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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경상도의 숨은 명산] 이 많은 철쭉, 가야인이 심었을까?

글·사진 김병용 북텐츠 대표
  • 입력 2022.06.22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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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어산 630m

옛가야의 기상이 느껴지는 김해평야.
옛가야의 기상이 느껴지는 김해평야.

대한민국에는 4대강을 중심으로 하는 평야가 있다. 낙동강을 근간으로 하고 있는 김해평야는 가야 문명의 발생지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성씨와 본을 가진 김해 김씨의 시조인 김수로 왕릉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부산과 경남 일대의 본원이 김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번 산행은 주말에는 농장을 운영하고 주중에는 도시에서 공유 오피스를 운영하는 ‘홈어라운드’ 장두환 대표와 동행했다. 전날까지 신어산의 루트를 확인하다가 산불통제구역이라는 복병을 만나 새롭게 코스를 수정하느라 분주했다. 새롭게 정한 코스는 글과 사진으로 확인할 수 없어 미지에 대한 걱정으로 그리고 새로운 모험에 대한 설렘을 안고 신어산으로 향했다.

신어산과 김해의 모든 것을 조망할 수 있는 철쭉 군락지.
신어산과 김해의 모든 것을 조망할 수 있는 철쭉 군락지.

‘내려’다보며 ‘올라’가는 산행

출발하던 시간에 날씨는 흐렸다. 회색 하늘과 회색으로 포장된 임도. 하늘에서 결핍된 5월의 푸름은 신어산이 모두 떠맡았을 거라는 믿음을 안고 산행을 시작했다. 오히려 약간 흐린 날씨는 산행하기에 안성맞춤이기도 했다. 그리고 야외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도 돼 오랜만에 마스크에서 해방된 산행을 할 수 있어 좋았다. 뒤에서 불어오는 약간의 바람을 기대어 올라가다 보니 천불사에서 들려오는 목탁 소리를 듣게 되었다. 왼쪽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자석처럼 이끌려 신어산 들머리에 다다랐다.

들머리는 등산객들을 배려해 계단처럼 포장되어 있었다. 무엇이 그리도 급했는지 길 중간에 코스모스가 수줍게 피어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요즘 보기 힘들다는 벌이 꿀을 채집하고 있었다. 회색 하늘은 오히려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녹음을 더욱 짙게 보이게 하였다. 산의 경사는 우리에게 약간의 거친 호흡만을 요구할 뿐이었다.

보통의 산행은 올라가기에 정신이 없어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었지만 신어산의 오르막은 우리에게 약간의 여유를 선사했다. 5월이라 상당히 더울 것 같아 생수 2통을 준비했는데 그 무게가 약간 거추장스러울 정도였다. 어쨌든 우리는 신어산을 눈으로 밟으며 차근차근 정상 630m에 다가갔다.

나무가 우거진 숲을 20여 분 올라가다 보면 거친 호흡과 자칫 녹음에 지쳐버린 눈을 달래줄 김해평야가 한눈에 들어오는 넓은 바위가 기다리고 있다. “우와~” 소리가 절로 나오는 경치였다. 바다의 수평과는 다른 평야의 수평은 부산 촌놈들의 눈을 완벽하게 매료시켰다. 그리고 그 평야의 끝에는 가덕도 바다로 향하는 낙동강의 물줄기가 보였다. 하늘에는 독수리로 추정되는 새가 까마귀와 군무를 벌이고 있었다. 우리는 황야가 아닌 평야의 정복자처럼 바위에 올라섰다. 정면에서는 평야가 보이고, 왼쪽에는 산 능선들이 내 눈을 희롱했다. 그리고 어디에선가 룰라의 ‘날개 잃은 천사’가 들려왔다.

아름다운 구도를 가진 정자.
아름다운 구도를 가진 정자.
신어산 정상.
신어산 정상.

철쭉은 지지만 몸짓은 끝나지 않았다

신어산을 선택한 이유는 사실 철쭉에 있었다. 이유는 경기 잡가 구절에 ‘화란춘성花爛春盛 하니 만화방창萬化方暢’이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꽃 하면 봄이 떠오르고, 5월하면 철쭉이 떠올라서 신어산을 택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신어산을 오르면서 산과 봄을 꽃에만 국한시킨다는 것은 잔인한 짓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것이 만화방창하기에 봄이 가능하고 산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신어산의 올라가는 품은 넓었고 중간 중간 평야를 조망할 수 있는 멋진 바위도 있었다. 그리고 편백나무숲으로 조성된 데크길은 낭만이 가득했다. 정상에 가까울수록 기대했던 것만큼 철쭉의 색이 울긋불긋하진 않았지만, 넓은 군락 곳곳에서 자태를 뽐내고 있는 늦둥이 철쭉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신어산 철쭉 군락지는 예상보다 훨씬 넓었다. 정상 부근이라 꽃놀이하기에 그만이었다. 꽃놀이에 약간 수줍어하는 세 아이의 아빠인 장두환 대표와 광활하게 펼쳐진 꽃밭에서 경치를 즐긴 후 채 20m 높이도 남지 않은 정상으로 향했다. 정상에서의 하늘은 파란 곁을 내주었다. 정상에서 가볍게 요기하고 앞으로 다가올 험난한 여정은 예상하지 못하고 하산을 서둘렀다.

‘신어산神魚山’을 있는 그대로 뜻풀이를 해보면 영험한 바다 생명체를 뜻한다. 다대포 몰운대에서 신어산을 보면 바위가 보이는데 마치 거북이가 산을 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그 바위 이름이 영구암이다.

약간의 스릴을 느낄 수 있는 출렁다리.
약간의 스릴을 느낄 수 있는 출렁다리.
귀여우면서도 신령스러운 거북바위.
귀여우면서도 신령스러운 거북바위.

골산의 면모를 갖춘 하산길

처음 하산길은 하산이라기보다는 등산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산에 대한 약간의 불만이 생기던 찰나 신어산은 추상같이 내리막길을 선사했다. 큰 돌, 작은 돌이 조화롭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이가 들면 내리막길이 무섭다는 말을 종종 듣곤 한다. 돌과 돌 사이를 헤집고 용맹하게 내려가기 시작했다. 월간<山> 신준범 기자의 “등산할 때는 무릎 때문이라도 반드시 스틱을 가지고 가세요”란 말이 귓가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스틱만 들고 왔더라면, 하산길의 절경 또한 감상할 수 있었을 거란 안타까움이 일었다.

등산로를 벗어나 임도에 다다랐다. 임도의 경사도도 만만치 않았다. 우리 뒤를 따르는 등산객들 중 한 분은 뒤로 걸으면서 내려가는 방법을 택했다. 우리는 길이 조금 늘어나더라도 지그재그로 걷는 방법을 선택했다. 험난한 하산길이 예상치 못한 큰 웃음을 선사했다. 우리는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서글퍼했으나 어떻게 나이 들어가느냐에 따라 유쾌할 수도 있는 일이다. 지그재그로 걸어가는 일행이 나에게는 신어산의 부처로 보였다. 산의 영험한 기운 탓인지 절이 다른 산들에 비해 꽤 많이 보였다. 시간이 된다면 절 몇 군데를 들러 감상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어산은 여러모로 문수산과 많이 닮은 듯한 느낌이었다. 올라갈 때는 편안하지만 내려갈 때는 그리 순탄하지 않다. 하지만 문수산은 아주 큰 기암절벽이 특징이라면, 신어산은 동글동글한 바위들이 즐비했다. 하산길 중간에 거북바위를 보았는데, 직접 눈으로 보는 것과 달리 이리 찍고 저리 찍고 해보아도 결국 눈으로 담는 것보다 못하다는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

산을 오르는 이유 중에 대부분의 주된 이유가 건강일 것이다. 산을 타는 분들은 대부분 건강한 육체를 가졌다고 생각한다. 강력한 폐활량과 평소 거친 호흡만이 ‘등산의 전부’라고 생각하시는 산악인들에게는 우리가 올랐던 코스의 정반대 방향을 강력히 추천한다. 아침에 등산했을 때와는 달리 활짝 갠 햇살을 받으며 부산으로 돌아갔다.

막걸리 마실 생각에 들떠 발걸음이 가볍다.
막걸리 마실 생각에 들떠 발걸음이 가볍다.

산행길잡이

한일여자고등학교~천불사~신어산 들머리~편백나무 숲길~철쭉 군락지~정상~ 출렁다리길~헬기장~천진암~은하사~은하사 주차장~신어마을(5시간 소요)

교통

부산 지하철 3호선을 타고 강서구청역에서 내려 버스 128-1번을 타고 김해 한일여자고등학교에서 하차하면 된다. 

숙식(지역번호 055) 

숙박은 신어산 인근의 모텔을 이용하거나 부산으로 돌아와서 숙소를 잡는 것을 추천한다.

부산은 돼지국밥으로 유명하다. 김해 신어산 부근에도 돼지국밥으로 유명한 삼정동 밀양돼지국밥(337-1790)이 있다. 450도 고등어(322-8482)는 고등어구이와 갈치구이를 맛볼 수 있다. 

월간산 2022년 6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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