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우리 땅 걷기 추자도] 나바론 요새처럼 깎아지른 절벽 길을 걷다

  • 글·사진 김영미 여행작가
    입력 2022.06.23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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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찔한 절벽 위 능선을 따라 난 나바론 하늘길은 추자도의 가장 아름다운 해안선을 보여 준다.
    추자도의 옛 이름은 후풍도候風島. 후풍은 ‘순풍을 기다린다’는 의미이다. 후풍도의 의미처럼 추자도는 풍랑을 만난 뱃사람들의 피난처였다. 신라 문무왕 때부터 육지에 조공을 바치기 위해 왕래하던 배들이 추자도에서 후풍했다고 한다. 
    추자도는 상추자. 하추자, 황간도, 추포도  4개의 유인도와 38개의 무인도를 포함해 42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제주의 섬이지만 제주와는 완연히 다른 섬이다. 1910년 제주에 속하게 되기 전까지는 전라남도에 속해 있었다. 지형적으로도 전라도와 조금 더 가깝다. 이러한 연유로 추자도에서는 전라도 사투리가 많이 들리고, 추자도 민박집의 식탁에는 전라도의 푸짐한 인심이 함께 오른다.
    여행은 늘 설렘이지만 이번 여행은 더욱 그랬다. 지난번 너무나 바빠 걷지 못했던 길, 스쳐 지나갔던 곳들이 생각났다. 새벽에 완도에서 출발한 배는 2시간 40여 분 만에 하추자도 신양항에 도착했다. 오랜 친구 만나러 온 것처럼 반갑고 편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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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살배기 아기 황경한이 있었던 예초리 바닷가에 세워진 눈물의 십자가.
    유채꽃이 한가득, 모진이몽돌해변
    민박집으로 가는 길, 차장 밖으로 노란 물결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해풍을 맞아서 더욱 건강하고 싱그러운 유채꽃밭에 마음이 설렌다.  
    유채가 만발한 곳은 모진이몽돌해변. 바로 곁에는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 파란 바다와 노란 유채꽃이 멋지게 어우러진다. 시원한 추자도 바람결에 몸을 맡기고 하늘하늘 춤을 추는 유채꽃들을 위해 파도는 소리로 추임새를 넣어 준다. 
    추자도의 거친 바닷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활짝 피어난 유채꽃은 제주보다 더 노랗고 더 생생하다.   
    꽃잎 하나하나 세밀히 들여다보고 한 송이 한 송이 사진으로 담고 드론으로 하늘에서 전체 유채밭을 조망하며 몇 번이나 감탄했는지. 이것만으로 추자도에 온 이유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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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바론 하늘길의 정상에 있는 정자에서는 알록달록 지붕 집들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바다와 어우러진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
    순례자의 길
    모진이몽돌해변에서 눈물의 십자가로 가는 길은 유채꽃을 배경화면 삼아 바다를 끼고 언덕 위로 올라가는데 산티아고 순례길의 한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이 길은 제주올레길 18-1코스이기도 하다. 한쪽에는 야트막한 산을, 또 다른 쪽은 바다를 친구삼아 걸으니 신바람이 절로 난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옛 도시의 골목여행을 하듯 작은 오솔길을 들락거린다. 작은 숲 터널 밖에는 파란 바다가 기다린다. 바다 끝 언덕 위 전망대에 오르면 추자도 바다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이름도 없는 전망대에 나무의자가 있다. 바다를 보면서 멍 때리기 좋은 곳이다.  
    조금 더 걸으니 어느 집 정원에 있을 법한 예쁘게 단장한 동백나무가 있다. 아주 소담스러운 동백꽃이 가득하다. 나무 아래에는 수북하게 떨어진 동백꽃잎으로 향이 더욱 진하다. 잠시 나무 곁에 기대어 눈을 지그시 감고 동백꽃 향에 취한다. 조금 전에 쉬고 왔던 그 전망대가 까마득히 멀게 보인다. 
    한국 최초의 천주교 박해인 신유박해(1801년) 때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정난주는 제주로 유배 가던 중에 평생 죄인으로 살아갈 아들을 염려해 추자도 예초리 바닷가 갯바위에 두 살배기 아들 황경한을 두고 갔다. 이후에 천주교에서 예초리 바닷가에 ‘눈물의 십자가’를 세웠다. 
    눈물의 십자가로 가는 길. 둘러둘러 돌아가는 섬의 물결이 참으로 아름답다. 아름다운 바다는 눈물의 십자가에 담긴 아픈 사연은 알고 있는지! 
    눈물의 십자가는 황경한의 묘 맞은편의 작은 언덕을 넘어서 예초리 바닷가로 한참 내려가야 한다.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이 자리에 아기를 두고 간 모정은 얼마나 절실했을까? 아기는 또 얼마나 무섭고 놀랬을까? 잠시 눈을 감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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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산의 그늘이 가득한 숲길은 세상과 인연을 끊은 듯 고요하다.
    예초리에서 조금 걷다가 ‘추억이 담긴 학교 가는 샛길’이라는 이름에 이끌려 추석산으로 향한다. 추석날 마을 사람들이 소원을 빌었다는 추석산에는 소원길이 있다. 이름도 정겨운 소원길은 이름만큼 가는 길도 예쁘지만 계단이 엄청 많다. 계단을 오르고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좁은 오솔길을 걷는다. 
    추석은 아니지만 소원을 빌려고 하는 순간, 뜻밖에 일제시대 진지동굴이 나타났다. 안으로 들어서니 벽에 조그만 조각품들이 있다. 표정과 자세가 아주 다양해서 찬찬히 작품을 바라본다. 고통 받았던 그때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서 이런 조각품들을 설치한 것 같다. 작품에 대한 어떤 설명도 없어서 아쉽다. 
    정상 이정표는 없지만 추석산 정상에 서니 예초항이 시원스럽게 조망된다. 눈앞에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신양항으로 향하는 길은 나무가 어리긴 해도 완전한 숲이다. 그늘이 가득한 숲길은 세상과 인연을 끊은 듯하다. 추자도의 매력 중 하나이다. 
    추석산을 내려가니 신양항과 모진이몽돌해변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풍광을 편하게 쉬면서 조망할 수 있는 정자가 있다. 추석산의 끝에는 또 다른 선물이 있다. 바로 동백나무 군락지. 아련한 숲길을 나서면 현실로 나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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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리 앞바다의 섬생이섬에 드리워진 주홍빛의 노을과 노오란 유채가 어우러져 몽환적 풍광을 연출한다.
    용둠범 일몰, 돈대산 일출
    저녁을 먹고 일몰 명당인 용둠벙으로 향하다가 묵리 바닷가에서 막 해넘이를 시작한 햇님을 만났다. 노오란 유채 위에 주홍빛의 노을이 어우러지니 몽환적인 느낌이다. 이곳에서 일몰을 볼까 잠시 망설였지만 예정대로 용둠벙으로 향한다. 용둠벙에 도착하니 기다렸다는 듯이 태양이 바다 가까이까지 내려온다. 때마침 붉은 태양 앞으로 배 한 척이 지나가니 화룡정점의 마지막 한 점이 된다. 완벽에 가까운 오메가 일몰을 선물한 햇님은 의기양양 유유히 바닷속으로 사라진다.
    지난겨울에 돈대산 일출을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서운했었다. 휴대폰 라이트를 켜고 어둠을 뚫고 정상에 오른다. 태양이 불끈 솟을 것이라 생각한 바다 저편을 응시한다. 오늘따라 구름이 짙어서 일출은 기대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다려본다. 
    여명의 색만으로도 참으로 멋진 신양항 앞바다! 파노라마로 신양항과 돈대산 주변을 담고 있던 차에 두터운 구름을 뚫고 햇님이 살짝 얼굴을 내밀었다. 어쩜 태양이 저렇게 화려한 오렌지색일 수 있을까? 구름 밖으로 완전히 나온 태양이 세상을 환하게 밝혀 준다. 쌀쌀했던 대기도 서서히 따뜻해진다. 태양의 엄청난 사랑으로 내 몸도 훈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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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자도의 인심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민박집의 식탁.
    영흥리 벽화마을
    걷다 보니 어느새 구불구불 이어진 상추자도가 보인다. 조금 있으면 나바론요새도 용둠벙도 만나겠지. 묵리에 들어서면 길은 아주 편안한 산책길로 바뀐다. 나무에서 떨어진 동백꽃은 아직도 화려한 자취를 지니고 있다. 돈대산에서 저 멀리 상추자도 속살을 보러 가는 길은 눈길을 돌리는 곳마다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다.
    드디어 추자항. 추자도의 중심이고 가장 번화한 거리이다. 추자항 남안에 살포시 자리 잡은 영흥리 벽화마을로 들어선다. 굽이굽이 굽어져 있는 좁다란 골목 양쪽으로 페인트로 그린 그림이 아닌 예쁜 아트타일로 만든 벽화가 다양한 모습으로 관광객을 맞이한다. 
    물고기, 해바라기, 나비 등 각기 저마다의 모습이어서 바라보는 재미가 있다. 셔터를 누르는 손길이 바빠진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들이 많아서 걷는 내내 동심으로 돌아간다. 
    봉글레산 능선길을 걸으면 아래로는 대서리마을, 저 멀리는 푸른 바다, 바로 곁으로는 용둠벙이 조망된다. 용둠벙은 이렇게 멀리서 보아야 그 매력을 제대로 느끼게 된다. 후포해변으로 내려서면 용둠벙이다. 용이 노는 웅덩이와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용둠벙 정자에서는 날씨가 좋으면 한라산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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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틀밤을 묵었던 언덕 위의 빨간 집은 신양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오션뷰이다.
    추자도의 비경, 나바론 하늘길
    나바론 절벽의 아찔한 절경은 바다에서 바라보아야 제맛인데 그 맛이 궁금하면 바로 이곳에 올라야 한다. 한없이 계속되는 계단을 올라가면 알록달록 대서리마을이 그림처럼 펼쳐 있고, 수직절벽 위로 2km에 달하는 나바론 하늘길이 파노라마로 쭈~욱 펼쳐진다. 아스라이 서 있는 나바론 절벽을 마주하니 가슴이 멍해진다. 
    추자도에서 꼭 가봐야 할 곳 1순위가 나바론 하늘길. 나바론 하늘길은 영화 ‘나바론 요새’에서 등장하는 에게해 캐로스섬의 나바론 절벽해안에서 그 이름을 빌려왔다. 아찔한 절벽 위를 걸으며 눈까지 시원해지는 바다를 바라보고 바위와 숲, 나무와 꽃들을 감상하며 천천히 걸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는 길이다. 나바론 하늘길은 제주 올레길 중에서도 손꼽히는 비경이다.
    오른쪽으로 추자항을 바라보고 추자등대로 향한다. 코끼리 바위를 지나니 걸었던 절벽길은 어디로 가고 시원스럽게 그늘이 드리워진 길과 마주한다. 숲길에서 절벽길로 들어섰다 나갔다를 반복하다 보니 하얀 등대가 내 앞에 우뚝 섰다.
    추자교를 건너 하추자도로 넘어서서 묵리로 간다. 묵리는 마을의 앞뒤가 산에 둘러싸여 있어 바람도 쉬어간다. 묵리고개에 오르면 추자군도의 모습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상추자도에서는 유채꽃을 전혀 보지 못했는데, 묵리에서 신양항으로 가는 길은 유채꽃길이다. 어젯밤에 묵리 바닷가에서 보았던 몽환적인 노란 꽃의 물결과는 완연히 다른 아름다움이다. 
    오솔길 양켠으로 유채꽃이 나란히 피어 있는 꽃길을 걸으니 절로 흥이 난다. 추자의 봄은 묵리의 유채꽃으로 더욱 화려한 모습이 된다. 유채꽃이 끝나는 길에는 매화꽃이 반겨 준다. 이곳은 신양항. 
    추자도의 인심을 느끼려면 민박을 해봐야 한다. 숙박비에 아침, 저녁이 포함되어 있어서 끼니때마다 뭘 먹을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작년에 왔을 때 내 집처럼 편하고 위치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전라도식 음식으로 한 상 가득히 차려진 식사에 반해서 추자도가 더욱 사랑스런 여행지가 되었다. 
    이번 여행도 당연하게 같은 숙소에서 2박을 지냈다. 식재료는 대부분 집에서 키운 제철 야채와 추자도 바다에서 나오는 해초류, 생선류. 모든 음식은 주인장이 직접 만드신다. 이번엔 바다에서 수확한 미역을 살짝 데쳐 주셨다. 추자도 거북손 무침도 먹고 갈치조림에 조기구이까지, 식사시간이 되면 반찬이 궁금해진다.
    제주올레길 18-1코스가 바로 민박집 뒤로 지나간다. 일출 명소인 돈대산 정상까지 걸어서 20분, 일몰 명소인 묵리항까지는 차로 5분, 걸어서 30분이면 충분하다. 일출을 방에 누워서 볼 수 있는 오션뷰. 여행지에서 편안하게 이틀 밤을 보낸 것만으로도 감사한 시간이었다.
    섬, 바다, 바람, 사람이 서로 어우러져 동화되어 살아가는 추자도는 자연도 사람도 문화도 제주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제주인 듯, 제주 아닌 추자도의 매력의 늪은 어디까지일까? 오래지 않아 다시 추자도의 속살을 느끼러 발길을 옮길 것 같다. 
    본 기사는 월간산 2022년 6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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