담, 인력 소모, 자연 파괴에 책임질 일이 없다. 

본 기사는 월간산 2022년 1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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