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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거칠부 다이어리: 네팔 모하레 단디 트레킹] 알려지지 않은 네팔 오지를 가다 

글·사진 거칠부(필명)
  • 입력 2022.05.27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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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지지 않은 실핏줄 같은 네팔 네팔 모하레 단다 트레킹

스완타에서 팔란테마을을 지나며 만난 웅장한 다울라기리. 우연히 만난 생소한 길에서 여러 번 놀라고 감탄했다.
스완타에서 팔란테마을을 지나며 만난 웅장한 다울라기리. 우연히 만난 생소한 길에서 여러 번 놀라고 감탄했다.

아침에 창문을 열다 눈을 의심했다. 어제는 없던 산이 불쑥 나타났다. 며칠 동안 구름에 가려 볼 수 없었던 다울라기리Dhaulagiri (8,167m)였다. 스완타Swanta(2,270m)를 벗어나 맞은편 마을에 섰을 때도 입이 떡 벌어졌다. 마을 뒤로 선명한 자태의 다울라기리가 눈부시게 빛났다. 사전 정보 없이 오긴 했지만, 이 정도로 멋진 곳인 줄 몰랐다.

이번 안나푸르나 트레킹은 정해진 일정도 코스도 없었다. 지도를 보다가 새로운 곳이 눈에 들어오면, 그곳이 궁금해 코스를 변경했다. 같이한 포터 데브도 적극적이라 우리는 저녁마다 어디로 갈지 상의했다. 그렇게 결정된 곳 중에는 데브가 처음 가는 길도 있었다. 그럴 때는 현지인에게 물어서라도 찾아갔고, 데브는 길을 찾는 데 도사였다.

동행자 없이 혼자 다니는 히말라야에선 자주 그랬다. 그때그때 길을 바꾸고 새로운 코스를 연결하는 게 흥미로웠다. 어차피 여행이란 불확실성의 연속 아니던가. 현지인들은 이번에도 지름길을 알려 주었다. 우리는 망설임 없이 새로운 길로 들어섰다. 안 가본 길만큼 즐거운 길도 없다. 새로운 길은 언제나 옳다.

우리는 스완타에서 고레파니Ghorepani (2,853m)로 가지 않았다. 팔란테Phalante (2,270m)를 거쳐 모하레 단다Mohare Danda(3,320m)로 향했다. 이 선택은 신의 한 수였다. 이름도 모르는 어느 마을에서 잠시 멍해졌다. 흔하디흔한 채소밭 뒤로 그림에나 나올 법한 설산이라니. 생소한 길을 걸으며 잠깐 사이에 여러 번 놀라고 감탄했다. 안나푸르나 주변에는 이렇게 보석 같은 길이 수두룩할 텐데. 그런 생각을 하니 가슴이 뛰었다.

울창한 랄리구라스 숲에서 포터 데브. 고요한 숲에서는 흔한 새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울창한 랄리구라스 숲에서 포터 데브. 고요한 숲에서는 흔한 새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팔란테에서 400m를 오르면 오거리가 나온다. 니카코 비사우네Nikako Bisaune(2,670m)다. 여기서 모하레 단다로 가는 길은 팔란테에서 왔을 때 정면으로 보이는 길이다. 오거리까지는 수시로 갈림길이 나타나니, 되도록 길을 아는 사람과 가는 게 좋겠다.

마을을 벗어나자 랄리구라스 숲으로 이어졌다. 오래된 숲은 네팔 국화인 랄리구라스 나무로 빽빽했다. 벌거벗은 듯한 나무의 표피 사이로 오솔길이 이어졌다. 키가 큰 나무는 너무 높아 고개를 바짝 쳐들어야 푸른 이파리가 보였다. 숲에서는 흔한 새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우리의 발자국과 숨소리뿐이었다. 왠지 어디선가 요정이 훔쳐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숲을 걷는 동안 기분 좋은 상상을 했다. 봄이면 얼마나 많은 꽃이 필지. 3~4월이면 네팔의 야트막한 산(1,200~3,600m)은 랄리구라스로 난리가 난다. 산 전체가 꽃으로 덮인다. 꽃은 빨강, 분홍, 노랑, 하양까지 다양하다. 철쭉 대여섯 송이를 한 다발로 만든 것처럼 꽃송이가 크고 화려하다. 다시 와야 할 이유가 생겼다. 꼭 봄에 와서 랄리구라스로 가득한 숲을 봐야겠다.

안나푸르나의 달밧은 푸짐했다. 특히 네팔식 무장아찌가 맛있어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안나푸르나의 달밧은 푸짐했다. 특히 네팔식 무장아찌가 맛있어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입에 딱 맞는 네팔식 무장아찌 ‘어짜르’

고요한 숲을 빠져나오자 갑자기 환하게 트였다. 풀바리Phulbari(2,925m)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다울라기리산군은 감탄을 넘어 전율을 느끼게 했다. 히말라야 횡단을 하며 꽤 다닌 줄 알았는데, 여전히 히말라야에는 모르는 곳이 많았다. 그러니 조금 더 다녔다 해서 더 다닌 것도 아니다. 평생을 바쳐도 다 못 갈 곳이 히말라야 아닌가.

점심으로 달밧을 주문했다. 역시 안나푸르나의 달밧은 푸짐했다. 맛도 좋았다. 특히 물라 어짜르(네팔식 무장아찌)가 맛있었다. 하도 맛있어서 한 병 샀다. 네팔 히말라야 전역을 다니며 먹어 본 반찬 중 물라 어짜르가 가장 입에 잘 맞았다. 밥도둑이 따로 없어 달밧을 주문할 때마다 잊지 않고 물었다.

기대하지 않았을 때 감동도 큰 법이다. 점심을 먹고 언덕으로 향하다가 저절로 걸음이 멈춰졌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로지lodge(여행자 숙소) 뒤로 랄리구라스 숲이 있었고, 그 뒤로 설산이 펼쳐졌다. 기억해 두자. 랄리구라스가 온 산을 덮을 때 어느 한 날은 이곳에서 온종일 산만 바라보자. 나는 다짐하듯 걸음을 옮겼다.

아침 해에 빛나는 안나푸르나산군. 이곳 어디든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었다.
아침 해에 빛나는 안나푸르나산군. 이곳 어디든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었다.

모하레 단다 로지는 난기Nangi (2,320m)마을 공동체가 운영하는 곳이다. 꽤 많은 인원을 수용할 정도로 규모가 크고, 시설이 깔끔해 머물기에 좋아 보였다. 모하레 단다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식당에서는 다양한 음식을 판매했다. 와이파이가 무료인 데다, 저녁에는 난로에 불을 피워 주었다. 시설이나 서비스 면에서 개인 로지보다 인심이 후했다.

식당은 모하레 단다의 뷰포인트이기도 해서 풍경이 근사했다. 나는 물라 어짜르에 고르카 맥주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주방 아주머니가 볶은 콩을 내주셔서 그것도 챙겼다. 그러고 보면 행복은 참 사소하다. 큰 것보다 작은 것이 주는 달달함에 더 감동한다.

저녁이 되자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가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그동안 다녔던 네팔 히말라야 중에서 안나푸르나 지역이 가장 심심한 곳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와서 보니 안나푸르나만큼 다양한 길을 가진 곳도 없었다.

코프라 단다Khopra Danda(3,660m)에서 모하레 단다까지. 이 길의 어디에서나 안나푸르나 사우스Annapurna South(7,219m)와 다울라기리, 마차푸차레Machapuchre(6,997m)가 보였다. 물고기 꼬리를 닮은 마차푸차레는 웅장한 다울라기리만큼이나 자주 눈도장을 찍었다.

모하레 단다에서 안나푸르나산군을 바라보며 맥주를 마셨다. 안나푸르나의 실핏줄 같은 길에서 보석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모하레 단다에서 안나푸르나산군을 바라보며 맥주를 마셨다. 안나푸르나의 실핏줄 같은 길에서 보석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네팔의 실핏줄 같은 길, 그 아름다움

서둘러 일어났다. 이른 아침이 주는 고요함과 해돋이를 놓칠 수 없었다. 로지 뒤로 우람한 다울라기리가 보였다.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도 얼굴을 마주했다. 멀리 마나슬루Manaslu(8,163m)까지 보이는 깨끗한 아침이었다.

몇 년 동안 ‘히말라야 트레킹’이라는 비슷한 경험의 연속이었지만, 그게 히말라야 트레킹의 모든 경험을 대변해 주지는 않았다. 히말라야에서는 일출을 볼 수 없다고 굳게 믿었던 적도 있었는데, 이번 여정에서 그 믿음이 깨졌다. 새로운 풍경을 마주할 때마다 산에서는 언제나 겸손해야 함을 깨닫는다. 히말라야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이 찰나임을 잊지 않으려 한다.

모하레 단다를 내려서면서 머릿속이 바빠졌다. 언제 다시 이곳에 올지, 쿵쾅거리는 마음 하나를 가슴속에 넣어 두었다. 히말라야는 시기에 따라 색이 다르다. 그 다른 색 때문에 시간을 달리하고, 계절을 달리해서라도 다시 찾고 싶게 한다.

지는 해에 붉게 물든 마차푸차레. 여신의 자태처럼 우아한 모습에 가슴이 쿵쾅거렸다.
지는 해에 붉게 물든 마차푸차레. 여신의 자태처럼 우아한 모습에 가슴이 쿵쾅거렸다.

푼힐Poon Hill(3,193m)까지는 지척이라 금방 닿았다. 왼쪽으로는 다울라기리가, 오른쪽으로는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가 호위했다. 시원한 풍경에 압도되어 카메라를 꺼내기 바빴다. 푼힐에 와서 보니 왜 유명한 곳인지 단번에 이해되었다. 주변 설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다른 이들이 푼힐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가장 먼저 찾을 때, 나는 히말라야의 곳곳을 다니다 마지막에야 찾았다. 히말라야는, 그곳이 어디라도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었다. 내가 찾은 히말라야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소중하지 않은 발걸음이 없다.

데우랄리Deurali(2,990m)에서 점심을 먹고 내친김에 추일레Chuilre(2,245m)까지 갔다. 그리고 간드룩Ghandruk(1,940m)을 마지막으로 한 달 남짓한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마쳤다.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네팔 히말라야의 굵직한 길은 다 걸어보았으니, 이제는 실핏줄 같은 길을 찾아다니면 어떨까. 산간마을을 연결해 구석구석 걷고, 그들의 말을 배우고, 그들의 삶을 가까이서 보는 것. 히말라야에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길이 많다. 마을 사람들이 다니는 길만 찾아다녀도 근사한 트레킹이 될 것 같다. 흔들리는 지프 안에서 나는 다시 즐거운 상상에 빠졌다.

풀바리 언덕에서 바라본 다울라기리산군. 그 아래로 네팔 국화인 랄리구라스 숲이 봄을 상상하게 했다.
풀바리 언덕에서 바라본 다울라기리산군. 그 아래로 네팔 국화인 랄리구라스 숲이 봄을 상상하게 했다.

트레킹 정보


*모하레 단다는 보통 난기마을에서 시작한다. 푼힐, 코프라 단다, 안나푸르나 라운딩,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마르디 히말 등과 연계해 얼마든지 확장할 수 있다. 

*트레킹은 코스에 따라 다양하며 짧게는 3일, 길게는 그 이상도 가능하다. 

*전 일정 로지 이용이 가능하다. 하루 숙박비는 20~30달러.

*가이드와 포터 고용이 의무가 아니어서 혼자서도 가능하다. 포터를 고용할 경우 15~20달러가 추가로 필요하다.

*팀스를 발급받아야 한다. 팀스TIMS:Trekkers’ Information Management System는 민간단체인 네팔 트레킹 에이전시 협회TAAN :Trekking Agencies’ Association of Nepal에서 발급한다. 발급 수수료는 팀스 카드 인쇄, 관리, 마케팅, 홍보, 포터와 가이드의 보험 역할, 트레킹 코스 개발과 보전 업무에 쓰인다.

팀스 카드는 모두 세 가지며 안나푸르나, 에베레스트, 랑탕 트레킹 시 발급받아야 한다.

- 파란색 : 가이드와 포터를 고용하는 그룹(1,000루피) 

- 초록색 : 가이드와 포터를 고용하지 않는 개인(2,000루피)  

- 노란색 : 전문 등반 원정대용

*보존구역Conservation Area 입장허가증Entry Permit이 필요하다. 칸첸중가, 마나슬루, 안나푸르나 등 보전구역에 들어갈 때 낸다. 보통 팀스를 신청할 때 같이 하며 금액은 3,000루피다. 

본 기사는 월간산 2022년 5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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