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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파워우먼 한북정맥 종주 26회] 사유지·철책·군부대…조각난 정맥 잇는게 의미있을까

글 사진 성예진(스윗밸런스 광화문점장)
  • 입력 2022.05.04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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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봉~호명산~챌봉~사패산~도봉산~우이동 33km 여정의 시작

금요일 퇴근 후 무박 산행에 나섰다. 산 입구에서 등산로 안내판을 살피고 있다
금요일 퇴근 후 무박 산행에 나섰다. 산 입구에서 등산로 안내판을 살피고 있다

요즘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한북정맥 끝났어?” 혹은 “언제 끝나?” 한북정맥에 대한 물음이다. 인터넷 연재로 매주 2편씩 글이 올라가고, 지면에도 매달 연재되고 있다 보니 다들 궁금한 모양이다. 연초부터 한 달에 한 번꼴로 산행을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내용이 방대하다 보니 매일 걷는 걸로 오해하는 분들도 있고, 주말마다 산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분들도 있다.

골자는 언제까지 걷는 거냐는 것인데, 현재는 능선으로 이야기하면 우이암까지 걸었고, 돌아오는 주말 파주 장명산까지 남은 길을 걸으면 마무리된다. 주요 구간을 모두 지나고 40km 정도 남았으니 지면에는 한 번 정도, 인터넷 연재는 6회에서 8회 가량 더 실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용은 직접 쓰고 있지만, 인터넷 회차에 따른 분량이나 제목은 내가 정하지 않아서 확실치는 않다.

‘이런 상태의 정맥길을 잇는다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

지난번 산행에서 훼손된 정맥길을 걸으며 즐거움은 고사하고 한북정맥을 걷는 것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이게 무슨 짓인가?’ 싶기도 하고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부터 철책으로 막힌 사유지와 군부대 길들, 원래의 모습이 심히도 훼손된 구간을 보며 드문드문 들었던 생각이지만, 바로 직전의 축석령~샘내고개 구간의 산행은 그 정도가 심했기에 그런 마음이 더 커졌다. 

허나, 이미 벌려놓은 일이니 적어도 마무리는 해야겠기에 길을 나선다. 산행에 대한 기대감과 설레는 마음이 처음과 달리 많이도 반감된 채로. 초반에 힐링하러 떠나는 들뜨기만 하는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지금은 숙제를 마무리한다는 생각으로 남은 거리를 채우고 있다.

오랜만에 야간산행을 해서인지, 입산하는데 분위기가 으스스하다.
오랜만에 야간산행을 해서인지, 입산하는데 분위기가 으스스하다.

날이 따뜻해지면서 수연 언니는 암벽등반 일정이 늘었고, 나는 기존에 하던 업무가 많아져 평일과 주말 가릴 것 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애초에 우리 계획은 서로 한가한 겨울에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한북정맥 종주를 하자는 것이었고, 겨울 안에 한북정맥을 끝내는 것이었는데 생각지 못한 일들이 겹치며 원래의 일정대로 마무리하지 못하는 바람에 일정이 제대로 꼬여버렸다. 

서로 바빠진 요즘, 시간을 맞추기도, 주말을 온전히 한북정맥 종주를 위해 쓰기도 어려워졌다. 언니와 머리를 맞댄 끝에 다른 일정도, 한북정맥도 모두 포기할 수 없어 고육지책으로 남은 산행은 야간산행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퇴근이 늦은 내 시간에 맞춰 진행하기로 했고, 금요일 퇴근 후 산행을 시작하면 금요일 밤부터 늦어도 토요일 오후 해지기 전까지는 끝낼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주말 이틀 중 하루를 아낄 수 있었다. 

주말에 시간이 필요했던 우리는 조금 피곤하더라도 무박 종주를 선택했다. 하나 다행이었던 것은 둘 다 야간 산행을 좋아한다는 것. 언니는 일출 산행을 좋아하는 편이라 야간 산행을 해본 경험이 많고, 나는 원래 새벽 공기를 좋아해 야간산행을 좋아한다. 샘내고개에서 시작해서 사패산 전까지는 야간산행이 가능한 곳이기에 문제 될 것 없고, 국립공원인 사패산 또한 새벽 4시부터 산행할 수 있기에 금요일 저녁, 퇴근 후에 출발하면 여러모로 괜찮겠다 싶었다.

한북정맥을 겨울에 시작했는데 어느덧 봄이 되었다. 봄을 느끼며 4월 1일, 네 번째 정맥길에 오른다. 금요일 오후 9시경 정리를 하고 길을 나선다. 퇴근이 늦은 편이라 가능하다면 평소보다 일찍 움직이고 싶었지만 일이 꼬여버리는 바람에 제 시간이 되어서야 움직일 수 있었다. 퇴근 후 지하철에 곧바로 몸을 던진다. 1호선 종각역에서 양주 덕계역까지 대략 1시간이 걸린다.

고정로프를 잡고 힘차게 오르는 수연 언니.
고정로프를 잡고 힘차게 오르는 수연 언니.

근 한 달 만에 수연 언니와 만날 수 있었다. 비록 숙제하는 마음으로 오른 길이지만 언니를 보니 반갑기 그지없다. 아마 산행을 시작하면 모처럼 마주한 자연에 뛸 듯이 기뻐할 게 분명하다. 반가운 마음과 일찍 오지 못해 미안한 마음까지 쏟아내다 내려야할 덕계역을 지나칠 뻔했다. 언니가 내려야 한다며 말리지 않았으면 수다를 떨다가 몇 정거장을 더 지났을지도 모르겠다.

덕계중학교, 덕산초등학교를 지나 명성아파트 옆 등로를 찾아 산을 오른다. 우리가 찾은 이 길은 우회로이고, 원래 이 구간은 양주장례식장 앞에 있는 샘내고개 버스정류장에서 곧장 산으로 들어가는 길이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경로이다. 선답자의 후기를 찾아보니 원래의 길은 지나다닌 흔적이 선명하지만, 사유지인 까닭에 막힌 길과 몇 년째 진행 중인 공사로 인해서 현재까지도 지나는 길이 상당 구간 막혀있고, 동네에서 풀어둔 개가 사람에게 달려든다고 했다.

‘진입 금지’ 안내판을 지나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공통적으로 산행기에 남아 있어 우회로를 택하는 게 현명할 것 같았다. 다른 길로 조금 더 돌아가더라도 보다 안전하게 가는 것이 좋아 보였기에 우리는 명성아파트 옆의 등산로를 선택했다. 지난번 산행을 마무리한 샘내고개 버스정류장에서 750m 정도 걸으면 이 등산로를 찾을 수 있다.

우회로로 선택한 이 등로는 우리의 목적지인 불곡산보다는 이웃해 있는 도락산 산행을 위한 산행길로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샘내고개에서 좀 더 북쪽으로 올라온 길이기에 이 길은 도락산에 좀 더 가까운 길이 맞기는 하다. 나오는 안내문이 모두 도락산 위주로 되어 있으니 이정표만 보고 정상을 따라가다가는 도락산으로 가기 십상이라 주의를 요한다. 도락산 정상 안내를 따라가다가 갈림길에서 청엽골 고개 방면으로 빠져야 한다.

산으로 들어가는데 분위기가 좀 으스스하다. 오랜만에 산행을, 그것도 야간에 하려니 적응이 되지 않는가 보다. 적응할 때까지 헤드랜턴의 불빛을 가장 센 단계로 두기로 했다. 불을 좀 밝게 밝히니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입구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제법 넓은 공터 가운데 운동기구와 정자가 보인다. 동네 주민들을 위해 조성해둔 체력단련 시설인 듯하다.

산 입구 벤치에서 스틱을 펴며 산행 채비를 하고 있다.
산 입구 벤치에서 스틱을 펴며 산행 채비를 하고 있다.

이정표는 보이지 않고 길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어 초반에 길을 좀 헤매었다. 어느 길로 가도 결국에는 만날 것처럼 생긴 길이라 자신 있게 길을 골랐는데 하필이면 우리가 선택한 길이 주된 등로가 아니었던 탓인지 길이 금세 희미해져서 낙엽이 무성한 길을 밟으며 올라간다. 

초행길인데다 캄캄한 밤이라 길에 대한 감이 전혀 오지 않는다. 전혀 길을 헤맬 만한 위치가 아니었는데 헤맨 것 같은 느낌이었달까? 아마도 훤한 대낮에 다시 가면 왜 헤매었는지 스스로도 모를 만한 길일 것 같다.

오늘도 어김없이 군사 시설물을 지나고, 곧이어 야트막한 능선에 올라서니 도락산과 한북정맥의 갈림길이 나온다. ‘도락산 쉼터’ 안내문이 붙어 있는 넓은 공터에 벤치가 있어 잠시 쉬며 옷가지를 정리한다. 겉옷을 벗을까? 말까? 늘 고민되지만 이렇게 애매한 날씨에는 특히 더 고민스럽다. 날씨가 쌀쌀한 듯했지만 걸으면 몸에 열이 오르니 금세 더워질 게 뻔해서 겉옷을 한 꺼풀 벗어낸다. 몸에 열이 많은 편이라 웬만하면 오름길에서는 더워질 것을 대비해 가볍게 입는 것이 편하게 느껴진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쉼터에서는 스틱을 꺼내고, 옷가지만 정리해서 자리를 떠난다. 지도를 자세히 살피고, 알바를 하지 않기 위해 두 번, 세 번, 여러 차례 확인하고서야 청엽골 고개로 방향을 잡고 걸음을 옮긴다. 갈림길에서는 방향을 잘못 잡을 수 있으니 특히나 조심해야 한다. 수많은 알바 경험을 통해 체득한 조심성이다.

산책로 수준의 넓고 평평한 길이 이어진다.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좋은 길을 걷다 보면 공원묘지를 만난다. 이후부터 고도를 낮춰 내려가는데 밤길에 전방을 주시하며 내려가다가 숨을 고를 겸 정면을 바라보면 맞은편의 불곡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암릉이 우뚝 솟아 눈에 띌 수밖에 없는 형상이다. 주위가 온통 어둑어둑한데다 헤드랜턴으로 불빛까지 집중되니 존재감을 한껏 뽐내며 그 위용을 자랑한다. 

불곡산은 악어바위, 코끼리바위 등 다양한 동물을 닮은 바위와 암릉 지대가 유명한데 밤중에 멀리서 봐도 가파른 암릉이 도드라져 보일 정도로 암릉미가 빼어난 산이다. 묫자리를 지나 도로에 내려서면 ‘숲이 우거져 푸르른 청엽골 고개’ 안내판과 ‘군사시설 구역으로 불곡산 정상에 이르는 등산로는 폐쇄되었습니다’ 군부대 지역 통제 안내문이 나란히 놓여 있다. 

안내문에 그려진 대로 차도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임꺽정봉으로 올라가는 이정표를 만날 수 있다. 차도를 따라 내려가면서도 ‘이 길이 맞나? 지나친 걸까?’ 밤길에 혹시 놓친 길이 있을까 걱정했는데, 200m 정도 내려가니 불곡산 입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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