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웅의 고지도] 스페인 무적함대 시대 ‘리베로의 세계지도’

  • 글 최선웅 한국지도학회 고문
    입력 2022.05.0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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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세기 기념비적인 리베로의 세계지도(출처: Biblioteca Apostolica Vaticana).
    대항해 시대인 16세기, 스페인은 아메리카 대륙과 필리핀제도, 오세아니아 등에 식민지를 개척한 강력한 제국 중의 하나였다. 대항해 시대의 중심지인 세비야Seville의 ‘카사 데 라 콘트라타시온Casa de Contratación, 通商院’은 식민지통치기관의 하나로, 무역과 관세ㆍ출입국ㆍ소송 등의 관리와 항해술 훈련을 수행했고, 당시 모든 선박에 규범적으로 사용되던 비밀스런 공식 해도Portolano인 ‘파드론 레알Padrón Real’을 제작ㆍ관리했다. 파드론 레알에 기재된 정보는 최신 발견된 것과 수정을 포함해 최고의 국가 기밀로서 누설한 자는 사형에 처할 만큼 엄중한 것이었다.
    통상원에서 활약한 유명한 지도제작자와 항해가로는 아메리고 베스푸치Amerigo Vespucci를 비롯해 세바스티안 카보트Sebastian Cabot, 디에고 리베로Diogo Ribero, 알론조 데 산타 크루스Alonzo de Santa Cruz, 후안 로페스 데 벨라스코Juan Lopez de Velasco, 디에고 구티에레스Diego Gutiérrez 등이 유명하다. 이 가운데 리베로는 1480년경 포르투갈에서 태어났으나, 어디 태생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원래 이름은 디에고 리베이로Diego Ribeiro였으나, 스페인에서 활동한 이후 ‘디에고 리베로’라고 불리게 되었다. 
    지도에 기재된 정보 누설 땐 사형
    1516년 리베로를 비롯한 포르투갈의 지도제작자와 항해사들은 국왕 마누엘 1세Manuel I와 알력으로 인해 새로 즉위한 스페인의 국왕 카를로스 1세Carlos I를 위해 세비야로 집결했다. 리베로는 1518년부터 통상원에서 지도제작자로 일하기 시작했고, 1519년에는 마젤란F. Magellan의 첫 번째 세계일주 항해에 사용될 지도제작에 참여했다. 리베로는 1523년 왕립 천문학자로 임명되었고, 지도와 아스트롤라베astrolabe, 그외 다른 기구 제작의 대가로 불리게 되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유럽 대륙 이외의 지역에 대한 영토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스페인 토르데시야스에서 1494년 6월 7일 토르데시야스 조약Treaty of Tordesillas을 체결했고, 이 조약에서 정한 정확한 위치를 확정지어 전 세계를 2등분한 반구半球로 나누기 위해 1524년 바다호스-엘바스 회의Conference of Badajoz–Elvas를 조직했다. 이때  리베로도 스페인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했다. 1526년에는 항해에 나선 세바스티안 카보트의 뒤를 이어 통상원의 지도제작 책임자가 되었으며, 이듬해인 1527년에는 공식 해도인 최초의 과학적인 세계지도를 제작했다. 
    1527년 최초의 과학적 세계지도 제작
    리베로가 제작한 1527년판 세계지도는 현재 독일의 바이마르Weimar에 있는 공작부인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Duchess Anna Amalia Library에 소장되어 있고, 1529년판 세계지도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며,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1세가 로마 교황 클레멘테 7세Clemente VII에게 헌상했다. 이 지도는 포교성성布敎聖省의 보르자박물관Museo Borgia에 보관되어 있다가 이후 바티칸도서관Bibliotheca Apostolica Vaticana에 소장되어 있다. 그래서 이 세계지도를 ‘제2 보르자 지도Second Borgia Map’ 또는 ‘프로파간다 지도Propaganda Map’라고 부른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리베로의 세계지도는 1887년 영국의 발명가 윌리엄 그리그스William Griggs가 교황 레오 13세Leo XIII로부터 대여한 ‘제2 보르자 지도’를 다색 석판인쇄로 복제한 것이다. 하단 여백에는 “1529년 세비야에서 디에고 리베로가 제작한 제2 보르자 지도”라고 제작연도와 제작자를 밝혀 놓았다.
    지도 상단에 적힌 “Carta Universal en que Se contiene todo lo que del mondo Se ha descubierto fasta agora: hizola Diego Ribero cosmographo de Su magestad: Año de 1529. e˜. Sevilla”는 지도 제목으로, “1529년 세비야에서 폐하의 천문학자인 디에고 리베로가 지금까지 발견된 세계의 전모를 수록한 만국 해도를 제작하였다”는 뜻이다.
    인도와 동아시아 지리정보는 부정확
    지도는 양피지 두 폭에 채색필사로 제작되었고, 지도의 크기는 가로 140cmㆍ세로 58cm이며, 축척은 약 3,000만분의 1이다. 육지와 바다는 양피지 본래의 바탕색이며, 해안선은 굵은 갈색으로, 하천은 가는 갈색의 쌍선으로 표현했다. 산과 산줄기는 회화식으로 묘사하고, 갈색과 녹색으로 채색했으며, 각종 나무와 수많은 동물이 그려져 있다. 특히 바다에는 각종 선박들을 묘사해 대항해 시대를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지도의 네 코너에는 볼을 부풀려 바람을 불어대고 있는 풍신風神이 그려져 있다.
    경위선은 없으나, 해도인 관계로 해상의 요충이 되는 수십 개의 지점으로부터 방사상으로 적색과 회색의 방위선rhumb line이 지도 전체에 가득 얽혀 있다. 방위선은 32개이고, 이 가운데 회색 방위선은 8방위를 가리키며, 주요 지점에는 방위반compass rose이 그려져 있으며, 태평양 상에는 엄청나게 큰 방위반이 그려져 있다. 항해 시에 출발지로부터 이 방위선을 따라 진행하면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달할 수 있다. 또한 대서양과 인도양에 세로로 그려진 점선은 토르데시야스 조약에 따른 경계선이다.
    지도 중앙에 그려진 아메리카 대륙의 아마존강과 라플라타강의 하구에는 초기 탐험의 결과가 나타나 있고, 이탈리아 탐험가 조반니 다 베라차노Giovanni da Verrazzano가 1524년 북아메리카 동부 해안을 탐험항해한 성과도 소개되어 있다.
    대서양 건너 동쪽으로는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 아시아 대륙이 그려져 있다. 유럽과 아프리카는 완벽한 형태로 표현되었으나, 아시아의 인도반도와 동아시아의 지리정보는 매우 부정확하다. 
    태평양엔 마젤란의 항해 모습 
    형태가 일정하지 않지만, 수많은 선박이 항해하는 광대한 태평양은 마젤란의 세계일주 항해의 모습을 대략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마젤란이 1520년 11월 마젤란해협을 통과하고, 태평양을 횡단해 이듬해 4월 말루쿠제도Maluku Is.에 도착했는데, 지도에는 마젤란이 항해한 거리와 거의 같은 태평양의 실제 규모를 최초로 나타내고 있다. 태평양 서쪽 끝에는 중국과 일본, 지금의 인도네시아 말루쿠제도에서 가장 큰 할마헤라섬Halmahera은 ‘지롤로Gilolo’라고 표기되어 있다.
    지도상에는 아스트롤라베astrolabe(천문관측의)와 사분의quadrant, 적위표declination table 같은 항법기구들이 그려져 있다. 지도 오른쪽 하단의 전략상 중요한 말루쿠제도 바로 아래 그려진 것이 항해용 아스트롤라베인데, 오른쪽에 스페인 깃발, 왼쪽에 포르투갈의 깃발을 그려 말루쿠제도가 스페인의 영역임을 나타내고 있다. 
    지도 왼쪽 하단에는 사분의四分儀가 그려져 있는데, 그 왼쪽의 설명문에는 ‘태양이나 별의 편각을 구하는 방법과 해도상의 고도 눈금을 사용해 탑이나 평면의 높이, 강폭을 구하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다.
    태평양 중앙에 크게 그려져 있는 적위표赤緯標는 중앙에 32방위를 나타내는 방위반과 달력, 황도대의 별자리가 함께 표시되어 있다. 적위표 위의 설명문에는 ‘1년 중 태양의 위치와 편각을 계산하는 방법’이 자세하게 적혀 있으며, 하지와 동지의 날짜가 기록되어 있다. 적위표 아래 설명문에는 ‘항해에 필수적인 사분의나 아스트롤라베의 측정치와 조합해 위도를 결정하는 방법’과 ‘각도의 리그 간의 변환 방법’ 등이 적혀 있다.
    리베로는 1529년 공식 해도인 세계지도를 제작한 이후 여러 가지 해도를 제작했으나,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외국의 왕이나 고위 관리에게 증정한 지도 가운데 일부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렌체의 메디치아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에는 ‘살비아티 평면구형도Salviati Planisphere’라는 파드론 레알에서 모사한 것으로 보이는 지도가 소장되어 있다. 리베로는 1531년에 이전의 모델보다 10배 이상 물을 퍼낼 수 있는 청동제 양수기를 발명하기도 했으나, 1533년에 작고했다.
    본 기사는 월간산 2022년 5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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