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사찰] 각밀 주지스님 “조선의 시작과 끝에는 흥천사가 있었습니다”

입력 2022.06.13 09:54

10여 년에 걸친 흥천사 복원은 현재진행형이다. 큰 그림은 완성됐지만 화가가 마무리 작업 하듯 군데군데 미세한 부분을 채워 나가고 있다. 흥천사는 조선왕조 최초의 도성 내 사찰이다. 왕조와 영고성쇠를 함께한 600년 역사를 지닌 고찰이지만 연산군 시절 사림의 집요한 테러와 화재, 그리고 근대 이후 전란으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졌다. 이 절의 복원 작업은 단순하게 예전의 기억을 복기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흥천사 복원은 이 시대 사찰이 어떤 모습으로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흥천사 어르신 모시기
“코로나 전에는 봄·가을로 경로잔치를 열었습니다. 우리는 ‘어르신 모시기 행사’라고 부릅니다. 한 번 행사에 어르신 2,000명을 모셨어요. 전국병원불자연합회에서 ‘무료건강검진’도 합니다. 코로나 추이를 봐야겠지만 가을쯤에는 다시 어르신들을 모시고 잔치를 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각밀 주지스님의 말에서 흥천사 복원의 방향을 읽을 수 있다. 그 방향은 ‘주민 속으로’이다. 전통 사찰 건물과 또다른 느낌의 전법회관에서 흥천사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엿볼 수 있다. 
전법회관은 교육과 포교, 지역사회 융합이라는 흥천사의 방향을 집약한 건물로 새로 단장한 흥천사의 핵심이다. 목조 단청대신 콘크리트를 이용한 현대식 구조와 건물 꼭대기에 올린 한옥이 절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흥천사는 지역 주민에게 열린 사찰이다. 양옆으로 소나무가 늘어선 300여 m의 경내 산책로 끝자락에서 곧바로 북악스카이웨이와 맞닿는다. 주민들은 사색의 공간 흥천사에서 마음을 쉰 후 이내 신발 끈을 조여 매고 편도 11km에 달하는 북악하늘길로 트레킹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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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 각밀 스님은 “흥천사 복원의 키워드는 주민과 함께”라고 말했다.
복원 키워드는 ‘주민 속으로’
각밀 스님은 조선왕조에서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는 흥천사의 역사적 의미를 강조했다. 
“경내에는 왕조의 역사를 지켜본 고목古木이 서 있고 조선시대 서울 근교 사찰의 특징인 대방(염불 수행 공간과 누ㆍ승방 등의 부속 공간을 함께 갖춘 복합 법당·국각등록문화재 583호)이 있지요. 절을 중창한 흥선대원군의 자취가 있는가 하면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의 글씨가 남아 있습니다. 조선왕조의 마지막 비妃 순종황제의 순정효황후 윤씨는 한국전쟁 때 흥천사에서 피란생활을 했고요. 흥천사는 조선왕조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사찰이라 할 수 있습니다.” 
흥천사 경내에 처음 들어섰을 때 세 번 놀랐다. 서울 한복판에 이렇게 큰 사찰이 있다는 것, 옛 모습과 현재의 참신함이 절묘하게 어울린 가람배치, 북악스카이웨이 산책길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 그랬다. 각밀 스님과 차담茶啖에서 흥천사 복원의 주춧돌은 ‘주민과 함께’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 기사는 월간산 2022년 6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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