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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독자기고] 태산 7863개 계단 위에선 儒佛道가 어깨동무

장광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 입력 2022.06.20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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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라한 태산의 계단길.
아스라한 태산의 계단길.

코로나 정국이 3년째다. 세계 여러 나라들이 ‘위드 코로나’ 시책을 채택하는 추세와는 달리 중국은 여전히 ‘제로 코로나’ 정책을 확고하게 고수하고 있다. 이로 인해 중국에서 성省의 경계를 넘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려면 핵산검사나 격리 등 절차가 번거롭기 그지없다. 정부의 일사불란하고 엄격한 방역 정책이 일면 효과적이고 부러운 면도 있다. 그렇지만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이동의 자유를 철저히 통제하는 전체주의의 차가운 얼굴도 보이는 듯하다.

상하이에 부임 후 가까이 지내게 된 소탈한 성품의 지인 두 분과 함께 산둥성 타이안泰安 시에 있는 태산泰山에 다녀오기로 했다. 상하이에서 운행하는 야간 침대열차를 이용하면 태산행이 비교적 수월하다는 제안이 솔깃했다.

금요일 일과 후 상하이역으로 향했다. 며칠째 내리던 비가 어제 하루 반짝 햇빛을 보여 주더니 오늘 다시금 추적이며 도시를 적시고 있다. 어둠이 내린 상하이역에 도착해 젠캉마健康码와 신분증 확인, 엑스레이 검색대 통과 등을 거쳐 역사 안으로 들어섰다. 야간 침대열차는 상하이를 출발해서 쑤저우, 난징 등을 지나고 우리 일행을 목적지 태산역에 내려놓고 랴오닝성의 진저우锦州까지 약 1,100km를 밤새 달려갈 것이다.

오후 8시가 조금 넘어 탑승구가 열리자 열차에 올라 동행 두 분의 좁은 침대 칸 객실에 무릎을 마주 대고 앉았다. 2층 침대 두 개가 서로 마주보게 배치된 루안워软卧 침대칸의 맞은편 2층에 몸을 누이고 있는 젊은 중국인 승객은 기척이 없다. 출행의 설렘으로 들뜬 분위기를 타고 1층 중국인 승객과도 조심스레 말을 튼다. 산둥 태안 부근에 거주한다는 쑨孙 씨 성의 그 중국인은 나와 동갑이고 24세에 결혼해서 상하이에서 의사로 일하는 36세 아들에게 다녀오는 길이라고 한다.

느릿한 속도의 열차가 잠시 정차했던 쑤저우를 출발해서 우시 쪽을 향해 달린다. 차창 밖 어둠 속에서는 빗줄기가 부딪히는 소리만 들린다. 침대칸 승객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누운 채 조용히 뒤척이거나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등 좀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모습들이다. 밤새도록 전전반측하다가 태산역에 도착하기 직전 한두 시간 잠이 들었었나보다. 눈을 뜨니 차창 안으로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들이친다.

오전 8시, 열차가 아담한 규모의 태산역에 정차했다. 내린 승객은 우리 일행을 포함해서 손으로 꼽을 만큼 그다지 많지 않다. 택시로 동악东岳대로를 경유해서 10여 분 만에 태산으로 오르는 출발지 홍문红门 입구로 향했다. 많은 사람들 틈에 끼여 경사진 길을 따라 매표소 쪽으로 향했다. 일천문一天门, 공자등림처孔子登臨處, 천계天階 등 패루牌樓를 거쳐 홍문으로 들어서서 비각 군을 지나서 매표소에 닿았다. 뜻밖에 안내원이 핵산검사 결과지를 제시해야 입장할 수 있다고 한다. 불길한 예감이 눈앞에서 현실로 벌어진 셈이다. 타이안으로 들어올 때와는 달리 태산을 비롯한 관광지에 입장할 때는 48시간 내 핵산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꼼꼼히 확인하지 않은 불찰이다. 중국 각 지역정부의 코로나 방역 정책을 알려주는 앱 ‘뻔디빠오本地寶’를 너무 믿은 탓도 있다.

어느덧 뉘엿뉘엿 지는 해를 따라 승강장을 향해 잰걸음을 잇는다.
어느덧 뉘엿뉘엿 지는 해를 따라 승강장을 향해 잰걸음을 잇는다.

제왕의 정식 코스로 올라

밤새 열차로 달려온 노고를 헛수고로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부근에 있는 ‘해방군 제960의원’으로 달려가서 핵산검사를 받았다. 12시경 결과지를 찾으러 오기로 하고 택시를 잡아타고 대묘岱庙 정문 쪽으로 이동했다. 시간과 다투며 조급해 하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근처 식당에서 교자와 샤오롱바오 등으로 허전한 배부터 채웠다. 진한秦汉 시대 제왕들이 태산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던 장소로 웬만한 도성 못잖은 규모의 높고 경고한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다. 핵산검사 결과지가 손에 없어 그 내부로 들어가지 못하고 정양문 등 겉만 훑어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래도 ‘태산제일행궁泰山第一行宫’ 현판이 걸린 정문으로 들어 정양문 앞 야오찬팅遥参亭에 모신 태산노모泰山老母 신상도 마주할 수 있어 좋았다. 거친 정식 코스를 밟아서 태산에 오르게 되는 셈이니 이것으로 조금 어긋난 일정으로 불편했던 마음의 위로를 삼는다.

다시 핵산검사 음성 결과지를 받아들고 서둘러 홍문으로 향했다. 태산은 산둥성 중부 타이안泰安, 지난濟南, 쯔보淄博 3개 시에 걸쳐 자리하는 해발 1,545m 산이다. 중국 오악의 하나로 대산岱山 대종岱宗 대악岱岳 동악东岳 등으로도 불린다. 상고시대부터 황제를 비롯해 72명의 제왕들이 태산에서 봉선封禅 제사를 올렸다고 하며, 역사서에는 진 시황제(BC 219), 후한 무제(BC 156), 동한 광무제(BC 5), 당 고종(665), 청 강희제(1703) 등 12명의 황제가 태산에 올라 봉선을 행했다고 한다. 세계문화유산, 세계자연유산, 국가 5A급 관광구 등으로 지정된 것만 보아도 태산의 지위를 알 수 있다. 일출日出, 운해옥반云海玉盘, 노을석조晚霞夕照, 황하금대黄河金带의 네 가지 진풍경과 함께 20여 곳의 옛 건축군과 2,200여 개의 비갈석 등이 남아 있다고 하니 태산이 품고 있을 진면목이 어떨지 궁금하다.

태산을 오르는 코스는 대체로 네 가지다. 첫째는 대묘에서 출발해 홍문을 통해 정상으로 오르는 길로 제왕들이 봉선의 예를 올릴 때 지나는 전통적인 코스다. 둘째는 천지광장天地广场에서 버스를 타고 중천문中天门까지 올라 남천문南天门을 거쳐 옥황정玉皇顶까지 오르는 코스다. 셋째는 서북쪽 도화원桃花源 입구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남천문으로 오르는 코스며, 넷째가 동북 쪽 천촉봉天燭峰을 거쳐 오르는 코스다.

우리 일행은 제왕들이 오르던 옛 코스를 따라 태산 문화광장에서 홍문을 거쳐 12시 반경 검표소를 통과해서 태산 정상을 향해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정오경이라 그런지 산객은 아침에 비해 뜸하다.

바람이 없이 차갑게 와 닿는 서늘한 공기가 산행하기 딱 좋은 날씨다. 홍문 아래 서있던 안내판이 해발 230m 지점 관제묘关帝庙에서 해발 1,545m 태산 정상까지 7,863개의 계단이 놓여 있다고 알려 준다. 올라야 하는 계단의 수도 혀를 내두르게 하지만 1,300여 m의 고도 차이가 주눅 들게 한다. 오색에서 설악산 대청봉까지 고도차 900여 m의 힘겹던 산행과 비교해 보아도 만만찮은 산행임에 틀림없다. 그래도 맘 통하는 동행과 서로 기운을 북돋우며 산길 주변 옛 유적들과 풍치를 조망하면서 오를 수 있어 마음속에는 걱정보다 기대가 한층 더 컸다.

산기슭 숲 속 여기저기에서 토종닭들이 간간이 홰치며 먼 길을 달려온 산객을 맞아준다. 계단 옆 뭇 별들의 어머니 두모원군斗母元君을 모신 두모궁斗母宫을 서둘러 둘러보고 다시 산정으로 길을 다잡았다. 중천문을 거쳐 옥황정으로 가는 길목 능선마루에 자리한 남천문까지는 깊숙한 계곡을 따라 널찍하고 가파른 돌계단을 일직선으로 오르는 고되고 무미건조한 길이다. 산기슭에 듬성듬성 거리를 두고 높이 솟아 있는 아름드리 측백나무들이 태백산의 신령스런 주목의 품격을 떠올리게 한다. 멈추었다 오르기를 반복하며 민간에서 천관天官, 지관地官, 수관水官의 삼원대제三元大帝를 모신 삼관묘三官廟, 태산 할머니 신을 모신 벽하령응궁壁霞灵应宫, 도가에서 선경仙境을 의미하는 호천각壺天閣 등을 차례로 지난다.

‘태산은 대저 어떠한가!’

오후 2시경 회마령廻馬岭 패루를 지나 고개를 쳐드니 중천문과 남천문을 연결하는 케이블카 삭도가 가파른 능선 위 하늘에 걸쳐 있다. 태산의 수많은 묘우들 중에는 도교 불교 유가를 비롯해서 민간신앙에서 받드는 여러 신들을 모신 사묘가 허다하다. 회마령 바로 위 해발 800여 m 지점에 자리한 약왕전药王殿도 그중 하나로 인술을 베푼 저명한 의학자로 세계 최초로 나라에서 만든 의서인 <당신본초唐新本草>를 지은 손사막孙思邈(541-682)을 모신 사당이다. 태산에는 기백, 소유, 태을, 화타 등 28명의 신화나 실제의 신의들을 모신 사당이 있었다고 한다. 인생의 고해를 무병무탈하게 건너가기를 바라는 세인들의 간절한 염원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다.

힘겹게 계단을 올라 해발 847m 지점 중천문에 도착하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패루가 반갑기 그지없다. 동쪽으로 중계산中溪山을 바라보고 서쪽으로 굽이굽이 뻗은 봉황령风凰岭이 호위하는 아늑하고 절묘한 지점이다. 지팡이, 기념품, 먹거리 등을 파는 가게들 틈에 이 고장 특산 뉘얼차女儿茶 가게도 눈에 띈다. 평소 차보다 커피에 익숙하지만 중국 각지 갖가지 종류의 차에 대해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 또한 적지 않다.

초보등고初步登高, 인간선경人間仙境, 운로雲路, 천구天衢, 봉회노전峰回路轉, 산고수장山高水長, 진충보국盡忠報國, 불佛, 준령峻岭, 인간천상人間天上 등 중천문까지 오르며 보았던 수많은 석각군이 남천문으로 오르는 계단길 옆으로도 한동안 이어진다. 가히 바위 절벽을 화선지 삼아서 쓴 서예 작품을 전시해 놓은 거대한 야외 전시장이나 다름없다.

태산의 주봉인 거대한 암봉을 등지고 동악묘가 자리한다. 동악대제 등 여러 도교 신들과 한 손에 죽간을 들고 있는 공자 상을 함께 모신 점이 특이하다. 태산은 민간신앙, 칠성신앙, 유불도교의 여러 신과 성인들이 서로 반목 없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대송문 패루를 지나니 남천문까지 하늘에 닿을듯 높이 치솟은 계단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수 천 개 계단과 씨름하는 저 사람들은 무슨 연유로 무엇을 위해서 이런 고통을 감수하며 태산을 오르고 있는 것일까? 많은 산객들은 산행할 때면 세상사 모든 시름을 잊게 되고 정신이 맑아진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산행은 걱정, 욕심, 분노, 오만 등 번뇌를 떨쳐내고 잠시나마 자기 본연의 내면과 마주하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하늘로 가파르게 뻗은 계단을 따라 원나라 때인 1264년에 세웠다는 남천문으로 치고 올랐다. 턱밑까지 차오른 숨과 함께 안도와 뿌듯한 희열의 감정이 밀려들었다. 서편 황애산黄崖山 꼭대기에 걸린 태양이 발걸음을 재촉한다. 인간계를 벗어나 선계로 드는 문일까, 천가天街 패루를 지나 옥황정으로 향했다. 반나절을 어이없이 허비한 탓에 아쉽게도 정상부의 명소들을 둘러볼 여유가 없다. 입구가 굳게 잠긴 옥황묘 아래 너른 조망대에 한참동안 머물다가 정상석이나 다름없는 ‘오악독존五岳獨尊’ 석각 앞에서 동행과 함께 기념사진을 남기는 것으로 위로를 삼는다. 공자, 사마천, 조식, 이백 등 수많은 선인들이 동경하고 숭앙하며 이곳에 올라 감회를 시로 남기지 않았던가. 그 가운데 단연 돋보인다는 두보의 시 ‘망악望岳’으로 태산의 이모저모를 다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본다.

‘태산은 대저 어떠한가? 제노에 걸쳐 가없이 푸르구나. 신령하고 빼어난 기운이 모이고 산의 앞뒤로 아침과 저녁이 나뉘네. 층층 구름에 흉금을 씻어내니 부릅뜬 눈에 둥지로 돌아가는 새가 들어오네. 반드시 산꼭대기에 올라 작은 산들을 한 번 내려다보리라.’

옥황정을 뒤로하고 남천문 쪽으로 내려오는 길, 태산은 짙어지는 어둠에 서서히 몸을 감추고 검푸른빛 하늘에는 둥근 달이 얼굴을 내밀었다. 케이블카와 버스, 택시를 번갈아 타고 다시 좁은 침대칸에 몸을 눕힌다. 7,863개 계단에 지쳐서인지 산행의 여흥을 반추할 겨를도 주지 않고 죽은 듯 깊은 잠에 빠져든다.

월간산 2022년 6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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