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웅의 고지도] 지중해 해안선이 놀랍도록 정확! 동쪽엔 성벽으로 싸인 '지상낙원'

  • 글 최선웅 한국지도학회 고문
    입력 2022.04.26 10:06

    최선웅의 고지도 이야기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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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52년 레아르도의 세계지도 (출처: American Geographical Society Library).
    15세기 베네치아의 지리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조반니 레아르도Giovanni Leardo의 생애나 활동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 없으나, 그는 중세 유럽에서 가장 걸출한 세계지도 3점을 남겼다. 이 가운데 1442년 날짜가 기록된 가장 오래되었으나, 단순하고 조잡한 지도는 이탈리아 베로나시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고, 두 번째 1448년에 제작된 더욱 정교한 지도는 비첸차시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세 번째 가장 크고 가장 정교한 지도는 미국지리학회A.G.S.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미국지리학회 소장본은 미국의 기업가이며 자선가인 아처 밀턴 헌팅턴Archer Milton Huntington이 구입해 1906년 미국지리학회에 기증한 것으로, 학회는 1928년에 원본 크기의 사본과 함께 지리학자 존 커틀랜드 라이트John Kirtland Wright의 논저 ‘The Leardo Map of the World, 1452 or 1453’을 발표했다. 이 논저에 따르면 지도 오른쪽 하단에 ‘Johanes Leardus de Venetteis me fezit abano domini 145□’라는 서명이 있어 지도의 제작연대를 1452년 또는 1453년으로 추정했다. 
    지도는 가로 59.4cm, 세로 72.4cm 크기의 양피지에 채색필사로 제작되었고, 왼쪽 상단과 하단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고, 변색되어 글자가 희미한 것 외에는 전체적으로 양호한 편이다. 원형의 지도 외곽은 10단계의 동심원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식별이 잘 안 되지만 네 귀퉁이에는 4인의 복음사가福音史家를 상징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왼쪽 위에 그려진 독수리는 성 요한이고, 오른쪽 위의 사자는 성 마르코, 왼쪽 아래 천사는 성 마태오, 오른쪽 아래 황소는 성 루카를 나타낸다. 지도 하단의 설명주기는 지도의 범례, 제작자의 서명과 날짜, 달력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다.    
    지도를 둘러싼 10단계 동심원의 첫 번째 원에는 1453년 4월 1일부터 1547년 4월 10일까지 95년간의 부활절Easter 날짜가 기록되어 있는데, 부활절이 4월이면 ‘A’, 3월이면 ‘M’, 윤년이면 ‘B’라고 적었다. 두 번째 원은 베네치아에서 1년의 첫 달인 3월부터 달의 이름과 태양이 황도 12궁黃道十二宮에 들어가는 일ㆍ시ㆍ분이 기록되어 있다. 
    세 번째 원은 19년 주기로 한 달 동안 달의 위상月相을 나타내며, 19개의 알파벳 문자로 표시된다. 네 번째 원은 12달의 날짜이고, 다섯 번째 원은 시간을 나타낸 것이고, 여섯 번째 원은 각 시간을 1,080분의 1로 분할한 것이다. 일곱 번째 원은 일요일을 나타내는 문자이고, 여덟 번째 원은 1년을 통해 해의 길이를 나타낸 것이며, 아홉 번째 원은 하루의 변화를 나타낸다. 마지막 열 번째 원은 중세 가톨릭에서 인정하는 성인聖人의 축일이 표시되어 있다.
    지도 최상부의 뾰족한 부분에 그려진 갈매기 형 문장紋章은 베네치아 공화국의 귀족 출신인 트레비산 가문Trevisan family의 문장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유래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다. 동심원 안에 그려진 지도의 지경은 40cm이고, 지도의 방위는 위가 동쪽이며, 동쪽에는 거대한 성벽에 둘러싸인 ‘지상낙원’이 그려져 있고, 예루살렘은 지도 중앙에  위치한다. 지구 주위는 환해Oceanos에 둘러싸여 있고, 환해를 따라 8방위에 풍신風神이 그려져 있는데, 삭풍이 불어오는 북쪽과 북동쪽, 북서쪽은 짙은 청색으로 표현되고, 나머지는 훈풍이 불어오는 풍신은 적색으로 표현되어 있다.
    육지 전체는 표백된 양피지 원래의 색인데, 북극은 거친 갈색이고, 남극은 불타는 듯한 붉은색으로 표현되어 있다. 북극에는 몹시 추워 인간이 거주하지 않는 사막이라고 쓰여 있고, 남극에는 몹시 뜨거워 인간이 거주할 수 없는 사막이라고 쓰여 있다. 바다는 홍해를 제외하고는 청색으로 채색되고, 산은 낟가리 모양으로 그리고 녹색 또는 적색으로 채색되어 있다. 섬의 대부분은 적색이나 황색으로 채색되었으나, 영국과 아일랜드에만 녹색 반점이 있다. 호수는 청색ㆍ황색ㆍ핑크색 등으로 채색되어 있고, 하천은 청색 선으로 그려져 있는데, 거의 호수에서 발원하거나 바다와 바다를 연결하고 있다. 
    도시와 왕국ㆍ지역은 성채가 있는 건물로 표시하고, 그 밖의 도시는 붉은색 작은 사각형 기호로 표시되어 있다. 유럽에는 47개, 아시아에는 75개, 아프리카에는 74개, 타브로바네Taprobane(실론섬)에는 4개 도시가 있는데, 타브로바네의 도시는 녹색과 적색으로 채색되어 있다. 대륙의 구분은 북극과 홍해를 잇는 북쪽 지역이 아시아대륙이고, 홍해 아래쪽이 아프리카대륙이며, 그 외 지역이 유럽대륙이다. 각 대륙에는 커다란 적색 대문자로 대륙명이 표기되어 있다.
    아시아 오른쪽의 넓은 바다는 인도양이고, 붉은색의 홍해는 심하게 꺾여 있는데, 그 안쪽의 반도가 아라비아반도이다. 지중해는 지도 아래쪽 가운데 부분에 길게 표시되어 있고, 지중해와 연결된 흑해는 거의 정확하게 그려져 있다. 그 위쪽의 큰 호수는 카스피해로, 대부분의 중세 지도에서 카스피해는 북극해와 연결되어 그려졌으나, 이 지도는 제대로 그려져 있다. 유럽 서쪽의 대서양은 좁게 그려져 있으나, 스칸디나비아반도와 발트해의 모습은 거의 제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동아시아에는 중국과 인도만 표시되었는데, 중국은 ‘지상낙원’과 그 아래 호수 사이에 위치하고, 인도는 호수 오른쪽 해안가의 가장 큰 성곽으로 표시되어 있다. 타브로바네섬은 ‘지상낙원’ 오른쪽 황색의 큰 섬이다. 지도 최북단(왼쪽 끝)에 종탑이 있는 성당처럼 보이는 큰 건물은 대칸Grand Khan의 묘다. 대칸의 묘 위쪽에 3개의 섬이 있는 만이 있고, 만의 오른쪽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 곡과 마곡이 갇혀 있는 곳이다. 식별이 어렵지만 산 옆의 적색 점은 알렉산더의 철문이다. 아라비아반도에서 가장 큰 건물은 메카이고, 페르시아만의 큰 성곽은 페르시아다. 예루살렘은 지중해 동쪽 끝에 높은 종탑이 그려진 건물이며, 그 위에 시나이산이 있고, 흑해 위에는 노아의 방주가 그려진 아라라트산이다.
    아프리카대륙은 인도양과 대서양 쪽으로 깊은 만입이 형성되어 있는데, 대서양 쪽 만입에 우뚝 솟은 성곽은 중세 유럽에 널리 알려졌던 전설의 그리스도교 군주인 프레스터 존Prester John의 성이다. 프레스터 존 성에서 왼쪽 지중해 쪽의 큰 건물은 바빌로니아이다. 대서양쪽 만입 입구에 있는 3개의 산이 나일강의 발원지인 달의 산Montes Lunae이고, 여기에서 나일강은 동쪽으로 흐르지만, 서쪽으로도 흘러 대서양으로 유입된다. 사하라사막의 가운데 있는 노란색 호수는 ‘모래바다’라고 한다.
    지중해의 해안선 형태는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데, 특히 발칸반도와 이탈리아반도의 모습은 현대지도를 보는 듯하다. 지도가 원형인 탓에 이베리아반도는 지나치게 길쭉하게 보이지만, 형태는 비슷하다.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섬 북쪽으로 발트해가 깊숙한 만을 이루고, 발트해 왼쪽으로 큰 산이 연이어 있는 스칸디나비아반도가 뻗어 있다. 스칸디나비아반도 북쪽에 사는 사람들은 1년 중 4개월 동안 태양을 보지 못한다고 한다.  
    지도 하단의 설명주기는 각 행의 시작 부분이 떨어져 나가고, 설명문은 15세기 베네치아 방언이 뒤섞여 표현이 다소 어색하지만, 1448년 비첸차시민박물관 본의 설명주기를 복원한다면 전체적인 내용이 명확해질 것이다. 두 번째 행은 신학의 영역을 다루었으나, 신학자의 글이 아님이 밝혀졌다. 그 아래는 천문학에 관한 내용으로, 베네치아의 달력과 달의 위상 등에 대한 설명과 수성ㆍ금성ㆍ화성ㆍ태양ㆍ토성의 직경뿐만 아니라 천구天球의 직경에 대해 설명했으나, 대부분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레아르도의 세계지도는 중세 서반구에서 가장 뛰어난 지도로 평가되며, 1952년에는 크리스마스카드로 제작될 정도로 인기가 많았던 지도이다. 
    본 기사는 월간산 2022년 4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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