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섬_가거도] 절해고도의 절대고독, 파란만장한 세월의 아름다움!

입력 2022.05.13 10:04

최서남단 섬 한 번에 둘러보기… 해뜰목, 회룡산, 독실산, 백년등대, 섬등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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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등반도 해넘이는 가거도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장관이다. 섬등반도는 거센 바람에 깎여 생긴 예술 작품 같은 바위능선이다.
지도를 보며 고독함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최서남단 끝섬, 그래서 사람들은 가거도를 ‘절해고도絕海孤島’라 불렀다. 끊을 절絕, 바다 해海, 외로울 고孤, 섬 도島.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섬을 뜻하는 절해고도가 ‘절대고독’으로 들렸다. 육지의 인연 모두 끊고 바다 한가운데서 홀로 고독하겠다는 의미 같았다. 
처음 이 섬에 온 사람은 1580년 무렵 서씨 성을 가진 이며, 본격적으로 사람들이 거주하게 된 건 1800년 무렵 나주 임씨가 건너오면서부터라 한다. 흑산도가 유배지로 이름 높았던데 반해, 더 먼 섬 가거도는 조정의 통제가 미치지 않는 곳이었다. 계절과 바람이 맞을 때만 열흘가량 목숨 건 항해로 닿을 수 있는, 수평선 너머 어디쯤이었다. 심지어 6·25 전쟁도 소식으로만 듣고 지나갔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세상과 단절된 곳이었다. 
절해고도의 절대고독을 찾아갔다. 벚꽃 피고 거리두기 해제로 나들이 인파 넘치는데, 세상과 거리두기에 나서는 기분이었다. 차로 5시간을 달려 목포에 닿아, 배를 타고 3시간 30분 파도를 갈랐다. 어둠에 가까운 파랑이 마중 나와 있었다. 출발 10시간 만에 닿은 거대한 고독의 유적에 첫 발을 디뎠다. 망망대해에 온 걸 환영한다며 출렁출렁 블루스 박자로 울렁이는 것이 섬인지, 나의 배 속인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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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룡산 정상에서 본 대리항. 회룡산은 265m로 낮지만 경치의 즐거움은 적지 않다.
아직 해가 지기 전이라, 노을을 담고 싶었다. 차를 타고 항리로 간다면 가능할 것 같았다. 가거도 관리사무소 정승일 소장이 “날이 흐려서 생각하는 노을은 없을 테니 저녁식사 들며 여독부터 풀라”고 조언해 주었다. 맞는 말이었다. 
예상과 다른 아침, 공사장 기계음이 진동했다. 배낭을 메고 숙소 밖으로 나오자 거대한 방파제 공사 현장이 보였다.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에 나올 법한 거대한 옹벽이었다. 정 소장은 “방파제 공사만 40년째”라고 일러 주었다. 
가거도는 태풍을 직격으로 맞는 것이 지리적 숙명이다. 이곳은 중국과 공해가 접해 있으며, 황금어장이라 불리는 곳이라 태풍이나 파도가 높을 때 국내외 어선들이 대피를 위해 몰려든다. 1996년 태풍 때 가거도에 대피하러 온 중국 어선만 3,241척이었다고 한다. 1979년 시작된 방파제 공사는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는데 완공될 만하면 태풍이 와서 부숴놓길 반복했다. 가거도 방파제 공사는 사람과 바다가 겨루는 대서사시 같은 사투의 현장인 것. 정승일 소장은 “방파제가 곧 가거도의 역사”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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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실산 등산지도를 살피는 트로트 가수 손빈아씨와 경기대 산악부 김민지씨.
“건설사도 여러 번 바뀌었죠. 지금은 삼성물산에서 공사 중인데, 해양수산부에서 이 방파제가 완성되면 100년에 한 번 오는 큰 태풍도 견딜 수 있다고 했어요. 방파제를 만들려면 바다를 메워야 하잖아요. 돌이 필요하니 이곳 산을 부숴서 돌을 쏟아 부었죠. 섬 인구가 430명 정도인데 방파제 공사 인력 덕분에 다른 섬과 달리 인구가 줄어들지 않고 있어요.”
가거도는 공사 인력 덕분에 침체되지 않았고, 방파제는 파도만 막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삶까지 지켜내고 있었다. 선착장이 있는 가거도의 서울 ‘대리’에서 해뜰목으로 올랐다가 회룡산에 오른 후, 독실산 정상을 종주해 최북단 백년등대에 이르는 일정이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가거도의 백미로 꼽히는 섬등반도를 마지막 순서로 찾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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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뜰목 전망데크. 남동쪽으로 뻗은 능선 끄트머리 전망대다.
가히 살 만한 섬, 가거도
선남선녀 등산인이라 할 만하다. 백두대간을 완주한 트로트 가수 손빈아씨와 경기대 산악부 김민지씨가 등산화 끈을 묶고 섬 답사에 나선다. 동개해수욕장 옆으로 산길이 나있다. 산길 역시 공사 중, 낙석으로 무너진 산길을 정비하고 있다. 
공룡능선 같은 살벌한 해안절벽이 얼마나 오랫동안 파도와 바람에 깎여 왔는지 드문드문 알려 준다. 지그재그로 고도를 높이는 임도 아래, 자갈해변이 배경이 된다. 화룡점정을 찍는 건 태양. 어떤 눈물도 말려버리겠다는 듯 희망찬 분위기로 떠오른다. 마음을 움직이는 풍경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행정 편의상 ‘소흑산도’라 불렸으나 원래 이름은 ‘가히 살 만한 섬’이라 하여 가거도이며, 주민들은 예나 지금이나 가거도라 부르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의 ‘가가도嘉佳島’로 불리다가 1896년부터 가히 살 만한 섬이라는 뜻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전한다. 
임도가 끝나자 노랑과 보라가 조곤조곤 봄이 걸어온 이야기를 들려준다. 유채꽃과 제비꽃이 사랑스럽게 산길을 메우고, 여름 같은 뙤약볕이 반갑다. 완연한 봄을 넘어, 곧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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빽빽하게 숲터널을 이룬 산길. 독실산은 전체적으로 원시림이 잘 보전되어 있다.
동백숲 터널을 따라 봄의 핏자국같이 떨어진 동백꽃을 따라갔다. 갔다가 되돌아와야 하는, 지나칠 수도 있는 길이었으나 보여 줄 것이 있다며 강하게 잡아끄는 동백숲에 들었다. 숲 터널을 빠져나오자, “와”하는 감탄이 나왔다. ‘해뜰목’은 이곳에 대한 가장 사실적이며 건조한 이름이었다. 
상어지느러미 같은 능선 끝 전망데크와 망망대해. 고독한 능선이 바람에 깎이고 깎여 생각의 골격만 남아 있었다. 아무리 외로워도 내 뜻만큼은 꺾을 수 없다며 첨예한 상념을 날카롭게 세우고 있었다. 텐트 치고 하룻밤 묵고 싶은 터다. 
달 전망대인 달뜬목은 상대적으로 감동이 덜했으나 신록으로 반짝이는 날카로운 능선의 흘러내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예쁜 이끼와 귀여운 콩짜개덩굴이 수놓은 좁은 산길은 솜씨 좋은 정원사가 ‘원시림’ 테마로 꾸며 놓은 것 같았다. 자연 그대로이면서도 산행이 불편하지 않은, 균형 잡힌 산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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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항에서 해뜰목으로 이어진 산길이 유채꽃으로 화사하게 물들었다.
정 소장은 “4~5월이 산행하기 가장 좋은 때”라며 “6월 중순부터는 산거머리와 살모사가 많아 산행이 힘들다”고 한다. 이 거머리는 산길 부근의 나무에 매달려 있다가 열을 감지해서 사람이 지나가면 붙어서 피를 빨아먹는다고 한다. 
이곳의 또 다른 명물은 야생 소와 염소다. 40~50년 전 주민들이 키우던 가축이 도망해 완전히 야생화되었다. 임자 없는 가축이나 마찬가지라, 잡는 날이 마을 잔칫날이지만 절벽을 자유로이 넘나들고 재빨라 총이나 활이 아니면 잡기 어렵다고 한다. 수렵 금지 구역이라 그렇게 잡을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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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실산 주능선의 전망 터를 지난다. 독실산은 연륙교가 없는 섬 중 한라산과 성인봉 다음으로 높은 옹골찬 바위산이다.
원시림이 길어진다 싶으면 어김없이 전망데크가 나온다. 가장 큰 공룡으로 꼽히는 아르젠티노사우르스 같은 절벽 능선이 장관이다. 바다 향해 뻗은 빈주암 절벽이 훤칠한 경치로 오르막길의 피로를 단번에 날린다. 
잔디밭 삼거리에 ‘벙커’ 이정표가 있다. 일본군이 만든 벙커가 곳곳에 상흔처럼 남은 것. 독실산으로 이어진 주능선을 버리고, 회룡산으로 향한다. 배에서 내리면 항구 앞에 솟은 날카로운 바위산이 있는데 용의 승천 같은 산이 회룡산이다. 삿갓재에서 도로를 지나 산길을 오르자 쉽게 정상을 허락한다. 막강한 고도감과 함께 발아래 대리항이 드러난다. 
대리항으로 내려가 늦은 점심을 먹고, 정승일 소장의 도움으로 차량을 얻어 타고 독실산 정상으로 향한다. 공해상 접경구역이라 군부대가 주둔할 수 없다는 국제법에 의해 경찰 초소가 있다고 한다. 경찰 초소 정문을 지나 150m를 오르자 전망데크와 표지석이 있는 정상(572m)이다. 한라산, 성인봉에 이어 3번째로 높은 섬산이지만 감시초소가 있어 옹색하다. 연륙교가 없는 섬산 높이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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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항 부근의 동개해수욕장. 절벽과 자갈이 섞여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순식간에 운해가 깔린다. 신기한 장면이지만, 이곳에선 매일 보는 풍경이라고 한다. 5월부터는  늘 안개 끼고 능선에 구름이 낀다고 한다. 주능선을 따라 섬 북단 백년등대로 간다. 육지 산에서는 보기 드문 도마뱀이 흔하다. 적당히 습하고 아기자기한 산길을 따라 북릉 기행에 나선다. 
주능선을 벗어나 서쪽으로 난 전망데크에 올라서자 굵직한 바위가 곳곳에서 불끈불끈 힘자랑을 한다, 독실산의 진면모가 드러난다. 햇살이 반짝이는 깨끗한 바다와 강렬한 바위능선의 흘러내림이 장관이다. 텐트 치고 하룻밤 머무르며 느긋이 경치를 음미하고 싶은 곳이 유독 많은 가거도다. 
480m봉 전망대에서 슬쩍 섬등반도가 바다 쪽으로 튀어나온 것이 보인다. 걸을수록 섬산치곤 독실산의 품이 넓음을 실감한다. 쉽게 하산할 거라 생각했으나 잔잔한 바위가 많고 가팔라 예상보다 시간이 지체되었다. 
급하게 고도를 내렸기에 중등산화를 신었음에도 발바닥에서 불이 나는 듯 했으나, 등대를 보자 몸과 마음이 차분히 정돈되었다. 1907년 세워진 115년 된 고풍스런 흰 등대가 지친 나그네를 토닥이듯 평온하게 자릴 잡고 있었다. 얼핏 클래식한 성당처럼 보일 만큼 정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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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지어진 가거도 북쪽 끝 등대. 가거도등대 혹은 백년등대라고 부른다.
미안하지만, 친절한 등대 소장님의 긴 설명을 끊고 차를 타고 섬등반도로 향했다. 노을이 바싹 다가와 있었다. 언젠가 마음에 각인된 섬 사진이 있었다. 어느 섬인지 몰랐지만 그 풍경이 잊혀지지 않았고, 그것이 섬등반도였다. 
바다는 역광으로 빛나고, 산과 바다의 파란만장한 사연 깃든 능선이 요동치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풍파를 견뎌내었을까. 성벽 같은 고개라 하여 ‘성등반도’라 불리다 이름이 바뀌었다는 섬등반도. 
북풍이 몰아치는 언덕 곳곳에 집이 있었다. 인가 반 빈집 반이었다. 집과 집을 이은 위태롭고 좁은 계단을 짐을 든 할머니가 오르고 있었다. 매서운 바람을 평생 받아 삼킨 항리 주민들의 고단한 일상이 그려지며, 문득 삶의 무게가 훅 덮쳐왔다. 
망망대해의 바람과 고독을 삼키며 살아온 깊은 주름이 노을보다 더 뜨겁게 지나온 세월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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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인증지점인 독실산 정상. 경찰 감시초소 정문에서 150m만 가면 닿는다.
가거도 가이드
가거도는 지형이 단순한 듯하지만, 산행 동선을 짜기가 까다롭다. BAC 인증지점인 독실산 정상을 비롯해, 해뜰목, 회룡산, 백년등대, 섬등반도 같은, 가거도 명소가 섬 전체적으로 나뉘어 분포되어 있다. 
버스나 택시 같은 대중교통이 없고 민박집 트럭이 유일한 교통수단이며, 이용료가 비싼 편이다. 해발 0m에서 572m까지 높여야 하는 것도 섬산행 특유의 어려움을 그대로 보여 준다. 하루에 두 편뿐인 배 시간도 일정을 짜는 중요한 요소다. 선착장이 있는 대리에서 1박하며 해뜰목과 회룡산을 둘러보고, 다음날 항리에서 숙박하며 독실산과 백년등대 섬등반도를 걸어서 둘러보는 것이 비교적 알차다. 2박3일이면 금상첨화일 것.
독실산 정상에서 북릉을 따라 가다 480m봉 전망대를 지나 섬등반도 방면으로 곧장 가는 것도 합리적인 동선이다. 이렇게 짜면 백년등대를 생략해야 한다. 섬등반도는 첫 번째 전망대까지만 데크길이 나 있으며, 반도 끝 전망대인 132m봉까지 주의하면 어렵지 않게 닿을 수 있다. 바람이 심하고 거머리와 살모사가 있어 야영은 주의를 요한다. 
대리항에서 해뜰목 거쳐 387m봉까지 4km이며 2시간 정도 걸린다. 387m봉에서 삿갓재까지 800m 15분 걸리며, 삿갓재에서 회룡산 정상까지 600m 20분 걸린다. 삿갓재에서 독실산 정상 입구의 경찰감시초소 정문까지 2.7km. 독실산 정상에서 등대까지 3.3km이며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교통(지역번호 061)
남해고속(244-9915)과 동양훼리(243-2111)에서 가거도행 배를 운항한다.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매일 2회(08:10, 15:00) 운항한다. 3시간~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가거도에서 목포행 배는 07:40, 13:00에 운항한다. 결항 여부와 운항 시간은 선사에 문의해야 한다. 요금은 편도 7만3,800원.(주말 기준) 
맛집  BAC 플러스 가이드 기사 참조
등산 지도  특별부록 지도 참조
본 기사는 월간산 2022년 5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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