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부 다이어리] 야크는 풀이 다시 자랄 수 있을 만큼만 뜯어먹었다

  • 글·사진 거칠부(필명)
    입력 2022.06.16 09:55

    네팔 서부 리미밸리 트레킹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네팔 서쪽 오지 해발 2,000~5,000m대에 이르는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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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냘루 라(고개)에서 내려서자 우락부락한 산줄기가 빗자루로 쓸어내린 듯 부드러운 선으로 바뀌었다. 리미밸리 트레킹을 하며 가장 반했던 풍경이다.
    케르미Kermi(2,790m)를 출발하면서 어마어마한 염소와 양 떼를 만났다. 여름 3개월 동안 풀밭을 찾아 이동한다는 목동. 그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염소 몇 마리가 풀밭으로 향했다. 부지런히 풀을 뜯던 녀석들은 목동이 소리치고 나서야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돌아왔다. 덩치 큰 녀석들은 양쪽에 소금 주머니를 지고 다녔다. 금방 태어난 새끼 염소 두 마리를 지고 가는 녀석도 있었다.
    무성한 풀밭을 지나자 허름한 천막이 나왔다. 라마싱 카르카Lamasing Kharka (3,355m)다. 카르카는 목초지라는 뜻이다. 현지인들은 이곳에서 6~8월까지 가축을 방목하고, 9월이면 집으로 돌아간다. 천막 안은 서너 명이 잘 수 있는 공간에 불을 피울 수 있게 돼 있었다.
    점심으로 짬빠(볶은 보릿가루)에 현지인에게 얻은 요구르트를 섞어 먹었다. 다 먹은 그릇을 내려놓자 순식간에 파리 떼가 달려들어 까만 띠를 만들었다. 내 베이지색 모자에도 파리똥이 점점이 찍혔다. 여름철 히말라야 트레킹은 파리와의 싸움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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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팔 서쪽 끝으로 향하는 포터들. 5일 동안 이어진 복통으로 남은 이틀이 두렵기까지 했다.
    훔라Humla 지역의 리미밸리Limi Valley는 네팔 서쪽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곳이다. 워낙 외딴 곳인데다 교통이 좋지 않아 찾는 이가 드물다. 우리나라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아 지금까지 다녀간 한국인이 몇 손가락 안에 들 정도다.
    리미밸리 트레킹은 ‘명상 트레킹’으로도 불린다. 작은 호수인 탈룽 초Talung Tso(4,340m) 뒤로 이어진 길을 따라 중국 국경 근처에 가면, 티베트의 성산 카일라스Kailas(6,714m)와 성스러운 호수 마나사로바Manasarova Lake(4,580m)를 볼 수 있어서다. 모두 불교와 힌두교에서 신성시 여기는 곳이다. 리미밸리 트레킹의 시작점인 시미콧Simikot(2,950m)은 주로 인도 순례자들이 찾는다. 시미콧에서 가까운 카일라스를 방문하기 위해서다.
    이번 트레킹은 네팔 히말라야 횡단의 마지막 구간으로 5개월째 걷는 중이었다. 서쪽에서 함께한 스태프는 가이드 1명에 포터 2명이 전부. 인원이 적다 보니 최소한의 것만 들고 다녀야 했다. 우리는 총사Chhongsa(4,000m)의 천막 옆에 짐을 풀었다. 가이드 겔루는 안전을 위해 우리끼리 야영하는 것보다 현지인 곁을 선호했다.
    밤에 큰비가 내렸다. 7월로 접어들자 비가 자주 내렸다. 전날 뭘 잘못 먹었는지 계속 배에 가스가 차고 윗배가 싸르르 아팠다. 데운 우유와 살구 어짜르(네팔식 장아찌)가 문제였을까. 아니면 야영지 도착 전에 마신 계곡물이 문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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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룽 초(호수) 뒤로 이어진 길을 따라가면, 성스러운 산으로 불리는 티베트의 카일라스와 성스러운 호수 마나사로바를 볼 수 있다. 안타깝게도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되어 가지 못했다.
    비가 그치지 않아 바로 출발하지 못했다. 기다리는 동안 겔루가 향나무로 연기를 피우고 기도를 했다. 이렇게 하면 히말라야 신이 냄새를 맡고 날씨를 좋게 해주실 거란다.
     
    이사 가는 야크 무리가 긴 행렬을 이뤘다. 안개가 짙어 풍경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번 여정에서 가장 높은 고개인 냘루 라Nyalu La(4,988m)까지는 놀랍게도 찻길이 있었다. 중국까지 이어지는 길이었다. 고개까지 오는 사이 구름이 걷혔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우락부락한 산에서 시작한 산줄기가 빗자루로 쓸어내린 듯 부드러운 선으로 바뀌었다.
    야크 무리에 섞여 함께 걸었다. 털이 풍성한 야크는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며 걷는 것처럼 보였다. 새끼는 어미에게서 떨어질까 싶은지 부지런히 따라갔다. 야크 새끼 중에는 태어난 지 하루밖에 안 된 녀석도 있었다. 어미도 새끼도 고단한 여정이다.
    트레킹에 대한 정보가 없어 현지인에게 물어 그날 야영지를 정했다. 다행히 초지가 많은 편이라 야영할 곳은 충분했다. 이곳에는 유독 야크가 많았다. 녀석들은 덩치만 컸지 표정이 순했다. 코를 눌려가며 가지런한 앞니로 풀을 뜯는 모습이 귀여웠다. 야크가 풀을 뜯은 자리는 기계로 잘라놓은 것처럼 짧고 빳빳했다. 염소들은 풀을 뿌리째 뽑아먹어 주변을 황폐하게 하지만 야크들은 다시 자랄 수 있는 정도만 뜯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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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가는 야크 무리에 섞에 함께 걸었다. 야크 새끼 중에는 태어난 지 하루밖에 안 된 녀석도 있었다.
    현지인의 말대로 손가락을 펼쳐놓은 것 같은 물줄기를 만났다. 여름에는 탈룽 초(초는 티베트어로 ‘호수’를 뜻한다) 주변에 물이 넘쳐 길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포터 다와가 등산화를 벗고 먼저 물을 건넜다. 눈 녹은 물이라 몹시 찼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뾰족한 돌이 발바닥을 찔렀다. 얕아 보여도 물살이 셌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물을 노려봤더니 눈이 빙빙 돌았다. 먼 곳을 보라는 다와의 말에 얼른 고개를 들었다.
    갈수록 물이 깊어졌다. 덩치 큰 포터 낭깅이 건너편에 짐을 내려놓고 다시 왔다. 그는 나와 겔루의 손에 깍지를 끼고 밧줄로 서로를 연결했다. 우리는 이런 곳을 대여섯 차례 건너고 나서야 물을 벗어날 수 있었다.
    리미밸리는 다른 히말라야 지역보다 웅장함이 덜했지만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황량하고 쓸쓸하면서도 고요한 끌림이랄까. 그간 알던 네팔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네팔의 대표적인 오지로 알려진 돌포Dolpo와 비슷한 풍경이지만 더 외지고 고립된 곳처럼 보였다.
    쉬는 동안 지도를 펼쳤다. 주변에 희미한 길이 여럿 있었다. 그 길을 보니 언젠가 이곳을 다시 찾겠구나 싶었다. 현지인들만 아는 길을 찾아다니며 네팔 서부에서만 60일쯤 걸어보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두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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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위를 깎아서 만든 길. 바위를 쪼개는 것부터 모든 작업을 손으로 하는 어마어마한 노동의 결과물이다.
    굽이쳐 흐르던 물길이 어느새 잔잔해져 탁체콜라Takchhe Khola로 바뀌었다. 탁체는 이곳의 마을 이름이기도 했다. 여기서 찻길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중국(티베트)이다. 카일라스를 볼 수 있는 곳이지만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 현지인들은 그곳에서 물건을 받아 온다고 했다. 우리는 계곡 가까이에 있는 어느 집 마당에 짐을 풀었다. 긴 하루였다.
    장Jang(3,930m)마을의 집은 독특한 형태였다. 아파트처럼 벽이 나란히 붙어 있어 한 곳을 보고 있었다. 난방과 비용 절감 효과도 있겠지만 그만큼 유대가 돈독하다는 뜻이겠다.
    마을에는 청년들이 여행자들을 위해 운영하는 작은 가게가 있었다. 가게 안에는 중국에서 들여온 과자, 라면, 술, 콜라 따위가 보였다. 주민들은 이방인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지만, 다행히 한 아주머니가 점심으로 감자를 삶아 주었다.
    널찍한 들판이 있는 마을이 나타났다. 리미밸리에서 가장 큰 마을인 할지Halji (3,720m)였다. 마을 사람들은 우리에게 꽤 널찍한 창고와 부엌을 내주었다. 우리는 쥐똥이 널려 있는 창고를 쓸어내고 그 안에 텐트를 쳤다. 저녁을 먹는 동안 동네 꼬마들이 찾아왔다. 녀석들은 이방인이 궁금했는지 한동안 창고 앞을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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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미콧을 출발하면서 만난 현지 마을. 길을 모를 때마다 현지 마을에 물어서 갔다.
    할지 역시 장마을 못잖게 폐쇄적이었다. 마을 소식을 전해 주는 겔루조차 이상하다고 말했다. 할지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이사 갈 때 재산을 모두 놓고 가야 한다. 중국과 인도에 가까워 주로 인도로 일하러 가고, 생필품 등은 중국과의 국경에서 받아 온다.
    티베트 문화가 온전히 남아 있어 학교에서도 티베트어가 우선이다. 마을은 네팔과 다른 규칙으로 운영되고, 네팔 정부에서도 인정해 준단다. 할지는 네팔도 중국도 아닌 작은 독립국처럼 보였다. 네팔 땅인데도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3일 전 시작된 설사가 멈추지 않았다. 걸으면서 처음으로 버거웠다. 목적지인 힐사Hilsa(3,600m)까지 아직 이틀이나 남았다. 평소라면 아무것도 아닌 길이 이제는 두렵기까지 했다. 긴 오르막 앞에서 주저앉기를 몇 번. 고개가 자주 나와 원망스러웠다. 그만 걷고 싶어도 야영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왼쪽은 까마득한 낭떠러지. 거대한 암봉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디쯤에서 멈췄으면 하는 마음만 간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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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르미에서 만난 염소와 양떼. 덩치 큰 녀석들은 등에 소금주머니나 갓 태어난 새끼를 업고 걸었다.
    우리는 라마카 라Lamaka La(4,300m) 직전에 멈췄다. 텐트 대여섯 동 들어갈 정도로 넓은 야영지였다. 근처에 물이 나왔고 누군가 가져다 놓은 땔감도 있었다. 버너가 없는 우리에게 안성맞춤이었다. 불을 피워 음식을 하느라 낭깅이 끓여 준 흰죽에 잿가루가 섞였다. 마지막 쌀이었다.
    밤새 누군가 뱃속을 쥐어짜는 듯했다. 그러다 약이라도 먹어 보자며 지사제를 꺼냈다. 놀랍게도 30분 후부터 통증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진작 먹었으면 그렇게 고생하지 않았을 텐데. 한편으로는 속상했다. 걷는 동안 제대로 즐기지 못해 다음에 꼭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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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을의 집은 아파트처럼 이웃과 벽이 붙어 있는 독특한 형태였다. 8월이면 청보리가 보기 좋아 주로 유럽인들이 찾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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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마카 라 직전에 만난 야영지에서 마지막 캠핑을 했다. 근처에 물이 나오고 땔감까지 있어 야영지로 최고였다.
    드디어 네팔 서쪽 끝. 겔루에게 초록색 부분을 가리키며 저기가 마지막 마을인지 물었다. 겔루는 그곳이 중국이라 했다. 네팔 서쪽 끝은 중국과 맞닿아 있었다. 이 길의 전부를 걸을 수 있을까 했던 게 불과 5개월 전이었는데, 기어코 여기까지 왔다.
    기쁨보다 더 걷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잠시 요란한 꿈을 꾼 듯 지나온 길이 찰나가 되었다. 우리는 세상 끝에 선 사람처럼 한동안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중국 땅을 지나 파란 지붕으로 가득한 힐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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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팔 서쪽 끝에서 본 중국과의 국경. 5개월간의 대장정이 마무리되는 순간이었지만, 기쁨보다 더 걷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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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마을인 힐사로 향하는 길에 만난 거대한 절벽. 이런 곳에도 사이사이에 현지인들이 만든 길이 있었다.
    트레킹 정보
    * 리미밸리 트레킹의 일반적인 루트 : 시미콧(2,950m)-다라포리(2,610m)-케르미(2,790m)-얄방(2,860m)-툼콧(3,380m)-야리(3,720m)-힐사(3,600m)-마네페마(3,990m)-할지(3,720m)-장(3,930m)-탈룽(4,370m)-냘루 라(4,988m)-케르미-시미콧
    * 리미밸리는 네팔 내에서도 상당한 오지로 특별 허가를 받아야 하며 가이드 동행이 필수다.
    * 걷는 기간은 9~10일 정도지만 이동 시간과 예비일을 고려해 20일 이상 필요하다.
    * 몇 군데 로지Lodge(여행자 숙소)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야영으로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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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철 탈룽 초 주변은 눈 녹은 물이 넘쳤다. 서로를 밧줄로 묶어야 할 정도로 깊은 곳도 있었다.
    월간산 2022년 6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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