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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파워우먼 한북정맥 종주 33] 새벽에도 날벌레 습격… 밤샘 산행 후 김밥으로 아침

글·사진 성예진(스윗밸런스 광화문점장)
  • 입력 2022.06.23 14:02
  • 수정 2022.06.23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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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고개~노고산~옥녀봉~숫돌고개~견달산~문봉동재~고봉산~고인돌산림욕장~장명산 47km

낮아진 한북정맥은 도시화되어 있었다. 도시로 변한 한북정맥을 따르는 것도 우리가 택한 길이었다.
낮아진 한북정맥은 도시화되어 있었다. 도시로 변한 한북정맥을 따르는 것도 우리가 택한 길이었다.

중고개에서 옥녀봉까지는 300m. 물 한 모금 마시며 안내문을 보니 ‘스님들이 이곳으로 자주 다닌다’고 하여 중고개로 불렸다고 한다. 중간에 있다고 해서 중고개인 줄로만 알았는데 의외다. 

군사시설을 지나 고양누리길 표지기가 붙어 있는 계단을 오르면 옥녀봉에 닿는다. 중고개에서 20분이 채 걸리지 않을 만큼 가깝기도 하고, 노고산에서 옥녀봉까지 걷기 좋은 오솔길이라 부담이 없다. 

옥녀봉에 도착하니 어느덧 자정을 넘긴 새벽 12시 30분. 옥녀봉 바로 옆은 군부대가 있고, 군부대의 철책을 따라 걸으면 일영로 사거리까지 내려갈 수 있다. 중고개 부근에서 쉬고 왔으니 그대로 진행한다. 철책을 따라 나무계단을 내려가는데 눈앞에 일산 신도시가 반짝인다. 아파트숲 야경이 발광하고 있다. 그 빛이 어찌나 밝은지 어둠이 짙게 깔린 산속까지 전해진다. 날머리 즈음엔 표지기가 길을 안내해준다. 

길을 건너가면 오금상촌공원 입구 옆으로 한북누리길 이정표가 보인다. 이곳에서 정맥길은 한북누리길을 따라 걷게 된다. 안내문에 따르면 한북누리길은 북한산성 입구에서부터 삼송역까지 이어지는데, 북쪽에서 내려오는 세력을 막아내기 위한 군사적 요충지이며 서울 구파발로 진입하는 것을 방어하는데 중요한 지역이라고 한다. 현재도 북쪽의 병력이 내려오는 것을 방어하기 위해 곳곳에 군사시설이 있다고. 옥녀봉 날머리에서 삼송역까지 3.3km 남짓이다.

친근하고 포근한 오솔길이다. 폭신한 야자수 매트를 밟고 걷다가 푹신한 흙길과 낙엽길을 걷는다. 누리길 곳곳에 체력을 단련할 수 있는 시설과 휴식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날이 좀 밝은 시간에 왔다면 동네 주민들이 벤치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모르긴 몰라도 동네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길일 것 같다. 걷다 보면 ‘고양누리길’ 이라고 적힌 파란색과 노란색 표지기가 자주 보이는데 이곳이 누리길이라고 한껏 뽐내고 있다. 걷기 좋은 육산의 등로는 평지나 다름없다. 포장된 도로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한다.

길도 좋고, 새벽 공기도 좋고, 다 좋은데 딱 하나. 거미줄이 많아서 힘들었다. 길이 좋아 거미줄만 잘 피해 다니면 되는데 너무 많아서 말처럼 쉽지 않다. 등로 마다 길을 떡하니 막아서는 거미줄. 누군가 지나간 길을 뒤따라가면 좀 수월할 텐데 새벽이라 그럴 수도 없고, 앞장서서 걸으려고 하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견달산에서 김밥을 먹는다. 불을 켜면 벌레가 모여들어 헤드랜턴을 끈 탓에 사진 상태가 좋지 않다.
견달산에서 김밥을 먹는다. 불을 켜면 벌레가 모여들어 헤드랜턴을 끈 탓에 사진 상태가 좋지 않다.

선두에 서서 가는데 거미줄이 그 모양 그대로 얼굴에 들러붙는 느낌. 거미줄 팩을 얼굴에 붙일 때마다 찝찝함에 몸서리친다. “으~” 이것만큼 찝찝한 게 없다. 거미줄 팩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걸으며 부지런히 팔 운동을 해야 한다. 스틱을 들고 허공에 휘젓는다. 눈에 잘 보이면 좋을 텐데 그렇지도 않아서 쉴 새 없이 휘저어야 한다. 거미 입장에서는 거의 재앙 수준이었을 듯하다. 거미 밥줄을 자꾸만 끊고 다녀서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내가 밥이 될 수는 없으니 부지런히 움직인다. 

거미줄과의 사투에 불필요한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며 걷는다. 힘이 빠지니 카본 스틱마저 무겁게 느껴진다. 나중에는 휘두르는 것도 귀찮다. 오르막에서 그냥 올라만 가도 힘든데 스틱까지 휘두르려니 두 배는 더 힘들어지는 기분이다. 거미줄이 얼굴에 붙거나 말거나 무아지경으로 다니기도 했다.

북한산 전망대와 만난다. 왜 이런 곳을 전망대라 지칭했을까. 예전의 후기를 살펴보면 그래도 전망대로서의 구실을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풀과 나무가 높게 자라 제대로 된 전망은 기대하기 힘들다. 전망은커녕 훤한 대낮에 와도 아무런 재미가 없을 것 같다. 전망은 꽝이지만 벤치가 있어 잠시 쉬어가려 했더니 날벌레가 너무 많아서 잠시도 있을 수 없었다. 잠시라도 배낭을 내려두고 잠깐 쉬어가고 싶었는데 벌레가 달려들어 쫓겨나듯 전망대에서 벗어난다. 

앞서 임꺽정봉에서 우이동까지, 지난달 산행만 하더라도 벌레가 이렇게까지 기승을 부리지 않았는데 벌레 덕에 계절이 달라진 걸 피부로 느끼고 있다. 벌레가 많아도 정말 많다. 평소 잘 사용하지 않던 소형 배낭을 메고 왔더니 장비가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피로도가 더 크게 느껴진다. 

허리벨트를 조여도 사이즈가 맞지 않아서 어깨 쪽에 무게가 많이 실린다. 10~20kg씩 무겁게 지고 다닐 때보다 더 힘든 느낌이다. 내 몸에 잘 맞는 장비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걸음이다. 이전에 훨씬 무겁게 메고 다닐 때와 별반 다름없는 컨디션이 놀랍다. 물론 그때는 오늘처럼 밤을 새워서 다니지 않았으니 차이야 있겠지만 그걸 고려하더라도 조금 놀랍다.

지나다 보면 정자도 보이고, 여석정 전망대가 나온다. 여석정은 숫돌고개를 한자로 사용한 곳으로 이곳이 숫돌고개의 입구에 해당 되어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안내문에는 조망이 좋다고 하는데 바로 앞 아파트에 가려 북한산, 창릉천이 제대로 보일지 모르겠다. 예전엔 조망이 좋았는지 몰라도 현재 보이는 건 건물이 빼곡하게 들어선 삭막한 도회지 풍경이다. 

인가를 지나 야산 같은 산길로 든다. 고양으로 접어들면서 인가와 산길을 번갈아 오갔다.
인가를 지나 야산 같은 산길로 든다. 고양으로 접어들면서 인가와 산길을 번갈아 오갔다.

여석정에 걸터앉아 지도를 들여다본다. 지도를 보니 이곳은 오송산 자락이다. 정맥길은 내려가 농협대학교 방향으로 가야 한다. 대략적인 방향을 살피고 날머리를 찾는다. 내려가는 계단 옆에도 체육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국토해양부의 지원을 받아 만들어졌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의외의 부처에서 지원이 되어 신기한 마음에 읽어보고 간다. 어느 카페 주차장으로 내려선다.

미리 받아둔 GPS 트랙은 우리를 야산으로 안내한다. 삼송역 방향의 큰 도로를 따라 걸어도 되지만 트랙에서 안내하는 길이 조금이라도 산길을 잇는 길인 듯 하여 잠시 고민하다가 산길을 걷기로 한다. 도로로 가면 조금 더 빠르긴 하겠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도로를 걷는 것 또한 곤욕스러워서 그럴 거면 차라리 산길을 걷자고 수연 언니와 이야기했다. 

위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초록색 펜스 옆으로 좁은 길이 어렴풋이 보인다. 대체 언제 달아둔 표지기인지 꽤나 낡은 상태라 눈에 잘 띄지 않고 자세히 보지 않으면 길 같지도 않아서 잘 보고 들어가야 한다. 확실히 사람이 많이 찾지 않는 길인 듯 등로의 흔적이 없어서 조금 헤매었다. 게다가 조금 들어가면 가시덤불이 있어서 뒤돌아 나왔다가 길이 맞는지 재차 확인하고 나서 다시금 진입했다. 

괜히 또 없는 길에 들어갔다가 힘만 빼고 나와야 할까 봐 몸을 좀 사렸다. 나뭇가지와 거미줄을 헤치고 들어가니 그제야 확실한 표지기가 여럿 달려 있다. 별 의미 없는 야산을 헤집고 다니다가 만나는 주택가에서 다시 동네 뒷산으로 들어간다. 우리가 걷는 길과는 무관한 듯 보이지만 근처에 ‘경기옛길 의주길’ 코스임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이윽고 나타난 숫돌고개. 생태이동통로를 지나는 외길이다. 통로를 지나며 좌우로 고개를 돌려보니 8차선 이상 될 법한 큰 대로변이 눈에 띈다. 파주∙문산으로 이어지는 통일로가 보인다. 그간 목격했던 동물들의 로드킬 장면이 절로 떠오르는 큰 대로변이다. 동물들이 이 길을 알고 생태이동통로로 지나다녀야 할 텐데 말이다. 

통로를 지나 계속해서 직진하면 독립문 부대 앞에 도착한다. 기념으로 부대 앞에서 사진 한 번 찍고, 지도를 보며 주택가 길을 찾는다. 주택가 전봇대에 의주길 표지기가 달려 있다. 두 번째 만나는 표지기에 의주길이 궁금해서 찾아보니 코스가 이곳을 지나지는 않는 것 같은데 홍보용으로 붙여둔 것일까?

주택가를 지나 자그마한 절의 옆길로 해서 산으로 들어간다. 아기자기한 동네 뒷산을 걷다가 임시포장도로가 나오면 고양고등학교가 보인다. 이곳에서 학교 안으로 들어가지 말고 고양고등학교에 못 미쳐서 우측 편에 산길이 나오는데 그리로 진입해야 한다. 길을 못 보고 고양고등학교 정문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길눈이 밝지 않아 이리저리 방황하며 걷는 걸음이다. 명현학교 뒷산을 지나 농협대학교 쪽으로 들어간다. 샛길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어 조금 헷갈린다.

천일약수터까지는 서삼릉 이정표 방향으로만 진행하면 된다. 이정표에 ‘행주누리길’이 처음 나왔다. 고양누리길이 한북누리길 외에도 여러 코스가 있나 보다. 숫돌고개, 거북바위 등 설명해 놓은 안내판을 읽으며 진행하다 보면 금세 약수터에 닿는다. 

천일약수터라 명명되어 있는데 누리길 안내판에는 솔개약수터라고 되어 있다. 아마도 솔개마을에 있는 약수터라 솔개약수터라고 적어둔 것 같다. 배낭 안에 물이 많아서 약수터 물을 그냥 지나쳐 농협대학 방향으로 걸어간다. 500㎖ 사이즈의 물을 4개씩 챙겼더니 이번에는 식수가 제법 넉넉하다.

이제 한동안 지겨운 도로를 걸어야 한다. 약수터에서 원당축구장까지 꼬박 5km 거리. 부지런히 걸어도 한 시간은 족히 넘는 거리다. 홍익교회와 농협대학교 정문을 지나 서삼릉 삼거리에서 태실 방향으로, 원당육교를 지나 군부대까지 하염없이 걷는다. 교회에서 농협대학교 정문까지 500m 정도 될까? 걸어가는데 새벽 3시를 넘긴 시각임에도 가로등이 빠짐없이 모두 켜져 있다. 굉장히 밝은 길이다. 그와는 달리 정문에서 서삼릉까지 가는 길은 반대로 가로등 하나 없이 몹시 컴컴한 길이다. 정문을 기준으로 너무나 극명하게 다른 분위기에 당황스러웠다.

서울-문산 고속도로가 한북정맥을 가르고 있었다. 우회하여 통과했다.
서울-문산 고속도로가 한북정맥을 가르고 있었다. 우회하여 통과했다.

사실 약수터에서부터 어느 길로 걸어도 무방했다. 산자락이 사라져 도로가 들어선 마당에 뭐 그리 중요할까 마는, 어느 길이든 두 발로 직접 걸어서 잇는다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한다. 축구장까지 최단 거리로 보이는 길을 찾아 걷는다. 

처음에 얼마나 걸어야 하는지 몰라 1시간 가량 걷다가 나중에서야 온 만큼은 더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서 좌절했다. 좌절하고 있을 시간조차 아까워 부지런히 걸으면서 도로가 너무 길다며 투덜거린다. 

평소라면 도로 5km 걷는 데 1시간도 걸리지 않을 텐데 지금껏 걸어온 피로도에 졸음까지 몰려오니 당해낼 재간이 없다. 오전 3시부터 대략 2시간 가량 도로에서 졸음과 사투를 벌이며 걸었다. 

도로를 걷는 내내 발바닥이 아팠는데 마지막에 군부대까지 거의 다 와서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원당육교 갓길에 신발을 벗어 던지고 벌러덩 드러누워 버렸다. “에라! 모르겠다~ 발바닥이 너무 아파 더는 못 걷겠다!” 뜨거워진 발바닥을 통풍시키며 진정한 뒤 씩씩하게 일어나 다시 걸어간다.

군부대 정문이 나타나고 오른 방향의 철책에 표지기가 여럿 붙어 있다. 다시 또 철책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송강, 고봉, 배다리 누리길 다양한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와 만난다. 고양누리길은 참 많은 길이 있나 보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이번 산행에서 본 걷기길 종류만 10개는 될 것만 같다. 

철책을 따라 하염없이 걷다 보니 날이 밝아온다. 서서히 푸른빛으로 밝아지더니 군부대를 벗어날 때 즈음엔 환한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다. 군부대를 벗어나면 양봉장이 있다. 벌통을 지나 좀 더 내려가면 엉흥고개와 닿는 도로가 나온다. 원래는 엉흥고개 산길로 올라가 견달산으로 가야 하지만 현재 서울~문산 고속도로가 생기며 중간에 길이 끊겨 이을 방법이 없다. 고개에 올라가 200m 남짓 걷다가 아래 물류센터로 바로 내려와야 해서 의미가 없다는 선답자의 말에 깊이 공감하며 엉흥고개 방향을 한 번 쳐다보고 곧장 도로를 따라 물류센터로 간다.

워낙 많은 부대를 지나왔더니, 군입대를 해도 될 정도로 부대가 친숙해졌다. 이름이 멋있는 부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워낙 많은 부대를 지나왔더니, 군입대를 해도 될 정도로 부대가 친숙해졌다. 이름이 멋있는 부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물류센터 뒷길로 견달산에 오른다. 10분이면 오를 수 있는 수준이다. 견달산 정상을 10m 남겨둔 지점 삼거리에 쉬어가기 좋은 벤치와 이정표가 있어 아침을 먹고 가기로 한다. 먹고 올라가는 걸 싫어하는 편인데 바로 코앞이 견달산이니 무얼 먹기에도 부담이 없다. 새벽에 먹고 남은 김밥 한 줄씩 나눠 먹는다. 

배낭을 열어 보니 남은 파인애플이 배낭 속에서 흔들려 엉망이 되었다. 즙이 흘러내려 갈아입으려고 여분으로 챙겨둔 옷이 젖었다. 산행 마치고 지하철 탈 때 깔끔하게 가고 싶었는데 오늘은 틀린 것 같다. 문제가 된 파인애플을 얼른 먹어 치운다. 너무 많이 먹으면 지금 상태로 보아 졸릴 게 뻔하기에 적당히 먹고 정리한다. 배부르면 졸릴 게 뻔하다. 

삼거리에서 열 걸음 안 가서 견달산 정상에 도착한다. 인증 사진 하나씩 남기고 삼거리에서 문봉동 방향으로 날머리를 잡는다. 내려오면 군부대가 보인다. 오늘만 벌써 몇 번째 군부대인지. 이러다간 군대가 친숙하게 느껴져 조만간 입대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부대 쪽으로 길을 건넌다.

부대에서 고봉산 자락에 있는 만경사까지 다시 도로를 따라 걸어야 한다. 지도를 대충 보니 다시 1시간 이상 도로를 걸어야 할 것 같다. 지치는 일이다. 거의 산봉우리 하나를 지날 때마다 도로를 하염없이 걸어야 하는 길이 반복된다. 훼손된 한북정맥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코스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4km 이상 걸은 걸 알 수 있었다. 그 전의 샘내고개 일대도 심각하다 생각했는데 인제 와서 보니 약과였다. 그 길이 귀엽게 보일 정도니, 말이다. 아마 수피령이 아니라 장명산에서부터 종주했더라면 시작부터 실망스러워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군부대 담장을 따라 걷다 보면 대략 예전 문봉동재 위치일 것 같은 곳에 교량이 보인다. 지도에서 현재 문봉동재를 찾아볼 수 없어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도 서문 27교 자리가 옛날에는 문봉동재가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서울에서 문산을 잇는 고속도로가 생긴 덕에 우리의 삶은 좀 더 편리해졌겠지만, 그 탓에 한북정맥의 많은 구간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물은 충분하고 갈증을 해소할 만한 다른 음료가 마시고 싶어서 편의점을 찾아보니 가는 방향에서 둘러 가지 않고 지나는 길에 있는 편의점이 딱 하나 있다. 그곳으로 목적지를 정하고 부지런히 걷는다. 그리 넓지 않은 도로에 대형 차량이 쉴 새 없이 다닌다. 

헷갈릴 정도로 많은 걷기길이 있었다. 걷기길 안내판을 보며 갈 길을 참고하고 있다.
헷갈릴 정도로 많은 걷기길이 있었다. 걷기길 안내판을 보며 갈 길을 참고하고 있다.

차가 지날 때마다 매캐한 냄새와 먼지가 날려 인상이 찌푸려진다. 이 부근이 죄다 공단인가 보다. 빼곡히 자리한 공장들이 눈에 띈다. 유난히 덤프트럭이 많이 지나다닌다. 편의점에 가까워지니 콘크리트 공업 사업소가 보인다. 좀 전에 지나다니던 레미콘의 목적지가 이곳이었던 모양이다.

언니가 에너지음료가 마시고 싶다고 해서 핫식스로 보급을 한다. 뭘 마실까? 편의점 매대를 둘러보는데 마땅히 먹고 싶은 것이 없다. 언니가 핫식스 한 모금 마시면 좀 괜찮아질 것 같다고 해서 핫식스를 샀다. 커피를 마실까? 생각도 했지만, 화장실 찾을 생각을 하니 마시기도 전에 귀찮아져서 손이 가질 않는다. 이상하리만치 커피만 마시면 화장실을 자주 찾는 탓이다.

물도 넉넉하고 주전부리할 간식도 많으니 괜찮다. 배낭 안에 온종일 걸어도 보급하는 데 문제없을 정도로 충분한 양이 들어 있어 마음이 든든하다. 편의점 파라솔 아래 앉아 잠시 쉬어간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발을 좀 쉬게 해주었더니 그 뜨거움이 진정되는 것 같다. 마음의 평안함이 찾아온다. 수연 언니의 핫식스를 한 입 뺏어 마시며 남은 길에 관한 대화를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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