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등반] 이탈리아의 ‘봄 가시나’ 맞으러 가요

  • 글·사진 임덕용 꿈속의 알프스등산학교
    입력 2022.04.25 10:05

    이탈리아 돌로미티 프레가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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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르코가 호수의 파노라마를 촬영하고 있다.
    “새들이 지저귀는 저 소리는 포름한 연두색이다 / 땅에선 물컹물컹 솟아나는 상큼한 흙 내음
    나뭇가지들마다 분홍 꿈을 키우고 / 살짝 고개를 들면 어디선가 다가오는 / 향기로운 꽃내음 봄이 오는 소리 // 바람이 속삭이는 저 소리는 무지개 일곱 색이다 / 숲 속에 휘파람이 번져나는 향긋한 봄내음 / 나뭇가지들마다 분홍 꿈을 키우고 / 살짝 고개를 들면 어디선가 다가오는 향기로운 꽃 내음 봄이 오는 소리” -류지연의 ‘아빠와 동요 파티’-
    봄이 오는 소리는 어떨까? 봄을 맞는 아리따운 아가씨는 어떤 마음일까? 온 천지가 얼고 하얀 눈으로 쌓인 알프스에도 봄이 오고 있다. ‘프레가시나Pregasina’를 한국식으로 직역하면 ‘먼저 가시나? 예비 가시나? 미리 가시나? 조금은 덜 성숙한 가시나’가 될까? 이탈리아에 36년을 살고 있지만 처음 듣는 지명은 금방 이름을 잊어버리는데 ‘프레가시나’는 한 번 들은 이후 절대 안 잊어버리고 있다. 
    해발 535m의 프레가시나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크고 넓은 호수인 ‘라고 디 가르다Lago di Garda’를 내려다보며 여러 봉우리의 능선을 오르는 트레킹 코스로 유명하다. 이 아름다운 길을 봄이 오기 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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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다란 돌 틈 옆으로 하드프리 등반 루트가 많이 있었다.
    성수기엔 주차난으로 곤혹
    프레가시나는 매우 작은 마을로 사계절 산행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만, 트레킹이 시작되는 봄이 되면 주차 문제로 시끄러운 동네가 된다. 산행 들머리의 주차장은 작은 성당 아래에 있다. 약 20대만 주차할 수 있어 나머지 수백 대의 차들은 길가에 눈치껏 대야 한다. 그러다 보니 좁고 경사가 급한 산길에 주차된 차들 때문에 차가 오가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북한산 도선사 올라가는 길과 폭은 비슷하지만 경사는 더 급하고 커브 구간도 훨씬 많다. 이 사이를 비집고 오르내리는 차들로 인한 주차 문제는 상상 초월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이 지역은 오스트리아, 헝가리 왕국에 속했었다. 치열했던 호반의 전투를 기억하는 듯 산길에는 길고 긴 참호와 벙커, 군용 터널 같은 군사 구조물이 아직도 남아 있다. 
    1953년까지 ‘리바 델 가르다Riva del Garda’에서 올라가는 길은 말이나 노새가 끄는 마차만 다닐 수 있는 비포장 돌길이었으나 인근 대도시인 ‘브레시아Brecia’에서부터 오는 사람이 많아지자 1993년 950m 길이의 터널을 만들고 자동차도 다닐 수 있게 길을 확장했다. 과거의 돌길은 굽이굽이 돌면서 호수를 내려다보는 자전거 전용로와 낭만적인 산책로로 변해 지금도 인기를 얻고 있다. 
    26년을 알고 지낸 프랑스인 친구 도미니크와 슬로베니아 출신 다르코와는 설피 산행과 쉬운 비아 페라타 등반, 트레킹을 자주한다. 모두 이탈리아에 사는 외국인이라는 공통점이 있어 빨리 친해졌고, 거의 70대라 서로들 편하게 지낸다. 
    가르다호수 산행은 볼자노 집에서 1시간 45분 거리인지라 겨울에 설산 산행이 지겹고 봄이 오는 소리를 들고 싶을 때에 즐겨 찾는다. 여름이 되기 전에 찾아야 조금 한가하게 산행을 즐길 수 있다. 
    프레가시나에서 가장 인기 있는 등산로는 산 정상을 이어가는 능선으로, 6시간 30분에서 7시간 정도 걸리지만 대부분 하이커들은 3시간 정도 간단히 돌고 내려오는 길을 선택한다. 프레가시나에서 출발해 ‘푼타 라리치Punta Larici’를 돌고 오는 산행은 레드로계곡의 다양한 호수 파노라마를 내려다 볼 수 있고, 반대편으로는 호숫가에 우뚝 솟은 몬테 발도Monte Baldo 산군의 장관을 바라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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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세의 다르코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벙커에 들어가서 저격수가 된 일곱 살처럼 장난을 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흔적이 아직도
    마을을 출발해서 경사가 매우 급한 422번 등산로를 올랐다. 트랙터가 올라가기 위해 농부들이 만든 이 길은 좁고 경사가 매우 급하다. 비가 많이 내리거나 눈이 많이 쌓일 경우 산사태를 막아주기도 하는 이 길을 15분 정도 올라간다. 
    이내 좁은 산길과 만나면 이제 430번 길과 422번 길을 번갈아 가며 올라야 한다. 1시간 정도 힘겹게 올라 파소 로케타Passo Rocchetta에 도착해 간단히 목을 축인다. 크레스테 데 리아몰Creste de Reamol 길을 지나 잘 다듬어진 돌계단을 올라 첫 번째 정상인 ‘보카 다 레 Bocca da Lè’에 당도했다. 기념촬영을 하며 거친 숨을 가라앉힌다. 
    정상 아래에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했던 군 막사용 터널과 나무 막사, 돌 틈의 자연 참호가 남아 있어 이 사이를 구비 구비 돌아가며 내려선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긴 참호는 그야말로 ‘천연 요새’였다. 중간 중간 나타나는 군 터널과 다 무너진 나무 막사가 전쟁의 아픔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었다. 
    다르코가 장난스럽게 군용 터널에 들어가 스키 스틱을 총 삼아 저격수처럼 폼을 잡고 웃는다. 우리 나이로 72세인 그는 45년 전에 아내를 하늘로 떠나보내고 혼자 살고 있다. 자기 생전 국가가 4번이나 바뀌었고 지금은 이탈리아에서 사니 여권이 5번이나 바뀌었단다. 
    산과 바다를 좋아하는 도미니크는 프랑스 니스 출신으로 30년간 이탈리아에 살면서 직장을 27번이나 바꾼 사람이니 어떤 사람인지 상상이 갈 것이다. 변화무쌍한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표현하면 맞을까. 직장 동료는 물론 가족 간에도 문제가 심해서 15년 전에는 아내가 그를 떠났고, 5년 전에는 두 아들과 딸도 그를 떠났다. 하지만 아주 등을 돌린 것은 아니어서 부활절과 성탄절에는 가족이 모여 파티를 하거나 가벼운 산행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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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발의 도미니크와는 26년 지기 친구이다.
    늙은 꽃의 가슴에도 봄이 오길
    우리 세 명이 산행을 하다 보면 도미니크가 다르코에게 끝없이 잔소리하며 신경질을 부리지만, 다르코는 항상 웃으며 조용하게 받아 치고, 필자는 제3자처럼 담담하게 지나간다. 외롭게 홀로 사는 다르코와 성격 문제로 더 외로운 길을 살고 있는 도미니크의 가슴에도 따뜻한 봄이 왔으면 좋겠다. 
    두 달간 극심한 가뭄이 이어졌지만 산에는 어김없이 야생화가 피고 있었다. 수분이 충분치 않아 화려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꽃은 피고 새는 지저귀고 있었다. 칠순이 넘은 두 친구들의 투닥거리는 소리는 사람이 살아가는 소리이고, 정이 깊어가는 소리이다. 향기로운 인생의 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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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 오는 소리를 잔뜩 가지고 피어오르고 있는 꽃들이 긴 가뭄으로 목말라 하고 있다.
    프레가시나 트레킹 정보
    코스 
    프레가시나~치마 델라 나라Cima della Nara(1,376m)~푼타 라리치Punta Larici~프레가시나
    트레킹 난이도 
    EE(등반적 기술이 조금 필요한 위험 구간)
    총 거리 및 소요 시간 
    약 12km, 약 7시간 소요
    산행 표고차 : 약 1,000m
    산행 길이 : 12km
    산장·숙박 시설 : 없음
    본 기사는 월간산 2022년 4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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