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우먼 한북정맥 종주 31] 30시간 안자고 산행... 눈꺼풀 부여잡고 도봉산 주파!

  • 글·사진 성예진(스윗밸런스 광화문점장)
    입력 2022.06.08 14:02 | 수정 2022.06.08 14:26

    샘내고개~임꺽정봉~챌봉~원각사~사패산~도봉산~우이동 33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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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 하늘이 펼쳐지는 도봉산 주능선에서 경치를 즐기고 있다.
    우리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걷는 20대 무리가 신경 쓰였다. 듣기로는 언니와 같이 계단을 올라가면서 우리에게 “어느 코스로 가느냐”고 물어왔다고 한다. “한북정맥 종주를 하고 있다”고 했더니 한북정맥이 뭔지 몰라 되묻기에 “200km 종주”를 구간으로 나눠서 타고 있다고 했단다. 200km가 아닌데 왜 200km라고 했냐고 하니, 어차피 190km는 걸을 거니까 상관없다고 한다. 게다가 한북정맥을 모르는 듯 보였다며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고. 
    그들은 ‘불수사도북(강북 5개 산 종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작년 여름에 불수사도북을 언니와 해봤기에 “여기보다 북한산 백운대 이후가 진짜 힘들 거예요~ 힘내세요!”라고 이야기해 줬다고 한다.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이다. 우리도 5산 종주 당시 만난 분마다 “이제 시작이다. 백운대 이후가 정말 힘들다”라는 이야기를 워낙 많이 들었다. 당시에는 갸우뚱했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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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봉산 Y계곡 암릉 구간을 지난다. 바윗길이 좁아 상습 정체 구간으로 꼽히지만 평일이라 지날만했다.
    백운대만 지나면 고도도 낮아지고, 더는 높이 오를 곳도 없는데, 능선길만 걸으면 끝나는데 더 힘들다는 말이 믿겨지지 않았다. 속으로 거짓말이라 생각했는데, 끝난 지금은 그 말이 실감나게 다가 왔다. 이젠 그 말을 그대로 누군가에게 하고 있다. 
    감회가 새롭다. 지나고 나서야 알 수 있는, 겪어봐야 아는 일들이 있다. 풋풋한 모습으로 열심히 걷던 그들에게서 우리의 지난날이 떠오르기도 하고, 몽글몽글 떠오르는 추억에 젖어 감상에 잠긴다. 세세한 것들은 떠오르지 않아도 그날 느꼈던 감정과 기분은 아직 생생하다.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포대능선을 지나 포대정상에 도착한다. 도봉산의 메인 봉우리들이 자태를 한껏 뽐내며 그 우람함을 자랑하고 있다. 지나는 길 모두가 포토존이다. 탁 트인 경치에서 보는 암릉 구경 재미가 쏠쏠하다. 어디에다 카메라를 갖다 대어도 멋진 그림을 선물해준다. 걸으며 스치는 장면조차 감탄할 만한 경치에 잔뜩 들떠 신나게 걷는 길이다. 
    집이 의정부인 수연 언니는 익숙하다는 듯 자운봉과 신선대를 알려준다. 언니만의 포토존이 있다고 해서 따라가니 선인봉, 만장봉, 자운봉, 신선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로 안내해준다. 포대능선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었는데, 언니의 설명 덕분에 대공포 진지인 포대가 있어서 포대능선이라 부른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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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봉산 Y계곡을 지나 수려한 바윗길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길이 길인 만큼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게다가 중간 중간 주말에는 일방통행 임에도 반대로 부득불 들어오는 산객이 있어 좀 더 걸리기도 했다. 앞선 사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줄을 서 있는데 언니가 이렇게 줄 서는 게 번거로워 우회하는 사람도 많다며 이야기해 준다. 
    언니 말처럼 정말 상습 정체 구역일 것 같다. 지금도 이런데 사람이 많이 몰리는 날은 정체가 얼마나 심할지 그 모습이 상상된다. 정말 몇 번 다녀본 사람은 주말 붐비는 시간에는 우회길을 찾을 것 같다. 주말에 백운대와 신선대를 오르는 것과 같은 느낌이랄까? 안 가본 사람과 간다면야 들릴 것 같지만 그렇지 않고 주말에 간다면 나는 그냥 우회길로 지날 것 같다. 
    신선대로 향한다. 한북정맥 길은 삼거리에서 신선대로 올라가지 않고 곧장 우이암으로 진행해도 되지만 ‘기왕 지나는 김에 들러볼까?’하는 마음에 신선대로 향한다. 신선대로 올라가는 길은 등산객의 정체로 꽉 막혔다. 멈춰있는 인파를 보니 도저히 엄두가 안 나서 언니를 쳐다보니 언니도 정상 사진에 미련이 없다고 그냥 가자고 한다. 
    올라가는 데만 해도 저 정도 수준이면 올라가 사진 찍으려면 40분은 족히 잡아야 할 것 같았다. 다시 돌아 나오는데 하마터면 마당바위와 천축사 방향으로 곧장 내려갈 뻔했다. 강북5산 종주를 할 때도 신선대에 들렸다가 신선대 아래서 바로 천축사 방향으로 내려가 버리는 바람에 바위 너덜길을 한참 내려갔다가 다시 돌아온 기억이 있는데 같은 실수를 반복할 뻔했다. 자꾸만 익숙한 길로 가는 습성 때문이다. 
    도봉 주능선을 따라 걷는다. 초반 가파른 돌길을 내려서면 크게 어렵지 않은 길이다. 우이암까지 2km가량의 길이 멀게만 느껴지는데 체력이 많이 떨어졌나 보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이기도 하고, 오늘은 유난히 힘에 부친다. 걷는 게 힘들다기보다는 밤샌 피로가 몰려오는 것인지 졸리기도 하고 점점 피곤했다. 
    우이암을 지나 원통사로 내려간다. 우이암 이정표를 계속 따라가다가 어느샌가 사라지고, 원통사 이정표를 보며 내려가다가 언니에게 “우리 우이암 지나왔어요?”라고 물었다. 언니는 “좀 전에 지나올 때 내가 이 바위인지 물어봤잖아~ 기억 안 나?”, 이윽고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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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계곡 입구의 갈림길. 고도감이 있는 바윗길이라 자신 없으면 우회를 권하고 있다.
    “우이암이 바위였어요?”라고 물었다. 무의식중에 우이암이 암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언니 입장에서는 참으로 뜬금없는 말이 아닐 수 없었을 테다. 비몽사몽 걸어 내려가다가 이 상황이 너무나 웃겨 한참을 웃었다. 아마 지나는 사람은 미친 사람으로 봤을지도 모르겠다. 언니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무박 산행을 한 탓에 피곤해서 비몽사몽간이었다. 내려가며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조차 기억이 안 나는 상태에서 일어난 헤프닝이었다. 우이암의 생김새를 보려면 강북5산 종주를 한 번 더 해야겠다.
    우이암에서 원통사를 지나 북한산 우이역이 있는 우이동으로 내려간다. 2km 정도의 하산길이 어쩌나 길게 느껴지던지 터덜터덜 너덜길을 내려간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힘이 나야 하는데 늘 그렇지는 않은가 보다. 밤샌 피곤이 앞서 이번에는 영 힘들기만 하다. 언니는 총총거리며 가볍고 빠르게 앞장서서 지난다. 
    날머리의 식당을 보니 지난번에 이쪽으로 내려왔던 기억이 선명하다. 원통사로 내려올 때까지만 해도 기억이 거의 없었는데 이후 하산길에서 어렴풋이 기억날 듯 말 듯 하다가 민가를 보니 확실히 기억이 떠오른다. 언니에게 얘길 하니 기억이 없다며 하산길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한다. 같은 길을 걷고, 같이 봤는데 기억하는 내용과 포인트가 다르다는 걸 느끼는 걸음이다.
     
    원래는 우이암에서 우이령을 지나 상장능선으로 해서 솔고개로 내려가야 하지만, 우이암에서부터 이후 솔고개까지 모두 비법정탐방로인 까닭에 다시 한 번 우회로를 찾아야 했다. 고민 끝에 우리는 우이암에서 원통사 우이동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선택했다. 오늘은 우이동에서 마무리를 하고, 다음에 솔고개에서 바로 시작하는 것으로 코스를 계획했다. 시간만 괜찮다면야 우이령 옛길을 지나 솔고개에서 마무리하면 좋을 텐데 아무래도 시간이 맞지 않을 것 같아서 코스에는 넣지 않았다. 
    현재 우이령 옛길은 사전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탐방할 수 있다. 탐방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면 아마도 우이령길을 넣어 솔고개에서 끝냈을 테다. 원래의 코스가 아닌 탓에 상관없긴 하지만 우이동에서 끝내고 어차피 솔고개에서 다음 코스를 시작해야 하니까 기회가 된다면 우이령 옛길로 연결해서 걷고 싶었는데 아쉽다.
    언니와 근처 삼겹살집에서 회포를 풀고 헤어진다. 산행을 14시간이나 했는데 밥만 먹고 헤어지는 게 못내 아쉬웠지만, 오늘의 회포는 다음번 산행에서 시원하게 푸는 것으로 하고, 오늘은 가볍게 소맥 한 잔씩 마시고 헤어진다. 한북정맥의 막바지이기도 하고, 30km 이상의 긴 산행 거리에 거나하게 한잔하고 싶었지만, 눈치 없는 눈꺼풀이 이미 지하 100층까지 내려와서 어쩔 수 없었다. 
    30시간 이상 눈 떠 있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음을 따라가지 못하는 체력을 아쉬워할 수밖에. 아쉬움에 맥주 한 병 더 시켜 비우고 일어난다. 사패산~도봉산 코스는 강북5산 종주와 한북정맥 종주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아마도 이 코스를 떠올리면 수연언니가 가장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 싶은데, 10년 뒤에도 언니와 도봉산 정상에 올라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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