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어디까지 아세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비양도를 아시나요?

  • 글·사진 이승태(여행작가, 오름학교 교장)
    입력 2022.06.14 09:54 | 수정 2022.06.14 13:56

    제주 서쪽의 작은 섬, 배로 14분이면 닿아… 3.5km 해안선 트레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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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에서 본 비양도와 비양봉. 얼핏 보면 가오리를 닮은 듯하다.
    제주도는 본섬을 기준으로 동서남북 각 방향에 사람이 사는 유인도가 분포한다. 동쪽엔 누운 소를 닮았다는 우도가 아름답고, 북쪽 추자도는 낚시인들에게 성지로 통하는 큰 섬이다. 남쪽엔 청보리 축제로 유명한 가파도와 국토의 최남단 섬 마라도가 신기루 같고, 서쪽엔 제주의 유인도 중 가장 작은 비양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곳에서 본섬을 마주보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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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양리 중앙의 팽나무 쉼터.
    어린 왕자가 사랑한 섬 비양도
    협재해변에서 빤히 건너보이는 비양도는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에 나오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쏙 빼닮았다. 아무리 봐도 똑 같다. 실제 비양도에 있는 초등학교 동쪽 벽엔 어린 왕자와 그의 절친인 여우가 비양도를 보며 코끼리를 닮은 보아뱀을 연상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고, 비양봉 너머 서쪽엔 바다에 들어가 첨벙대는 코끼리를 닮은 바위가 눈길을 끈다. 
    제주 여행자에게 비양도는 숙제 같은 곳이다. 제주를 수십 번 찾았어도 비양도와 인연이 닿기가 쉽지 않아서다. 가려고 할 적마다 바다가 심술을 부려 길이 막히거나 시간이 애매해 포기하기 일쑤. 그래서 운이 억세게 좋아야 찾을 수 있는 신기루 같은 섬이다.   
    비양도는 0.59㎢의 면적에 해안선 총 길이가 3.5km밖에 안 될 정도로 작고, 한림항에서 배로 14분이면 닿을 만큼 본섬 제주도에서 가깝다. 한림항 부둣가에서 보면 비양봉이 곧 비양도다. 섬 전체가 하나의 봉우리고 또 오름인 셈. 둥근 비양봉 자락에 예쁜 지붕을 한 나지막한 집이 옹기종기 모인 형국이다. 
    “비양도 해설 듣고 가세요!”
    배에서 내리자마자 누구나 듣게 되는 소리다. 비양도를 찾은 여행객을 상대로 지질공원해설사가 비양도 탐방안내도 앞에서 비양도에 대해 친절하기 그지없는 설명을 해준다. 10분 남짓한 이 설명은 꼭 들어야 한다. 설명을 듣고 나면 비양도는 완전히 달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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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양봉의 굼부리. 등대 너머에도 깊은 굼부리가 하나 더 있는데, 이처럼 또렷한 쌍굼부리는 제주 오름 중에서 비양봉이 유일하다.
    학생이 없는 비양초등학교
    비양도는 지난 4월부터 방영을 시작한 tvN 주말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촬영지 중 한 곳이다. 이 드라마는 이병헌과 신민아, 김혜자, 고두심, 차승원 등 초호화 캐스팅과 따뜻하고도 탄탄한 스토리로 인기몰이 중이다. 
    또 2005년, 고현정과 한고은, 지진희, 조인성 등이 열연한 SBS 드라마 ‘봄날’의 무대여서 이를 기념하는 대형 조형물이 마을 한복판 바닷가에 낡은 모습으로 서 있다. 작은 절 하나와 비슷한 크기의 교회, 아담한 소방서와 로스팅 카페도 보인다. 마을을 휘 둘러보고는 지질공원해설사의 설명대로 반시계 방향으로 섬 일주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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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양도 등대로 이어지는 데크길. 바다 건너 멀리 금오름이 가늠된다.
    마을의 동쪽 끝, 한라산을 마주한 바닷가에서 섬의 유일한 학교를 만난다. 정확한 이름은 ‘한림초등학교 비양분교장’. 그냥 너른 정원을 가진 가정집쯤으로 착각하기 좋은 모습이다. 빈틈없이 잔디로 덮인 운동장은 좁아서 100m 달리기는 꿈도 못 꿀 사이즈. 
    그래도 한켠에 미끄럼틀과 시소, 철봉이 보이고, 울타리로 심은 해송과 후박나무 아래로 문주란이며 수국이 아름답다.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 조그만 초등학교는 몇 해 전까지 교사 한 명에 학생 두 명이 등교하는 배움의 터전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모두 졸업해 중학교로 진학하자 자연스레 문을 닫아 지금은 휴교 중이다. 
    한전 비양도발전소를 지나 펄랑못으로 이어지는 해안길, 바다 건너로 제주 본섬이 길게 늘어섰다. 마라도나 가파도에서 볼 때는 제주도가 한라산이더니 여기서는 오히려 본섬 내에서 한라산의 존재감이 그리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협재해수욕장 뒤로 솟은 금악리의 금오름은 그 형태가 비양도와 판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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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중에서 본 비양리. 알록달록한 지붕 컬러가 바다 빛깔과 잘 어울린다.
    컬러풀한 코끼리바위
    펄랑못은 바닷물이 스며들며 만들어진 습지다. 때문에 간만干滿에 따라 펄랑못 수위도 바뀐다. 비양도 사람 대부분은 ‘펄랑못’이라 부른다는데, 부둣가의 안내도엔 ‘펄렁못’이라 적혀 있다. 습지 둘레를 따라 마련된 산책로에서 보니 비양봉엔 억새와 소나무가 많다. 
    습지를 지나자 아까 해설사가 자랑하던 섬의 뒷모습이 조금씩 드러난다. 주름처럼 펼쳐진 용암구조물인 ‘파호이호이 용암해안’과 비양도에 있는 다양한 형태의 용암구조물을 전시해 둔 ‘비양도 암석 소공원’도 보인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애기 업은 돌’이라고도 부르는 ‘용암굴뚝[호니토Hornito]’. 용암이 솟아오르던 모양 그대로 굳은 용암굴뚝은 제주에서도 흔치 않은 것으로 예전엔 비양도 해안을 따라 40개가 넘어 진풍경을 이뤘다는데, 부잣집 정원석으로 하나둘 팔려나가고 이젠 절반쯤 남았단다. 다행스럽게도 현재는 천연기념물 제439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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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말죽 상차림.
    용암굴뚝해변을 지나니 이번엔 바다로 들어가려는 거대한 코끼리 한 마리가 눈길을 끈다.  해설사가 “자기 혼자 바다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코끼리”라고 하던 그 바위다. 우리나라 코끼리바위 중 가장 크다고 한다. 굴업도의 코끼리바위가 시커멓기만 한데 비해 비양도의 이 바위는 등짝에 자란 풀과 머리 쪽을 덮은 갈매기 배설물로 인해 컬러풀하다. 
    코끼리바위는 비양도의 또 다른 굼부리가 파도와 바람에 침식되어 지금의 모양만 남은 것인데 주변에 커다란 화산탄도 널렸다. 개중엔 10톤쯤 되는 큰 것도 있다. 그 검은 돌무더기 사이에서 사람들이 뭔가 열심히 작업하고 있어 다가가 보니 파도에 밀려온 미역을 채취 중이란다. 태풍이나 큰 파도가 지난 후엔 섬사람이 아니어도 누구나 채취가 가능하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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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꼭 들어야 하는 비양도 해설. 듣고 나면 비양도가 달라 보인다.
    비양도 구경, 반시계 방향이 좋아
    해안을 따라 조금 더 돌아가니 길옆으로 육각 지붕을 한 쉼터가 보이고, 그 옆으로 비양봉으로 오르는 계단이 놓였다. 짧은 계단 끝에서 이어진 조릿대 숲을 지나자 지금까지와는 다른 비양도 풍광이 펼쳐진다. 듬성듬성 소나무가 자라는 비양봉 사면 가득 억새가 무성하다. 
    펄랑못에서 본 비양봉 풍광 속으로 들어선 것이다. 길을 따라 뽕나무가 지천이다. 길은 곧 왼쪽으로 갈리며 살짝 가파른 계단이 시작된다. 직진하면 마을이 가깝다. 계단 시작점의 작은 팻말에 ‘정상 500m’라 적혔다. 
    잠시 후 닿은 비양봉 능선. 깊이 파인 굼부리 건너 정상에 하얀 등대가 우뚝하다. 여기서도 반시계 방향으로 걸음을 옮긴다. 아까 해설사의 조언 때문이다. 능선을 따라 걷자니 오른쪽으로 바다 건너 한라산과 제주 본섬의 서쪽 해안 풍광이 시원스레 펼쳐졌다. 발아래엔 비양리의 알록달록한 지붕들이 푸른 바다와 어우러지며 그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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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재해수욕장과 비양도. 제주의 유인도 중 본섬과 가장 가깝다.
    누대가 길을 뒤덮은 구간을 지나니 망원경이 설치된 전망대가 나타난다. 예전엔 이런 망원경을 보려면 500원짜리 동전을 넣어야 짧은 시간 렌즈가 개방되었는데, 언제부턴가 전국 거의 모든 망원경들이 공짜가 되었다. 생각해 보니 어릴 때 전국 버스정류장이나 역 대합실의 화장실을 이용할 때도 이용료가 필요했었다. 공짜가 참 많아진 세상이다. 
    전망대를 지나 가파른 비탈을 오르니 정상의 비양도 등대다. 무인등대인 비양도 등대는 육지에서 한림항으로 들어오는 선박들에게 중요한 항로표지 역할을 하고 있단다. 일대 바다가 얕아서 그 어느 등대보다 요긴하다고. 1955년에 점등되었다고 하니 짧지 않은 역사도 지녔다. 
    등대를 중심으로 비양봉 굼부리는 둘로 나뉜다. 둘 모두 생각보다 깊고 가팔라 놀랍다. 하산은 올랐던 길을 만나 마을로 내려서면 된다. 몇 해 전까지는 두 개 굼부리를 다 둘러볼 수 있었으나 지금은 상대적으로 가파르고 길이 험한 북쪽 굼부리는 출입이 통제되었다. 그나저나 속 시원히 뚫린 사방 조망 때문에 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으니 야단났다.
    Info
    교통
    한림항에서 ‘천년호’(09:00, 12:00, 14:00, 16:00)나 ‘비양도호’(09:20, 11:20, 13:20, 15:20)를 이용한다. 한림항 출발시간에서 매 15분 후마다 비양도에서 배가 출발한다. 요금은 왕복 9,000원. 최소 출발 30분 전에는 선착장에 도착해야 하고, 신분증이 있어야 승선이 가능하다. 또 왕복 모두 같은 회사의 배만 이용할 수 있다.  문의 : 천년호 064-796-7522 / 비양도호 064-796-3515
    주변 볼거리
    협재해수욕장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에 있는 해수욕장으로, 비양도를 마주보고 있다. 수심이 얕고 경사가 완만한 바다에 조개껍질이 많이 섞인 은모래가 가득해 온통 에메랄드 빛깔을 띤다. 여름철이 아니어도 많은 이들이 찾는 곳으로, 카야킹도 즐길 수 있다. 
    먹을 데(지역번호 064)
    비양도는 보말죽을 잘하는 집이 여럿이다. 마을 중앙의 작은 팽나무쉼터 뒤에 있는 ‘보말이야기’에서는 비양도 바닷가에 흔히 자라는 번행초로 무친 나물을 반찬으로 내놓는다. 독특한 식감과 맛이 보말죽과 무척 잘 어울린다. 보말이야기(796-8422), 아람식당(010-8662-8489), 호돌이식당(796-8475), 민경이네식당(796-8973) 등.
    본 기사는 월간산 2022년 6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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