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마운틴' 전시회] 카메라로 그린 수묵화…압도적인 ‘푸른색 산그리메’

입력 2021.05.04 10:37

사진과 산수화의 경계 허문 작품 선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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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에서 바라본 지리산의 모습 (맨 뒤 능선).
임채욱의 ‘블루마운틴’을 처음 본 건 작년 연말이었다. 난방도 안 되는 낡은 을지로 건물은 무척 추웠다. 말할 때마다 입김이 연기처럼 모락모락 피어 올랐다. 바깥보다 실내가 더 추운 게 아닐까 싶었고 작업실 주인장은 오리털 점퍼를 걸치고 있었다. 그의 작업실 벽면을 푸른 색조의 거대 산군들이 압도하고 있었는데 한겨울에 시퍼런 사진을 보니 설산 한가운데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더욱 추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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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임채욱 작가. 사진 한준호
사진·설치·스마트 LED 활용
사진작가 임채욱의 ‘블루 마운틴 전’이 서울 종로구 부암동 자하미술관(02-395-3222)에서 4월 25일까지 열린다. 을지로에서 겨울을 난 푸른색 그리메의 산들이 봄을 맞아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는 이번 전시회에서 사진, 설치, 스마트 LED를 활용한 영상 작품을 선보인다. 붓 대신 카메라로, 수묵이 아닌 사진으로 산수화를 현대적 조형어법으로 표현한 작품을 선보여 온 그의 사진 작품에서 주목할 점은 기존의 사진 인화지가 아닌 한지에 프린팅 한다는 점이다. 한지의 질감과 잉크의 스밈 효과를 활용해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이 작업방식은 2009년부터 전주의 한지업체와 공동으로 개발한 사진 전용 한지에 직접 프린팅하면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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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에서 바라본 대둔산.
임채욱의 산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말러의 3번 교향곡을 듣는 것 같다. 3번 교향곡은 말러의 교향곡 중에서 연주시간이 가장 긴 작품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연민이 주조를 이루는 말러의 다른 작품과 달리, 3번은 인간과 동식물, 천사 등등 우주의 모든 존재와 영원한 구원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품의 스케일뿐 아니라 다루고 있는 주제도 광대하다.
임채욱의 산 사진 또한 말러 3번 교향곡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그는 ‘지리산과 말러’라는 전시회를 작년에 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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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둔산에서 저 멀리 지리산이 보인다.
말러 교향곡 같은 웅대한 스케일
대둔산에서 바라본 덕유산, 덕유산에서 바라본 대둔산의 모습이 거대한 파노라마처럼 물결치고, 호랑이 등줄기 같은 능선을 촬영한 1억 화소가 넘는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무 하나, 돌 한덩어리, 산을 오르는 사람의 디테일이 초정밀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러면서도 사진이라기보다는 수묵화 내지는 판화의 느낌을 받는데 그것은 그가 작품을 한지 위에 인화하기 때문이다. 사진의 리얼리티와 한지의 동양적 질감이 만나서 전혀 다른 차원의 장르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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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 자락.
임채욱은 동양화를 전공했다. 서울대 일랑 이종성 교수 밑에서 한지의 가치와 재료적 특성을 익혔다. 한지의 결은 빛이 비추는 각도에 따라 표현 대상의 질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런 의미에서 산은 한지로 표현하기에 더없이 적합한 소재다.
예전 그는 한지에 사진을 프린팅하는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기존 한지의 한계를 절감하고 사진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한지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2009년 전주의 업체와 공동으로 피그먼트 프린팅을 위한 개발 작업이 그것이다. 그는 1년 만에 ‘사진전용 한지’를 만들어냈다.
임채욱은 “2009년 초겨울 덕유산에서 푸른 쪽빛의 산들을 처음 봤다. 덕유산에서 가장 멀리 보이는 지리산이 가장 푸른빛을 내고 있었다”며 “가장 선명한 푸른빛 산을 보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바람 불지 않고 기온이 낮은 맑은 날씨, 오전 9시에서 12시 사이, 산을 등지고 해가 비추는 역광이나 측면에서 가장 짙푸른 산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본 기사는 월간산 5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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