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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트렌드] '짝퉁 중국' 옛말, 차이나 기어가 몰려온다

글 신준범 기자
  • 입력 2022.04.11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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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E IN CHINA의 역습
세계의 아웃도어 공장서 메이저 도약 노려… AS 등은 한계

세관에서 압수된 중국 카피 제품들. 중국산은 불법 복제와 제품 질이 떨어진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사진 조선일보 DB.
세관에서 압수된 중국 카피 제품들. 중국산은 불법 복제와 제품 질이 떨어진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사진 조선일보 DB.

무게 45g의 초경량 버너가 5,669원, 더 가벼운 25g 티타늄 버너가 1만8,632원이다. 가스가 새어나오거나, 흔들림 없이 만듦새도 뛰어나다. 싸다고 해서 품질이 떨어지지 않는다. 국내 대부분의 유명 등산복 브랜드는 중국 공장에서 만들고 있으며, 외국의 글로벌 브랜드들도 중국에서 생산한 지 오래되었다. 명품 등산복으로 꼽히는 아크테릭스는 2019년 중국 1위 스포츠웨어 브랜드인 안타스포츠에 인수되었다. 

대부분의 등산 장비는 중국이 없으면 제작이 어렵거나, 자국에서 생산할 경우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된다. 꼭 등산 장비가 아니더라도 생활용품 전반이 중국을 빼놓고는 생산이 어렵다. 낮은 인건비로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고 있다.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는 저질 제품의 상징이었다. 가격이 싼 대신 품질은 떨어지는 이미지의 대명사였다. 그랬던 중국 제품이 변화를 꾀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기술력이 높아지고 있다. 비싼 재료를 사용해 비싼 제품을 만드는 데 지장이 없다. 앞서 얘기한 초경량 버너를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도 만들 수는 있지만, 5,000원대와 1만 원대로 만들기는 어렵다. 

네이처 하이크에서 판매하는 다양한 아웃도어 장비들. 다양한 가성비 제품으로 저가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네이처 하이크에서 판매하는 다양한 아웃도어 장비들. 다양한 가성비 제품으로 저가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네이처 하이크’의 약진

과거 중국은 ‘베끼기 선수’로 통했다. 이 말은 지금도 유효하지만, 업그레이드되었다. 이젠 독창적인 자체 디자인도 한다. 워낙 세계 모든 유명 브랜드의 생산을 도맡아하다 보니, 눈이 높아진 것. 이젠 중국도 자체 디자이너를 두고 나름의 디자인 감각을 보여 준다. 물론 상당수는 남의 것을 갈취하는 것에 가깝게 따온 것들이다. 

중국의 약진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브랜드가 ‘네이처 하이크Nature Hike’이다. 홍콩에 법인을 두고 있으나 이것은 일종의 꼼수로, 중국 자본이다. 텐트를 비롯한 각종 백패킹, 캠핑용품을 비롯 등산복과 배낭까지, 아웃도어 모든 영역의 제품을 만들고 있다. 

네이처 하이크는 저렴한 가격과 떨어지지 않는 품질로 최근 3년 사이 빠르게 국내 시장을 잠식했다. 더 이상 주문자 생산 방식인 하청업체에 머무르지 않고 중국 브랜드로 한국 시장을 과감하게 개척하고 있는 것. 

국산 브랜드를 달고 있지만, 기획, 디자인, 생산까지 모든 과정을 중국에서 제작한 제품도 많다. 인터넷 쇼핑몰과 알리익스프레스 같은 중국 제품 전용 앱이 대중화되면서 써보고 괜찮다 싶으면, 브랜드만 자기 것으로 바꿔 납품해 달라고 주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직구 앱을 통해 중국 제품을 주문하면 저렴하게 구입 가능하지만, 배송이 열흘, 보통은 한 달, 혹은 그 이상 소요되는 것이 다반사다. 신속성이 떨어지는 것. 빠른 걸 선호하는 한국 고객의 취향에는 맞지 않는 셈이다. 불량 제품을 받았거나, AS가 필요할 땐 소통이 어렵거나 비용과 시간에서 크게 손해를 볼 수 있다. 중국산을 직구로 구입하는 건 이렇듯 한계가 명확하다. 

무게 25g에 불과한 버너. 중국산 장비는 과거에 비해 기술력 수준이 높아졌다.
무게 25g에 불과한 버너. 중국산 장비는 과거에 비해 기술력 수준이 높아졌다.

일부 국산, 등산 모르는 디자이너가 제작

네이처 하이크 역시 그 가격에 비하면 제품이 좋다는 것이지 유명 브랜드와 비교했을 때 완성도가 높은 건 아니다. 또한 브랜드 이미지를 중요시 여기는 한국 시장 특성상, 저가 브랜드의 성장은 한계가 있다. ‘저렴한 이미지’는 중국 자체 브랜드의 세계화를 방해하는 결정적인 족쇄이다. 

한국 아웃도어 브랜드도 더 섬세하고 발전된 기술이 필요하다. 국내 일부 유명 브랜드들은 등산복 디자이너가 등산을 싫어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 패션 업계에서 아웃도어 업계로 이직한 디자이너와 기획자가 대부분이다. 등산학교를 수료하고 등산을 하더라도, 국내 눈 높은 등산인들의 수준을 따라가기 어렵다. 

어떤 소재를 쓰면 산행에 방해가 되고, 어디에 절개가 들어가야 발을 올릴 때 편하다는 식의, 등산 마니아라면 대개 아는 것들을 전혀 모르는 디자이너들이 허다하다. 히트한 타 브랜드의 제품을 기능도 모르면서 따라 만드는 경우도 많다. 일단 잘 팔린 제품의 디자인 요소는 다 가져오는 것. 

그나마 B브랜드에서 정상 인증을 통한 도전 프로그램으로, 제2의 등산붐을 이끌며 코로나로 실내 여가활동이 어려운 시기와 맞아떨어지며 젊은 층을 산으로 이끌고 있다. 고객 셰르파 제도를 도입해 베테랑 등산인들의 필드테스트를 바로 제품에 반영해 눈에 띄게 제품 수준이 높아졌다. 젊은 등산인구 유입을 통해 브랜드의 정체성을 그대로 지켜가면서 제품력은 크게 성장했다. 

오랜 역사의 해외 브랜드는 창업자가 산악인이고, 회사 사무실을 자연과 가까운 곳에 두며, 아웃도어를 즐기는 직원만 뽑는 경우가 많다. 등산 마니아가 만드는 등산복과 등산에 관심 없는 사람이 만드는 제품의 질이 같을까. 또한 수익을 높이는 데만 열중하지 않고 제품력을 높이기 위한 연구와 개발에 공을 들인다. 우리도 개발을 통해 ‘MADE IN KOREA’의 이미지를, 브랜드 이미지를 높여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한국은 등산의 나라다. 세계 어디에도 이토록 전체 인구 대비 높은 등산 비율과 산행 고수가 많고, 예민하게 제품 장단점을 파고드는 소비자는 없다. 한국 등산 마니아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해외 어느 브랜드와 겨뤄도 경쟁력이 있다. 

스타 한 명에게 고액의 광고료를 주고, 그 비용을 메우기 위해, 가격이 높아진 제품이 아니라, 제품 자체로 감동을 줄 수 없을까. 수십 년 단골 고객에게 등 돌리고 스포츠웨어로 바꿔 더 많은 돈을 벌려는 기업이 아닌, 고객과 브랜드 사이의 정을 지키며 외길을 갈 수는 없을까. 

등산인이라면, 숱한 산을 함께 누빈 장비에 대한 고마움, 브랜드에 대한 애착이 있기 마련이다. 분명 ‘메이드 인 차이나’가 넘지 못하는 ‘메이드 인 코리아’의 벽은 존재한다. 우리나라에도 세계적인 등산 브랜드가 나올 때가 되었고,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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