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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해외여행] 예수, 마르코 폴로, 나폴레옹이 다녀간 ‘문명의 십자로’

글·사진 정해영 다니엘 프리랜서 여행작가
  • 입력 2022.05.18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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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하이파 칼멜산

야드바셈Yad Vashem. 홀로코스트 박물관에 있는 희생자의 방, 사진과 명단이 보관되어있다.
야드바셈Yad Vashem. 홀로코스트 박물관에 있는 희생자의 방, 사진과 명단이 보관되어있다.

문명과 예수의 발자취를 따라 아내와 함께 지난 2019년 4월 이집트, 터키, 그리스를 거쳐 이스라엘에 도착했다.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통해 잘 알려진 십자가에 못 박혀 끔찍한 수난을 당한 예수의 생애와 흔적, 가르침을 찾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땅 서안지구를 구석구석 찾아 다녔다.

처음 도착한 곳은 이스라엘 최대 산업도시이자 지중해 항구 도시인 하이파다. 인근 바닷가에는 높은 칼멜산이 솟아 있다. 여기서 바라본 지중해 연안, 하이파 시내와 눈이 시린 지중해 쪽빛 바다는 황홀하다. 시간과 이유는 다르지만 이곳 칼멜산을 지나간 모든 사람들도 같은 황홀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집트로 피란했던 어린 예수의 가족도 이곳을 거쳐 고향 나사렛으로 돌아갔다. 페르시아의 침략군, 알렉산더의 군대, 로마제국의 군대, 십자군, 또 갈릴리호수 옆 하틴에서 십자군을 괴멸시킨 아랍의 영웅 쿠르드족 출신 살라딘도 예루살렘을 탈환할 때 이곳을 경유했다. 또 칭기즈칸의 군대, 마르코 폴로도 중국으로 갈 때 이곳을 들렀고, 나폴레옹도 이집트로 가는 길에 지났다. 영국도 석유, 중동, 시리아를 관리하려 여기서 다마스쿠스까지 철도를 부설했다.

이처럼 이스라엘/레바논 지중해 연안지역은 이집트, 그리스, 메소포타미아, 로마의 문명과 밀접한 관계에 있으며, 그 문명이 전파되고 제국의 이해관계가 충돌한 문명의 요충지이자 교통로다. 사도 바오로(바울), 요한의 기독교 전도 여행이 가능했던 것도 당시 그리스, 터키, 이스라엘이 로마의 통치를 받는 나라였고, 로마가 만든 도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예수를 재판한 로마 총독 빌라도가 거주했던 카이사레아에 가면 많은 로마시대 유물들을 볼 수 있다.

부활주간 골고다 언덕에 세워진 예수 무덤성당의 성목요일 미사, 제대 뒤쪽이 예수의 무덤.
부활주간 골고다 언덕에 세워진 예수 무덤성당의 성목요일 미사, 제대 뒤쪽이 예수의 무덤.

잿빛 절망으로 가득한 팔레스타인

예수의 발자취를 찾아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지역 곳곳을 돌아다녔다. 예루살렘, 베들레헴, 나사렛, 헤브론, 제리코, 베다니, 갈릴리 호수, 요르단강, 사해, 시험산, 수많은 기념 교회와 성당 등이다.

이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팔레스타인의 끔찍한 현실이다. 요르단강 서안은 방문할 수 있지만 가자 지구는 들어갈 수 없었다. 교도소 담보다 한창 높은 8m 분리벽은 사람을 주눅 들게 한다. 서안지역The West Bank은 팔레스타인 땅이지만 이스라엘 군대가 주둔해 있다. 곳곳에 총을 든 이스라엘 군인들이 지키고 검색해 이제 그들의 총칼 아래 저항은 불가능하다.

이들은 옛날 자기 조상들의 땅이라며 야금야금 남의 땅 팔레스타인 서안지역을 잠식하며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했다. 또 이스라엘 군인들이 그 지역을 보호한다. 주거지역은 안전하게 항상 높은 언덕에 짓는다.

많은 것들을 봤지만, 그중 희망은 없었다. 방문한 팔레스타인 가정에선 지금이야 뭔지도 모르고 자라고 있는 아이들이 커서 이스라엘 반대 데모에 참석할지 여부가 부모들의 최대 걱정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의자를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데모에 휩쓸려 다치거나 교도소 가지 말고 책상 앞에 앉아 있으란 뜻이다. 부모의 맘은 어디든 다 같다.

하이파 칼멜산에서 내려다 본 시가지와 쪽빛 지중해, 앞은 아름다운 바하이 사원.
하이파 칼멜산에서 내려다 본 시가지와 쪽빛 지중해, 앞은 아름다운 바하이 사원.

더 높은 분리벽 옆 1948년부터 자기가 살던 팔레스타인 땅에서 쫓겨난 난민들이 사는 ‘아이다 난민촌’을 방문했다. 쓰레기 천지인 이곳은 사람이 살기에 너무 열악한 환경이다. 아이들이 희망인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냥 잿빛 절망의 우울한 도시다.

헤브론에 있는 유대인과 무슬림이 모두 자기의 조상이라 생각하는 아브라함 모스크(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사라 등 부인 무덤이 함께 있다. 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각각의 출입구가 다르다) 무슬림 쪽 출입문은 살벌한 검색을 두 번 받아야 들어갈 수 있었다. 마치 미국 흉악범 교도소 같다.

맨날 뉴스에서 분쟁이 일어난 곳이라며 나오는 전략적 요지 골란고원도 찾았다. 1967년 ‘6일 전쟁’에서 시리아로부터 뺏어 일방적으로 이스라엘로 편입된 곳이다. 시리아, 레바논, 그리고 이스라엘 북부 갈릴리 지역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골란고원은 과연 전략적 요충지다.

올리브(감람)산에서 본 무슬림 황금돔 사원과 성으로 둘러싸인 예루살렘 구시가. 이 사원에서 무슬림 창시자 모하메드가 승천했다고 한다.
올리브(감람)산에서 본 무슬림 황금돔 사원과 성으로 둘러싸인 예루살렘 구시가. 이 사원에서 무슬림 창시자 모하메드가 승천했다고 한다.

그리고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다. 멀리 눈 덮인 헤르몬 산(2,814m)이 보이고, 아름다운 들꽃이 만개해 있으며 세 나라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아내도 연신 차를 세우라 재촉한다. 사진도 찍고 아름다운 들꽃과 눈부신 경관을 감상했다.

그러다가도 마주치는 이스라엘 포병대대의 포신이 레바논 남부에 주둔한 헤즈볼라 민병대(이란이 지원한다는 군대)가 있는 마을을 겨냥하고 있고, 시리아와 레바논을 내려다보는 고원 꼭대기에 들어선 이스라엘 방공 레이더 미사일 부대가 이곳이 어떤 지역인지 잘 말해 준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루살렘의 골고다 언덕에는 그 십자가가 세워진 장소와 옆의 예수님 무덤 위에 세워진 ‘무덤 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가 있다. 부활 주간 성 목요일엔 로만 가톨릭 미사를 드린다. 세족식을 포함해 이스라엘에 계신 모든 신부와 주교가 참석해 거의 네 시간 가까이 진행된다. 하염없이 눈물이 흐를 만큼 일생 최대의 기쁨을 맛보았다.

유대교/무슬림 모두 자신들의 조상이라 여기는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부부가 안치된 묘. 헤브론 아브라함 모스크 내부에 있다.
유대교/무슬림 모두 자신들의 조상이라 여기는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부부가 안치된 묘. 헤브론 아브라함 모스크 내부에 있다.

395만 명 유대인 희생

홀로코스트 박물관Yad Vashem을 방문하기 전 이스라엘에 대한 나의 생각은 아주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박물관에서 목격한 유대인의 역사는 복잡한 이면을 갖고 있었다.

유대인 600만 명의 희생을 치른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다시 유럽에 국경선이 그어졌지만, 어느 나라도 유대인을 받아 주는 나라가 없었다. 폴란드에서는 전후에 또 인종주의로 수많은 유대인이 죽었다. 폴란드에선 330만 명의 유대인 중 300만 명이 희생됐고, 러시아 연방에선 300만 명 중 95만 명이 죽었단다.

그래서 살아남은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땅으로 가는 비밀조직이 결성되었다. 전쟁 전 팔레스타인 땅에는 40만 명 정도의 소수 유대인만 살고 있었다고 한다.

몸이 둥둥 뜨는 사해.
몸이 둥둥 뜨는 사해.

이들이 이스라엘로 향한 건 영국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들은 영국을 도와주는 조건으로 1917년 영국의 외무장관 발포어 선언으로 이스라엘 독립을 약속받았다. 하지만 조상대대로 이스라엘 땅에서 살았던 팔레스타인과 충돌을 우려한 영국은 정작 이주를 허용하지 않았다.

막대한 희생을 치른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정착을 위해 대규모로 이스라엘 하이파 항구로 가는 불법 이민선에 몸을 실으려 했다. 하지만 영국은 해군을 동원해 해안을 봉쇄하고, 지중해 동부의 큰 섬 사이프러스의 리마솔 항구에 난민촌을 건설해 이들을 수용하고 이스라엘 상륙을 막았다. 이 과정은 폴 뉴먼 주연의 <영광의 탈출>이란 영화에 잘 나와 있다.

그렇게 유대인들은 수많은 희생 뒤에도 돌아갈 나라가 없었다. 박물관을 나서며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폴란드·바르샤바의 담벼락에 갇힌 게토에서, 또 아우슈비츠 수용소 등에서 나치에게 그렇게 참혹하게 당했는데도 똑같이 높은 절망의 담을 쌓고 가혹하게 팔레스타인 사람을 억압하는 그들을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골란 고원, 양쪽으로 이스라엘과 남부 레바논, 시리아를 내려다보는 최고의 전략적 요충지. 멀리 눈 덮인 헤르몬산(2,814m)이 보인다.
골란 고원, 양쪽으로 이스라엘과 남부 레바논, 시리아를 내려다보는 최고의 전략적 요충지. 멀리 눈 덮인 헤르몬산(2,814m)이 보인다.

안식일 계산해서 여행해야

이스라엘은 무장한 군인이 모두를 감시하고, 체크한다. 백화점, 큰 상가, 터미널 등 모두 가방을 열고 보안 검색을 받아야 한다. 별로 유쾌하지 않다. 아무리 받아도 적응되지 않는다.

안식일Shabbat이 되면 여행이 아주 어려워진다. 이스라엘 텔 아비브Tel Aviv 국제공항에 토요일에 도착했는데 안식일이라 버스가 다 쉬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택시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갔다. 택시 운전사는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었다. 금요일 오후 1시부터 토요일까지 상점 거의 대부분 문을 닫는다.

많은 도시가 안식일을 법으로 강제하고, 어길 시 벌금을 부여한다. 물론 강제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안식일을 잘 지킨다. 그러므로 여행객은 요일 계산을 잘해야 한다.

이틀간 머문 텔 아비브는 다행히 2014년 상인들이 시 당국을 상대로 오랜 싸움 끝에 이겨 대부분 가게가 안식일에도 문을 연다. 길거리 지키는 군인도 보기 어렵다. 이스라엘에서 완전히 별종인, 자유로운 땅이다.

모처럼 당연했던 자유를 되찾자 이 땅을 스쳐간 수많은 정복자와 분쟁, 종교 갈등을 곱씹어보게 됐다. 중동 분쟁을 조장한 베냐민 네타냐후, 그리고 극우 리쿠드당. 남이야 죽든 말든 총칼로 억압하고 내 국민만 잘 살겠다는 지도자와 종교는 이해하기 힘들다. 머무는 내내, 또 떠나는 순간에도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기 참 힘들었다.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의 높다란 분리벽.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의 높다란 분리벽.

이스라엘 여행 Tip

차를 렌트하는 게 최고다. 이스라엘은 나라가 작고 도로도 간단해 차로 쉽게 구석구석을 모두 돌아볼 수 있다. 

예루살렘은 구시가 성벽 안쪽과 옆 올리브(감람)산에 중요 방문처가 모두 집중되어 있으니 구시가 성벽 근처에 숙소를 정하면 걸어서 모든 곳을 방문할 수 있다. 특히 다마스쿠스 문 근처가 편리하다. 언덕이 많고 거의 모두 걸어서 이동해야 되니 튼튼한 체력은 필수. 예수님 무덤교회, 십자가의 길Via Dolorosa, 황금 돔 사원, 통곡의 벽, 주기도문 성당 등이 다 여기에 있다. 또한 다마스쿠스 문 근처에 거의 모든 시내버스, 트램, 또 팔레스타인 서안지역에 위치한 베들레헴과 서안지구로 가는 시외버스 정류장이 있다.

이스라엘은 전반적으로 물가가 비싸다. 또 현지 여행사의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관광 상품도 매우 비싸다. 물론 저렴하게 둘러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다마스쿠스 문 옆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베다니Bethany행 버스를 타고 방벽 검문소를 지나 베다니에 내려서 팔레스타인 택시를 대절하면 된다.

이스라엘 렌트카는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갈 수 없다. 따라서 방문하고자 하는 곳을 미리 공부해서 팔레스타인 택시기사에게 의뢰하는 것이 좋다. 거의 평생을 이 서안지구에 갇혀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 대부분이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개인적으로 팔레스타인 여행 중에 위험을 느낀 적은 없었다. 아무래도 이스라엘의 흑색선전으로 팔레스타인에 대한 많은 부분이 왜곡되어 있는 것 같다.

본 기사는 월간산 2022년 5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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