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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환경-자연 영화] 레이건이 고르비에게 전화했다 "고래를 구합시다"

글 신용관 조선뉴스프레스 기획취재위원
  • 입력 2022.03.1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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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자연 영화 <20> 빅 미라클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거래 톱10을 뽑는다면 아마도 1, 2위를 다툴 사안은 1867년 알래스카 매도일 것이다. 미국의 국무장관이었던 윌리엄 수어드William Henry Seward(1801~1872)가 제정 러시아 정부로부터 단돈 720만 달러(86억여 원)에 이 빙토를 사들인 것이다.

이 지역을 1ha, 즉 1만m²(3,000평)당 5센트(600원)로 환산해서 계산한 것이었는데, 아이러니한 것은 이 거래를 두고 당시 미국인들은 ‘수어드의 어리석은 행위Seward Folly’라 불렀을 만큼 바보 같은 짓으로 여겼다는 사실이다.

북위 60°~70°에 있는, 원주민 에스키모의 알류트Aleut어로 ‘거대한 땅’을 의미하는 알래스카는 이름에 걸맞게 미국 면적의 5분의 1이나 된다. 1959년에 미합중국의 49번째 주로 편입되면서 정식 미국 영토가 됐다.

한쪽의 아주 멍청한 거래는 다른 쪽의 아주 현명한 거래가 된다. 국토의 20%에 이르는 땅을 거저 얻다시피 한 미국은 자국 내 원유 전체 생산량의 4분의 1을 알래스카에서 뽑고 있다. 삼림 자원(목재)과 수산 자원은 물론이고, 백금과 천연가스도 풍부하다.

얼음벽에 갇힌 회색고래 가족 

알래스카는 늑대를 비롯해 갈색 곰, 바다수달, 물개, 바닷새 등 야생 동물들의 천국이다. 알래스카 연안의 바위섬들은 세계 최대의 바닷새 및 물개 서식지다. 생태학자들과 환경운동가들의 주된 활동지이기도 하다.

영화사에 남을 스티븐 스필버그의 수작 <E.T.>(The Extra-Terrestrial, 1982)에서 인상적인 아역을 맡았던 드류 베리모어가 환경운동가로 나오는 ‘빅 미라클Big Miracle’(2012)은 이 알래스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막힌 속을 뻥 뚫어주는 알래스카의 풍광이 화면 가득한 이 영화는 냉전 막바지인 1988년 실제 일어났던 일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당시 소련은 미하일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1931~) 공산당 서기장이 ‘페레스트로이카’(개혁)를 기치로 소련 국내의 개혁·개방과 동유럽의 민주화를 추진하던 시기였다. 

소련 붕괴 후 러시아 첫 대통령(1990~ 1991)을 지낸 고르바초프는 세계질서에 커다란 변혁을 가져온 공로로 1990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 이듬해 공산당을 해체하며 소련 공산당 통치사에 마침표를 찍었다.

줄거리는 심플한 편이다. 평온한 일상을 이어가던 알래스카의 작은 마을에 뉴스거리가 생겼다. 먹이를 찾아 북극까지 찾아온 회색고래 가족이 거대한 얼음벽에 갇힌 것. 남쪽으로 떠났어야 할 엄마·아빠·새끼 고래 가족이 일찍 시작된 강추위로 얼음에 갇혀 옴짝달싹 못 하게 된 상황이다. 회색고래는 다른 고래들과 달리 머리 부분이 약해 얼음을 깰 수 없다고 한다.

우연히 이를 발견한 뉴스 리포터 ‘아담(존 크라신스키)’은 두꺼운 얼음 표면에 뚫린 작은 구멍으로 간신히 숨을 쉬고 있는 고래 3마리의 위태로운 모습을 촬영, 지역 방송에 소개한다. 

방송을 본 그린피스 대원 ‘레이첼(드류 베리모어)’이 고래 가족의 구출 작전에 합류해 알래스카 주지사에게 주 방위군의 동원을 요청하지만 “고래는 굶어 죽으면 그만이지만 생명을 무릅쓰는 주 방위군에게는 먹여 살려야 할 가족이 있다”며 단칼에 거절당한다. 그런 상황에서 에스키모인들은 고래를 포획하겠다고 한다.

바다에 살지만 아가미로 호흡하는 어류가 아닌 포유동물 고래는 숨을 쉬기 위해선 바다 위로 떠올라야 하는데 강추위로 얼음 구멍이 점점 작아지고, 표면의 얼음 탓에 고개를 수면 밖으로 내밀 때마다 주둥이와 머리에 상처가 나는 애처로운 모습을 전국 네트워크를 가진 NBC가 다룬다. “며칠째 알래스카 해변의 두꺼운 얼음에 갇혀 있는 캘리포니아 회색고래 세 마리에게 시간과 희망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전한 것이다.

이에 CBS, ABC 등 거대 방송들이 보도하고, 알래스카 마을엔 미국 전역에서 날아온 취재진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고래 가족 스토리가 전국적인 화두로 떠오르자 그린피스와 사사건건 충돌을 일으켜온 석유회사 대표 ‘맥그로(테드 댄슨)’는 홍보 효과를 위해 주지사에 압력을 넣어 주 방위군을 투입하게 만든다. 운동장만 한 바지선을 헬기 2대로 견인해 얼음을 깨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영하 50℃까지 떨어지는 혹한 탓에 바지선도 얼음에 갇힌다.

이 과정을 방송으로 지켜보던 백악관 참모 ‘켈리(비네사 쇼)’는 여러 관계자와 토론을 거친 뒤 알래스카 인근에 체류하고 있던 소련 쇄빙선을 이용하자는 아이디어를 낸다. 

미·러 양국 정상의 전화통화

대선을 코앞에 둔 도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은 소련 고르바초프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협조를 요청한다.

영화의 재미는 등장인물들이 각자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며 여러 갈등을 유발하면서도 결국 모두 ‘윈윈’으로 귀결되는 설득력 있는 과정을 지켜보는 데 있다. 소련 쇄빙선의 도움 요청을 놓고 격론을 벌이는 다음 장면이 그렇다.

켈리(백악관 보좌관): 미 정부는 소련 쇄빙선의 도움 받기를 원치 않아요. 

맥그로(석유회사 대표): 나도 그래.

보이어 대령(주 방위대장): 온다는 보장도 없소.

레이첼: 올 거예요. 여러분과 같은 목적으로! 홍보를 위해!

맥그로: 아가씨, 이건 홍보용 쇼가 아니오. 나는 연료와 장비에 200만 달러를 썼소. 나도 당신처럼 고래를 걱정해요. 

켈리: 그 이상일 수도 있죠. 

레이첼: 그게 무슨 뜻이죠?

켈리: 맥그로씨는 돈을 쓰지만 당신은 벌어들이잖아요. 성금이 엄청 들어오잖아요.

레이첼: 그 돈은 당신네 정부가 지난 8년간 훼손시킨 환경 복구에 다 쓰일 거예요.

켈리: 그 8년 동안 경제가 부흥하고 일자리가 창출됐어요. 

레이첼: 다른 모든 건 희생됐죠. 그 과오를 지우려고 여기 온 거 아닌가요? 실패한 정책을 커버해서 표를 더 얻으려고. 

보이어 대령: 켈리는 미국 대통령을 대신해서 여기 온 거요. 나 역시!

레이첼: 이 일이 잘되면 당신도 떡고물 좀 받겠죠. 

보이어 대령: 말조심해요. 

아담: 본론은 고래예요. 고래 얘기를 합시다. 그래서 모였잖아요. 이젠 소련의 도움을 청하는 게 옳아요.

화면 전체가 푸른 알래스카의 전경으로 눈을 호강하게 하는 이 영화는 고래 구조 작전의 실감나는 연출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실화 바탕의 영화들이 상당한 픽션을 가미해 극적 긴장감을 높이는 데 반해 이 영화는 98%가 실제로 있었던 일이고, 허구의 인물은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미디어의 엄청난 ‘선한’ 영향력이 새삼스럽고, 고래 세 마리 때문에 세계가 들썩거렸다는 사실 자체가 ‘미러클’임을 절감하게 만드는 영화다. 가족들과 함께 보기를 적극 권한다. 

본 기사는 월간산 2022년 3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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