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의 걷기길] 자연에서 얻은 부상, 자연 거닐며 고치다

  • 글·사진 김병용 북텐츠 대표
    입력 2022.03.25 09:35

    양산 법기 치유 둘레길 A코스, B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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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법기 수원지.
    1월이 주는 햇살이 숨죽여 오던 의식에 활기를 불어 넣어 주었다. 그리고 그 의식의 흐름에 따라 산행을 했다. 의식은 내 육체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육체는 내 발목 인대에 일격을 가함으로써, 의식에게 다시 한 번 속삭였다. 처음에는 주기적으로 다리 쪽에 통증을 달고 살았기에 산행과 관계없이 통증이 재발한 것으로 알았다. 의사는 나에게 “이렇게 무감각할 수 있냐?”는 핀잔과 함께 처방전을 지어주었다. 
    당분간 산을 타지 못한다는 사실은 나에게 우울함을 안겨 주었다. 그런 나의 소식을 듣고 추천 받은 산행지가 바로 무장애 탐방로다. 무장애 탐방로란 오르막, 내리막길이 없는 평평한 산책로를 뜻한다. 그 말을 듣고 희망을 얻어 독서모임 지인들에게 여러 산책로를 추천받아 양산 법기 치유 둘레길을 가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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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버스에서 내리면, 법기천이 우리를 맞이해 준다.
    자연의 위대함, 높이에도 있어
    부산 1호선 지하철역 종점인 노포동역에서 마을버스로 환승했다. 우리는 법기수원지로 가기 위해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승객 중 한 아주머니께서 누군가와 통화하시고는 기사님에게 “친구가 아직 지하철이라 출발해도 좋다”고 말씀하셨다. 순간 묘한 감정이 들다가 이것이 ‘마을버스’라는 느낌이 들었다. 정해진 시간에 출발하는 도시의 버스와는 달리 약간 늦더라도 사람의 정을 싣고 운행하는 버스였다. 어쨌든 아주머니의 말 한마디에 버스는 신나게 출발했다. 그리고 종점에 다다랐을 때, 버스 기사분이 한가로이 앉아 노닐고 계시는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손을 흔드는 장면을 보았다. 그렇게 우리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고 하차했다. 
    인터넷 검색으로 법기수원지 내에서는 취식을 못 한다는 정보를 얻었다. 그래서 아침에 준비한 도시락을 수원지 입구에 비치된 사물함에 맡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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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단을 올라오면 갈증을 해소할 저수지가 눈에 들어온다.
    드디어 수원지 입구에 들어섰다. 잘 정돈된 길들이 눈에 들어오다가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나무들이 즐비했다. TV에서나 볼 법한 압도적인 높이의 나무들이었다. 마치 북유럽의 어딘가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벼락 맞은 나무’를 지나 계단을 오르니 탁 트인 저수지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 아주 근사한 반송나무가 흐드러지게 가지를 내뻗으며 우리를 맞이했다. 탁 트인 저수지와 흐드러진 반송나무의 가지가 어우러지는 풍경이 내 눈을 희롱하는 듯했다. 잠시 반송나무 아래에 몸을 눕혀 보았다. 딱딱함과 차가운 냉기를 여전히 품고 있는 바닥은 5초의 시간을 1시간인 듯한 기적을 연출했다. 저수지 길의 운치는 등바닥이 아닌 발바닥으로 느껴야 한다는 가르침을 얻었다.
    저수지 길을 지나 편백숲으로 향했다. 그곳으로 ‘향하는’ 것이 맞는 표현이겠지만, 실상은 침염수림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듯했다. 시원하게 뻗은 나무들로 인해 절로 고개를 들게 되었다. 숲의 묘미는 하늘에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상상하는 일반적인 하늘은 시원하고 평평한 매끄러움이다. 하지만 숲의 하늘은 누군가가 촘촘히 점을 찍어 완성한 입체적인 하늘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보는 땅에 매료되듯 나는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으로 숲을 비행했다. 5분 정도의 숲 비행을 마치고 수원지 입구에 착륙했다. 우리는 수원지를 걸었다는 생각보다는 풍경이 시야를 지나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생각보다 수원지 내부는 규모가 작았다. 아쉬운 마음에 인터넷을 검색하니 법기수원지 산책 말고 또 다른 산책로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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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이를 가늠해서 무엇하랴, 아름다우면 그만 인 것을 알려주는 듯한 나무.
    걸음이 곧 치유가 되는 법기 치유의 길 
    법기 치유 둘레길은 총 3가지 코스가 있다. 방금 걸었던 수원지 코스가 A코스 ‘법기 조망길(0.5km)’이었다. 약 6.5km에 이르는 C코스 법기 둘레길은 모든 코스에 등반하는 부분이 있어, 아직 육체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처지이기에 B코스를 선택했다. B코스 ‘법기 편백숲길(1.3km)은 아주 짧은 등산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듯하다. 치유의 길 초입 은 지금 데크 설치 공사 중이라 표지판을 잘 보면서 가야 했다. 수원지 입구에서 10분 정도 걷다 보면 들머리에 들어설 수 있었다. 딱히 들머리라 표현할 만한 표지판은 없었지만,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부드러운 카스텔라를 한입 물었을 때의 어금니 감촉을 발바닥에서 느꼈다. 치유의 길이라는 말이 과연 허언이 아니었다. 걷는 것의 즐거움은 여러 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법기 치유의 길은 부드러운 즐거움이다. 발을 내딛는 순간 그 부드러움에 엷은 미소와 함께 눈을 감을 것이다. 짧은 코스라도 산행에 대한 부담감을 한방에 떨쳐 버릴 수 있었다.
    정자에 다다랐다. 인터넷 정보만으로 B코스를 완주하는 건 조금은 무리가 있었다. 동물적인 감각에 이끌려 미로를 찾듯이 원두막에서 전망대로 향하는 입구를 찾아냈다. 원두막에서 왔던 길을 바라보면 왼쪽에 무심히 이어진 오르막길이 보였다. 그곳이 전망대로 향하는 길이었다.
    어릴 때 만화 <드래곤볼>을 즐겨 보았다. 주인공인 손오공이 죽어 저승세계에 가게 되었는데, 계왕이라는 존재를 알게 되었다. 손오공은 계왕에게 수련을 받기 위해 구불구불한 뱀의 길을 걷게 된다. 갑자기 만화책 줄거리의 일부를 소개한 이유는 정자에서 전망대로 향하는 길이 ‘뱀의 길’과 꼭 닮았기 때문이다. 아주 구불구불하고 완만한 길이었다. 그리고 등린이(등산초보)들이 환호할 만한 길이었다. 오르막길이라 구불구불한 길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아, 길이 끊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염려가 있었다. 하지만 계속 이어져 있다. 어쨌든 계왕에게 수련을 받아 더 강해지고 싶은 마음과 서경으로 떠나 불경을 통해 더욱 확장된 사유를 얻고 싶은 손오공의 마음으로 전망대로 향했다. 경쾌한 마음에 이끌려 나름 빠른 걸음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30여 분을 가쁜 호흡을 내뱉으며 전망대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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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드러진 나뭇가지와 굳건하게 서있는 반송나무.
    아픔을 낙천으로 바꾼 ‘치유의 길 전망대’
    전망대에서는 법기수원지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었다. 마치 법기수원지가 부처님 손바닥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니체의 철학 중에 ‘니힐리즘’이라는 말이 있다. 니힐리즘이란 ‘허무주의’를 뜻한다. 난데없이 허무주의를 꺼낸 이유는 지금의 육체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니체는 자신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았을 때 살아 있음을 느꼈다고 했다. 앞서 이야기한 바 있지만 나는 주기적으로 다리에 통증이 오곤 한다. 병원에 가도 특별한 원인을 찾지 못했었다. 한의사인 친구는 이런 말을 해주었다. 
    ‘완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때마다 고쳐서 쓰는 게 최선일 뿐이다.’ 
    이렇게 이른 나이에 터득한 것이 하나 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고통과도 친구 관계를 맺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직은 아픔이라는 녀석과 친구 관계를 맺을 만큼 수양이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인대가 늘어나면서 한층 더 통증과 가까워졌음에는 확실하다. 고통은 나에게 불행만을 안기지 않는다. 이것을 통해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이 또한 삶이다. 이것이 ‘낙천적 니힐리즘’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전망대에서 심각한 내적 갈등을 일으켰다. 실은 거기에서 운봉산 정상까지 1.1km 남았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의식의 흐름을 따랐다면 아마 입원 신세를 면치 못 했을 것이다. 아쉽지만 육체의 경고를 따라 정상에 대한 욕망을 억누르며 원점회귀했다.
    산행길잡이
    법기마을~법기수원지 입구~저수지길~편백숲~법기수원지 입구~정자~갈림길~전망대 오름길~전망대~법기수원지 입구 원점회귀 (3시간 소요)
    교통 및 숙박
    부산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노포동 종점에서 하차, 2번 출구로 나와 마을버스 동면 1, 1-1 버스로 환승하면 된다. 숙박은 마을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돌아와 노포동 일대에서 하는 것을 추천한다.
    식당(지역번호 055)
    법기수원지 부근에 여러 식당이 있다. 리즈 푸드(010-9203-4405)에서는 각종 전과 도토리묵, 잔치국수 등을 맛 볼 수 있다. 두부, 도토리묵 등 대부분의 재료를 손수 담근다. 돌담(389-2275)에서는 정갈한 한식을 맛 볼 수 있다.
    본 기사는 월간산 2022년 3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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