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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환경-자연 영화] 70톤짜리 열차를 날려버린 토네이도

글 신용관 조선뉴스프레스 기획취재위원
  • 입력 2022.02.16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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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자연 영화 <19> 인투 더 스톰

지난해 12월 미국 중부지역은 토네이도tornado로 초토화됐다. 지난 12월 10일(현지 시각) 켄터키주와 아칸소·일리노이·미주리·테네시·미시시피 6개 주에 40여 개의 토네이도가 한꺼번에 발생, 9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켄터키주 하루 만에 100여 명 사망

가장 피해가 컸던 곳은 켄터키주였다. 앤디 배시어 켄터키 주지사는 “약 320km 구간을 휩쓸고 지나간 토네이도로 켄터키에서 70명 이상이 숨졌다. 100명이 넘을 수도 있다. 켄터키주 역사에서 가장 파괴적이고 치명적인 토네이도였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영토의 동서 폭이 300km가량이니 이번 토네이도가 얼마나 치명적이었는지 잘 알 수 있다.

켄터키주에서만 2만8,500가구가 단전됐고, 주민 수십만 명이 전기와 수도가 끊긴 상태에서 몇 주를 보내야 했다. 어느 시장은 NBC 뉴스에 출연해 “사회 기반 시설이 심각한 피해를 봤다. 물 저장고가 사라졌고, 천연가스도 없다. 기댈 것이 전혀 없는 상황이며 이 시점에서는 정말 생존이 문제”라고 도움을 청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켄터키주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연방정부 차원의 지원을 지시했다.

토네이도는 좁고 강력한 저기압 주위에 부는 깔때기 모양의 강력한 회오리바람으로 “자연이 만들어내는 가장 강력한 바람”으로 일컬어진다. ‘트위스터twister’라고도 부르는 토네이도의 회전은 깔때기 모양의 구름이나 소용돌이치는 먼지 및 파편 구름의 형태로 지상에 나타난다. 세계 여러 지역에서 일어나지만 주로 미국 중부 대평원에서 많이 생긴다. 수평 방향의 규모보다 수직 방향의 규모가 크고, 중심에서는 초속 100~200m의 바람이 지상의 물체를 맹렬하게 감아올린다.

미국에선 연평균 1,000여 회의 토네이도가 나타나 100여 명의 사망자를 기록해 왔는데, 단 하루에 100명 가까운 사망자가 나온 것은 이례적이었다.

토네이도는 주로 날씨가 급속히 따뜻해지는 봄에 대기가 불안정해질 때 일어나는데, 이번처럼 추운 겨울에 초대형 토네이도가 발생한 건 드문 일이다. 기상관측 업체인 ‘웨더 채널’ 집계에 따르면 1999~2018년 미국에서 토네이도는 봄(541회)과 여름(381회)에 잦고, 가을(186회)과 겨울(117회)은 상대적으로 드물다.

이런 까닭에 이번 토네이도가 기후변화와 관련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과학자들을 인용해 기후변화와 토네이도 사이의 정확한 인과관계는 불확실하지만, 높은 기온이 이런 재난을 더 가속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겨울철 토네이도는 온난화 때문

한 기상학 교수는 “12월 이상 고온과 라니냐(저수온 현상)가 토네이도가 생성되는 데 이상적인 조건을 제공했다. 지표면 가까운 곳의 고온 다습한 공기와 상공의 저온 건조한 공기가 만나면 습기가 상승하면서 뇌우가 발생하는데 이게 토네이도의 원재료가 된다”고 말했다. 이번에 토네이도가 휩쓴 지역은 12월 10일 오후 기온이 겨울인데도 21~26℃까지 올랐었다.

이런 토네이도를 할리우드가 그냥 내버려 둘 리 없다. 토네이도를 소재로 한 대표적인 영화는 헬렌 헌트와 빌 팩스턴이 주연한 <트위스터>(감독 장 드봉, 1996)였다. 토네이도에 아버지가 날아가는 것을 목격한 주인공 ‘조’는 토네이도 내부의 풍속과 기온, 압력 등을 알아내는 연구를 시작한다. 토네이도의 형성과 실체를 밝혀 더 정확한 예보로 인명을 구하기 위해서다.

주인공은 토네이도 계측기 ‘도로시’를 토네이도 중심부에 밀어 넣고, 쇠파이프에 자신의 몸을 묶은 채 온몸으로 강풍을 견뎌 강도 5급 토네이도의 한가운데에서 목숨을 건진다. <트위스터>는 탄탄한 시나리오와 실감 나는 영상으로 제69회 미국 아카데미에서 시각효과상 후보에 오르고 제50회 영국 아카데미에서 특수시각효과상을 받으면서 재난영화의 한 획을 그었다.

특수효과로 토네이도 실감나게 연출

할리우드 컴퓨터 그래픽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에 힘입어 토네이도를 좀 더 박진감 넘치는 화면에 담은 작품이 <인투 더 스톰>(Into the Storm, 감독 스티븐 쿼일, 2014)이다.

미국 중남부 오클라호마주의 소도시 실버턴의 고등학교 교감인 ‘게리 풀러’(리처드 아미티지)는 졸업식을 앞두고 두 아들에게 타임캡슐 관련 영상물을 제작할 것을 제안한다. 고교 2학년인 큰아들 ‘도니’(맥스 디콘)는 학교 비디오클럽 회장으로 캠코더를 손에 달고 살고 있고, 작은아들 ‘트레이’(네이단 크레스)는 활달한 개구쟁이다. 엄마를 자동차 사고로 잃은 큰아들은 “아빠는 나를 무시하고 잔소리만 한다. 아들에 늘 불만이다”라고 대들 정도로 부자간이 서먹하다.

한편, 토네이도를 좇아다니는 스톰 체이서storm chaser인 피트 무어(맷 월시)는 1년 가까이 토네이도 영상을 찍지 못해 스폰서까지 끊기며 걱정이 태산이다. 그는 폭풍을 추적, 촬영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타이터스 팀’을 이끌고 있다.

얼핏 군사용 장갑차처럼 생긴 타이터스는 4mm 두께의 강철 차체에 방탄유리를 장착한 채 24개의 감시카메라로 사방을 관찰할 수 있는 첨단 차량이다. 밧줄이나 쇠사슬로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거나 끌어당기는 기계 장치인 윈치(영화 후반에서 큰 역할을 한다)를 차 앞 범퍼에 설치해 5톤 중량까지 견디게 했고, 땅에 박히는 지지대 말뚝을 갖춰 시속 270km 강풍에도 날아가지 않게 만들었다.

차량 지붕 선루프 자리에 방탄유리로 두른 회전 탑을 설치해 360도로 회전하며 디지털 시네마 카메라로 바깥을 촬영할 수 있게 했다.

“토네이도를 찾으면 역사에 길이 남을 영상을 찍는 거죠. 신만이 볼 수 있는 광경. 바로 토네이도의 눈the eye of tornado이오.”

타이터스와 동행하는 봉고 차량엔 토네이도의 위치를 추적하는 기상학자 앨리슨 스톤 박사(사라 웨인 캘리스) 팀이 타고 있다. 이들은 앨리슨의 주장에 따라 다음 토네이도가 출현할 것으로 추정되는 실버턴으로 향하고, 갑자기 나빠지는 날씨에 운동장 졸업식 도중 토네이도 경보 사이렌이 울리고 학생들은 학교 건물로 대피한다. 이 와중에 도니는 좋아하는 동급생 케이틀린(알리시아 데브넘 캐리)의 진학 보고서를 도와주기 위해 폐지 공장으로 영상을 찍으러 간다.

<인투 더 스톰>의 재미는 당연히 토네이도의 위력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화면들에 있다. 학생들이 대피해 있는 건물에 토네이도가 덮쳐 아이들이 바닥에 쓸리고 지붕이 뜯겨 날아가 온갖 부유물들이 위태롭게 이리저리 날리는 장면, 강력한 폭풍에 석유 운반 유조차가 넘어지고 전신주가 쓰러지며 화재가 발생해 토네이도 불기둥이 치솟는 장면, 차량 문손잡이에 거꾸로 매달려 폭풍에 빨려들지 않으려 사투를 벌이는 앨리슨과 게리의 모습 등이 아주 인상적이다.

특히 시골 도시 삼거리에서 오른쪽 도로를 따라 등장인물들 쪽으로 다가오던 토네이도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홀연 왼쪽 도로에서 갑자기 형성돼 무서운 속도로 이들에게 접근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하지만 타이터스 다큐멘터리 팀의 촬영, 아이들의 캠코더 촬영 등을 영화 화면과 섞은 구성이 오히려 극의 몰입감을 떨어뜨리고 있고, 고난 극복을 통해 부자간의 애정을 회복한다는 진부한 스토리도 다소 아쉽다.

두 개의 토네이도가 합쳐져 풍속 450km의 거대 토네이도가 형성되는 설정에 대해 그 비현실성을 지적받기도 했는데, 영화가 과장이 아닌 것이 1931년 미네소타주에서 발생한 토네이도가 무게 70톤인 5량의 열차를 들어 올려 30m 밖으로 던져버린 일이 실제 있었다.

다른 무엇보다 <인투 더 스톰>은 자연의 이상 현상 촬영에 대한 집념 하나로 위험천만한 토네이도에 뛰어드는 인물들의 모습이 먹먹한 잔영을 남기는 영화다.

본 기사는 월간산 2022년 2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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