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웅의 고지도 이야기] 로마시대의 휴대용 안내도 포이팅거 지도(Peutinger Table)

[514호] 2012.08
  • 글·최선웅 한국지도학회 이사, (주)매핑코리아 대표
    입력 2012.08.13 11:41

    지상에서 가장 원초적인 길은 사람들이 밟고 다니는 사이에 자연적으로 생긴 길이다. 산길과 같이 가능한 한 걷기 편하고, 될 수 있는 한 최단거리가 되는 경로를 따라 사람들이 다니다보면 자연적으로 길이 나게 된다. 그러나 말이나 수레가 다니려면 거리가 멀어도 경사가 완만해야 하고, 왕래가 잦다 보면 자연히 길이 넓어지고 결국에는 다니기 수월하게 포장길이 만들어진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듯 역사상 로마가 거대한 제국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은 바로 도로의 건설에 있다. 기원전 312년 고위 행정관인 아피우스(Appius)의 요청에 의해 건설된 아피아 가도(Via Appia)가 로마제국 최초의 도로다. 초기에는 로마로부터 이탈리아 반도 내의 주요 도시를 연결했으나, 전쟁이 거듭되고 영토가 넓어짐에 따라 점차 다른 지역의 도시에도 도로가 연결되었다.

    이렇게 로마인들이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후 2세기까지 건설한 도로는 이탈리아 반도뿐 아니라 갈리아(Gallia, 지금의 프랑스·벨기에·스위스·네덜란드·독일 일부) 지역, 브리타니아, 이베리아 반도, 그리스, 터키, 아프리카 북부까지 지중해 전역에 걸쳐 그물망처럼 연결되었다. 그 전체 길이는 간선도로만 지구 둘레 두 바퀴 거리에 해당하는 8만km이고, 지선까지 합치면 무려 15만km에 이른다.

    로마의 도로는 주로 군사용으로 건설되었는데, 군대의 이동이나 군수물자의 신속한 운반은 물론 공성병기(攻城兵器) 같은 중장비의 수송에도 견딜 만한 구조로 건설되었다. 도로의 구조는 널찍한 대석을 틈새 없이 깐 폭 4m의 차도와 그 양쪽에 폭 3m의 보도를 만들어 전체 폭이 10m 이상이고, 포장은 자갈과 점토질 흙을 4단계로 다져 두께 1m 이상으로 건설했다.

    도로에 따른 시설로는 말을 갈아 탈 수 있는 무타티오네스(mutationes)가 약 12km마다 설치되고, 무타티오네스 5개소마다 역참(驛站)인 만시오네스(mansiones)가 설치되었다. 로마군의 전령은 무타티오네스에 도착할 때마다 말을 갈아탔으나, 하루 여정은 70km를 넘기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도보 여행자들은 역참에서 역참까지 하루에 꼬박 60km를 걷는 고생을 감수해야 했다.

    기원전 1세기 말 아우구스투스(Augustus) 황제가 제정을 수립한 때부터 약 200년간을 로마의 평화(Pax Romana)시대라 하는데, 이 기간 동안 여러 부류의 많은 사람들이 로마 도로를 따라 여행했다. 거미줄처럼 얽힌 도로 안내를 위해 처음 등장한 것이 도로 정보를 담은 일종의 안내서인 도정표(道程標, itineraria)였다. 현재 사본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는 3세기 말경에 만들어진 ‘안토니우스 황제의 제속주도정표(諸屬州道程標)’가 있다.

    1887년 콘라드 밀러가 복간한 포이팅거 지도의 9번째 조각(Segmentum Ⅸ). 콘스탄티노플과 터키, 이집트와 나일강, 북아프리카 지역 등을 담고 있다.

    폭 34cm에 길이는 무려 6.75m
    이후 지도의 형태로 나온 대표적인 것이 포이팅거 지도다. 이 지도는 1265년 프랑스 북동부 알자스 지방의 오랭주 주도인 콜마르(Colmar)의 한 수도자가 양피지(羊皮紙) 12조각에 그린 것으로, 현재 11조각이 오스트리아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지도는 12세기경의 사본으로 알려졌지만, 그 내용은 로마제정 후기인 4세기경의 상황을 나타내고 있어 원본의 제작연대는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간다고 추정된다. 지도의 크기는 폭은 34cm인데 비해 길이는 무려 6m75cm로, 두루마리 형태로 휴대하도록 만들어졌다.

    이 지도는 1494년 유서 깊은 보름스(Worms)의 한 도서관에서 독일의 학자이자 시인인 콘라드 셀티스(Konrad Celtes, 일명 Meissel)에 의해 발견되었고, 1507년 아우크스부르크 출신 학자인 콘라드 포이팅거(Konrad Peutinger, 1465~1547년)에게 전해지면서 포이팅거 지도라 불리게 되었다. 이 지도는 1714년까지 포이팅거 가에서 보관해 오다가 금화 100더커츠(ducats)에 오스트리아 장군이자 미술 감정가인 프린스 유진(Prince Eugene of Savoy)에게 넘겨졌고, 1737년 그가 사망하자 합스부르크 궁중 도서관에서 입수해 현재에 이른다.

    이 지도는 마치 현대의 철도노선도처럼 지도의 내용을 아래위로는 압축하고 옆으로는 길게 늘어뜨려 주요부를 부각시킨 디포르메(difformer) 기법으로 제작되어 축척이나 방위는 무시되었다. 지도가 담고 있는 범위는 서쪽 에스파냐로부터 동쪽 인도 갠지스강 하구까지 포함하는 넓은 지역이지만, 전체 길이의 6분의 5가 지중해 연안에 해당되고, 그 가운데 이탈리아가 3분의 1을 차지한다.

    지도에 표현된 내용은 산맥이나 숲, 하천, 호수 등의 지형과 도시를 연결하는 도로, 역참 등이 일러스트 기호로 묘사되었고, 도로를 따라서는 각 구간마다 거리가 로마숫자로 표시되어 있다. 로마를 비롯해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 터키 남동부의 안티오키아 등 당시의 대도시는 인격화하여 여자의 모습으로 나타냈으며, 다음 단계의 주요 도시는 건물 기호로, 그 밖의 작은 도시는 지명만 표기했다.

    이 지도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598년 포이팅거의 지인인 마르쿠스 벨저(Marcus Welser)가 지도제작자인 오르텔리우스(A. Ortelius)와 앤트워프의 출판업자 요하네스 모레투스(J. Moretus)에게 의뢰해 지도의 복간본이 간행되면서부터다. 그 후 1887년에 슈투트가르트 출신의 가톨릭 신부이자 지도학자인 콘라드 밀러(Konrad Miller)가 없어진 12번째 조각(이베리아 반도 부분)을 복원하면서 재간행되었다.

    예시된 포이팅거 지도는 터키와 북아프리카 지역을 나타내는 9번째 조각인데, 맨 위쪽의 육지는 유럽의 동부 지역이고, 그 아래 좁고 긴 바다가 흑해, 왼쪽에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를 든 채 옥좌에 앉아 있는 여인상이 그려진 곳이 콘스탄티노플이다. 그 오른쪽으로 에게해 건너는 아나톨리아 반도, 즉 터키이고, 콘스탄티노플 아래쪽으로 길게 뻗어 있는 섬은 크레타섬이다. 지중해 아래로 펼쳐진 넓은 땅은 아프리카 북부로 나일강이 왼쪽 끝에서 발원해 옆으로 흐르고 있으며, 하류의 델타지대가 자세히 표현되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의 하나인 오스트리아국립도서관은 지도 수집과 지구본박물관으로도 유명하다. 2007년 11월 26일 이곳에 소장되어 있는 포이팅거 지도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이날 단 하루만 이 지도를 일반에게 공개해 화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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