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걷기 : 주문도] 강화도 최남단… 8,000원짜리 백반에 바다가 한가득!

  • 글·사진 김영미 여행작가
    입력 2021.04.27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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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빈창에서 느리로 향하는 논과 갯벌을 이어주는 정겨운 길. 완전히 다른 두 곳을 참 멋지게 이어준다.

    봄이 시작되니 공원에도 뒷산에도 작은 천에도 소리 없이 꽃들이 아름답게 피었다. 코로나로 전 세계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변함없이 꽃의 계절은 왔다. 지난 몇 주 동안 꽃이 만발한 산을 걸었다. 화려하고 생명력이 가득한 길에서 꽃에 취해 시간을 보내던 중 문득 한적하고 조용한 섬을 걷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렸다. 고독까지는 아니어도 인적이 느껴지지 않고 사람의 손때가 많이 묻지 않은 곳이면 좋겠다.

    이곳저곳을 찾아봐도 ‘딱 여기다’하는 곳을 찾지 못하다가 드디어 낙점된 곳이 주문도. 강화도의 가장 남쪽에 있는 섬으로 서쪽으로 39km 거리에 있다. 볼음도, 말도, 아차도와 함께 서도면을 이루는데 4개의 섬들은 바닷물이 빠져나가면 마치 걸어서 갈 수 있을 것처럼 가까이 이웃하고 있다. 4개의 섬 중에서도 말도를 제외한 3개 섬을 연결하는 배편은 강화 선수포구에서 하루 3회 운항하지만 배 시간에 맞추어 섬들을 모두 돌아보기에는 그리 수월한 일정은 아니다. 1박을 하면 더할 나위 없이 편하게 섬들을 돌아보겠지만 이번엔 당일 코스로 다녀와야 하니 주문도만 가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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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를 품은 8,000원짜리 백반. 밥부터 게장, 새우장, 감자갈치조림 등 음식의 재료들이 대부분 주문도 산이다.

    임경업 장군에서 섬 이름 유래

    주문도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임경업 장군으로부터 유래했다고 한다. 장군이 중국의 명나라 사신으로 갈 때 이 섬에서 임금에게 하직하는 글을 올렸다 하여 아뢸 주奏, 글월 문文을 써서 ‘주문도奏文島’로 불렀는데 그후 시간이 흐르면서 ‘주문도注文島’로 바뀌었다고 한다.

    지난 3월부터는 선수포구와 주문도 살꾸지(살곶이) 항로가 새로 개통되고 시간도 단축되어서 주문도까지 35분이면 갈 수 있게 되었다. 기존 뱃길인 주문도 느리로 가는 배는 1시간 40분 정도 소요된다. 주문도의 구석구석을 돌아보려면 아무래도 시간 여유가 있는 것이 좋을 듯해서 오전 7시 30분 첫 배로 살꾸지로 들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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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장술해수욕장의 끝자락은 돌들이 뒹구는 해변길이다. 물이 빠지면 대빈창해수욕장으로 연결된다.

    어둑한 서울을 벗어나서 1시간 30분가량 달려서 도착한 곳이 강화의 선수포구. 처음 들어보는 항구 이름이다. 근처엔 유명한 일몰 명소인 장하리가 있어서 낯익은 지역인데도 선수포구는 첫 방문이다. 평일이고 코로나 시국이라 배에 승선한 사람은 10여 명. 기름 값도 안 되는 금액으로 배를 운항하니 괜스레 걱정된다. 40여 분 후에 주문도에 도착했다. 주문도의 또 다른 항구인 느리는 섬의 반대편에 위치하지만 작은 섬이라 걸어서 1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살꾸지는 컨테이너로 만든 사무실만 하나 있다. 조용한 곳을 찾아오긴 했지만 너무나 썰렁하다.

    살꾸지에서 뒷장술해수욕장으로 들어서는 길은 푹신한 시골길이라 바다 곁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외롭게 서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친구가 되어준다. 뒷장술해수욕장에 이르니 갯벌과 함께 펼쳐진 바닷물이 참으로 투명하다. 하늘인지 바다인지 색으론 구분이 가지 않았다. 바다갈매기까지 날고 있어 더욱 평화로운 풍경이다. 물이 완전히 빠지면 뒷장술해수욕장에서 2km 떨어진 분지도까지 광활한 갯벌이 펼쳐진다고 한다. 전남 신안의 대기점도, 소기점도, 소악도, 진섬, 딴섬을 하나의 섬처럼 이어 주는 노둣길이 생각났다. 그 섬들은 물이 빠지면 건너갈 수 있게 갯벌 위에 징검다리를 놓았다. 그 다리가 노둣길이다. 주문도에서 분지도로 가는 노둣길이 생기면 어떨까? 망망대해처럼 펼쳐진 갯벌을 바라보며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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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나들길 안내표지와 파란 하늘이 멋들어지게 어우러지는 뒷장술 해수욕장.

    논과 갯벌을 이어주는 정겨운 길

    갯벌을 따라 펼쳐진 고운 모래사장은 어느새 돌길로 바뀐다. 조심조심 터벅터벅 걷기 좋은 돌을 골라 징검다리를 건너듯 걷는다. 이 돌길은 물이 완전히 빠지면 대빈창해수욕장으로 연결되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해안가를 걸어서 대빈창까지는 갈 수 없는 상황이다.

    언덕을 지나 만난 첫 삼거리 이정표에서 ‘강화길 12코스’ 대신에 ‘대빈창해수욕장 150m’라는 표시가 가리키는 산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산언덕에 진달래가 군데군데 피어 있다. 바람에 살랑살랑 방긋 웃는 모습을 그냥 지나치기 어려워 한참을 곁에 머문다. 갈 길이 먼데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산으로 들어서니 대빈창으로 가는 길은 이정표가 사라지고 길도 없다. 가시나무를 헤치고 꽤 가파른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계속 숲으로 나아간다. 숲으로 들어갈수록 길은 미궁으로 빠진다. 그리 크지 않은 섬에 있는 산이니 위험한 상황은 발생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다행히 동행이 있는 오늘은 긴장도 나누어지니 마음이 한결 가볍고 든든하다. 앞에서 나무를 헤치고 나아가니 더욱 더 편하게 길을 갈 수 있다. 길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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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촌마을의 뒤쪽 언덕에 있는 정자. 정자에서 느리와 살꾸지로 길이 갈라진다.

    다행히 저 아래 길이 보이지만 내려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임도길은 작은 차량도 운행이 가능하다. 아까 돌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대빈창해수욕장 150m’라는 말은 단지 직선거리를 표시한 것뿐이었다. 뒤돌아 걸었던 길을 바라보니 까마득히 오래 전 같다.

    대빈창은 조선시대부터 구한말까지 중국 사신들을 비롯해 외국 사신들과 상인들이 드나들며 쉬었던 곳이다. 지금은 흔적조차 없지만 해송과 해변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대빈창해수욕장을 감싸고 있는 소나무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나를 부드럽게 감싸 주며 위로의 몸짓을 한다. 복잡한 일상에서 가져온 삶의 피로는 모두 벗어던지고 시원하게 부는 바닷바람과 함께 대빈창해수욕장을 걷는다. 대빈창해수욕장의 끝에는 잔디축구장과 캠핑장, 그리고 산책하기 좋은 해송 오솔길이 있다. 가족단위로 쉬어가기엔 더 없이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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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나들길 12코스 중 봉구산 주변은 푹신한 흙길에 그늘이 드리워져서 걷기 편한 산책길이 이어진다.

    숲에서 나오니 바다가 다시 펼쳐진다. 모래사막처럼 구릉의 모습을 한 갯벌이다. 완만한 곡선으로 이어져서 참으로 아름답다. 갯벌에는 수없이 많은 작은 구멍들이 작은 생명체들을 품고 있다. 작은 생명체의 자유로운 몸짓에 눈을 떼기 어렵다. 주문도에 온 까닭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평화로운 삶의 몸짓과 작은 생명체들을 부드럽게 안아 주는 엄마의 품 같은 갯벌의 환상적인 하모니는 나에게 커다란 평온을 준다.

    갯벌의 반대편에는 논이 있다. 그 사이에는 주문도에서 가장 큰 마을인 진촌마을로 가는 길이 있다. 갯벌과 논,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두 사물의 사이에 있는 길은 완전 히 이질적인 두 곳을 참 멋지게 이어 준다.

      ‘벼가 익어서 출렁거릴 땐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진다. 그런데 섬에 웬 논이 이렇게 많지? 주문도는 섬 중앙의 남서쪽으로 구릉성 산지가 형성되어 있는데 그 양쪽에 발달된 넓은 평지가 모두 논이다. 이 섬 주민 대부분이 어업보다는 농업에 종사한다고 하니 이것 또한 새롭다. ‘섬=어업’이라는 나의 잘못된 식견을 탓한다. 삶은 끝없이 배워야 하는 학교이구나.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은 주문도에는 주문진이란 관청이 있어서 주문첨사가 주재하면서 국영목장도 관리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주문도의 본섬인 강화도는 제주도 다음으로 우리나라 최대의 말 목장지대였다. 1800년대에 만들어진 ‘강화부 목장지도’에 따르면 주문도, 볼음도, 신도, 장봉도 등 9곳에 목장이 있었다.

    섬에 목장이 많았던 이유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서 울타리 없이도 방목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주문도는 물이 풍부하고 말들의 먹이인 풀이 많이 자랄 뿐 아니라 한양이 가까워서 상당히 좋은 목장의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는 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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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년된 한옥 예배당 강화 서도중앙교회. 한국 전통 목조건물의 가구 형식을 바탕으로 건축된 서양교회이다.

    100년 된 정갈한 한옥 예배당

    진촌마을로 들어서는 길목의 언덕에 주문저수지가 보인다. 계단을 올라와서 보니 저수지의 물이 너무나 깨끗하다. 그 깊이도 상당할 것 같다. 섬 안의 저수지라 생경한 느낌으로 다가선다. 저수지의 언덕을 넘어 서니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고 교회가 언덕에 우뚝 서 있다.

    강화 서도중앙교회. 1923년에 건설된 한옥 예배당이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끌어당긴다. 이 한옥 예배당은 주문도 교인들이 1원씩 헌금해서 건축했다고 하니 더욱 놀랍다. 예배당 안으로 들어서니 방금 예배를 마친 것처럼 교인들의 따스한 숨결이 가득 차있다. 마치 여느 양반집 안방처럼 방석이 깔려 있는 좌식 예배당이라 더 정겹고 반갑다. 한국 전통 목조건물의 양식을 바탕으로 건축된 서양교회이니 더욱 큰 의미가 있다.

    이 교회는 1997년 인천시 문화재자료 제14호로 지정되었다. 강화도는 19세기 말 우리나라가 서양에 문호를 개방할 때 전진기지였고 서양인들의 선교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곳임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작은 섬에서도 그 역사가 이루어졌다고 하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섬에 왔으니 섬의 음식으로 점심식사를 해야지. 나에게 있어 여행의 또 다른 이유는 그 여행지에서 생산한 특산물로 만든 신선한 먹거리를 즐기는 것이다. 서도중앙교회에 근무하시는 분께서 추천해 주신 식당은 예약하지 않으면 식사가 어렵단다. 작은 섬이라 밥과 반찬을 많이 해놓고 손님이 없으면 만들어 놓은 음식을 모두 버려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예약 손님 위주로 운영하는 식당이다. 오늘 배에서 내린 몇 안 되는 사람들도 모두 여행객들이 아니었다. 여름 휴가철이 아니면 찾는 여행객은 거의 없다고 한다.

    식당 앞에는 손님으로 보이는 몇 분이 계셨다. 다행히 인원이 적어서 점심식사가 가능하다고 했다. 메뉴는 백반. 그리고 특별메뉴로 백합탕을 주문했다. 그런데 백반 메뉴가 예사롭지 않다. 새우장, 게장, 물김치, 오이피클, 어묵볶음 그리고 갈치감자조림, 소고기 무국까지 한상 가득! 이 백반이 8,000원이라니? 작은 섬에서 놀라움의 연속이다. 특히 갈치감자조림은 도시에서는 가격도 무척 비싸지만 이 맛은 도저히 흉내 내기 어렵겠다. 살이 통통한 백합탕도 시원하고 맛있는데 백반의 빛에 가렸다. 이 밥을 먹기 위해서 다시 주문도에 와야겠다는 농담 아닌 농담까지 나눈다. 전혀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정성이 가득한 한 끼 밥상을 만난 길손의 행복은 무엇으로 표현할까? “맛있게 먹고 갑니다”라는 인사를 몇 번이나 하며 식당을 나섰다.

    행복한 식사 시간이 끝나고 주문도의 유일한 산인 봉구산으로 향한다. 마을의 언덕을 오르니 정자가 홀로 햇살을 맞고 있다. 정자에서 길이 양쪽으로 갈라진다. 한쪽은 봉구산을 넘어서 느리로, 다른 한쪽은 살꾸지로 가는 길이다. 두 길이 모두 궁금하다. 두 곳 모두 푹신한 육산에 소나무가 무성해서 그늘까지 드리워지니 봄날의 오후 산책으론 더할 나위 없이 멋진 길이다. 이 멋진 길을 어떻게 한쪽만 걸을 수 있을까? 느리 쪽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서 살꾸지로 향한다.

    백반 맛보러 다시 오고 싶다!

    앞장술해변으로 가는 길은 해당화가 가득하다. 아직 해당화가 나오기엔 이른 계절이라 바닷바람에 출렁이는 해당화 물결 가까이로 다가서 꽃내음을 맡는 상상을 한다. 꽃들이 출렁거리는 들판은 바다를 닮았다.

    갯벌에는 주문도 주민들이 조개작업을 하고 있다. 둘러메기 어려울 만큼 망에는 조개가 가득하다. 가득한 조개만큼이나 행복한 웃음소리가 세상을 가득 메운다. 그 곁에는 말끔하게 바닷물로 샤워까지 마친 모시조개들이 봄 햇살에 반짝거린다. 따스한 봄볕 속 갯벌에 들어가 숭숭 뚫린 저 구멍에 손을 넣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아침에 배에서 내렸던 살꾸지선착장으로 돌아왔다. 떠나오는 길은 못내 아쉬움이 가득하다. 갯벌이 벌써 보고 싶고, 생각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이는 갈치감자조림도 또 먹고 싶고, 어릴 적 살았던 내 방처럼 앉아서 예배드리는 서도중앙교회에서 일요일 예배 모습을 상상하고,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을 먹고 자란 벼가 넘실대는 황금 들판을 상상한다.

    주문도에서 선수선착장으로 돌아오니 마침 일몰시간. 일몰로 유명한 장하리를 지나칠 수는 없지. 서해 바다 너머 수평선 끝에는 회색빛 구름이 쌓여 있어서 멋진 해넘이를 기대하긴 어렵겠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장하리 바다가 끝나는 제방으로 향한다.

    일몰의 명소답게 삼각대를 펼치고 해넘이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그들 곁에 자리를 잡고 태양만을 응시한다. 바닷물이 흔적도 없이 빠져나간 자리엔 갯벌이 끝없이 펼쳐진다. 시간이 흐르고 태양이 바다에 가까워지면서 온 세상이 오렌지 빛으로 물들어간다. 잠시 즐긴 석양이었지만 주문도 여행을 갈무리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는 풍광이었다.

    주문도선착장(느리)-배너머고개-주문저수지- 서도초·중·고입구-주문진-서도중앙교회-해당화군락지-살꾸지-뒷장술-고마이-대빈창-주문도선착장(느리)

    주문도 배편

    강화도 외포리 선수~주문도 살꾸지(살곶이)
    - 선수 출항: 07:30, 12:00, 16:30
    - 살꾸지 출항: 8:25, 12:55, 17:25
    - 운행시간: 35분

    강화도 외포리 선수 ~  주문도 느리
    - 선수 출항(선수-볼음-아차-느리): 08:50, 12:50, 16:20
    - 느리 출항(느리-아차-볼음-선수): 07:00, 11:00, 14:30
    - 운행시간: 1시간 40분

    문의 032-932-6007,
    삼보해운 홈페이지 http://www.kangwha-sambo.co.kr/

    본 기사는 월간산 5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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