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사찰 흥천사] 신덕왕후 강씨와 이방원의 갈등 한복판에 서다

입력 2022.06.13 09:54

흥천사, 파란의 6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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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천사 전법회관. 과거와 현대 양식을 조화한 실용적 디자인이 돋보인다.
조선의 수도 한양을 설계한 정도전에게 도성 안에 사찰이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개국 직후(태조 3년) 천도가 결정됐고, 이듬해 궁궐과 유교 이념의 상징적 건축물인 종묘와 관청 등이 차례로 세워졌다. 그러나 신진사대부들의 의도와 달리, 천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태조 이성계의 뜻에 따라 한양 도성 내에 사찰이 건립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정릉으로 옮긴 흥천사興天寺다. 
흥천사는 이성계의 부인인 신덕왕후神德王后의 능침사찰(죽은 왕과 왕비의 명복을 빌고 능역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한 사찰)이다. 신덕왕후는 조선이 개국된 지 5년이 되던 해 마흔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떴다. 이성계는 사랑하던 아내를 가까이 두고 싶어서 도성 내에 능(정릉)을 만들고 흥천사를 짓고 사리각도 세웠다. 위치는 지금의 정동길로 추정돼 경복궁과 지척의 거리였다. 사찰의 규모는 170여 칸에 달했고 전지田地가 1,000여 결 내려졌다. 기록에 의하면 금빛 채색이 찬란했다고 한다. 
이성계가 세상을 떠나자 태종은 왕위를 둘러싸고 갈등을 벌였던 신덕왕후에 대한 보복으로 신덕왕후를 후궁으로 강등시켰고, 정릉을 일반 묘로 만들어 도성 밖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능의 석물石物은 청계천의 광통교 부재로 썼다. 그렇게 방치되다 200년 후 송시열의 상소에 의해  신덕왕후는 왕후로 복위됐고 능 또한 왕후의 능으로 격을 되찾았다.
능침사찰 역할을 했던 흥천사는 능이 옮겨진 뒤에도 태조의 원찰로 있다가 연산군 때 유생들의 방화로 추정되는 큰 불이 났고, 중종 때 또 화재를 입어 사리각까지 전소돼 폐허가 됐다. 신덕왕후의 복위와 함께 신흥사로 사명刹名이 바뀌었고  흥선대원군 때 원래의 흥천사 이름을 되찾았다.
본 기사는 월간산 2022년 6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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