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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100년 전 콜레라와 2021년 코로나, 인간의 어리석음은 왜 되풀이 되나

글 신용관 조선뉴스프레스 기획취재위원
  • 입력 2021.06.09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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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자연 영화 <11> 페인티드 베일

역대 중국 왕조의 흥망성쇠를 살펴보면 엇비슷한 과정이 되풀이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정권이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정치적·도덕적 문란이 뒤따르고 학정과 가난에 지친 농민들은 곳곳에서 봉기를 일으킨다. 이런 혼란을 틈탄 다른 무리가 반란을 일으켜 새로운 정권을 탄생시킨다.

비단 중국 왕조만이 아니라 영·프·독, 서유럽 강대국 절대왕권들의 운명도 마찬가지였다. 이 과정을 지켜본 사가史家들은 “역사는 반복된다”고 말했다.

원인이 같으면 동일한 결과가 반복된다는 논리를 역사에 적용한 것으로, 지난 역사가 보여 준 그 인과를 다시는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경고가 담긴 격언인 셈이다.

<군주론>으로 유명한 니콜로 마키아벨리도 <로마사 논고>에 이렇게 썼다.

‘미래를 내다보고자 하는 자는 과거를 돌이켜봐야 한다. 인간사는 선대의 그것을 닮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그 사건들이 그때 살던 사람이든 지금 사는 사람이든 동일한 성정을 지닌 사람들에 의해 창조되고 생명을 얻은 까닭이다. 그로써 그것들은 필연적으로 같은 결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과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인간

에드워드 노튼이 열연을 펼친 영화 <페인티드 베일The Painted Veil>(감독 존 커랜, 2006)을  보면 ‘인간의 역사는, 좀더 구체적으로 인간의 어리석음은, 지난 과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망각의 불치병을 결국 반복하고 마는 것인가” 라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

1925년 영국 런던. 도도한 아가씨 ‘키티’(나오미 왓츠)는 화려한 사교와 댄스파티를 즐기는 감성 충만한 미인이다. 반면, 감정보다 이성을 우위에 두는 세균학자 ‘월터’(에드워드 노튼)는 차갑고 냉철한 성격의 소유자다. 어느 날 파티에서 키티의 자유분방한 모습을 본 월터는 첫눈에 반한다. 월터는 키티에게 청혼 하고, 숨 막히게 하는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날 날만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버티던 키티는 그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월터는 결혼 직후 예정된 대로 연구를 위해 중국 상해로 향한다. 하지만 너무나 다른 성격과 취향을 가진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평탄하지 않았다. 활달한 성격의 키티와 매사 진지하고 연구와 독서를 즐기는 월터의 사이는 점점 소원해지고, 키티는 사교모임에서 만난 바람둥이 외교관 ‘타운센드’(리브 슈라이버)와 불륜에 빠진다. 아내의 외도를 알고도 애써 모른 체하던 월터는 콜레라가 창궐하고 있는 오지 산골 마을에 자원하고, 상해에 남겠다는 키티를 억지로 데려간다.

코로나 이전, 이른바 ‘BCBefore Corona’ 시절에 이 영화를 봤다면, 대부분의 관객들은 이 부부의 사랑과 갈등에 포커스를 맞춰 영화를 감상했을 것이다. 이는 영화의 애초 기획 의도와도 일치한다.

하지만, 전 세계적인 코로나 사태를 목도한 현재, <페인티드 베일>은 마치 전혀 다른 영화처럼 다가온다. 1920년대 중국 농촌 지역의 콜레라 창궐과 그에 따른 여러 인간군의 모습이 정확히 100년이 지난 2020년대 현대인들의 행동 양태와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이다.

콜레라는 비브리오 콜레라균Vibrio cholerae의 감염으로 급성 설사가 유발되면서 중증의 탈수가 빠르게 진행되는 병이다. 분변이나 구토물로 오염된 음식과 물을 통해 감염되며, 오염된 손으로 음식을 조리하거나 식사할 때 감염될 수 있다. 잠복기는 2~3일이며, 제때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사망에 이르는 매우 전염성 강한 감염병이다. 사망률은 50~60% 정도이며 어린이와 노인의 경우는 90%에 이른다.

콜레라와 코로나, 정확하게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와 유사한 점이 적지 않다. 코로나가 특별한 치료제 없이 자가 면역력을 강화하는 대응을 하듯, 콜레라 역시 수액 주입으로 손실된 수분과 전해질을 공급하고 체내 전해질 불균형을 교정하는 것이 주된 치료 방법이다.

그때도 지금도 의료진의 헌신적 봉사

코로나19 환자로 확진되면 기침·인후통·폐렴 등 주요 증상에 따라 항바이러스제나 2차 감염 예방을 위한 항생제 투여 등의 대증치료를 하듯, 콜레라도 증상의 진행 속도를 늦추기 위해 테트라사이클린, 독시사이클린 같은 항생제를 사용한다.

콜레라는 1800년대에 유럽에 새롭게 등장한 ‘근대적인’ 질병이었다. 페스트가 이미 고대, 특히 중세 유럽에서 수만 명을 죽음으로 이끈 질병이라면, 콜레라는 산업혁명에 따른 인구이동이 잦아진 19세기 전반에서야 발병되었다. 하지만 상하수도 시설 등 새로운 위생 시설 덕분에 콜레라는 19세기 말 마침내 자취를 감추었다.

콜레라 만연에도 불구하고 1920년대 중국 농민들은 시체가 떠내려가는 강물이나 마을 공동 우물에서 물을 길어와 생활하고 있었다. 이를 목도하고 경악한 월터가 성省 고위관리자를 설득해 우물을 폐쇄하고 강물을 식수로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조치를 취했음에도 주민들의 행태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는 마치 미국 중남부 일부 주민들과 유럽의 청년층이 통행금지와 상가폐쇄, 마스크 착용에 반대하며 시위까지 벌인 행태와 유사하다. 1920년대 중국 농촌이 ‘생존’을 내세웠다면, 2020년 서유럽인들은 ‘시민의 자유’를 앞세웠다는 점만 달랐다.

전무하다시피 한 현지 의료 인력과 의료 시설을 대신해 종교적 포교를 목적으로 중국에 정착한 수녀원이 콜레라 환자 치료와 전염병 창궐에 따른 현지 아이들의 교육 공백을 메우고 있었다. 2019년 이탈리아 현실에서 우리가 목격했듯, 거의 전적으로 의료진의 사투 덕분에 코로나 또한 진정시킬 수 있었다.

2020년 미국의 ‘무식한’ 몇몇이 코로나 발원지 인종이라는 터무니없는 ‘죄목’을 씌워 현지 아시아인에 대한 무차별 린치를 가했듯, 1920년대 중국 농촌 주민들은 콜레라 창궐의 원인으로 푸른 눈의 수녀들과 키티 같은 외국인들을 지목하고 무차별적인 테러로 분노를 표출시켰다.

이런 환경 속에서 키티는 수감생활 같은 나날을 보내고, 월터는 키티의 존재를 무시한 채 연구와 의료봉사에 전념한다. 월터를 배척하던 마을 사람들은 그의 진심 어린 도움과 노력에 마음을 열고, 남을 위한 일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키티도 수녀원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봉사활동을 시작한다.

두 사람의 마음은 차츰 서로를 향해 열리지만, 헌신적으로 환자들을 돌보던 월터는 콜레라에 감염돼 죽음에 이른다. 이후 런던으로 돌아온 키티는 타운센드와의 불륜 관계 때 생긴 아들을 홀로 키운다.

콜레라 만연이라는 소재에도 불구하고 중국 농촌의 아름다운 풍광을 화면에 담은 <페인티드 베일>은 음악도 멋져 제64회 골든 글로브에서 음악상을 받았다.

원작은 윌리엄 서머싯 몸William Somerset Maugham(1874~1965)의 동명 소설로 국내에는 ‘인생의 베일’라는 제목으로 번역됐다. 자전적 소설 <인간의 굴레>와 화가 고갱을 모델로 한 장편 <달과 6펜스>로 유명한 몸은 원작에서 허영과 욕망이라는 인간의 한계를 극복해 가는 주인공 키티의 힘겨운 성장을 통해 진정한 사랑, 용서와 화해, 삶의 의미를 짚고 있다. 원작이 출간된 지 80년 만에 영화화된 수작 <페인티드 베일>은 2007년 전미비평가협회 최우수 각색상을 받았다.  

본 기사는 월간산 6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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