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N] 내가 머문 텐트 10m 이내, 청소를 제안합니다

입력 2021.06.25 10:22 | 수정 2021.06.25 13:37

Do It Now 창간 52주년 환경 캠페인 르포 | 예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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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하이커스가 석양을 배경으로 정크아트 ‘고기잡는 폐그물? 사람잡는 폐기물!’ 뒤에 누웠다. 해양쓰레기의 진실을 담은 넷플릭스다큐 ‘씨스피라시’를 모토로 했다.

월간<山> 4월호 ‘DO IT NOW 굴업도 클린백패킹’ 기사가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백패킹, 캠핑과 같은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취미생활이 대세이며 동시에 ‘환경보호’라는 키워드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주제라는 뜻인 것 같다. ‘백패킹은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정의내리긴 어렵지만, 조금 더 자연친화적인 방식을 제안하고 먹고 마시는 기존 문화 이외의 다양성을 보여 주는 것에 대한 필요성을 느꼈다.

이번에는 조용하고 깨끗한 숨은 명소보다 유명한 곳을 찾았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곳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SNS에 ‘쓰레기가 많았던 야영지를 추천해 주세요’라는 질문을 띄워 제보를 받았다.

강원도 선자령, 양주 노고산, 강릉 괘방산 등 많은 후보지들이 나왔지만 대부분 야영이 금지된 경우가 많았다. 입소문이 난 곳은 이미 사람들이 몰려가 무분별하게 이용하며 더럽혀졌기 때문이다. 합법적인 산중 야영지는 점점 줄어들고, 백패커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야영지를 공개하지 않는다. ‘알려지면 결국 막힌다’가 공식이 되어버린 까닭.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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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과 하남시 야경이 아름다운 예봉산 활공장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있다.

그 와중에 예봉산에 쓰레기가 많다는 제보를 받았다. 남양주시 조안면에 있는 예봉산(683m) 은 적갑산, 예빈산과 나란히 있는 경기도 명산 중 하나다. 한강 뷰와 함께 서울, 경기도의 주요 산들을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어 백패커들 사이에서는 이미 백패킹 명소로 알려져 있다.

예봉산 클린백패킹을 위해 네 명의 클린하이커스(이하 클하) 정예멤버를 모았다. 클린하이커스를 함께 꾸려가고 있는 운영진 김연실씨. 캠핑, 클라이밍, 자전거 등 아웃도어를 아우르며 활동하는 유튜버 김현일씨. 클하 멤버이자 백패킹 입문자 김상규씨까지. 김상규씨는 지난해 코로나 시대의 ‘대안라이프’를 주제로 한 숏폼다큐멘터리 작업으로 만난 영상감독이다. 각자 활동하는 영역은 다르지만 ‘자연 사랑’이라는 키워드 아래 만난 사람들이 팔당역에 모였다. 서울에서 경의중앙선을 타고 약 1시간~1시간30분이면 닿는 멀지 않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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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영지 주변에서 배변을 처리한 휴지를 수거하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클린하이커 김현일씨.
쇠똥구리가 자취를 감춘 이유는

팔당역에서부터 팔당리 마을회관을 지나 등산로 입구까지는 아스팔트포장도로다. 멀리 강우레이더관측소가 자리한 예봉산 정상이 보인다. 아직 5월 중순인데 강렬한 햇빛 아래 아스팔트의 열기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얼마 전까지 신록이 울창해 다채로운 초록을 이루었던 산은 어느새 짙은 녹색으로 변해 있다. 꽃은 점점 더 빨리 개화했다가 지고, 봄을 느낄 새도 없이 벌써 한여름이 온 것 같다. 먼 이웃의 일 같았던 ‘기후변화’가 온 몸으로 체감되는 순간이다.

시작부터 무지막지했다. 입구에 널브러진 술병, 일회용 음식 용기와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버려진 이불이 보였다. 백패커나 등산객이 놓고 간 쓰레기, 주변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투기한 생활 쓰레기들로 추정된다. 오르기도 전에 봉투 하나를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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빽빽한 숲이 시원한 그늘을 이루는 예봉산 등산로.

예봉산 숲 속에 들어오니 한결 시원해졌다. 키 큰 나무들이 만들어낸 그늘과 피톤치드 덕이다. 쾌적한 기분을 누리는 것도 잠시, 김상규씨가 숲을 비집고 나아가고 있다. 일반 산행과 달리 야영 장비가 든 13kg의 배낭이 꽤 묵직할 텐데, 남들의 3배 이상 되는 커다란 봉투를 들고 쓰레기 줍기에 대단한 정성이다. 산악회들이 사용 후 방치한 홍보용 리플렛과 현수막을 줍기도 하고, 단골메뉴인 페트병과 술병, 부러진 스틱과 신발 깔창을 풀숲에서 찾아냈다.

낙엽 더미 속에서 채 마르지 않은 배설물이 발견되어 당황하기도 했다. 배설물 표면에는 쇠똥구리처럼 생긴 곤충들이 붙어 있다가 인기척을 느끼고 재빠르게 몸을 숨겼다. 이후 곤충 전문가에게 자문해 보니 우리나라에서 토종 쇠똥구리는 사실상 멸종한 상태이며, 발견한 것은 쇠똥풍뎅이로 추정되며 배설물은 개의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1970년대까지 쉽게 발견됐던 쇠똥구리가 멸종한 이유는, 곡물 사료로 소를 키우면서 사료의 화학물질이 소의 분변을 먹은 쇠똥구리 체내에 과도하게 쌓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배설물은 결코 거름이 아니라 자연에 해가 된다.

존재라는 것을 유념해 바르게 처리하거나 수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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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로를 조금만 벗어나도 쌓여 있는 페트병을 수거 중인 김상규씨와 김연실씨.

“이것 보세요! 지구를 위한다는 문구가 새겨진 제품 포장재들이 이렇게 아무렇게나 버려진 쓰레기가 되다니, 참 아이러니하죠?”

연실씨가 주운 것은 ‘한약은 자연이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건강즙. ‘지구를 위한 ◯◯◯의 착한 챌린지’라는 슬로건이 인쇄된 포장재였다. 많은 기업들이 ‘친환경’을 홍보수단으로 하면서 새로운 쓰레기를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는 ‘친환경’을 찾으면서 정작 ‘반환경’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 헤아리고 비판의 시각을 가져야 할 대목이다.

가파른 사면에 쓰레기가 보이면 현일씨가 배낭을 던져놓고 앞장섰다. 커다란 카메라로 틈틈이 영상도 촬영하고 지나칠 수도 있는 쓰레기를 줍기까지 하니, 보기 드문 열정과 에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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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봉산에는 상업공간이 철수하면서 그대로 방치된 파라솔, 철근 등 폐기물들이 많았다.
‘지구를 위한다’는 문구의 포장재도

쓰레기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난데없이 예봉산의 명물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이곳 주민이 중턱에서 방목해 키우고 있다는 흑염소다. 쓰레기봉투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보니 방문객들이 음식을 나눠 준 모양이다. 물론 흑염소를 비롯해서 다람쥐나 청설모 등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어선 안 된다. 과도한 염분이나 화학성분이 포함된 인간의 음식은 동물들에게 해로울 뿐 아니라, 그들의 야생성과 독립성을 잃게 한다.

백패킹 장비를 메고 쓰레기를 줍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한 번 허리를 굽힐 때 몇 배의 에너지가 소모되었고, 잠기지 않는 수도꼭지처럼 흐르는 땀이 얼굴을 적셨다. 박배낭과 점점 묵직해지는 쓰레기봉투를 붙들고 점차 가팔라지는 길을 올랐다. 그렇게 약 3시간이 걸려 예봉산 정상에 도달했다. 새하얀 강우레이더관측소와 그와 대비된 파란 하늘이 끝을 모르고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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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으로 촬영한 정크아트 ‘고기잡는 폐그물? 사람잡는 폐기물!’. 해양생물을 착취하려고 덫을 놓은 인간이 정작 자기가 끌려가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우리 평범한 인증샷 말고, 클린 인증샷을 찍어 보면 어때요?”

정상석이나 멋진 풍경에서 빠질 수 없는 인증샷! 집게를 높이 올리고, 화이팅을 외치듯 한 곳으로 모으기도 하면서 ‘클린하이커들만의 인증샷’을 찍었다. 하늘과 능선과 한강이 연이어 맞닿아 있는 파란색의 향연은 우리의 땀을 시원하게 식혀 주었고, 뿌듯함이 배가 되었다.

정상에서 1km 떨어진 오늘의 목적지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으로 향하기 전 정상을 청소했다. 겉으로 볼 때는 깨끗해 보였던 곳에서 유통기한이 1996년 7월 13일로 25년이나 지난 두유, 출생년도를 알 수 없는 오래된 캔도 발굴했다. 가장 경악스러운 것은, 캠프파이어를 했는지 새까맣게 탄 숯이 이곳저곳 내버려져 있었다. 

또 간이 상점이 있어서인지 나무젓가락과 아이스크림 나무막대가 쏟아져 나왔고, 과일 껍질과 물티슈도 많았다. 흔히 과일이나 달걀 껍질 같은 건 그냥 버려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처럼 산에서 버리면 안 되는 쓰레기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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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패킹 시 배출되는 국물이나 액체류는 땅에 흘려버리지 말고 빈 병에 모아서 내려와야 한다.

과일 껍질_과일 껍질에 남아 있는 잔류 농약 성분은 잘 썩지 않을 뿐 아니라 동물들도 싫어한다. 야생동물의 불임을 야기한 연구사례도 있다. 결과적으로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원인이 된다.

나무젓가락_나무젓가락에는 다량의 표백제와 살균제가 첨가되어 있다. 시중에 유통되는 중국산 나무젓가락 대부분에는 수산화나트륨이나 과산화수소, 아황산염류 같은 화학 성분이 함유돼 있다. 일회용 나무젓가락은 다회용 젓가락으로 대체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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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많이 발견된 쓰레기인 나무젓가락. 화학약품 처리된 나무젓가락들은 토질에 악영향을 미친다.

휴지·물티슈_산에서 생리현상을 무조건 참으라고 할 순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사용한 휴지나 물티슈는 수거해야 한다. 제일 좋은 방법은 산행 직전에 해결하고, 산 중에서는 적게 먹고 생리 현상의 확률을 줄이는 것이다.

물티슈는 천연 펄프가 아닌 합성섬유인 폴리에스테르를 사용해서 썩는 데 최대 100년 이상 걸릴 수 있다. 때문에 애초에 사용하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어패류, 달걀 껍질_거름도 적절한 방법으로 처리해야 거름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아무렇게나 버려진 조개껍데기나 해산물의 잔해물, 달걀 껍질은 쓰레기가 될 뿐이다. 기존의 토질환경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모든 것들은 그대로 가지고 내려오는 것이 좋다.

음식물·국물_한강 둔치에 ‘치킨무 국물 냄새’가 진동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다른 쓰레기는 되가져오더라도 국물은 그냥 땅에 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나돌게 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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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기를 사용하지 않는 ‘비화식 백패킹 식단’.

화학성분이 첨가된 물질은 토질과 식생 등 생태계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며 반복되면 악취를 유발할 수 있다. 국물은 빈 페트병이나 공병에 담아와 도시에서 적절한 방법으로 처리하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는 백패킹 저변 특성상 국소 지역을 많은 백패커들이 이용하기 때문에 ‘국물쯤이야’라는 안일한 생각이 우리의 야영지를 망쳐버릴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산에서 발견되는 쓰레기들은 늘 놀랍고 새롭지만, 가장 고약하고 심각한 것은 역시 야영지 주변의 ‘똥밭’이다. 자신의 뒤처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혹은 않는) 사람들이 어디선가 백패킹 동호인을 자처할 생각을 하면 분통이 터진다.

야영지에 가까워지니 역시 큰 나무 뒤나 수풀 뒤에서 뭉쳐져 있는 대량의 휴지들이 발견됐다. 산 중 야영지는 화장실이 따로 없기 때문에 이렇게 야영지 주변으로 암묵적인 ‘똥밭’, 즉 화장실이 형성된다. 휴지를 수거하는 현일씨는 “한 사람 몫이 아니다”라며 얼굴을 찡그렸다.

예봉산 활공장에 도착하니 한강과 미사대교, 남산, 북한산까지 깨끗하게 내다보였다. 가슴이 탁 트이는 뷰에 최고급 호텔이 부럽지 않았다. 과연 경기의 백패킹 명소라 할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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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백패킹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있는 클린하이커스. 아름다운 자연을 안주삼아 나누는 좋은 대화는 백패킹의 하이라이트다.
‘내 텐트 주변 10m 청소하기’ 캠페인

활공장 활용을 위해 설치한 초록색 그물을 보자, 인간이 친 그물에 갇힌 해양생물을 표현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즉시 작업에 착수했다. 지는 해를 배경으로 돗자리를 펼쳐 쓰레기를 쏟아 정렬했다. 커다란 물고기 한 마리와 오징어를 만들고, 불가사리를 추가했다. 우산 손잡이로 낚싯바늘을 표현하고, 공사 폐기물을 이어 낚싯줄을 만들었다.

‘해양생물을 착취하고자 이기심의 덫을 쳐놓고, 결국 그 덫에 딸려가 버리는 인간을 표현하면 어떨까?’

즉흥적으로 아이디어를 낸 우리는 정크아트 위에 다 함께 누웠다. 산에서 바다를 표현하고, 인간의 자조와 성찰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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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전 ‘내 텐트 주변으로 10m는 깨끗이 청소하기’를 실천중인 클린하이커스.

이날 활공장에는 각각 홀로 온 야영객 두 사람이 있었다. 같은 장소에서 조용히 일몰을 바라보고, 밤 10시가 되자 잠자리에 들었다.

그들은 이른 아침 다른 산객이 오기 전 텐트를 걷고, 인사를 건네며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몰상식한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라 이렇게 타인을 배려하고 자연을 즐기는 백패커들도 있다.

이들이 자리를 떠나는 것을 보며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내가 남긴 흔적이 아니더라도 ‘내 텐트 주변 10m는 깨끗이 청소하기’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다. 백패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건 백패커 스스로가 해야 할 일이다. 이러한 문화가 정착되면 백패킹 명소들이 풍경도, 환경도 깨끗한 곳으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

본 기사는 월간산 6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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