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야영] 덕룡산, 낮지만 매운 코스… 마음 비우니 절경이 보이더라

  • 글·사진 민미정
    입력 2022.06.15 09:57

    소석문에서 오소재까지, 딱 좋았던 1박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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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작산 덕룡봉에서 능선을 타고 내려오자, 굉장한 풍경과 마주쳤다. 분홍빛 철쭉과 하늘을 향해 치솟은 작천소령, 능선 뒤로 멀리 황금빛으로 물든 바다가 환상적인 하모니를 이뤘다.
    몇 년 전부터 마음에만 담아두고 선뜻 가지 못했던 주작산 덕룡산. 산행 초보 시절, 등산을 시작하자마자 가입한 동호회에서 주작산과 덕룡산 종주 공지가 올라왔다. 당시 산행에 막 재미를 붙이며 종주만 고집하던 천둥벌거숭이였던 나는 그저 덕룡산의 암릉 사진이 멋있어 앞뒤 안 보고 합류했다. 멋모르고 갔다가 고소공포증과 함께 ‘중도포기’한 경험이 있다. 이후 나는 더 험하고 힘든 산행을 이어갔지만, 그때 트라우마 때문인가? 누군가 ‘덕룡산’에 가자고 하면 에베레스트 원정을 가자는 제안을 받은 것처럼 망설였다. 잔뜩 벼르던 차에 주작산과 덕룡산을 종주하고 싶어하는 김혜연과 드디어 도전하게 됐다. 
    4월의 마지막 날 새벽, 강진행 버스를 탔다. 대중교통은 수고스럽지만, 버스 안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강진에서 다시 택시를 타고 들머리인 소석문 협곡으로 이동했다. 기사님은 명문대 입학한 자식 자랑하듯 창 밖으로 보이는 수려한 산세를 가리키며 쉴새 없이 자랑했다. 이런 멋진 자연을 품은 고장에 살고 있다면 충분히 그럴 만했다. 
    이번 코스는 소석문에서 시작, 덕룡산과 주작산을 지나 오소재에서 1박을 한 다음, 다음날 두륜산으로 마무리하는 24km의 장거리였다. 나는 항상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해 필요한 장비를 모두 배낭에 패킹하는 BPHBackPacking Heavy를 표방하지만, 이번에는 혜연의 권유로 BPLBackPacking Light 모드로 움직이기로 했다. 백패킹 장비점에서 근무하는 그녀 덕분에 경량 배낭과 텐트를 빌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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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천소령 암릉구간이 뒤로 보인다. 험난함을 예상하고 이른 아침 서둘러 야영지를 정리했다.
    최고의 풍경, 하지만 고생스러워
    산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된비알이 이어졌다. 야박한 오르막은 초반부터 쉴 틈을 주지 않았다. 그 때문에 선선한 날씨였지만 땀이 얼굴부터 다리까지 주르륵 흘렀다. 능선에 올라서자 덕룡산의 날카롭고 하얀 이빨이 두 눈 가득 들어찼다. 주작산까지 이어지는 암릉군은 공룡능선 그 자체였다. 예전 기억이 떠올라 움츠러들면서도 설다. 그동안 내공이 쌓였으니, 이번엔 문제없겠지? 전의를 다지는데 어디선가 새소리가 바람을 타고 녹음이 짙은 산중에 울려 퍼졌다. 멋진 능선 위로 오페라 공연이 펼쳐지는 듯했다. 갈 길이 멀었지만 걸음을 멈추고 서서 한참 동안 감상했다. 
    남쪽으로 강진만을 둘러싼 논과 밭이 자로 잰 듯 반듯하게 펼쳐졌다. 해발 430m 남짓의 낮은 산이었지만, 설악산 못지않은 기암능선과 풍경을 자랑했다. 옛날 덕룡산에서의 축축한 악몽이 늘 거치적댔는데, 이걸 말끔하게 날려보내려는 것처럼 햇빛은 쨍했고 바람까지 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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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룡산 암릉 구간에는 곳곳에 고정 로프나 철구조물이 있어 안전하게 산행할 수 있다.
    앞을 가로막는 절벽에는 굵직한 로프가 깔려 있었다. 바위에는 발을 디딜 수 있도록 철구조물이 박혔다. 절벽을 오르기에 안전하고 편하긴 했지만, 이것이 예전 덕룡산에서 느꼈던 경외감을 반으로 줄였다. ‘이거 별 거 아니었잖아!’ 더이상 덕룡산은 나를 위협했던 거대한 공룡이 아니었다. 한편으론 철구조물이 눈에 걸리긴 했지만 어쩌랴? 덕분에 산에서 다치는 사람이 줄어든다면 괜찮지 않을까? 
    동봉에는 사람들이 꽤 많았지만 진달래가 만개했을 때에 비하면 한산했다. 정상석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혜연은 배낭에서 얼린 디저트 컵 망고 두 개를 꺼냈다. 아직도 살얼음이 독기를 품고 내 입 속을 차갑게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후로도 혜연의 도라에몽처럼 생긴 배낭에서 간식이 줄줄이 튀어나왔다. 
    “혜연아 이 정도면 너는 BPL이 아니고 BPH 아니냐?” 
    취사도구를 빼고 가벼워진 배낭 무게만큼 간식으로 채워온 혜연이가 웃기면서도 내 몫까지 챙겨오느라 수고한 게 미안했다.
    혜연과 나는 산에서 오랜 시간 함께했다. 산행 스타일은 찰떡궁합이지만 안 맞는 게 딱 하나 있다. 나는 식사를 든든하게 하고 간식을 안 먹지만, 혜연은 식사보다는 끊임없이 간식을 챙겨 먹는 타입이다. 한번은 같이 해외 원정을 가서 밥을 먹는데 나는 누룽지를 끓이면서 스팸을 꺼내 숟가락으로 아무렇게나 떠 넣었다. 그걸 보고 혜연은 “왜 스팸을 거기다 넣어요! 프라이팬에 구워먹지!”라며 타박했다. “갈 길이 먼데 언제 그걸 따로 지지고 끓이냐”며 아무렇지도 않게 스팸 누룽지 탕을 떠먹었다. 결국 혜연은 “우웩” 헛구역질을 하며 먹지 않았다. 다음에는 식사를 건너뛰고 젤리만 먹는 혜연에게 복수했다. 
    “그렇게 밥 안 먹고 젤리만 먹으니까 고산증이 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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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천소령에서 오소재로 이어지는 암릉능선. 아찔한 바위 사이로 아름다운 철쭉이 가득한 비밀의 화원!
    혜연은 나보고 잔소리쟁이라며 궁시렁댔다. 결국 우리는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기로 했다.
    가파른 암릉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산행 내내 ‘4족 보행’ 필살기를 썼다. 게다가 멋진 풍경을 카메라에 담느라 진도는 더뎠다. 오소재까지 갈 수 있을까? 마음은 시속 5km인데 걸음은 시속 1km였다. 정오가 되어서야 서봉에 도착했다. 전망 좋은 절벽에 앉아 김밥을 먹었다. 미슐랭 레스토랑이 따로 있나? 맛있는 음식의 평가 항목에 주변 풍경이 들어간다면 여기는 미슐랭 가이드 별 다섯 개짜리다. 아름다운 새소리를 곁들여 김밥 한 줄을 후딱 해치우고 지도를 봤다. 오소재까지 13.5km인데 이제 3.5km 왔다.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현재 시속 1km. 주작산 구간은 암릉이 없다고 해도 오소재까지 최소 6시간 걸릴 것이다. 야간산행은 절대 지양하는 편이라 완주 의지가 강한 혜연이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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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룡산의 아찔한 절벽 구간. 철구조물이 보기 싫지만 안전하게 이 구간을 통과하려면 꼭 필요한 설치물이다.
    어마어마한 철쭉 평전, 옳거니! 오늘은 여기
    암릉은 난이도가 점점 높아졌다. 평소에는 비밀리에 숨겨두었던 다리의 1인치까지 뻗어야 겨우 그 끝이 닿을 만한 절벽을 기어오르는가 하면, 바위 사이에 배낭이 걸려 빠져 나오기 힘든 구간도 있었다. 몸이 뒤로 고꾸라질 것 같은 절벽에서 줄 하나 의지한 채 겨우 오르는 지경에 이르자 ‘왜 여기는 철심을 안 박아놓았지?’ 타박하기에 이르렀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참으로 간사하다! 죽기 살기로 위험 구간을 겨우 빠져 나오자 우회 길이 보였다. 맙소사!! 이 편한 길을 두고 개고생을 했다니! 고작 김밥 한 줄 먹고 몸을 너무 혹사한 느낌이었다. 클라이맥스 구간이 끝나자 주작산 덕룡봉이 나왔다. 이제부터는 좀 수월해지려나? 
    아직 해가 지려면 멀었고, 능선을 지나 하산하면 작천소령이다. 이대로라면 험난한 작천소령 능선에서 야간산행의 쓴맛을 보게 될 것 같았다. 빨리 혜연이를 멈출 그럴듯한 대책을 세워야 했다. 주작산 구간은 그간의 고생을 보상이라도 하듯 철쭉이 만발해 있었다. 작은 언덕을 하나 넘고 나니 어마어마한 철쭉 평전이 펼쳐졌다. 철쭉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걷는 혜연의 뒷모습과 그 너머 오소재로 이어지는 작천소령 능선이 장관을 이뤘다. ‘옳거니! 오늘의 숙영지는 여기다!’ 혜연을 불러세우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우리 이대로 저 능선을 시작하면 야등을 해야 하는데, 암릉구간이라 안전할지 모르겠어. 네가 꼭 원한다면 가겠지만, 나는 내일 아침 햇살에 녹아 드는 핑크빛 철쭉을 감상하고 싶어. 여.기.서.” 
    “나도 아침에 여기가 예쁠 것 같아요. 근데, 내일 두륜산까지는 꼭 완주하고 싶어요.” 
    혜연은 나긋나긋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 좋아!! 그럼 내일 산행시간이 기니까 일출 보기 전에 다 정리하고 해 뜨면 바로 출발하자!!” 
    그녀가 안심하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내일 또 그녀를 설득할 수 있을 거라는 걸. 우리의 종착지는 오소재가 될 것이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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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천소령에서 이어지는 암릉 능선의 전망바위에서 풍경을 만끽하는 김혜연씨. 뒤편으로 주작산 덕룡봉이 보인다.
    다음날 아침 우리가 기대했던 것만큼 아름다운 일출 쇼가 열렸다. 아침 햇살을 받은 철쭉들이 새소리에 기지개를 펴며 깨어나는 듯했다. 잔잔한 바람에 일렁이는 ‘핑크요정’들이 조잘대고 있었다. 여기서 멈춘 건 신의 한 수였다. 나는 재빨리 오소재에서 멈출 다음 핑계거리를 찾았다. 일단 분주하게 짐 정리를 했다. 혜연에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작천소령에서 오소재를 잇는 능선은 작은 덕룡산 같았다. 아기자기했지만 난이도는 절대 뒤지지 않았다. 문제는 풍광이 멋진 만큼 전망대도 많아서 ‘알바’하기 일쑤였다는 것. 길인가 싶어 오르면 어느새 절벽 끝과 마주쳤다.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 기어올랐던 바위에서 다시 내려가면 멀쩡한 등산로가 나타나는 식이었다. 어제 어둠 속에서 이 길을 걸었다면 바위 위에서 웅크리고 잘 뻔했다. 또 시속 1km로 움직이다가 혜연에게 말을 꺼냈다.
    “혜연아, 우리 이대로라면 밤 돼서 서울 가겠는데?”
    “그러게요.” 
    그녀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여기서 쐐기를 박기로 했다. 
    “올라가는 교통편도 그렇고, 우리 오소재까지만 갈까?”
    “그래요 그럼. 무리하지 말아요 우리.” 
    좋아좋아! 계획대로 됐어! 결국 우리는 능선의 전망대마다 들르며 느긋하게 경치를 구경하면서 오소재에 도착했다. 완벽한 산행이었다. 오소재 약수터에 들러 목을 축이고, 택시를 불렀다. 정자에 앉아 쉬는데, 혜연이의 배낭에 송충이가 내려앉았다. 혜연이는 송충이를 떼어내려는 듯 배낭을 흔들며 한마디 했다. 
    “아니! 집 떠나 서울까지 갈까봐 떨어지라고 경고했는데, 안 떨어지네요. 손발이 안 맞네 안 맞아!!!” 
    나도 한마디 했다. 
    “네가 걔랑 손발이 맞으려면 네 손발이 몇 개가 더 있어야 하는 거야!?” 
    나의 시답잖은 농담에 혜연이는 언제나처럼 미소를 머금고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적당히 마무리된 종주 산행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민미정의 깨알 팁 <BPL용 경량 장비>
    이번 산행 콘셉트는 BPL이었다. 배낭부터 시작해 안에 들어가는 내용물을 최대한 가볍고 간소하게 꾸렸다. 배낭 무게를 줄일 수 있는 결정적인 장비는 바로 텐트다. 이번에는 싱글월 비자립식 텐트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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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이도가 높은 주작산 덕룡산 종주 백패킹에는 경량 배낭에 장비를 간소화해 무게를 줄이는 게 좋다.
    배낭 : Six Moon Designs FUSION 50L, 1.4kg
    장점 ‌토르소(등판 길이) 조절이 가능하고, 15kg으로 패킹했을 때, 어깨나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무게가 고르게 분산된다. 장거리 산행임에도 무게로 인한 피로감이 덜했다. 등판은 메시로 되어 있어 쾌적했고, 사이드 포켓은 신축성이 있어 재킷이나 카메라 보조기구를 수납하기 쉽다. 
    단점 1박 2일 일정에 딱 알맞았다. 뚜렷한 단점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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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경량 알파인 텐트로 설영한 모습.
    텐트 : Six Moon Designs 싱글월 비자립식 텐트(3계절용), 740g
    장점
    ‌초경량이라 무게나 패킹 사이즈면에서 BPL에 최적이다. 이너메시 바깥으로 전실 도어가 양쪽으로 열려 텐트 안에서도 시원스럽게 뷰를 감상할 수 있다. 
    단점 ‌비자립이라 설치 시 시간이 걸리고, 공간이 넓지 않은 알파인 지형에서는 설영에 제한이 있을 수 있다.
    본 기사는 월간산 2022년 6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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